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봉선 ‘인왕산’(2022), 한지에 먹, 220×122㎝(사진=모두의갤러리)[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삐죽한 봉우리로 겁을 주는 법이 없고 헐거운 산세로 실망시키는 법도 없다. 가깝다고 했는데 저만치 떨어져 있고, 다 갔다고 했는데 더 가라 한다. 그 산, 인왕산이 눈앞에 있다. 폭 2m를 넘긴 한지는 먹기운 아니, 산기운을 먹고 바짝 긴장했다. 무여 문봉선(62·홍익대 교수). 우린 그를 수묵화의 대가라 부른다. 일필휘지, 한 번 뻗으면 망설이는 법이 없는 그의 붓길은 당해낼 재간이 없다. 큰 붓으로 한호흡을 품고 마치 부드러운 난을 치듯 쳐 올라가니. 특히 그렇게 세운 소나무는 웅장한 기백으로 주위를 입 다물게 했다. 1980년대 현대도시의 풍경을 그린 수묵풍경화로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 등을 휩쓸었지만, 돌연 ‘산’으로 돌아갔더랬다. 본디 수묵화가 있던 그 자리로 되돌리자 한 건가. 그러곤 끝내 “진경산수의 맥을 이었다”는 평가까지 끌어냈다. 이후엔 물에도 바람에도 곁을 내줬지만, 그 마음이 어디 가겠는가. ‘인왕산’(2022)에는 그 세월의 농담이 묻어 있다. 그만의 소나무도 들어 있다. 오로지 먹과 물을 다스리는 일이다. 착각하는 붓이 나대지 말라고 늘 붙든다. 허투루 삐져나가는 법이 없다. 23일까지 서울 종로구 계동2길 북촌도시재생지원센터 모두의갤러리서 두레 이숙희와 여는 2인전 ‘동행·동행(同行·洞行)에서 볼 수 있다. 두 작가는 사제지간이다. “인왕산 아래에서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며 틈틈이 쌓아온 수묵·삶의 이야기를 펼친다”고 했다. 스승의 기개를 닮아 제자는 여리지만 서릿발 같은 꽃을 피웠다. 이숙희 ‘모란’(2022), 한지에 수묵담채, 30×40㎝(사진=모두의갤러리)이숙희 ‘붓꽃’(2022), 한지에 수묵담채, 30×40㎝(사진=모두의갤러리)
오현주 기자2023.09.18
문봉선 ‘인왕산’(2022), 한지에 먹, 220×122㎝(사진=모두의갤러리)[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삐죽한 봉우리로 겁을 주는 법이 없고 헐거운 산세로 실망시키는 법도 없다. 가깝다고 했는데 저만치 떨어져 있고, 다 갔다고 했는데 더 가라 한다. 그 산, 인왕산이 눈앞에 있다. 폭 2m를 넘긴 한지는 먹기운 아니, 산기운을 먹고 바짝 긴장했다. 무여 문봉선(62·홍익대 교수). 우린 그를 수묵화의 대가라 부른다. 일필휘지, 한 번 뻗으면 망설이는 법이 없는 그의 붓길은 당해낼 재간이 없다. 큰 붓으로 한호흡을 품고 마치 부드러운 난을 치듯 쳐 올라가니. 특히 그렇게 세운 소나무는 웅장한 기백으로 주위를 입 다물게 했다. 1980년대 현대도시의 풍경을 그린 수묵풍경화로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 등을 휩쓸었지만, 돌연 ‘산’으로 돌아갔더랬다. 본디 수묵화가 있던 그 자리로 되돌리자 한 건가. 그러곤 끝내 “진경산수의 맥을 이었다”는 평가까지 끌어냈다. 이후엔 물에도 바람에도 곁을 내줬지만, 그 마음이 어디 가겠는가. ‘인왕산’(2022)에는 그 세월의 농담이 묻어 있다. 그만의 소나무도 들어 있다. 오로지 먹과 물을 다스리는 일이다. 착각하는 붓이 나대지 말라고 늘 붙든다. 허투루 삐져나가는 법이 없다. 23일까지 서울 종로구 계동2길 북촌도시재생지원센터 모두의갤러리서 두레 이숙희와 여는 2인전 ‘동행·동행(同行·洞行)에서 볼 수 있다. 두 작가는 사제지간이다. “인왕산 아래에서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며 틈틈이 쌓아온 수묵·삶의 이야기를 펼친다”고 했다. 스승의 기개를 닮아 제자는 여리지만 서릿발 같은 꽃을 피웠다. 이숙희 ‘모란’(2022), 한지에 수묵담채, 30×40㎝(사진=모두의갤러리)이숙희 ‘붓꽃’(2022), 한지에 수묵담채, 30×40㎝(사진=모두의갤러리)
