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진 주르완다 대사] 한국인에게 ‘르완다 공화국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물으면 어떤 답을 할까. 필자의 부친처럼 “어디에 있는 나라냐”라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2014년 르완다를 방문한 반기문 전 유엔(UN) 사무총장이 르완다 대학살 20주년 추모행사에 참석해 폴 카가메 르완다 대통령의 권유로 국무회의장에서 대통령과 장관들에게 강연하고 토론한 일을 떠올리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영화 ‘호텔 르완다’, 100일간 100만 명 제노사이드(genocide·집단학살), 후투족에 의한 투치족 대학살, 아프리카의 싱가포르, 치안이 세계 으뜸인 곳, 부패인식
 | 정우진 주르완다대사[외교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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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CPI) 43위의 나라, 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아프리카에서 처음으로 갱신한 국가, 유튜브 300만 클릭을 자랑하는 가수 주노의 노래 ‘쉐은제’(shenge), 박명수.최다니엘.김대호의 위대한 가이드 르완다편, 거리가 매우 깨끗한 곳, 고릴라 관광 등을 떠올릴 것이다.
필자에게 이 질문을 한다면, 단연 르완다에서 매년 4월7일부터 7월4일까지 이어지는 크위부카(Kwibuka) 추모를 꼽을 것이다. UN은 2003년부터 총회결의로 매년 4월7일을 ‘1994년 르완다 제노사이드에 관한 국제성찰의 날’로 지정했고, 2018년부터는 ‘1994년 르완다 내 투치에 대한 제노사이드에 관한 국제성찰의 날’로 재지정해 추모하고 있다. ‘크위부카’는 르완다어로 1994년 제노사이드의 기억을 잊지 않겠다는 추모의 의미와 더불어 인종차별 없이 단합해 새롭게 한다는 의미도 있다
르완다인은 서구 식민세력이 20세기 초 밀려오기 전부터 수세기간 같은 역사와 같은 언어의 공동체로 살아왔다. 어느샌가 인종차별의식이 싹트고 1950~1960년대에는 인종차별에 호소하는 정당, 왕정을 강화하자는 정당,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정당들이 난립했다. 국민투표로 왕정은 폐지되고 1962년 ‘르완다 공화국’이 출범해 1994년까지 지속했다.
1994년 카가메 세력에 밀린 제노사이드 세력은 무장을 유지한 채 민주콩고 동부로 도주했는데, 이들은 인종차별에 호소하며 32년간 집권했던 잔존 세력이다. 이 지역은 플랜테이션 농업을 해오던 유럽인들이 1960년 민주콩고의 독립으로 토지를 빼앗기고 쫓겨나자, 토박이 격인 르완다 말을 쓰는 후투와 투치가 차지했다. 굴러들어온 돌인 제노사이드 후투 잔당들은 박힌 돌인 르완다 말을 쓰는 투치에게 온갖 혐오발언, 약탈, 살육을 일삼았다.
카가메는 1994년부터 대통령은 아니었다. 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후투 대통령에 후투 총리를 추대하며 인종 화합을 위해 노력했으나, 녹록치 않자 결국 2000년 직접 대통령으로 나서게 된다. 2001년과 2002년 국기와 국가(애국가)를 바꿨다. 인종차별 터부의 ‘르완다 공화국’이 등장한 것이다.
크위부카 추모는 제노사이드가 발생한 1994년을 기점으로 계산하여 작년은 크위부카 30, 금년은 크위부카 31식으로 명명한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1994년 이전에 (같은 극단 세력이 행한 대학살로) 희생된 사람들은 추모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1959년 대학살, 당시 두 살이던 카가메 대통령과 그의 부모는 우간다로 도망쳐 난민 생활을 했다. 1963~1964년, 1973년, 1990~1993년 대학살의 희생자들은 수없이 많다.
인간의 역사는 인종, 종교, 성별 등 각종 차별을 완화 또는 제거하면서 발전한다. 르완다의 크위부카 추모는 인종차별로 인한 살상과 폭력은 더 이상 안 된다는 인간 사회의 보편적 가치를 공고화하고자 하는 인류사회를 위한 오열 혹은 실신의 몸부림이다. 우리 정부와 종교계는 매년 르완다 제노사이드 추모식에 참여해왔다, 르완다에서 결성된 한인회, 선교단체, 기업협의체, 봉사단, 비정부기구(NGO) 등 한국인 모두가 어떤 형태로든 크위부카 추모에 공감하고 동참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