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내실이 남아 있을 때가 화친의 때이옵니다. 성 안이 다 마르고 시들면 어느 적이 스스로 무너질 상대와 화친을 도모하겠나이까.”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 중 용골대 서신에 대해 김상헌과 최명길이 각각 인조에게 고하는 대목이다. 이는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주전파 김상헌은 명분과 지조를 내세운 반면 주화파 최명길은 참수 위협에 놓이면서도 나라의 생존을 위해 청으로 가는 문서를 만들었다. 그 결과 인조는 삼전도에서 청나라 황제에게 항복하고 그 대가로 조선 왕조는 유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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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자동조정장치와 보험료율에 대해 알아보자. 자동조정장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24개국이 도입한 제도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9월 발표한 정부안에서 보험료율을 충분치 못한 13% 인상할 때 포함됐다. 방식은 전년 연금지급액에서 물가인상률을 반영하던 것에서 저출생으로 인한 가입자감소율과 기대여명 증가율을 추가로 반영하는 것이다.
자동조정장치에 대한 양측 입장은 모두 일리 있다. 자동조정장치가 저출생·고령화와 맞물리면 연금지급액이 줄 수 있고, 보험료를 충분히 올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재정을 운영하려면 대안적으로 필요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현재처럼 적게 내고 많이 받는 구조가 지속한다면 모든 부담은 우리 아들딸과 손자와 손녀에게 돌아간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 세대는 보험료는 적게 냈으면서 우리가 정한 대로 많이 달라고 후손들에게 채근하는 이기적인 세대로 기억될 수 있다.
소득대체율도 마찬가지다. 현재는 보험료 9%를 내고 40년이 지나면 소득대체율 40%만큼 받는다. 그러나 역으로 40%를 받으려면 19.7%를 내야 한다. 70년 후에도 1년 치의 급여를 주려면 부담해야 할 보험료율은 18.1%이다. OECD 평균보험료율 18.2%를 고려하면 우리 보험료율은 절반 수준이다. 이웃 나라 일본은 18.3%, 독일은 18.6%, 프랑스는 27.8%를 부담하고 있다.
연금개혁의 골든타임이라던 2월이 지나 3월에 접어들었다. 개혁 시계는 얼마 남지 않았다. 가장 어렵고 힘들다던 보험료율 인상(13%)은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소위에서도 모두 동의했다. 남은 것은 자동조정장치와 소득대체율이다. 이 두 가지 정책의 목적은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이다. 두 정책이 상호 조화를 이루며 함께 실행되면 가장 좋을 것이나 이것이 현실적으로 실행되기 어려울 경우 정책 목적인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대안이 필요한 것 같다. 아울러 출산크레딧과 군크레딧이 확대될 경우의 소득대체율 효과(1%, 0.75~0.94%)도 감안하면 좋을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남한산성에서 김상헌과 최명길은 청나라 심양의 감옥에서 창살을 나란히 두고 만났다. 두 사람은 방법은 정반대였음에도 나라를 위하는 서로의 마음만은 같았음을 알고 화해했다고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만남과 화해가 연금개혁을 앞둔 우리 모두에게 깃들었으면 하는 바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