안말환 ‘꿈꾸는 40106’(Dreaming 40106·2023), 캔버스에 혼합재료, 65.1×100.0㎝(사진=갤러리작)[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막 파마를 끝낸 듯 풍성한 머리를 얹은 튼튼한 나무 아래 종종거리는 어린 새들. 마음이 푸근해지는 정경이 아닌가. 싱그러운 초록 바탕에 어울린 따뜻한 노랑은 눈까지도 푸근하게 하고. 숱하게 그려진 나무와 숲, 새지만, 이처럼 단박에 시선을 사로잡는 장면은 흔치 않다. 숨긴 것, 가진 것을 다 내려놓게 하는 ‘무장해제’, 바로 그 경지에 올려놓는 거다. 작가 안말환(66)은 나무를 그린다, 아니 키우고 가꾼다. 그 나무가 숲이 되고, 그 숲이 새들을 불러모으는 ‘삶의 과정’을 화면에 붙들어둔다. 통틀어 ‘편안한 나무’지만 작가의 나무에는 ‘역사’가 있다. 초기에 이름 모를 추상화한 나무를 시작으로 미루나무, 바오바브나무, 소나무까지 일정 기간 연작을 만들어냈는데. 종류는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게 있으니 ‘한국적 미감’이다. 그중 하나라면 두툼한 질감일 거다. 돌가루 섞은 질료를 긁거나 파내 만든 특유의 장치는 작가의 ‘무기’가 됐다. 그럼에도 작가는 그 무기를 크게 휘두르는 법이 없다. 그저 보는 이의 가슴에 역시 두툼하게 얹어낼 뿐. “나의 나무는 지친 일상을 사는 현대인에게 아무런 의심 없이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쉴 수 있는 신선한 숲, 세상에서 가장 크고 깨끗한 호흡이 되려 한다”고 했더랬다. 그런 나무의 소망 한 줄기가 ‘꿈꾸는 40106’(Dreaming 40106·2023)일 터. 나무를 그린 지 30여년이란다. 작은 묘목을 땅에 심어도 장성한 나무가 됐을 세월이다. 캔버스에서 키운 나무라고 다르겠는가. 23일까지 서울 서초구 매헌로 갤러리작서 여는 기획전 ‘안말환: 행복이 열리는 나무’에서 볼 수 있다. 신작 30여점을 걸었다. 안말환 ‘꿈꾸는 212029’(Dreaming 212029·2021), 캔버스에 혼합재료, 40×80㎝(사진=갤러리작)안말환 ‘꿈꾸는 2210133’(Dreaming 2210133·2022), 캔버스에 혼합재료, 30×60㎝(사진=갤러리작)안말환 ‘꿈꾸는 나무’(Dreaming Tree·2022), 캔버스에 혼합재료, 80.3×130.3㎝(사진=갤러리작)안말환 ‘꿈꾸는 50129’(Dreaming 50129·2023), 캔버스에 혼합재료, 60×130㎝(사진=갤러리작)
오현주 기자2023.09.18
안말환 ‘꿈꾸는 40106’(Dreaming 40106·2023), 캔버스에 혼합재료, 65.1×100.0㎝(사진=갤러리작)[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막 파마를 끝낸 듯 풍성한 머리를 얹은 튼튼한 나무 아래 종종거리는 어린 새들. 마음이 푸근해지는 정경이 아닌가. 싱그러운 초록 바탕에 어울린 따뜻한 노랑은 눈까지도 푸근하게 하고. 숱하게 그려진 나무와 숲, 새지만, 이처럼 단박에 시선을 사로잡는 장면은 흔치 않다. 숨긴 것, 가진 것을 다 내려놓게 하는 ‘무장해제’, 바로 그 경지에 올려놓는 거다. 작가 안말환(66)은 나무를 그린다, 아니 키우고 가꾼다. 그 나무가 숲이 되고, 그 숲이 새들을 불러모으는 ‘삶의 과정’을 화면에 붙들어둔다. 통틀어 ‘편안한 나무’지만 작가의 나무에는 ‘역사’가 있다. 초기에 이름 모를 추상화한 나무를 시작으로 미루나무, 바오바브나무, 소나무까지 일정 기간 연작을 만들어냈는데. 종류는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게 있으니 ‘한국적 미감’이다. 그중 하나라면 두툼한 질감일 거다. 돌가루 섞은 질료를 긁거나 파내 만든 특유의 장치는 작가의 ‘무기’가 됐다. 그럼에도 작가는 그 무기를 크게 휘두르는 법이 없다. 그저 보는 이의 가슴에 역시 두툼하게 얹어낼 뿐. “나의 나무는 지친 일상을 사는 현대인에게 아무런 의심 없이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쉴 수 있는 신선한 숲, 세상에서 가장 크고 깨끗한 호흡이 되려 한다”고 했더랬다. 그런 나무의 소망 한 줄기가 ‘꿈꾸는 40106’(Dreaming 40106·2023)일 터. 나무를 그린 지 30여년이란다. 작은 묘목을 땅에 심어도 장성한 나무가 됐을 세월이다. 캔버스에서 키운 나무라고 다르겠는가. 23일까지 서울 서초구 매헌로 갤러리작서 여는 기획전 ‘안말환: 행복이 열리는 나무’에서 볼 수 있다. 신작 30여점을 걸었다. 안말환 ‘꿈꾸는 212029’(Dreaming 212029·2021), 캔버스에 혼합재료, 40×80㎝(사진=갤러리작)안말환 ‘꿈꾸는 2210133’(Dreaming 2210133·2022), 캔버스에 혼합재료, 30×60㎝(사진=갤러리작)안말환 ‘꿈꾸는 나무’(Dreaming Tree·2022), 캔버스에 혼합재료, 80.3×130.3㎝(사진=갤러리작)안말환 ‘꿈꾸는 50129’(Dreaming 50129·2023), 캔버스에 혼합재료, 60×130㎝(사진=갤러리작)
