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부

김유성

기자

김유성의 금융CAST

  • [김유성의 금융CAST]세계대전을 낳은 19세기 대불황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기술 발전에 따른 ‘고용없는 성장’은 21세기 선진공업국에서 나타나게 된 특징일까? 1990년대 이후 30년째 진행되고 있는 일본의 디플레이션은 20세기 후반에야 나타난 고질적인 현상일까? 한국의 저성장 추세는 정부의 무능에서 온 ‘비정상적인 상황’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에 가깝다. 경기는 상승만 하거나 하강만 하지 않는다. 때로는 극심한 침체를 겪기도 한다. 경제 구조가 바뀌면서 불황에 빠지곤 한다. 고속·고도성장은 우리가 목격할 수 있는 여러 경제상황의 한 모습일 뿐이다. 단지 우리 입장에서 익숙할 뿐이다. 1960년 이후 50년 넘게 봐 왔으니까. 출처 : 이미지투데이‘기술 발전에 따른 구조적 불황’은 19세기말에도 있었다. 산업혁명으로 일찌기 공업국의 반열에 올랐던 영국은 물론 후발 공업국 독일과 미국, 일본까지도 19~20세기 초반 동안 겪었다. 이는 요렇게 요약할 수 있다. ‘생산 기술의 발달로 ‘팔아야 할 제품’이 늘었는데 이를 사 줄만한 시장이 부족하다.’ 게다가 당시 자본가들은 기술 발전에 따른 비용절감 효과에만 몰두했지 그들 물건을 사줄 소비자들의 구매력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른바 비용절감을 위한 감원이다. 당장 싼 원가에 제품을 팔 수 있게 좋았지만, 팔리지 않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에 따른 불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이탈리아 사회학자 조반나 아리기의 사회학저서 ‘장기20세기’(영문명 The Long Twentieth Century)에 한 예가 나온다. 1813년 영국 방직 산업에는 20만명 이상의 수동 직기 직공이 있었다. 1860년이 되면서 40만개의 동력직기가 가동하게 되고 이들(수동 직기 직공)의 일을 대신한다. 수십년에 걸친 느린 변화일 수 있지만, 생산 기술의 발전과 효율성 증가는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효과를 낳는다. 출처 : 이미지투데이이런 점에서 19세기 노동자나 21세기 월급쟁이들이 맞닥뜨린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19세기 노동자들은 기계의 발달에 따른 일자리 상실을, 21세기 샐러리맨들은 장차 인공지능과 로봇의 발달로 ‘할 일의 실종’을 우려하고 있다. 사람들의 지갑은 비는데, 시장의 물건은 넘쳐나는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은 필히 디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영국 등 서구 열강을 기준으로 대불황기였던 1873년부터 1896년까지 영국의 물가 하락률은 40%에 달했다. 이때의 또 한가지 특징. 영국 주도의 국제질서가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미국과 독일의 거센 도전에 영국은 직면했다. 이들 후발국들의 제품은 영국 제품을 밀어냈다. 미국 제조업 기업들이 수십년째 국제무역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상황과도 비슷하다. 1873~1896년 대불황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분명한 의미를 전달해준다. 호황과 불황으로 이어지는 경제 순환의 구조는 19세기나 21세기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이런 경제 순환기 속에서 국제 질서도 바뀌곤 한다. 실제 19세기 영국은 미국과 독일의 도전을 받았고 21세기 미국은 중국의 추격을 받고 있다. 과거 미국의 라이벌이었던 소련과 20세기말 도전자였던 일본과는 질적으로 다른 추격자다. 중국은 광대한 시장에 제조업 역량까지 갖추고 있다. 국방력도 최근들어 미국을 긴장시킬만 하다. 기존 강자에 대한 신흥 강자의 도전 구도다 (물론 중국은 ‘역사의 정상화’ 과정으로 보는 듯 하다.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역사관이다.)한가지 심히 걱정되는 것은 대불황기 이후의 국제질서다. 대불황기 이후 영국의 힘은 약해졌고 식민주의 쟁탈전에서 소외된 후발 열강들을 중심으로 파시즘이 나타났다. 파시즘에 입각한 독재자들은 내부에 쌓인 갈등과 불합리를 외부의 적을 대상으로 풀려고 했다. 이를 위해 독재자들은 자국민들의 증오를 자극하면서 자기 우월주의에 빠지게 했다. 그리고 1·2차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블랙홀을 괴물처럼 만들어냈다. 21세기 초반을 넘어서는 지금은 좀 다를까? 누가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김유성 기자 2020.10.17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기술 발전에 따른 ‘고용없는 성장’은 21세기 선진공업국에서 나타나게 된 특징일까? 1990년대 이후 30년째 진행되고 있는 일본의 디플레이션은 20세기 후반에야 나타난 고질적인 현상일까? 