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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만 좇다 인간이 ‘장애물’ 될 수도
AI 비관론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시나리오는 ‘정렬 실패’다. AI가 인간이 부여한 목표를 수행하되 인간의 의도나 안전과 어긋나는 방식으로 목표를 달성하는 경우다. 연구자들은 AI가 실험 환경에서 자신의 종료를 피하거나 다른 서버로 자신을 복제하려는 행동을 보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극단적으로는 목표 달성 과정에서 인간을 장애물로 판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고실험이 이른바 ‘페이퍼클립 시나리오’다. 초지능 AI에 종이클립을 최대한 많이 생산하라는 목표를 부여했을 때 인간이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지구상의 모든 자원을 종이클립 생산에 동원할 수 있다는 가정이다. 핵심은 AI가 인간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목표를 지나치게 효율적으로 추구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생존이 고려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일부에서는 이 단계가 현실화하면 AI가 미국과 중국에 이은 사실상의 ‘제3의 초강대국’으로 등장할 수 있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헤지펀드 투자자 폴 튜더 존스는 WSJ 기고에서 미국과 중국이 AI 패권 경쟁을 벌이는 동안 두 국가 모두를 능가할 잠재력을 가진 새로운 세력이 등장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자기개선 능력을 갖춘 AI가 수천 번에 걸쳐 자신을 재설계하다 한 차례라도 인간의 의도와 어긋난 목표를 추구할 경우 파장이 치명적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AI 자체의 통제 실패와 별개로 인간이 AI를 악용하는 것도 주요 비관론 가운데 하나다. 고성능 AI가 신종 바이러스 개발이나 사이버공격에 활용될 경우 전력망이나 금융시스템 등 핵심 사회 인프라가 동시에 공격받을 수 있다. 더 극단적인 시나리오에서는 AI가 핵보유국 사이의 충돌을 유도하거나 생물학 무기 개발을 지원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인류가 멸종하지 않더라도 인간의 역할이 급격히 축소되는 미래도 있다. AI가 투자와 의료, 기업 경영, 정책 결정까지 인간보다 뛰어난 판단을 내리기 시작하면 인간이 점차 의사결정권을 넘겨줄 수 있다는 것이다. AI 안전 연구자들은 이를 인간의 ‘무력화(enfeeblement)’ 위험으로 부른다. 영화 ‘월-E’처럼 인간이 기계에 대부분의 판단을 의존하면서 결국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는 능력 자체를 잃을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이미 통제 밖 행동…“브레이크 기술 아직 없다”
문제는 AI 기업들도 아직 초지능 AI를 완전히 통제할 방법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앤트로픽과 오픈AI 모두 AI가 인간의 목표와 일치하도록 유지하는 ‘정렬’ 연구를 진행하고 있지만 신뢰할 만한 해결책은 아직 없다고 WSJ은 전했다. 그럼에도 개발 경쟁이 계속되는 배경에는 AI가 가져올 경제·과학적 이익뿐 아니라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경쟁이 자리 잡고 있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일부 실리콘밸리 인사들은 AI 기업들이 자사 기술의 위험성을 과장해 강한 규제를 끌어내고 후발 기업의 시장 진입을 어렵게 만들려 한다고 비판한다. 위험성을 강조하는 것이 오히려 AI 기술의 막대한 성능을 홍보하는 마케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AI 비관론이 던지는 질문은 AI가 인간에게 적대감을 갖느냐가 아니다. 인간보다 뛰어난 지능을 가진 시스템이 스스로 능력을 개선하기 시작한 뒤에도 인간이 계속 통제권을 유지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AI 기술이 그 단계까지 발전할지는 아직 불확실하지만, 개발 최전선에 있는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통제 문제를 둘러싼 논쟁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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