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로 대한민국의 시계는 멈췄다. 아니, 정확히는 거꾸로 가고 있는 듯하다. 21세기에 총을 든 수백여명의 최정예 군인들이 민의의 전당인 의회에 헬기를 타고 난입, 국회의사당 창문을 깨부수고 습격을 시도하는 장면이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구속되자 보수층이라 불리는 일부 시민들은 폭도로 돌변해 사법부를 파괴하는 난동을 벌였다. 부끄러운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정치권은 해결은커녕 진영 싸움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조기 대선을 가정하고 오로지 정권 재창출과 정권 교체라는 각자 유리한 판을 만들기 위해 정치적 계산기를 두드리고, 혼돈의 정치판에서 어떻게든 본인이 살아남을 궁리만 하고 있다.
“왼쪽, 니는 잘했나!”라는 한 연예인의 발언을 맹비난했던 야권도 마찬가지다. 탄핵 이후 정국 안정을 최우선으로 삼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국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을 29번째로 탄핵하며 입맛에 안 맞는 인사는 모조리 끌어내리는 오만한 행태를 또다시 반복했다. 조기 대선에 불리한 징후의 싹을 자르기 위해 카카오톡 메시지를 검열하고, 여론조사업체 규제를 강화하는 데 열을 올렸다. 시급한 국정 공백 해소를 위해 발족한 여야정 국정협의체는 사실상 키를 민주당이 쥐고 있지만, 한 달 넘게 첫 회의조차 열지 못했다.
비겁한 여당, 비열한 야당이 치열하게 싸우는 동안 국론은 양분됐다. 당연히 국민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졌다. 내수침체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고물가·고금리에 시달리는 서민들은 비명을 지르고 있다. 올해는 내수 부진과 수출 약세로 성장률이 1%대로 사상 최악 수준으로 예상된다. 대외적으로도 미국 정권 교체로 방위비 분담금 인상, 고관세 등 시한폭탄을 앞두고 있지만 정치권은 대응조차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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