한국의 저성장 추세는 정부의 무능에서 온 ‘비정상적인 상황’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에 가깝다. 경기는 상승만 하거나 하강만 하지 않는다. 때로는 극심한 침체를 겪기도 한다. 경제 구조가 바뀌면서 불황에 빠지곤 한다. 고속·고도성장은 우리가 목격할 수 있는 여러 경제상황의 한 모습일 뿐이다. 단지 우리 입장에서 익숙할 뿐이다. 1960년 이후 50년 넘게 봐 왔으니까. 출처 : 이미지투데이‘기술 발전에 따른 구조적 불황’은 19세기말에도 있었다. 산업혁명으로 일찌기 공업국의 반열에 올랐던 영국은 물론 후발 공업국 독일과 미국, 일본까지도 19~20세기 초반 동안 겪었다. 이는 요렇게 요약할 수 있다. ‘생산 기술의 발달로 ‘팔아야 할 제품’이 늘었는데 이를 사 줄만한 시장이 부족하다.’ 게다가 당시 자본가들은 기술 발전에 따른 비용절감 효과에만 몰두했지 그들 물건을 사줄 소비자들의 구매력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른바 비용절감을 위한 감원이다. 당장 싼 원가에 제품을 팔 수 있게 좋았지만, 팔리지 않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에 따른 불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이탈리아 사회학자 조반나 아리기의 사회학저서 ‘장기20세기’(영문명 The Long Twentieth Century)에 한 예가 나온다. 1813년 영국 방직 산업에는 20만명 이상의 수동 직기 직공이 있었다. 1860년이 되면서 40만개의 동력직기가 가동하게 되고 이들(수동 직기 직공)의 일을 대신한다. 수십년에 걸친 느린 변화일 수 있지만, 생산 기술의 발전과 효율성 증가는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효과를 낳는다. 출처 : 이미지투데이이런 점에서 19세기 노동자나 21세기 월급쟁이들이 맞닥뜨린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19세기 노동자들은 기계의 발달에 따른 일자리 상실을, 21세기 샐러리맨들은 장차 인공지능과 로봇의 발달로 ‘할 일의 실종’을 우려하고 있다. 사람들의 지갑은 비는데, 시장의 물건은 넘쳐나는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은 필히 디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영국 등 서구 열강을 기준으로 대불황기였던 1873년부터 1896년까지 영국의 물가 하락률은 40%에 달했다. 이때의 또 한가지 특징. 영국 주도의 국제질서가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미국과 독일의 거센 도전에 영국은 직면했다. 이들 후발국들의 제품은 영국 제품을 밀어냈다. 미국 제조업 기업들이 수십년째 국제무역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상황과도 비슷하다. 1873~1896년 대불황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분명한 의미를 전달해준다. 호황과 불황으로 이어지는 경제 순환의 구조는 19세기나 21세기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이런 경제 순환기 속에서 국제 질서도 바뀌곤 한다. 실제 19세기 영국은 미국과 독일의 도전을 받았고 21세기 미국은 중국의 추격을 받고 있다. 과거 미국의 라이벌이었던 소련과 20세기말 도전자였던 일본과는 질적으로 다른 추격자다. 중국은 광대한 시장에 제조업 역량까지 갖추고 있다. 국방력도 최근들어 미국을 긴장시킬만 하다. 기존 강자에 대한 신흥 강자의 도전 구도다 (물론 중국은 ‘역사의 정상화’ 과정으로 보는 듯 하다.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역사관이다.)한가지 심히 걱정되는 것은 대불황기 이후의 국제질서다. 대불황기 이후 영국의 힘은 약해졌고 식민주의 쟁탈전에서 소외된 후발 열강들을 중심으로 파시즘이 나타났다. 파시즘에 입각한 독재자들은 내부에 쌓인 갈등과 불합리를 외부의 적을 대상으로 풀려고 했다. 이를 위해 독재자들은 자국민들의 증오를 자극하면서 자기 우월주의에 빠지게 했다. 그리고 1·2차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블랙홀을 괴물처럼 만들어냈다. 21세기 초반을 넘어서는 지금은 좀 다를까? 누가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 [김유성의 금융CAST]금융은 플랫폼 종속을 피할까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외부의 위협적인 존재에 대해 처음에는 평가절하를 하는 경우가 많다. ‘나보다 더 나을 수 있지만’ 애써 이를 부인하는 경우다. 그러다 강력한 상대임을 알게 되면 그제서야 대책 마련에 나선다. 기업들도 마찬가지. 외부 강력한 존재감의 시장 진입에 대해 겉으로는 애써 폄하하곤 한다. 그 강력한 상대가 보통내기가 아니라면 그때부터 나오는 얘기가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 정부의 비대칭적 규제로 자신들(국내기업)이 불이익을 본다는 논리다. 2000년대말 애플 아이폰을 바라봤던 삼성과 LG가 그랬고, 넷플릭스가 국내 시장에 진출했던 2016년에도 비슷했다. ‘찻잔속 태풍’이길 바랬지만 수년이 지나지 않아 태풍이 됐다. 