이귀화 ‘풀의 소리를 듣다-다스리다 I’(2021), 캔버스에 오일, 97×97㎝(사진=장은선갤러리)[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마디가 있다. 잇지 말고 끊으라는 것처럼. ‘푸른 마디’라고 하면 으레 대나무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그건 또 아닌가 보다. 미끈하게 뻗은 단단한 몸통과는 결이 다르니 말이다. 되레 살점까지 떨어져 나간 상처 입은 연한 표피만 매달려 있지 않은가. 그런데 희한한 일이다. 전혀 약해 보이질 않는다. 이내 빳빳하게 튀어오를 태세가 느껴지니까. 작가 이귀화가 화면에 옮겨 놓은 ‘푸른 마디’는 작가의 마음과 붓을 얻은 ‘다른’ 자연이다. 경외감을 뿜어내는 스케일이 거대한 여느 자연과는 다르다는 말이다. 가령 쭉쭉 솟아 하늘에 기대는 대나무가 아니라, 납작하게 땅을 지키는 풀이란 얘기다. 실제로 작가의 작업에는 그 ‘초록 풀’이 자주 등장한다. 무질서한 엉킴 속에 질서를 잡아가는, 제자리 하나는 지킬 줄 아는 ‘잡초’ 말이다. 꼿꼿하게 서 있지도 못하는 그 잡초는 제풀에 널브러지고 위압에 짓밟히기도 한다. 마땅히 대단할 게 없다. 그런데 저 초록 풀을 작가의 화면에 들여다만 놓으면 ‘다른’ 풀이 되는 거다. 깔깔해지고 당당해지고 도도해진다. 묘사에 앞선 표현으로 구상에 앞선 추상을 완성한 작업이다. ‘풀의 소리를 듣다-다스리다 I’(2021)은 보이는 마디가 아니었다. 들리는 마디였다. 9월 2일까지 서울 종로구 운니동 장은선갤러리서 여는 개인전 ‘풀의 소리를 듣다’에서 볼 수 있다. 신작과 근작 30여점을 걸었다. 이귀화 ‘순정 9’(2023), 캔버스에 아크릴, 45.5×53㎝(사진=장은선갤러리)
오현주 기자2023.09.01
이귀화 ‘풀의 소리를 듣다-다스리다 I’(2021), 캔버스에 오일, 97×97㎝(사진=장은선갤러리)[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마디가 있다. 잇지 말고 끊으라는 것처럼. ‘푸른 마디’라고 하면 으레 대나무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그건 또 아닌가 보다. 미끈하게 뻗은 단단한 몸통과는 결이 다르니 말이다. 되레 살점까지 떨어져 나간 상처 입은 연한 표피만 매달려 있지 않은가. 그런데 희한한 일이다. 전혀 약해 보이질 않는다. 이내 빳빳하게 튀어오를 태세가 느껴지니까. 작가 이귀화가 화면에 옮겨 놓은 ‘푸른 마디’는 작가의 마음과 붓을 얻은 ‘다른’ 자연이다. 경외감을 뿜어내는 스케일이 거대한 여느 자연과는 다르다는 말이다. 가령 쭉쭉 솟아 하늘에 기대는 대나무가 아니라, 납작하게 땅을 지키는 풀이란 얘기다. 실제로 작가의 작업에는 그 ‘초록 풀’이 자주 등장한다. 무질서한 엉킴 속에 질서를 잡아가는, 제자리 하나는 지킬 줄 아는 ‘잡초’ 말이다. 꼿꼿하게 서 있지도 못하는 그 잡초는 제풀에 널브러지고 위압에 짓밟히기도 한다. 마땅히 대단할 게 없다. 그런데 저 초록 풀을 작가의 화면에 들여다만 놓으면 ‘다른’ 풀이 되는 거다. 깔깔해지고 당당해지고 도도해진다. 묘사에 앞선 표현으로 구상에 앞선 추상을 완성한 작업이다. ‘풀의 소리를 듣다-다스리다 I’(2021)은 보이는 마디가 아니었다. 들리는 마디였다. 9월 2일까지 서울 종로구 운니동 장은선갤러리서 여는 개인전 ‘풀의 소리를 듣다’에서 볼 수 있다. 신작과 근작 30여점을 걸었다. 이귀화 ‘순정 9’(2023), 캔버스에 아크릴, 45.5×53㎝(사진=장은선갤러리)
김용주 ‘바람얼굴 I’(2023), 캔버스에 아크릴. 40×40㎝(사진=제주갤러리)[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한 뭉텅이의 덩어리가 어느 곳을 향해 몰려가는 중이다. 희끗희끗 푸르고 진한 기운이 둥글고 강하게 뭉쳐서 말이다. 슬쩍 훔쳐본 작품명이 ‘바람얼굴 I’(2023). 누구라도 처음 봤을 이 맹렬한 풍경을 작가 김용주(65)는 어찌 한눈에 알아보고 화면에 옮겨놨을까. 어찌 보면 작가의 생과 삶을 응축한 듯하다. 제주에서 나고 제주에서 자랐단다. 그 섬을 떠나 들어선 뭍에선 그리움조차 내색하지 못한 세월이었을 거다. 30년간 서울에서 중·고교 미술교사를 지냈다. 학생들 가르치는 교과서도 수차례 집필하면서. 그러던 어느 날 돌연 ‘돌아가야겠다’고 했단다. 