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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세계적인 반부패운동 단체 국제투명성기구(TI)는 미국이 ‘2024년도 부패인식지수’에서 100점 만점에 65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180개 조사 대상국 중 공동 28위를 기록했다.
부패인식지수는 국가별 공공·정치 부문에 존재하는 부패 수준을 평가하는 대표적인 국제 반부패 지표다. 국제투명성기구가 1995년부터 매년 발표하고 있다.
이번에 발표된 부패인식지수에서 미국은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는데 법원 시스템에 대한 대중의 신뢰 저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스콧 그레이탁 국제투명성기구 미국 사무소 정책 담당 이사는 “미국에서 법원이 의회나 행정부와 마찬가지로 부당한 영향력에 취약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것은 최근 들어 처음 있는 일”이라며 “이는 매우 극적인 변화”라고 평가했다.
실제 미국에선 대법원의 클래런스 토마스 대법관이 억만장자로부터 고가의 선물을 받은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법부의 공정성과 독립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 이에 미국 대법원은 2023년 윤리 강령을 도입했지만, 이를 강제할 수 있는 명확한 감시 및 제재 장치가 부족하다는 점이 여전히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에서도 사법부의 독립성 훼손이 부패인식지수에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튀니지에서는 카이스 사이드 대통령이 판사 해임 권한을 스스로에게 부여했고, 헝가리에서는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헌법을 개정하며 사법부 장악을 강화했다. 튀르키예에서는 반정부 인사들을 탄압하는 도구로 사법 시스템이 활용되고 있다.
그레이탁 이사는 “권위주의 지도자들이 권력을 확장하는 것을 막는 마지막 방어선이 법치주의와 사법 시스템”이라며 “언론과 시민사회도 정부 권력과 부패를 견제하는 역할을 하지만, 사법부만큼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곳은 없다”고 강조했다.
미국 외에도 부패인식지수가 최저점을 기록한 국가가 다수 나왔다. 총 47개국이 사상 최저 점수를 기록했는데 독일, 브라질, 멕시코, 러시아, 이란, 베네수엘라 등이 포함됐다.
러시아는 2020년 이후 8점 하락한 22점을 기록했고, 벨라루스는 14점 하락한 33점을 기록했다. 국제투명성기구는 “독재 정권은 견제와 균형 장치를 무력화하고 정경 유착을 통해 부패를 확산시킨다”고 지적하며, 특히 러시아는 정부 통제 하의 에너지 기업들을 이용해 법 위에 군림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2015년 이후 8점 상승한 35점을 기록하며 개선된 모습을 보였다. 이는 2014년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 축출 이후 반부패 개혁을 추진한 결과로 풀이된다. 특히 2022년 러시아 침공 이후 서방의 군사 원조가 지속되면서 서방 국가들이 요구한 반부패 개혁이 더욱 강화됐다.
특히 EU와 서유럽의 평균 점수가 64점인 것을 감안할 때 우크라이나가 EU에 가입하기 위해선 76위인 불가리아(43점)와 같은 수준까지 부패방지 대책을 진전시켜야 한는 지적도 나온다. 주요 7개국(G7) 고위 관계자는 “현재의 발전 속도로는 2020년대에 EU에 가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부패인식지수에서 상위를 차지한 국가들은 강력한 법치주의, 효율적인 정부 기관, 정치적 안정성을 갖춘 것으로 평가되지만, 국제투명성기구는 이들 국가조차도 사적 부문에서의 부패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보고서는 “주요 금융 중심지를 보유한 국가들은 부패한 자금 흐름에 취약하다”며, 금융 및 규제 시스템의 허점이 글로벌 반부패 노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부패인식지수 1위는 덴마크였으며, 핀란드가 그 뒤를 이었다. 아시아에서는 3위를 차지한 싱가포르만이 상위 10위권 안에 들었다.
한국은 100점 만점에 64점을 기록, 180개국 중 30위를 차지해 역대 최고 성적을 기록했다. 다만 지난해 12월 이전 모든 지표 조사가 마무리돼 12·3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 상황은 반영되지 않았다. 이웃나라 일본은 71점으로 전년보다 2포인트 하락했고 순위도 전년도 16위에서 20위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