네이버와 카카오의 금융사업을 바라보는 금융권 사람들의 시선도 비슷했다. ‘제깟것들이 얼마나 하겠어’라는 인식이었다. 이제는 ‘우리 뭐라도 해야한다’라는 목소리가 내부적으로 강해졌다. ‘기울어진 운동장’논리도 어김없이 나왔다. 최근 사례를 하나 들자면 ‘네이버통장’이 있다. 아직도 ‘네이버가 통장도 만들어?’라는 이들도 있지만, 네이버는 지난 6월 미래에셋대우와 함께 CMA 상품을 출시했다. 네이버통장의 위력에 대해 ‘별거 아니다’라는 평가가 언론을 통해 심심치 않게 나왔다. 초반 가입자 유치 흥행이 카카오뱅크나 카카오페이와 비교해 적다라는 이유였다. 달리 보면 네이버라는 이름값과 비교해 위력이 적다라는 이유도 있었다. 물론 네이버 측 사람들은 이런 비교가 부당하다고 본다. 카카오뱅크나 카카오페이는 금융 사업 관련 라이센스를 받아 사업을 하는 금융사업자다. 비(非)라이센스 사업자인 네이버파이낸셜과의 직접 비교는 어려울 수 밖에 없다는 논리다. 실제 CMA 시장만 놓고 봤을 때 네이버통장은 나름의 이름값을 했다. 올해 6월 전까지 국내 CMA 계좌 순증 숫자는 한달 평균 13만~15만 정도였다. 2020년 4~5월 CMA 순증 숫자가 30만2072좌였다. 이 숫자는 2020년 6~7월 들어 98만6903건으로 늘어난다. 평소대비 3배 숫자인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네이버통장 변수 외에는 뚜렷한 게 없다. (이런 숫자를 네이버파이낸셜은 드러내놓지 않는다. 금융업권 내 나름의 ‘도광양회’일 것으로 본다.) (그래픽=문승용 기자)이런 숫자를 본 금융사 CEO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3년 정도 임기 안에 자신의 능력치를 입증해야할 CEO 입장에서는 네이버·카카오로 대변되는 플랫폼과의 협력이 퍽 매력적일 수 있다. 같은 10억원을 쓴다고 했을 때 신문이나 TV광고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다만 단기적인 이익을 쫓다가는 지금의 언론사들이 목도한 현실에 당면하게 될 지 모른다. 이른바 플랫폼에 대한 종속이다. 네이버와 다음 등의 포털은 뉴스와 검색을 무기로 성장했지만, 콘텐츠 제공자였던 언론사 입장에서는 이들 없이 못사는 세상이 됐다. 포털에서 공짜로 뉴스를 볼 수 있게 되다보니 구태여 언론사 웹사이트에 들어갈 일이 없고, 언론사 단독의 콘텐츠 사업을 펼치기 힘든 상황이 됐다. 금융상품도 마찬가지가 될 수 있다. 0.01%포인트 이율로 경쟁하는 시대다. 언제 어디서든 모바일로 쉽게 ‘나에게 유리한 금융상품’을 검색해볼 수 있다. 언론사들이 포털에 의존해 트래픽을 공유했던 것처럼, 금융사가 포털과 함께 수수료 수익을 나눌 수 있는 상황이 된다는 얘기다. (뭐, 피할 수 없는 현실인 것 같다.) 뒤늦게나마 KB나 신한이 자체 플랫폼 구축에 다시금 관심을 보이는 듯 하다. 일반 기업과 비교해 풍부한 자금력과 금융상품을 수십년 다뤄온 노하우만 봤을 때 ‘성공 가능한 계획’일 수 있다. 네이버나 카카오는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오면서 살아남았다는 점에서, 이들 금융사들이 ‘시행착오’를 얼마만큼 감내하고 ‘실패사례’를 학습할지 미지수다. 그나마도 ‘1원 1푼의 오차도 없이 계획대로 진행돼야 하는’ 은행원 스타일에서 벗어나야 가능할 일이다.
    김유성 기자 2020.10.10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외부의 위협적인 존재에 대해 처음에는 평가절하를 하는 경우가 많다. ‘나보다 더 나을 수 있지만’ 애써 이를 부인하는 경우다. 그러다 강력한 상대임을 알게 되면 그제서야 대책 마련에 나선다. 기업들도 마찬가지. 외부 강력한 존재감의 시장 진입에 대해 겉으로는 애써 폄하하곤 한다. 그 강력한 상대가 보통내기가 아니라면 그때부터 나오는 얘기가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 정부의 비대칭적 규제로 자신들(국내기업)이 불이익을 본다는 논리다. 2000년대말 애플 아이폰을 바라봤던 삼성과 LG가 그랬고, 넷플릭스가 국내 시장에 진출했던 2016년에도 비슷했다. ‘찻잔속 태풍’이길 바랬지만 수년이 지나지 않아 태풍이 됐다. 네이버와 카카오의 금융사업을 바라보는 금융권 사람들의 시선도 비슷했다. ‘제깟것들이 얼마나 하겠어’라는 인식이었다. 이제는 ‘우리 뭐라도 해야한다’라는 목소리가 내부적으로 강해졌다. ‘기울어진 운동장’논리도 어김없이 나왔다. 최근 사례를 하나 들자면 ‘네이버통장’이 있다. 아직도 ‘네이버가 통장도 만들어?’라는 이들도 있지만, 네이버는 지난 6월 미래에셋대우와 함께 CMA 상품을 출시했다. 네이버통장의 위력에 대해 ‘별거 아니다’라는 평가가 언론을 통해 심심치 않게 나왔다. 초반 가입자 유치 흥행이 카카오뱅크나 카카오페이와 비교해 적다라는 이유였다. 달리 보면 네이버라는 이름값과 비교해 위력이 적다라는 이유도 있었다. 물론 네이버 측 사람들은 이런 비교가 부당하다고 본다. 카카오뱅크나 카카오페이는 금융 사업 관련 라이센스를 받아 사업을 하는 금융사업자다. 비(非)라이센스 사업자인 네이버파이낸셜과의 직접 비교는 어려울 수 밖에 없다는 논리다. 실제 CMA 시장만 놓고 봤을 때 네이버통장은 나름의 이름값을 했다. 올해 6월 전까지 국내 CMA 계좌 순증 숫자는 한달 평균 13만~15만 정도였다. 2020년 4~5월 CMA 순증 숫자가 30만2072좌였다. 이 숫자는 2020년 6~7월 들어 98만6903건으로 늘어난다. 