마치 책무를 다한 듯 다 털어버리고 말이다. 이후는 귀향해서 다시 만난 제주를 관찰하고 제주를 그리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밤잠도 아까울 만큼 몰입하고 빠져들면서. 그래서 남들 하는 붓질로는 부족했다고 여긴 건가. 작가 작업은 대부분 붓 대신 손과 손가락을 도구로 쓴단다. 눈에 보이는 전경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정경은 그렇게 화면에 뭉쳐졌다. 하늘을 움직이는 기류인 ‘바람’이 사람을 움직이는 소망인 ‘바람’이기도 하듯이. 9월 4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인사아트센터 제주갤러리서 여는 개인전 ‘바람마당’에서 볼 수 있다. 열세 번째 개인전이다.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부터 종달리, 성산읍 오조리로 이어지는 바닷가를 모티프로 한 작품을 선별해 걸었다. 김용주 ‘하도리의 오후 I’(2023), 캔버스에 아크릴, 89.4×130.3㎝(사진=제주갤러리)김용주 ‘들여다보기 Ⅱ’(2021), 캔버스에 아크릴, 40.9×53㎝(사진=제주갤러리)
오현주 기자2023.09.01
김용주 ‘바람얼굴 I’(2023), 캔버스에 아크릴. 40×40㎝(사진=제주갤러리)[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한 뭉텅이의 덩어리가 어느 곳을 향해 몰려가는 중이다. 희끗희끗 푸르고 진한 기운이 둥글고 강하게 뭉쳐서 말이다. 슬쩍 훔쳐본 작품명이 ‘바람얼굴 I’(2023). 누구라도 처음 봤을 이 맹렬한 풍경을 작가 김용주(65)는 어찌 한눈에 알아보고 화면에 옮겨놨을까. 어찌 보면 작가의 생과 삶을 응축한 듯하다. 제주에서 나고 제주에서 자랐단다. 그 섬을 떠나 들어선 뭍에선 그리움조차 내색하지 못한 세월이었을 거다. 30년간 서울에서 중·고교 미술교사를 지냈다. 학생들 가르치는 교과서도 수차례 집필하면서. 그러던 어느 날 돌연 ‘돌아가야겠다’고 했단다. 마치 책무를 다한 듯 다 털어버리고 말이다. 이후는 귀향해서 다시 만난 제주를 관찰하고 제주를 그리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밤잠도 아까울 만큼 몰입하고 빠져들면서. 그래서 남들 하는 붓질로는 부족했다고 여긴 건가. 작가 작업은 대부분 붓 대신 손과 손가락을 도구로 쓴단다. 눈에 보이는 전경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정경은 그렇게 화면에 뭉쳐졌다. 하늘을 움직이는 기류인 ‘바람’이 사람을 움직이는 소망인 ‘바람’이기도 하듯이. 9월 4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인사아트센터 제주갤러리서 여는 개인전 ‘바람마당’에서 볼 수 있다. 열세 번째 개인전이다.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부터 종달리, 성산읍 오조리로 이어지는 바닷가를 모티프로 한 작품을 선별해 걸었다. 김용주 ‘하도리의 오후 I’(2023), 캔버스에 아크릴, 89.4×130.3㎝(사진=제주갤러리)김용주 ‘들여다보기 Ⅱ’(2021), 캔버스에 아크릴, 40.9×53㎝(사진=제주갤러리)
김재학 ‘장미-3’(2023), 캔버스에 오일, 53×45.5㎝(사진=선화랑)[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무릇 ‘그림’이라고 할 때 떠올릴 장면이 아닌가. 낯익은 정물이 군더더기 없이 제자리에 놓였고, 마치 그게 세상의 전부인 양 세세하게 ‘기록’한 화면. 가령 은제화병에 꽂힌 한무더기의 분홍장미가 내뿜는 절정의 생명력을 캔버스에 그대로 심어낸 저 그림이 말이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화가는 있는 듯 없는 듯 애써 무심한 붓터치로 일관해내고. 작가 김재학(71)의 ‘붓’이 돌아왔다. 작가는 구상화단에서 독보적인 붓힘을 가진 화가로 꼽힌다. 대상을 캔버스에 끌어들이는데 누구보다 충실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렇다고 있는 그대로 똑같이 잘 그려낸다는 의미와는 좀 다르다. 대상의 외현보다 내면을 옮겨낸다고 할까. 사물을 긁은 못난 상처 하나에도 마음과 붓을 주는 식이니까. 