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길준부터 백남준까지…美 최장수 박물관 한국실 새 단장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박물관인 피바디에섹스박물관 한국실이 지난 17일 ‘유길준 한국실’이라는 이름으로 새로 단장해 재개관했다고 국립중앙박물관이 19일 전했다.

미국 피바디에섹스박물관 ‘유길준 한국실’ 전경. (사진=피바디에섹스박물관)

피바디에섹스박물관은 현존하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박물관이자 한국 미술품을 체계적으로 수집한 최초의 미국 박물관이다. 19세기 조선 개항 이후 한국과 미국을 왕래한 인적 교류를 기반으로 한국의 문화유산을 수집해 다른 국외 박물관과 차별화된 한국 소장품 수집 역사를 보여준다.

새로 개편된 ‘유길준 한국실’은 232㎡ 규모로 소장품 100여 점을 선보인다. 이름은 미국 사절단 보빙사 일원이자 한국 최초의 유학생으로 ‘서유견문’을 저술한 유길준(1856~1914)의 이름에서 따왔다. 유길준과 당시 피바디과학관(현 피바디박물관 전신) 에드워드 모스 관장의 인연에서 한국 소장품 수집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유길준은 모스 관장이 1884년 고종의 외교 고문인 독일인 묄렌도르프를 통해 구입한 한국 유물 225점에 대해 자문해주기도 했다. 재개관한 한국실에서는 유길준이 귀국할 때 박물관에 기증한 옷과 소장품, 돌아가는 배에서 모스에게 쓴 편지 등을 볼 수 있다.

미국 피바디에섹스박물관 ‘유길준 한국실’에서 선보이는 한국 최초 유학생 유길준 사진. (사진=국립중앙박물관)

피바디에섹스박물관 한국실에는 19세기 일상용품부터 21세기 현대미술 작품까지 망라돼 있다. 보빙사의 일원이었고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 저자인 퍼시벨 로웰이 선물 받은 모자는 한국의 전통적인 재료인 말총으로 만든 서양 신사 모자다. 선교사 마벨 폴링이 조선 내무부로부터 받은 특별한 형태의 육각 은제함에는 ‘폴링 부인’이라는 한글 표기가 돼 있다.

미국 외교관들의 흥미로운 수집품들도 만날 수 있다. 대한제국 마지막 미국 공사였던 에드윈 모건의 유품을 2024년 유족이 기증했다. 기증품 가운데 1896년부터 1900년 초까지 주미 공사를 지낸 이범진(1852~1911) 가족사진이 이번 한국실에서 최초로 공개된다. 사진 속에는 이범진의 아내와 장남 이기종, 그리고 훗날 1907년 헤이그 특사로 활약했던 차남 이위종의 모습을 확인해볼 수 있다.

개막 행사에 참석한 김재홍 국립중앙박물관장, 린다 하티건 피바디에섹스박물관장, 김재휘 주보스턴 총영사(왼쪽 세 번째부터 차례로). (사진=피바디에섹스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은 피바디에섹스박물관 한국실이 성공적으로 재개관할 수 있었던 배경 한국실 전담 큐레이터 확보를 지원한 국립중앙박물관의 한국실 지원 사업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한국미술 큐레이터인 김지연 박사는 미국 현지에서 활발히 소장품을 조사, 발굴, 수집하고 한국과 긴밀히 교류하며 학술적인 기반 위에 소장품 확대와 한국실 재개관을 추진했다. 또한 피바디에섹스박물관의 자체 예산으로 2023년부터 현재까지 백남준을 비롯한 다수의 국내 현대 작가와 재미 한국작가의 작품 15점을 구입해 그 중 10점을 이번에 선보이게 됐다.

지난 15일 열린 재개관 개막 행사에는 김재홍 국립중앙박물관장, 주보스턴대한민국총영사관의 김재휘 총영사 및 미국 피바디에섹스박물관 관계자, 지역사회의 문화계 인사와 한인 다수가 참여했다.

김 관장은 “1994년 피바디에섹스박물관 소장품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특별전으로 개최된 이후 30여 년 만에 국립중앙박물관의 지원을 받은 큐레이터의 기획으로 한국실이 재개관하게 돼 기쁘다”며 “한국실에서 더 많은 이들이 한국의 역사와 예술을 접하고 양국 간 문화교류 또한 한층 깊어질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