평소대비 3배 숫자인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네이버통장 변수 외에는 뚜렷한 게 없다. (이런 숫자를 네이버파이낸셜은 드러내놓지 않는다. 금융업권 내 나름의 ‘도광양회’일 것으로 본다.) (그래픽=문승용 기자)이런 숫자를 본 금융사 CEO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3년 정도 임기 안에 자신의 능력치를 입증해야할 CEO 입장에서는 네이버·카카오로 대변되는 플랫폼과의 협력이 퍽 매력적일 수 있다. 같은 10억원을 쓴다고 했을 때 신문이나 TV광고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다만 단기적인 이익을 쫓다가는 지금의 언론사들이 목도한 현실에 당면하게 될 지 모른다. 이른바 플랫폼에 대한 종속이다. 네이버와 다음 등의 포털은 뉴스와 검색을 무기로 성장했지만, 콘텐츠 제공자였던 언론사 입장에서는 이들 없이 못사는 세상이 됐다. 포털에서 공짜로 뉴스를 볼 수 있게 되다보니 구태여 언론사 웹사이트에 들어갈 일이 없고, 언론사 단독의 콘텐츠 사업을 펼치기 힘든 상황이 됐다. 금융상품도 마찬가지가 될 수 있다. 0.01%포인트 이율로 경쟁하는 시대다. 언제 어디서든 모바일로 쉽게 ‘나에게 유리한 금융상품’을 검색해볼 수 있다. 언론사들이 포털에 의존해 트래픽을 공유했던 것처럼, 금융사가 포털과 함께 수수료 수익을 나눌 수 있는 상황이 된다는 얘기다. (뭐, 피할 수 없는 현실인 것 같다.) 뒤늦게나마 KB나 신한이 자체 플랫폼 구축에 다시금 관심을 보이는 듯 하다. 일반 기업과 비교해 풍부한 자금력과 금융상품을 수십년 다뤄온 노하우만 봤을 때 ‘성공 가능한 계획’일 수 있다. 네이버나 카카오는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오면서 살아남았다는 점에서, 이들 금융사들이 ‘시행착오’를 얼마만큼 감내하고 ‘실패사례’를 학습할지 미지수다. 그나마도 ‘1원 1푼의 오차도 없이 계획대로 진행돼야 하는’ 은행원 스타일에서 벗어나야 가능할 일이다.
  • [김유성의 금융CAST]망해야 산다..P2P금융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나올 게 나왔다.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법(P2P금융업법)에 대한 불만 뉴스다. 몇몇 경제지를 중심으로 이 법에 대한 성토가 나오고 있다. 만들어진 법이 지나치게 가혹해 대다수 업체들이 고사할 것이라는 기사다. 전형적인 ‘규제가 기업을 죽인다’는 관점이다.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법, 줄여서 온투법, 일명 P2P법으로 불리는 이 법은 지난 8월27일 시행됐다. 내년 8월 26일까지 1년 정도의 유예 기간을 둔 뒤, 2021년 8월 27일부터 정식 금융업법 중 하나로 시작한다. 이 법에 의거해 ‘온투업자’로 등록되지 않은 P2P금융업체들은 문을 닫거나 대부업체로 갈아타야 한다. 사진 출처 : 이미지투데이이 법에 대한 불만 사항은 대강 이렇다. 온투업자로 등록되기 위한 기준이 가혹하다는 게 첫번째다. 이와 관련된 사항은 온투법 제5조와 제6조, 시행령 제3조와 제4조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상법에 따른 주식회사’이면서 ‘연계 대출 잔액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만약에 대출 잔액이 300억원 이상이면 5억원의 기본 자본금을, 300억~1000억원이면 10억원의 자본금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연계대출 잔액 1000억원 이상은 30억원의 자본금을 갖고 있어야 한다. 합법적인 금융업체로서 당연히 갖춰야 할 준법감시인도 있어야 한다. 비대면으로 대출이 실행되고 투자가 모집되기 때문에 전문 전산인력도 있어야 한다. 전산설비와 그 밖의 물적 설비를 갖춰야 한다. 이들 기준이 과연 가혹할 정도일까? 업계 전체적으로 고사를 걱정해야할 정도일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우선 당국이 추정하는 P2P금융업체 수는 전국에 240여개다. 개중에는 간판만 P2P금융을 단 곳도 있고, 영업이 정지된 곳도 있다. 폐업을 한 곳도 있다.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그나마 믿을 수 있는 곳이라고 여겨지는 P2P금융협회 회원사 숫자는 43개다. 누적 대출액 1000억원 이상 업체 수는 25개(미드레이트 집계 기준) 정도다. 단순 계산으로는 십여 업체 정도가 자본금 30억원을 쌓아야 하고 대부분은 10억원 정도를 갖고 있어야 한다. ‘이 정도의 자본금이 과연 가혹한 정도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투자자가 안심하고 투자할 만한 기준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그 여지가 적다. 금융업체로서 갖춰야할 최소한의 기준에 가깝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은행은 적당한 자기자본비율을 유지해야 한다. 은행이 최소한으로 갖춰야 할 ‘자기 돈’인 셈이다. 대부분 10% 대다. 이외 부실여신비율 등을 정기적으로 공시하고 관리한다. 2010년대 초반 과도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로 홍역을 치렀던 저축은행도 비슷한 규준에서 건전성을 유지한다. 