"겉치레보단 실속" 짠물 소비에 희비 갈린 유통업계

다이소 저가 화장품 열풍에 K뷰티 빅2도 입점
패션에선 명품 대신 '○○맛' SPA 브랜드 소비
백화점 대신 조금이라도 더 저렴한 할인점 찾고
  • 등록 2024-12-13 오전 6:49:20

    수정 2024-12-13 오전 6:49:20

[이데일리 경계영 기자]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짠물 소비’가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5000원 이하 제품만 판매하는 생활용품점 다이소엔 대기업 입점이 줄 잇고, 국내 의류 일괄 제조·유통(SPA) 브랜드인 탑텐이 매출액 1조원에 근접하는 등 가성비 있는 브랜드가 주목받고 있다. 12·3 계엄 사태로 소비심리가 더욱 얼어붙으며 이같은 흐름이 당분간 더 이어지리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달 서울 중구 다이소 명동역점에 진열된 소용량 화장품. (사진=연합뉴스)
12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많은 업체들이 다이소에 입점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가성비의 대명사 다이소는 짠물 소비에 혜택을 받고 있는 대표 채널이다. 올 하반기 LG생활건강(051900), 아모레퍼시픽(090430) 등 국내 양대 뷰티 업체가 잇따라 다이소 전용 브랜드를 내놨다. 다이소에서 LG생활건강은 ‘케어존’과 ‘CNP 바이 오디-티디’(Bye od-td)를, 아모레퍼시픽은 ‘미모 바이 마몽드’를 각각 전개 중이다. 애경산업(018250) 역시 여드름 케어 브랜드 ‘에이솔루션’을 지난해부터 다이소에서 판매했고 지난달 색조 화장품 브랜드 ‘투에딧 바이 루나’로 제품군을 확대했다.

대기업 진출이 활발해지며 다이소에서 유통하는 화장품 브랜드는 지난달 기준 59개로 지난해 말 26개에서 두 배 이상 늘었다. 다이소에 따르면 기초·색조 화장품 매출액 증가율(전년 동기 대비)은 2021년 52%→2022년 50%→2023년 85%→올해 1~11월 150% 등으로 점차 가팔라지고 있다.

의류 브랜드도 명품보다 SPA 브랜드가 잘 나간다. SPA 브랜드 유니클로는 2024회계연도(지난해 9월~지난 8월) 매출액이 1조 602억원으로 2019회계연도 이후 5년 만에 1조원대를 회복했다. 신성통상(005390)이 전개하는 탑텐의 매출액도 지난해 9000억원가량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 1조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이랜드월드의 스파오 역시 올해 매출액이 6000억원 정도로 지난해보다 25%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반면 명품 브랜드는 실적이 부진하다. 구찌, 보테가베네타 등을 보유한 케링(Kering)그룹은 3분기 매출액이 전년 동기대비 16%, 루이비통, 디올 등을 보유한 LVMH는 같은 기간 3% 각각 감소했다. 베인앤드컴퍼니는 지난달 연례 명품 보고서에서 올해 명품 시장이 3630억유로로 전년 대비 2%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명품 시장 축소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15년 만이다.

SPA 브랜드가 성장하고 명품 산업이 위축되는 모습은 ‘듀프 소비’와도 맞물려 있다. 듀프는 복제품을 의미하는 듀플리케이션(dplication)에서 온 단어로, 듀프 소비는 명품 대신 가성비 높은 저가 대체품을 구매하는 것을 말한다. 유니클로 ‘유틸리티백’은 요시다 포터 가방과 디자인이 비슷하면서도 가격이 7분의 1 수준에 불과해 ‘포터맛 가방’으로 품절 대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짠물 소비 트렌드에 유통 채널별 희비도 엇갈린다. 매달 매출액을 발표하는 신세계그룹을 보면 신세계(004170)백화점은 총매출액이 10월 3.0%, 11월 1.89% 각각 전년 동월 대비 감소한 반면 창고형 할인점 이마트 트레이더스는 같은 기간 총매출액이 3.6%, 6.2% 증가했다. 가격 민감도가 커지면서 큰 묶음으로 저렴하게 판매하는 이마트 트레이더스를 찾는 발길이 늘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자신의 예산 범위를 벗어나 과시적 소비를 하던 ‘욜로’(YOLO·You Only Live Once)는 결국 자신에게 힘들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짠물 소비가 더 공감을 얻고 있다”며 “정치적 불확실성에 따른 소비 심리 위축으로 내년 하반기까지도 짠물 소비 행태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대홍기획은 내년 소비 트렌드로 소비·투자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과 태도가 나타날 것이라며 `듀프 소비`와 `럭셔리 산업의 위기`를 예측했다. 강승혜 대홍기획 데이터인사이트팀장은 “사회적 인정에 민감한 밀레니얼세대(1980년대 초~1990년대 중반 출생자)에 비해 Z세대(1990년대 중후반 이후 출생자)는 현실적이고 실속을 중시하는 가치관을 갖고 있다”며 “명품과 디자인이나 성능이 비슷하면서도 가격을 낮춘 ‘저렴이’, 중고 제품 등을 사는 ‘실용 소비’가 현명하다는 인식이 있어 이같은 현상이 상당히 오래 갈 것”이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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