눈으로만 들여다본다면 보이지 않을 사연에까지 귀룰 기울이는 거다. ‘장미-3’(2023)은 작가가 오랜 화업과 함께해온 ‘꽃과 화병’이란 소재의 연작 중 한 점이다. 장미·작약·양귀비 등 한 시대 최고의 꽃을 온몸으로 끌어안은 은·유리·도자기화병이 써낸 ‘화양연화’ 중 한 편인 셈인데, 밋밋하다 못해 적적한 배경 앞에 덩그러니 세워 그들이 품었을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봤다. 너무 화려해서 되레 쓸쓸한 그 순간에 대한 배려라고 할까. 22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5길 선화랑서 여는 ‘김재학 개인전’에 걸었다. 김재학 ‘장미-7’(2023), 캔버스에 오일, 53×45.5㎝(사진=선화랑)김재학 ‘석류’(2023), 캔버스에 오일, 41×32㎝(사진=선화랑)김재학 ‘솔숲 2’(2023), 캔버스에 오일, 290×97㎝(사진=선화랑)
오현주 기자2023.07.21
김재학 ‘장미-3’(2023), 캔버스에 오일, 53×45.5㎝(사진=선화랑)[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무릇 ‘그림’이라고 할 때 떠올릴 장면이 아닌가. 낯익은 정물이 군더더기 없이 제자리에 놓였고, 마치 그게 세상의 전부인 양 세세하게 ‘기록’한 화면. 가령 은제화병에 꽂힌 한무더기의 분홍장미가 내뿜는 절정의 생명력을 캔버스에 그대로 심어낸 저 그림이 말이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화가는 있는 듯 없는 듯 애써 무심한 붓터치로 일관해내고. 작가 김재학(71)의 ‘붓’이 돌아왔다. 작가는 구상화단에서 독보적인 붓힘을 가진 화가로 꼽힌다. 대상을 캔버스에 끌어들이는데 누구보다 충실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렇다고 있는 그대로 똑같이 잘 그려낸다는 의미와는 좀 다르다. 대상의 외현보다 내면을 옮겨낸다고 할까. 사물을 긁은 못난 상처 하나에도 마음과 붓을 주는 식이니까. 눈으로만 들여다본다면 보이지 않을 사연에까지 귀룰 기울이는 거다. ‘장미-3’(2023)은 작가가 오랜 화업과 함께해온 ‘꽃과 화병’이란 소재의 연작 중 한 점이다. 장미·작약·양귀비 등 한 시대 최고의 꽃을 온몸으로 끌어안은 은·유리·도자기화병이 써낸 ‘화양연화’ 중 한 편인 셈인데, 밋밋하다 못해 적적한 배경 앞에 덩그러니 세워 그들이 품었을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봤다. 너무 화려해서 되레 쓸쓸한 그 순간에 대한 배려라고 할까. 22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5길 선화랑서 여는 ‘김재학 개인전’에 걸었다. 김재학 ‘장미-7’(2023), 캔버스에 오일, 53×45.5㎝(사진=선화랑)김재학 ‘석류’(2023), 캔버스에 오일, 41×32㎝(사진=선화랑)김재학 ‘솔숲 2’(2023), 캔버스에 오일, 290×97㎝(사진=선화랑)
김선두 ‘낮별-방울토마토’(2022), 장지에 분채, 145×100㎝(사진=갤러리BK)[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풀과 땅, 밤과 별, 새. 이 정도의 열쇠말이면 다 된다. 토속적 냄새 물씬 풍기는 덤덤한 한국화. 그렇다고 열쇠말 몇 개가 엮을 고리타분한 장면을 상상한다면 그건 실수다. 구도면 구도, 색이면 색, 형체면 형체, 웬만한 예상을 벗어나니까. 허공에 걸린 ‘로아커 나폴리탄’ 과자봉지를 보고 까무러칠듯 놀란 표정을 한 새의 얼굴을 보면 말이다. 이쯤 되면 방울토마토 가지가 쓰러질까 깃대를 세우고 실로 고정한 디테일한 행위, 아니 그 묘사는 되레 평범하다. 작가 김선두(65·중앙대 교수)는 전통수묵화의 새 길을 열어온 이로 평가받는다. 장지·먹·분채 등이 기본인 전통기법은 물론이고 콜라주·역원근법 등을 자연스럽게 섞어내는 실험적 화풍을 구현해왔던 거다. 열쇠말이 힌트였듯 ‘별밤’은 전매특허다. 별밤 잃은 도시인에게 ‘별 보여주는 일’을 즐겼는데, 별 쏟아지는 하늘을 에너지 삼아 텃밭에 삐죽이 솟아오른 풀들의 생명력을 내보이는 작업이 줄을 이었다. 그러곤 “시골사람도 서울사람도 아닌 경계인인 자신이 어수선한 변두리에서 꾸는 꿈”이라고 했더랬다. 그랬던 작가가 이젠 낮에도 별이 뜬다는 사실을 ‘제대로’ 복기시킬 참인가 보다. ‘낮별-방울토마토’(2022)가 반짝인다. 6일까지 서울 용산구 대사관로 갤러리BK서 송수민·이소윤·이혜성과 연 3인 기획전 ‘푸른 기운’(Greenery Beats)에 걸었다.