만약 대출 잔액 1000억원이 있는 P2P금융업체가 30억원의 자기자본을 확보한다면, 단순계산으로 자기자본률은 3% 이하가 될 수 밖에 없다. 일반적인 은행의 기준으로 봤을 때 여전히 낮다. 더욱이 P2P금융업계는 전체적으로 투자자들의 신뢰도가 많이 떨어져있는 상태다. 주요한 원인 중 하나는 몇몇 사고를 내는 업체들 때문이다. 다수의 업체들이 건전성을 관리한다고 해도 소수의 업체들이 사고를 내면 업계 신인도는 하락할 수 밖에 없다. ‘투자자 보호’를 원칙으로 삼는 금융당국 입장에서는 절대적으로 걸러내야하는 업체들이다. 기업으로서 기본이 안된 P2P금융기업들도 많다. 단적인 예가 감사보고서 제출. 당국 추정 250여 업체라고 하는데, 감사보고서를 낸 업체 수가 100곳이 안된다. 제대로 된 숫자가 감사보고서에 기재됐는지는 다음 얘기다. 또 한가지. 지금은 업계를 키워야할 때인가? 미안하지만 금융당국은 방치에 가깝도록 P2P금융업체를 내버려뒀다. 사실상 대부업체로 등록만 해 놓으면 누구나 이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저축은행처럼 PF대출 규제 같은 것도 없었다. 그러다보니 2015년 10여개였던 업체 수는 200개를 넘었고 너도나도 덩치 큰 부동산 대출에 손을 댔다. 그 결과는 치솟는 대출 부실률과 불량 업체들의 속출로 나타났다. 원금도 못받았다는 투자자들의 불만은 사회관계망 서비스나 투자자 카페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 와중에 허위 정보로 투자자들을 기망한 업체들도 있다. 전형적인 시장실패 사례다. 시장이 제 기능을 못하면 정부가 나설 수 밖에 없다. 기준에 맞는 적법한 업체를 가려내기 위해 기준을 높일 수 밖에 없다. 투자자 보호를 위해서다. 투자자와 대출자는 250개나 되는 P2P금융업체들이 필요없다. 자신이 믿고 투자할 수 있는 업체 한 곳만 있어도 된다. 그런데 그 한 곳이라도 또렷이 얘기할 수 있을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당신이 P2P금융에 대해서 좀 안다면….
    김유성 기자 2020.10.03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나올 게 나왔다.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법(P2P금융업법)에 대한 불만 뉴스다. 몇몇 경제지를 중심으로 이 법에 대한 성토가 나오고 있다. 만들어진 법이 지나치게 가혹해 대다수 업체들이 고사할 것이라는 기사다. 전형적인 ‘규제가 기업을 죽인다’는 관점이다.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법, 줄여서 온투법, 일명 P2P법으로 불리는 이 법은 지난 8월27일 시행됐다. 내년 8월 26일까지 1년 정도의 유예 기간을 둔 뒤, 2021년 8월 27일부터 정식 금융업법 중 하나로 시작한다. 이 법에 의거해 ‘온투업자’로 등록되지 않은 P2P금융업체들은 문을 닫거나 대부업체로 갈아타야 한다. 사진 출처 : 이미지투데이이 법에 대한 불만 사항은 대강 이렇다. 온투업자로 등록되기 위한 기준이 가혹하다는 게 첫번째다. 이와 관련된 사항은 온투법 제5조와 제6조, 시행령 제3조와 제4조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상법에 따른 주식회사’이면서 ‘연계 대출 잔액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만약에 대출 잔액이 300억원 이상이면 5억원의 기본 자본금을, 300억~1000억원이면 10억원의 자본금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연계대출 잔액 1000억원 이상은 30억원의 자본금을 갖고 있어야 한다. 합법적인 금융업체로서 당연히 갖춰야 할 준법감시인도 있어야 한다. 비대면으로 대출이 실행되고 투자가 모집되기 때문에 전문 전산인력도 있어야 한다. 전산설비와 그 밖의 물적 설비를 갖춰야 한다. 이들 기준이 과연 가혹할 정도일까? 업계 전체적으로 고사를 걱정해야할 정도일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우선 당국이 추정하는 P2P금융업체 수는 전국에 240여개다. 개중에는 간판만 P2P금융을 단 곳도 있고, 영업이 정지된 곳도 있다. 폐업을 한 곳도 있다.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그나마 믿을 수 있는 곳이라고 여겨지는 P2P금융협회 회원사 숫자는 43개다. 누적 대출액 1000억원 이상 업체 수는 25개(미드레이트 집계 기준) 정도다. 단순 계산으로는 십여 업체 정도가 자본금 30억원을 쌓아야 하고 대부분은 10억원 정도를 갖고 있어야 한다. ‘이 정도의 자본금이 과연 가혹한 정도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투자자가 안심하고 투자할 만한 기준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그 여지가 적다. 금융업체로서 갖춰야할 최소한의 기준에 가깝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은행은 적당한 자기자본비율을 유지해야 한다. 은행이 최소한으로 갖춰야 할 ‘자기 돈’인 셈이다. 대부분 10% 대다. 이외 부실여신비율 등을 정기적으로 공시하고 관리한다. 2010년대 초반 과도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로 홍역을 치렀던 저축은행도 비슷한 규준에서 건전성을 유지한다. 