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 4개국만 하더라도 연간 약 16억 달러에 이르는 함정 건조 소요가 지속될 것으로 추정됩니다. 국내 함정 건조 예산인 2조2000억 원과 비슷한 규모입니다. 세계 각국의 해군력 증강 추세 배경에는 첨예하게 대립하는 안보 상황과 함께, 수명주기 도래에 따른 함정 교체 시기에 해군을 현대화하고자 하는 각국의 이해관계가 더해져 나타나는 현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해저 자원에 대한 개발권을 비롯해 해양 안보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쇠퇴한 美 조선업…中 추월에 ‘위기감’
특히 1980년대부터 중국으로 접근하는 해양세력을 차단하겠다는 전략을 내세운 중국 해군력의 급부상은 미국에게는 당장 해결해야 할 현안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미 해군 정보국 등의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함정 건조 능력은 2024년 기준으로 10만 톤인데 반해, 중국은 2325만 톤으로 미국보다 232배의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함정 척수도 이미 2020년을 기준으로 293척을 보유한 미국은 350척을 보유한 중국에게 추월당했고, 2023년 기준 미국 296척, 중국은 370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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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의 ‘2025년 미국 조선업 정보’에 따르면 1983년부터 2013년까지 30년 동안 미국 내 조선소 400여 곳이 폐업했고 현재는 21곳 만이 상업용 선박을 건조하고 있습니다. 이 중 12개 조선소는 단 한 척의 수주 잔고만 보유하고 있고, 전체 46척의 수주 잔고 중 인도 예정 시기를 넘긴 선박이 15척에 달할 정도로 생산효율성도 떨어진 상태입니다. 2023년 기준 전 세계 선박 건조량 조사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0.13%에 불과하다는 것은 미국 조선산업의 실상을 가늠케 합니다.
미 의회 여야 의원들은 지난 2024년 12월 ‘미국의 번영과 안보를 위한 조선업과 항만시설법’(SHIPS ACT for America)을 공동 발의해 미국의 조선업 부활을 초당적으로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현재 80여 척의 미 국적 무역상선 척수를 250척 규모의 전략 상선단(SCF)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입니다.
또 올해 1월 미 의회예산국(CBO)이 공개한 향후 30년(2025~2054) 함정 건조 계획에 따르면 현재 미 해군 함정을 296척에서 2054년 390척으로 대폭 확대한다는 구상입니다. 이 기간 중 도태될 함정까지 고려하면 새로 건조하는 함정 소요가 전투함 293척, 군수지원함 71척 등 364척에 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사업비는 총 1조 750억 달러, 약 1600조 원으로 추산됩니다. 이는 연평균 10여 척의 함정 건조에 매년 평균 358억 달러의 예산이 소요되는 수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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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조선의 美 진출…정부 간 협력 뒷받침 돼야
실제로 미국 동맹국 중 가장 많은 도크를 갖고 있는 것도 한국 조선소 입니다. K-조선산업의 공급망은 가장 활성화 돼 있고 성능과 납기 준수 능력은 이미 검증돼 있습니다. HD현대중공업 한 개 조선소 만으로도 연 5척의 이지스구축함을 만들 수 있습니다. 게다가 미국의 함정 가동율이 가장 높은 인도·태평양함대는 신규 건조 함정과 MRO 모두 절박한 상황으로, 대한민국은 지리적 위치나 인프라 면에서 미국에게는 매력적인 곳입니다. 지난 4월 HD현대중공업과 미 헌팅턴 잉걸스가 ‘군함·상선 협력 가속화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미 해군이 한화오션에 MRO 사업을 잇따라 맡긴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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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선소들은 미국 군함시장 진출의 시발점으로 MRO 사업을 선택했습니다. MRO는 그 자체 사업성보다는 미국 함정사업에 참여하기 위한 신뢰 구축의 마중물입니다. 지난 4월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을 방문한 존 펠란 미국 해군성 장관도 한국과 미국 간 실현 가능한 협력 분야로 MRO를 꼽았습니다. 이에 더해 우리 기업들은 미국 해양방산 기업을 인수하는가 하면, 파트너십을 체결해 미국 조선업 재건 참여를 본격화 하고 있습니다.
K-함정의 미국 시장 정착을 위한 정부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기본적으로 조선·해양방산 협력은 정부 간 협상, 즉 G2G 방식으로 추진돼야 하기 때문에 현재는 양국의 해양방산 기업 간에 추진할 수 있는 인력 교류, 기자재 공급, 건조 공정의 효율성 강화 등에 대한 협력방안이 먼저 논의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향후 정부 간 협력을 통해 법적·제도적 뒷받침과 함께 계획된 물량 공급 협상이 함께 이뤄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