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희망은 인간의 마음속에 자리 잡을 수 있는 가장 거룩한 선물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자서전 ‘희망’ 중)
 | 프란치스코 교황이 21일(현지시간) 오전 88세로 선종했다고 교황청이 발표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즉위 이듬해인 2014년 8월 14일부터 18일까지 4박 5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아 평화와 위로 그리고 화해의 메시지를 전했다. 사진은 2014년 8월 15일 충남 당진 솔뫼성지를 찾아 신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는 교황 모습.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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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1936~2025)은 굴곡진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으며 평화를 위해 평생을 바친 인물이다.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살았고, 폭력적인 전쟁과 독재에 적극적으로 맞섰다. 무엇보다 세계가 희망을 잃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교황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자서전 두 권이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희망’(가톨릭출판사)과 ‘나의 인생’(윌북)이다. ‘희망’은 교황이 2019년부터 6년간 직접 집필한 자서전이다. ‘나의 인생’은 이탈리아 민영 방송사 메디아셋의 바티칸 전문 기자 파비오 마르케세 라고나가 교황과의 대화를 정리한 책이다.
두 책 모두 교황의 ‘공식 자서전’이다. 교황은 ‘희망’을 자신의 사후에 출간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올해 가톨릭 희년(禧年, 25년 주기로 성경에 나오는 규정에 따라 죄와 빚 등을 면제하는 특별한 해)을 맞아 재임 중 출간을 결정했다. 희망이 필요한 시대에 전 세계인이 사랑과 용기를 품고 살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 2014년 8월 18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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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자서전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전쟁과 독재에 대한 교황의 단호한 메시지다. 교황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전쟁의 참혹함에 눈을 떴다. 할아버지에게 들은 전쟁의 참상으로부터 “공포와 고통, 그리고 사람을 철저히 외롭게 만드는 전쟁의 헛됨”을 깨달았다.
그래서 교황은 “전쟁은 비참함 말고는 아무것도 안겨주지 못하고, 무기는 죽음 외에는 그 무엇도 만들어내지 못한다”며 전쟁에 대한 반대 메시지를 꾸준히 내왔다. 지난 20일 교황은 부활절 메시지를 통해 “종교와 사상, 표현의 자유와 타인의 견해에 대한 존중 없이는 평화가 있을 수 없다”고 전했다. 그가 선종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메시지다.
2016년 7월 유대인 강제 수용소가 있었던 폴란드 아우슈비츠 방문 일화도 인상적이다. 당시 교황은 “신이시여, 당신의 백성을 가엾게 여기소서! 신이시여, 이 많은 잔인함을 용서하소서!”라는 글을 방명록에 남긴 채 아무 연설도 하지 않고 현장에 머물러 있었다. 그는 자서전에서 “엄청난 비극 앞에서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며 “인간의 어리석음으로 잔혹한 고통을 겪은 모든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고 싶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는 또 다른 이유는 소수자와 약자를 위한 따뜻한 마음에 있다. ‘나의 인생’에서 교황은 동성애에 대해 언급했다. 교황은 동성 결혼에는 반대한다면서도 “교회가 사회 주변부에 있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랑의 선물을 받아 공동체를 이뤄 살아가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처럼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 2014년 8월 16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시복식 미사에 앞서 차량에서 한국 신자들에게 인사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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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곡진 삶을 살았지만, 그럼에도 교황은 ‘희망’을 잃지 않았다. 자신이 직접 쓴 자서전의 제목 또한 ‘희망’으로 지었다. ‘희망’에서 교황은 젊은 시절 자신의 실수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그는 “실수는 인간의 삶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며 “우리의 여정은 언제나 새로운 발견과 끊임없는 재검토, 때로는 변화와 성장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자서전 외에도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각을 확인할 수 있는 책들이 다수 국내에 출간돼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르침을 모은 ‘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됩니다’(가톨릭출판사), 지구의 생태에 대한 교황의 생각을 확인할 수 있는 ‘지구의 미래’(앤페이지),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 교황이 세계에 전했던 메시지를 엮은 ‘어떻게 삶을 이어갈 것인가’(다돌책방) 등이다. 이백만 전 주교황청 한국 대사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 프로젝트 뒷이야기를 담은 ‘나는 갈 것이다, 소노 디스포니빌레’(메디치미디어)도 최근 출간됐다.
 | 프란치스코 교황의 자서전 ‘희망’(왼쪽), ‘나의 인생’ 표지. (사진=가톨릭출판사, 윌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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