만약 대출 잔액 1000억원이 있는 P2P금융업체가 30억원의 자기자본을 확보한다면, 단순계산으로 자기자본률은 3% 이하가 될 수 밖에 없다. 일반적인 은행의 기준으로 봤을 때 여전히 낮다. 더욱이 P2P금융업계는 전체적으로 투자자들의 신뢰도가 많이 떨어져있는 상태다. 주요한 원인 중 하나는 몇몇 사고를 내는 업체들 때문이다. 다수의 업체들이 건전성을 관리한다고 해도 소수의 업체들이 사고를 내면 업계 신인도는 하락할 수 밖에 없다. ‘투자자 보호’를 원칙으로 삼는 금융당국 입장에서는 절대적으로 걸러내야하는 업체들이다. 기업으로서 기본이 안된 P2P금융기업들도 많다. 단적인 예가 감사보고서 제출. 당국 추정 250여 업체라고 하는데, 감사보고서를 낸 업체 수가 100곳이 안된다. 제대로 된 숫자가 감사보고서에 기재됐는지는 다음 얘기다. 또 한가지. 지금은 업계를 키워야할 때인가? 미안하지만 금융당국은 방치에 가깝도록 P2P금융업체를 내버려뒀다. 사실상 대부업체로 등록만 해 놓으면 누구나 이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저축은행처럼 PF대출 규제 같은 것도 없었다. 그러다보니 2015년 10여개였던 업체 수는 200개를 넘었고 너도나도 덩치 큰 부동산 대출에 손을 댔다. 그 결과는 치솟는 대출 부실률과 불량 업체들의 속출로 나타났다. 원금도 못받았다는 투자자들의 불만은 사회관계망 서비스나 투자자 카페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 와중에 허위 정보로 투자자들을 기망한 업체들도 있다. 전형적인 시장실패 사례다. 시장이 제 기능을 못하면 정부가 나설 수 밖에 없다. 기준에 맞는 적법한 업체를 가려내기 위해 기준을 높일 수 밖에 없다. 투자자 보호를 위해서다. 투자자와 대출자는 250개나 되는 P2P금융업체들이 필요없다. 자신이 믿고 투자할 수 있는 업체 한 곳만 있어도 된다. 그런데 그 한 곳이라도 또렷이 얘기할 수 있을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당신이 P2P금융에 대해서 좀 안다면….
  • [김유성의 금융CAST]사기꾼이 더 친절하더라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속 빈 강정일 수록 겉은 화려하다.’ ‘사기꾼은 대부분 선한 얼굴을 하고 있다.’ 이런 얘기는 사회 생활에만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투자 생활에도 마찬가지. 잘생기고 멋진데다 화려한 이력까지 있는 기업인이라고 해서 그들이 선하다고 볼 수 없다. 개중에는 서슴없이 거짓말을 하는 이들도 있다. 이미지 출처 : 이미지투데이그럼에도 사람들이 사기를 당하는 이유는 뭘까. 지금은 국회에 입성해 있지만 ‘검사내전’이라는 베스트셀러로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김웅 전 검사는 ‘각자 마음 속에 있는 탐욕’을 지목했다. 수많은 사기꾼들의 선한 얼굴을 목도한 뒤 세운 나름의 결론이다. 선한 얼굴을 한 사기꾼들은 잠재 희생자들의 욕심(가령 큰 돈을 벌고 싶다는)을 자극하고 현실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끊임없이 준다. 후(後)에 사기극이 밝혀져도 이를 믿지 않고 사기꾼 옥바라지까지 하는 사람들이 있다. 평생의 기회일 수도 있었던 그 기회가 무산됐다는 것 자체를 믿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다.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하지 않는 이들이기도 하다. 자본주의가 최첨단으로 발달한 미국 시장도 마찬가지다. 화려한 이력, 선한 얼굴을 한 CEO가 사기극 아닌 사기극을 벌이곤 한다. 최근에는 수소전기차 스타트업 ‘니콜라’가 이런 의심을 받고 있다. 결론이 어떻게 될지 두고봐야하겠지만 창업자인 트레버 밀톤은 ‘사기’ 혐의에서 쉬이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몇몇 사례에 국한될 수있지만 무명의 창업자가 미국 사회 주류에서 신화적인 존재로 환영받는 모습을 보면 묘한 공통점을 느낄 수 있다. 백인이면서 명문대 출신이고, 전 직장 경력이 화려하다. 외모적으로도 미국 주류 사회가 환영할 만큼 유려하다. 미국 주류사회가 은근히 바라는 백인우월주의를 충족시켜줄만한 인물이다. 실제 테라노스 사기 사건은 이런 의식을 극명하게 드러내줬다고 볼 수 있다. 테라노스는 실리콘벨리의 바이오스타트업이었다. 피 한방울로 240여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고 하니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다. 병원비가 비싸기로 유명한 미국에서 15달러면 암까지 미리 알 수 있었다. 2014년 기준 기업 가치가 90억달러에 이르렀다.나치의 선전 포스터에 나온 이상화된 백인 여성의 모습. 미국 주류 사회도 이런 편견에서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미지 출처 : 구글사진검색)창업자인 엘리자베스 홈즈는 스탠포드대학을 나온 젊고 아름다운 여성으로 자신을 마케팅했다. 푸른 눈의 백인 미녀, 금발의 여성 창업자로 대중 매체에 비춰졌다. 천재소녀의 이미지였다. 실제 그가 19살이던 2003년 스탠포드대에서 비밀리에 비즈니스를 만들어 연구했고, 스탠포드를 조기 졸업했다라는 얘기가 돌았다. 