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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근로기준법은 직장 내 괴롭힘을 ‘업무상 지위 또는 관계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규정한다. 법률은 명확하다. 하지만 실무에서는 피해자의 ‘감정’이나 ‘정서적 반응’이 아닌, 행위의 객관적 요건 충족 여부에 따라 판단이 이뤄진다. 쉽게 말해 피해자가 느끼는 괴로움이 아무리 크더라도, 법적 요건에 부합하지 않으면 보호받기 어렵다.
이러한 흐름은 실무상 다음과 같은 쟁점으로 이어진다. 먼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문제가 발생한다. 법적 판단에서 피해자 진술은 핵심적 증거지만, 정서적으로 위축된 상태에서 일관성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자기 의심이 반복되면 진술의 신뢰도가 흔들리고, 가해자의 주장과 맞서기 어려운 구조가 된다. 또 피해자 보호 조치의 실효성도 한계에 부딪힌다. 법은 사용자의 불이익 조치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피해자는 실제로 평가, 관계, 조직 분위기에서 불이익을 감지한다. 이로 인해 신고를 주저하거나, 자발적 퇴사로 이어지는 사례가 반복된다.
더 나아가 조사 과정이 2차 가해로 전환될 위험도 크다. 내부 조사에서 피해자의 감정을 ‘과민 반응’이나 ‘예민함’으로 해석하면, 절차 그 자체가 또 다른 심리적 침해로 작용하게 된다. 이처럼 직장 내 괴롭힘은 단지 가해자-피해자 간의 충돌로 환원할 수 없는, 법률과 조직 시스템 전반의 구조적 문제다. 신고 이후의 절차적 정당성만을 점검할 것이 아니라, 신고 이전 단계에서부터 피해자가 자신의 감정을 해석하고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강서영 변호사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변호사시험 2회 △캘리포니아대 어바인 로스쿨 방문학자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 △(현)부산여성가족과 평생교육진흥원 자문위원 △(현)보건복지부 고문변호사 △(현)법무법인 원 소속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