오현주 기자2023.07.07
김선두 ‘낮별-방울토마토’(2022), 장지에 분채, 145×100㎝(사진=갤러리BK)[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풀과 땅, 밤과 별, 새. 이 정도의 열쇠말이면 다 된다. 토속적 냄새 물씬 풍기는 덤덤한 한국화. 그렇다고 열쇠말 몇 개가 엮을 고리타분한 장면을 상상한다면 그건 실수다. 구도면 구도, 색이면 색, 형체면 형체, 웬만한 예상을 벗어나니까. 허공에 걸린 ‘로아커 나폴리탄’ 과자봉지를 보고 까무러칠듯 놀란 표정을 한 새의 얼굴을 보면 말이다. 이쯤 되면 방울토마토 가지가 쓰러질까 깃대를 세우고 실로 고정한 디테일한 행위, 아니 그 묘사는 되레 평범하다. 작가 김선두(65·중앙대 교수)는 전통수묵화의 새 길을 열어온 이로 평가받는다. 장지·먹·분채 등이 기본인 전통기법은 물론이고 콜라주·역원근법 등을 자연스럽게 섞어내는 실험적 화풍을 구현해왔던 거다. 열쇠말이 힌트였듯 ‘별밤’은 전매특허다. 별밤 잃은 도시인에게 ‘별 보여주는 일’을 즐겼는데, 별 쏟아지는 하늘을 에너지 삼아 텃밭에 삐죽이 솟아오른 풀들의 생명력을 내보이는 작업이 줄을 이었다. 그러곤 “시골사람도 서울사람도 아닌 경계인인 자신이 어수선한 변두리에서 꾸는 꿈”이라고 했더랬다. 그랬던 작가가 이젠 낮에도 별이 뜬다는 사실을 ‘제대로’ 복기시킬 참인가 보다. ‘낮별-방울토마토’(2022)가 반짝인다. 6일까지 서울 용산구 대사관로 갤러리BK서 송수민·이소윤·이혜성과 연 3인 기획전 ‘푸른 기운’(Greenery Beats)에 걸었다.
김순철 ‘소망에 관하여’(About Wish·2023), 한지에 채색·바느질, 100×100㎝(사진=헤드비갤러리)[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절정으로 피어오른 저 꽃의 이름은 몰라도 된다. 세상에 저토록 강인한 꽃이 또 있을 리 없으니. 바람 불면 날아갈까 손대면 부서질까, 여리고 무른 상징은 최소한 여기에 없다. 핏줄 같고 힘줄 같은 생명력이라면 몰라도. 작가 김순철(58)은 바느질로 그림을 그린다. ‘희수’(繪繡)라 불리는 작업이다. 1997년부터라니 25년을 넘겼다. 계기라면 그림을 잘 그려보려 했던 것뿐이란다. 동양화를 그리던 작가가 어떻게 적극적으로 선을 그어낼까 고민하던 중 문득 ‘바늘땀’을 떠올렸다고 하니. 붓 대신 바늘을 섬긴, 억척스러운 외도라고 할까. 요철감 있는 수제한지로 판을 깔고 바탕을 채색한 뒤 수를 놓기 시작한다는데, 보는 이의 눈으론 붓과 바늘의 경계를 놓치기 일쑤다. 감히 붓으로 그린 꽃을 쉽다고 할까마는, 바늘로 피운 꽃, 특히 작가의 바늘은 넘보기도 어렵다. 고단한 노동, 지루한 반복은 기본. 끊어버리지 않고선 수정이 불가능한 한땀 한땀의 작업이니. 과몰입해야 나오는 작품이고. 연작 중 한 점인 ‘소망에 관하여’(About Wish·2023)는 그 지난한 과정의 일부일 뿐이다. 무슨 바람, 어떤 소원이 그리 간절하기에 저토록 절절한 건지. 7월 1일까지 경기 성남시 분당구 운중로146번길 헤드비갤러리서 김근배와 여는 2인전 ‘여전히, 파도 그리고 다시’(Still, Wave and Again)에서 볼 수 있다. 김순철 ‘소망에 관하여’(About Wish 2299·2022), 한지에 채색·바느질, 45×45㎝(사진=헤드비갤러리)김순철 ‘소망에 관하여’(About Wish 2281·2022), 한지에 채색·바느질, 25×105㎝(사진=헤드비갤러리)
오현주 기자2023.06.29
김순철 ‘소망에 관하여’(About Wish·2023), 한지에 채색·바느질, 100×100㎝(사진=헤드비갤러리)[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절정으로 피어오른 저 꽃의 이름은 몰라도 된다. 세상에 저토록 강인한 꽃이 또 있을 리 없으니. 바람 불면 날아갈까 손대면 부서질까, 여리고 무른 상징은 최소한 여기에 없다. 핏줄 같고 힘줄 같은 생명력이라면 몰라도. 작가 김순철(58)은 바느질로 그림을 그린다. ‘희수’(繪繡)라 불리는 작업이다. 1997년부터라니 25년을 넘겼다. 계기라면 그림을 잘 그려보려 했던 것뿐이란다. 동양화를 그리던 작가가 어떻게 적극적으로 선을 그어낼까 고민하던 중 문득 ‘바늘땀’을 떠올렸다고 하니. 붓 대신 바늘을 섬긴, 억척스러운 외도라고 할까. 요철감 있는 수제한지로 판을 깔고 바탕을 채색한 뒤 수를 놓기 시작한다는데, 보는 이의 눈으론 붓과 바늘의 경계를 놓치기 일쑤다. 