물론 검증이 됐는지 알 수 없다. 이런 그를 의심하는 이들도 있었다. 대부분의 헬스케어·바이오 스타트업은 논문이나 임상실험을 통해 자신들의 제품 효험을 검증하는 단계를 거친다. 그런데 이 기업은 그 흔한 논문 하나 없었다. 의구심은 들었지만 홈즈가 내세우는 그 이미지와 환상이 워낙 강해 문제로 제기하기 쉽지 않았다. 2014년 6월 논문을 냈다고 하지만 테스트 결과로는 부족했다. 테라노스 시스템에서 혈액 속 단백질이 어떻게 분석되는지 알 수 없었다. 이에 대한 설명도 업었다. 분석 결과에 대한 의구심이 높아졌고 2015년부터 사기 의혹이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2018년 4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가 테라노스와 엘리자베스 홈즈를 대규모 사기 혐의로 기소했다. 거짓 정보로 투자를 유치했다. 테라노스는 기업 가치가 0달러로 떨어졌다. 홈즈의 금발도 사실이 실제 그의 것이 아니라는 얘기가 돌았다. 원래는 빨간색 머리였는데 염색을 해서 금발로 만들었다는 얘기다. 금발의 푸른눈, 미국 주류 사회가 좋아하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노력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10년 넘게 끈질기게 자신의 사업을 유지하고 투자까지 유치한 것으로 봐서는 보통 열정의 사람은 아닌 듯 하다. 자신이 만든 ‘가상의 현실’을 실제 현실로 믿었던 게 아닐까 싶다. 거짓말을 하면서 스스로 그것을 현실로 믿는 것처럼. 이런 사례는 우리나라에도 널렸다. 2000년대 노벨상의 희망을 한껏 드높여줬던 황우석 박사의 사례나, 잊을 만 하면 나오는 스타트업 창업자들의 학력·경력 부풀리기 등이다. 대기업들도 일부는 분식회계를 하면서 우리나라 경제계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다들 추락하기 직전까지 화려한 모습과 이력 그리고 숫자로 표현되는 퍼포먼스를 보였던 이들이다. 사기꾼은 선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리고 친절하다. 개중에는 ‘잘 하려다보니’ 거짓말이 반복되고, 결과적으로 사기꾼이 된 이도 있다. ‘조금 과장해도 되겠지’라는 안이한 마음에 남들이 쉽게 확인할 수 없는 경력(미국 내 커리어나 투자운용액 등)을 부풀린 경우도 있다. 부실 금융 상품인줄 알면서도 투자자들에게 팔아 문제가 되기도 한다. 그들은 당신 마음 속에 잠재된 탐욕을 노리고 자극한다. ‘부자가 될 수 있다’, ‘높은 투자 수익률을 보장한다’며 접근하는 식이다. 화려한 모습과 이력으로 자신들의 말에 설득력을 더한다. 어느 누군들 속지 않겠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숫자에 밝은 은행원들과 증권맨, 펀드매니저들이 이런 그들에게 당하는 것을 보면 탐욕은 학력과 경력을 뛰어넘는 요소임에 틀림없는 듯 하다.
    김유성 기자 2020.09.26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속 빈 강정일 수록 겉은 화려하다.’ ‘사기꾼은 대부분 선한 얼굴을 하고 있다.’ 이런 얘기는 사회 생활에만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투자 생활에도 마찬가지. 잘생기고 멋진데다 화려한 이력까지 있는 기업인이라고 해서 그들이 선하다고 볼 수 없다. 개중에는 서슴없이 거짓말을 하는 이들도 있다. 이미지 출처 : 이미지투데이그럼에도 사람들이 사기를 당하는 이유는 뭘까. 지금은 국회에 입성해 있지만 ‘검사내전’이라는 베스트셀러로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김웅 전 검사는 ‘각자 마음 속에 있는 탐욕’을 지목했다. 수많은 사기꾼들의 선한 얼굴을 목도한 뒤 세운 나름의 결론이다. 선한 얼굴을 한 사기꾼들은 잠재 희생자들의 욕심(가령 큰 돈을 벌고 싶다는)을 자극하고 현실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끊임없이 준다. 후(後)에 사기극이 밝혀져도 이를 믿지 않고 사기꾼 옥바라지까지 하는 사람들이 있다. 평생의 기회일 수도 있었던 그 기회가 무산됐다는 것 자체를 믿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다.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하지 않는 이들이기도 하다. 자본주의가 최첨단으로 발달한 미국 시장도 마찬가지다. 화려한 이력, 선한 얼굴을 한 CEO가 사기극 아닌 사기극을 벌이곤 한다. 최근에는 수소전기차 스타트업 ‘니콜라’가 이런 의심을 받고 있다. 결론이 어떻게 될지 두고봐야하겠지만 창업자인 트레버 밀톤은 ‘사기’ 혐의에서 쉬이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몇몇 사례에 국한될 수있지만 무명의 창업자가 미국 사회 주류에서 신화적인 존재로 환영받는 모습을 보면 묘한 공통점을 느낄 수 있다. 백인이면서 명문대 출신이고, 전 직장 경력이 화려하다. 외모적으로도 미국 주류 사회가 환영할 만큼 유려하다. 미국 주류사회가 은근히 바라는 백인우월주의를 충족시켜줄만한 인물이다. 실제 테라노스 사기 사건은 이런 의식을 극명하게 드러내줬다고 볼 수 있다. 테라노스는 실리콘벨리의 바이오스타트업이었다. 