감히 붓으로 그린 꽃을 쉽다고 할까마는, 바늘로 피운 꽃, 특히 작가의 바늘은 넘보기도 어렵다. 고단한 노동, 지루한 반복은 기본. 끊어버리지 않고선 수정이 불가능한 한땀 한땀의 작업이니. 과몰입해야 나오는 작품이고. 연작 중 한 점인 ‘소망에 관하여’(About Wish·2023)는 그 지난한 과정의 일부일 뿐이다. 무슨 바람, 어떤 소원이 그리 간절하기에 저토록 절절한 건지. 7월 1일까지 경기 성남시 분당구 운중로146번길 헤드비갤러리서 김근배와 여는 2인전 ‘여전히, 파도 그리고 다시’(Still, Wave and Again)에서 볼 수 있다. 김순철 ‘소망에 관하여’(About Wish 2299·2022), 한지에 채색·바느질, 45×45㎝(사진=헤드비갤러리)김순철 ‘소망에 관하여’(About Wish 2281·2022), 한지에 채색·바느질, 25×105㎝(사진=헤드비갤러리)
김근배 ‘여정’(2023), 동·FRP(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 46×51×5㎝,(사진=헤드비갤러리)[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어린 코끼리가 여린 가지에 올라 있다. 그렇다고 마냥 위태로워 보이진 않는다. 제법 탄탄한 가지를 발밑에 두고 있으니. 그저 더 넓고 더 높은 곳으로 향하겠구나 싶을 뿐이다. 작가 김근배(54)는 대리석이나 현무암, 청동 등 강한 성질을 다스려 서정성이 물씬 풍기는 조각품으로 만든다. 그저 부드럽게 보이도록 원재료를 변형시키는 것만도 아니다. 순하고 따뜻한 형체를 뽑아내고 날렵한 색을 입히는 작업 모두다. 한 가지가 더 있다. 딱딱한 무형의 재료에 제법 낭만적인 스토리를 입혀내는 일까지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바탕이 됐단다. “드넓은 평야와 정미소가 호기심의 장소”였다는데, 멀리 떠나거나 뚝딱 뽑아내는 일의 자유로움을 일찌감치 체득했다고 할까. 그 한 갈래로, 여행의 단순치 않은 과정을 의미하는 ‘여정’은 작가의 오랜 화두가 됐다. 코끼리·고래 같은 동물, 또 사람의 형상으로, 아니면 기차나 배 등 탈것을 등장시켜 떠나고 싶은 꿈을 대신 입히는 거다. 코끼리 발밑을 내려다보게 한 ‘여정’(2023)까지 말이다. 그나저나 저 코끼리는 언제쯤 둥근 길을 다 도는 긴 여정을 마무리할 건가. 아닌가. 이미 돌아온 건가. 7월 1일까지 경기 성남시 분당구 운중로146번길 헤드비갤러리서 김순철과 여는 2인전 ‘여전히, 파도 그리고 다시’(Still, Wave and Again)에서 볼 수 있다. 김근배 ‘여정-하늘을 날다’(2022), 동, 143×104×8㎝(사진=헤드비갤러리)김근배 ‘여정’(2022), 동·현무암·스테인리스, 50×15×45㎝(사진=헤드비갤러리)
오현주 기자2023.06.29
김근배 ‘여정’(2023), 동·FRP(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 46×51×5㎝,(사진=헤드비갤러리)[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어린 코끼리가 여린 가지에 올라 있다. 그렇다고 마냥 위태로워 보이진 않는다. 제법 탄탄한 가지를 발밑에 두고 있으니. 그저 더 넓고 더 높은 곳으로 향하겠구나 싶을 뿐이다. 작가 김근배(54)는 대리석이나 현무암, 청동 등 강한 성질을 다스려 서정성이 물씬 풍기는 조각품으로 만든다. 그저 부드럽게 보이도록 원재료를 변형시키는 것만도 아니다. 순하고 따뜻한 형체를 뽑아내고 날렵한 색을 입히는 작업 모두다. 한 가지가 더 있다. 딱딱한 무형의 재료에 제법 낭만적인 스토리를 입혀내는 일까지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바탕이 됐단다. “드넓은 평야와 정미소가 호기심의 장소”였다는데, 멀리 떠나거나 뚝딱 뽑아내는 일의 자유로움을 일찌감치 체득했다고 할까. 그 한 갈래로, 여행의 단순치 않은 과정을 의미하는 ‘여정’은 작가의 오랜 화두가 됐다. 코끼리·고래 같은 동물, 또 사람의 형상으로, 아니면 기차나 배 등 탈것을 등장시켜 떠나고 싶은 꿈을 대신 입히는 거다. 코끼리 발밑을 내려다보게 한 ‘여정’(2023)까지 말이다. 그나저나 저 코끼리는 언제쯤 둥근 길을 다 도는 긴 여정을 마무리할 건가. 아닌가. 이미 돌아온 건가. 7월 1일까지 경기 성남시 분당구 운중로146번길 헤드비갤러리서 김순철과 여는 2인전 ‘여전히, 파도 그리고 다시’(Still, Wave and Again)에서 볼 수 있다. 김근배 ‘여정-하늘을 날다’(2022), 동, 143×104×8㎝(사진=헤드비갤러리)김근배 ‘여정’(2022), 동·현무암·스테인리스, 50×15×45㎝(사진=헤드비갤러리)
최우 ‘집으로 가는 길’(2023), 캔버스에 오일·과슈, 22×28㎝(사진=토포하우스)[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퉁퉁한 몸집의 사내가 머리에 새 한 마리를 태운 채 듬직한 뒤태를 보이며 걸어가고 있다. 장이라도 본 건가. 검은 비닐봉지 밖으로 대파가 다리를 삐죽이 내밀었다. 밝은 배경이라 한낮 어느 때려니 하겠지만, 지금은 밤이다. 달도 떴고 별도 뜬 밤. 아마도 휴가지의 해변이지 싶다. 두줄 슬리퍼를 벗어던진 맨발이 하얀 모래에 푹푹 빠진 게 보이니. 단 한 장면뿐이지만 무한 스토리를 제공하는 작품의 타이틀은 ‘집으로 가는 길’(2023). 작가 최우(40)의 눈과 붓이 만들어냈다. 작가 작업의 특징이라면 한눈에 꽂히는 간결함 속에서 발견하는 ‘뜻밖의’ 풍성함. 생각은 열려 있고 표현은 자유롭다. 이런 붓질이 가능한 배경을, 화단은 작가가 제도권 미술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는 데서 찾는 모양이다. 주제나 형식, 재료까지 어디에도 구애를 받지 않는다는 건데. 작가는 생계를 위해 11년간 오후에 출근, 새벽에 퇴근하는 직장생활과 그림을 병행했단다. 온전히 붓만 잡은 지는 불과 2년 6개월여, “신 내림 받은 듯 그려냈다”고 했다. 한 해에 100점씩 쏟아내는 식으로 말이다. 독특한 화면은 ‘유화물감의 다른 사용’에서 나온다. 판화에 쓰는 룰렛으로 유화의 기름기를 쫙 빼버린 ‘크레용 같은’ 질감을 만들고, 바탕과 형태를 수시로 지우기도 한다. 오브제를 사용한 듯, 서걱거리는 느낌은 덤이다. 7월 9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11길 토포하우스서 여는 개인전 ‘은하수 흐르는 사막을 찾아가다’에서 볼 수 있다. 최우 ‘나와 당신 그리고 나’(2023), 캔버스에 오일·과슈·콜라주, 22×27㎝(사진=토포하우스)최우 ‘동행 1’(2023), 캔버스에 유화·과슈·콜라주, 22×27㎝(사진=토포하우스)
오현주 기자2023.06.27
최우 ‘집으로 가는 길’(2023), 캔버스에 오일·과슈, 22×28㎝(사진=토포하우스)[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퉁퉁한 몸집의 사내가 머리에 새 한 마리를 태운 채 듬직한 뒤태를 보이며 걸어가고 있다. 장이라도 본 건가. 검은 비닐봉지 밖으로 대파가 다리를 삐죽이 내밀었다. 밝은 배경이라 한낮 어느 때려니 하겠지만, 지금은 밤이다. 달도 떴고 별도 뜬 밤. 아마도 휴가지의 해변이지 싶다. 두줄 슬리퍼를 벗어던진 맨발이 하얀 모래에 푹푹 빠진 게 보이니. 단 한 장면뿐이지만 무한 스토리를 제공하는 작품의 타이틀은 ‘집으로 가는 길’(2023). 작가 최우(40)의 눈과 붓이 만들어냈다. 작가 작업의 특징이라면 한눈에 꽂히는 간결함 속에서 발견하는 ‘뜻밖의’ 풍성함. 생각은 열려 있고 표현은 자유롭다. 이런 붓질이 가능한 배경을, 화단은 작가가 제도권 미술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는 데서 찾는 모양이다. 주제나 형식, 재료까지 어디에도 구애를 받지 않는다는 건데. 작가는 생계를 위해 11년간 오후에 출근, 새벽에 퇴근하는 직장생활과 그림을 병행했단다. 온전히 붓만 잡은 지는 불과 2년 6개월여, “신 내림 받은 듯 그려냈다”고 했다. 한 해에 100점씩 쏟아내는 식으로 말이다. 독특한 화면은 ‘유화물감의 다른 사용’에서 나온다. 판화에 쓰는 룰렛으로 유화의 기름기를 쫙 빼버린 ‘크레용 같은’ 질감을 만들고, 바탕과 형태를 수시로 지우기도 한다. 오브제를 사용한 듯, 서걱거리는 느낌은 덤이다. 7월 9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11길 토포하우스서 여는 개인전 ‘은하수 흐르는 사막을 찾아가다’에서 볼 수 있다. 최우 ‘나와 당신 그리고 나’(2023), 캔버스에 오일·과슈·콜라주, 22×27㎝(사진=토포하우스)최우 ‘동행 1’(2023), 캔버스에 유화·과슈·콜라주, 22×27㎝(사진=토포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