피 한방울로 240여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고 하니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다. 병원비가 비싸기로 유명한 미국에서 15달러면 암까지 미리 알 수 있었다. 2014년 기준 기업 가치가 90억달러에 이르렀다.나치의 선전 포스터에 나온 이상화된 백인 여성의 모습. 미국 주류 사회도 이런 편견에서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미지 출처 : 구글사진검색)창업자인 엘리자베스 홈즈는 스탠포드대학을 나온 젊고 아름다운 여성으로 자신을 마케팅했다. 푸른 눈의 백인 미녀, 금발의 여성 창업자로 대중 매체에 비춰졌다. 천재소녀의 이미지였다. 실제 그가 19살이던 2003년 스탠포드대에서 비밀리에 비즈니스를 만들어 연구했고, 스탠포드를 조기 졸업했다라는 얘기가 돌았다. 물론 검증이 됐는지 알 수 없다. 이런 그를 의심하는 이들도 있었다. 대부분의 헬스케어·바이오 스타트업은 논문이나 임상실험을 통해 자신들의 제품 효험을 검증하는 단계를 거친다. 그런데 이 기업은 그 흔한 논문 하나 없었다. 의구심은 들었지만 홈즈가 내세우는 그 이미지와 환상이 워낙 강해 문제로 제기하기 쉽지 않았다. 2014년 6월 논문을 냈다고 하지만 테스트 결과로는 부족했다. 테라노스 시스템에서 혈액 속 단백질이 어떻게 분석되는지 알 수 없었다. 이에 대한 설명도 업었다. 분석 결과에 대한 의구심이 높아졌고 2015년부터 사기 의혹이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2018년 4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가 테라노스와 엘리자베스 홈즈를 대규모 사기 혐의로 기소했다. 거짓 정보로 투자를 유치했다. 테라노스는 기업 가치가 0달러로 떨어졌다. 홈즈의 금발도 사실이 실제 그의 것이 아니라는 얘기가 돌았다. 원래는 빨간색 머리였는데 염색을 해서 금발로 만들었다는 얘기다. 금발의 푸른눈, 미국 주류 사회가 좋아하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노력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10년 넘게 끈질기게 자신의 사업을 유지하고 투자까지 유치한 것으로 봐서는 보통 열정의 사람은 아닌 듯 하다. 자신이 만든 ‘가상의 현실’을 실제 현실로 믿었던 게 아닐까 싶다. 거짓말을 하면서 스스로 그것을 현실로 믿는 것처럼. 이런 사례는 우리나라에도 널렸다. 2000년대 노벨상의 희망을 한껏 드높여줬던 황우석 박사의 사례나, 잊을 만 하면 나오는 스타트업 창업자들의 학력·경력 부풀리기 등이다. 대기업들도 일부는 분식회계를 하면서 우리나라 경제계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다들 추락하기 직전까지 화려한 모습과 이력 그리고 숫자로 표현되는 퍼포먼스를 보였던 이들이다. 사기꾼은 선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리고 친절하다. 개중에는 ‘잘 하려다보니’ 거짓말이 반복되고, 결과적으로 사기꾼이 된 이도 있다. ‘조금 과장해도 되겠지’라는 안이한 마음에 남들이 쉽게 확인할 수 없는 경력(미국 내 커리어나 투자운용액 등)을 부풀린 경우도 있다. 부실 금융 상품인줄 알면서도 투자자들에게 팔아 문제가 되기도 한다. 그들은 당신 마음 속에 잠재된 탐욕을 노리고 자극한다. ‘부자가 될 수 있다’, ‘높은 투자 수익률을 보장한다’며 접근하는 식이다. 화려한 모습과 이력으로 자신들의 말에 설득력을 더한다. 어느 누군들 속지 않겠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숫자에 밝은 은행원들과 증권맨, 펀드매니저들이 이런 그들에게 당하는 것을 보면 탐욕은 학력과 경력을 뛰어넘는 요소임에 틀림없는 듯 하다.
  • [김유성의 금융CAST]부채와 겁박, 여성의 연결고리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지금으로부터 11년전인 2009년 9월 30일 금융소외 계층의 자활을 돕는다는 취지로 미소금융재단이 출범했다. 정부가 기존 소액서민금융재단(휴면예금관리재단)을 확대 개편한 것. 그해 12월 15일부터 은행 대출을 받기 어려운 금융소외계층이 쉽게 창업할 수 있도록 창업·운영자금을 무담보·무보증으로 지원하는 소액대출 사업이 시작됐다. 이른바 빈곤층의 자립을 돕는 한국형 마이크로크레딧(Micro Credit)이다. 이런 마이크로대출은 신자유주의자들한테 특히 환영받았다. 전세계적인 트렌드이기도 했다. 가난한 이들에게 단순히 복지를 퍼주는 것보다 더 ‘아름다워’ 보였기 때문이다. ‘게으르지 않은’ 가난한 이들에게 노동의 기회를 주고, 그들 스스로 자활할 수 있게 만들자는 취지였다. 쉽게 말해 가난한 자들이 본인 스스로 노력해서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자들의 환영을 더 받았다. ◇착한 자본주의의 표상이었던 그라민뱅크 때마침 눈에 띄는 결과물도 있었다. 2006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무함마드 유누스와 그가 이끌던 그라민뱅크였다. 마이크로대출의 원조격인 그라민뱅크는 방글라데시 빈민층에 소액 대출을 해주면서 그들의 자활을 도왔다. 원리와 과정은 이랬다. 아무것도 없는 무일푼의 가장에게 좌판을 열 수 있는 돈을 빌려준다. 살인적인 사금융 금리보다 훨씬 싼 돈을 담보 없이 신용대출을 해주는 것이다. 가장은 이를 자본금으로 장사를 시작하고, 돈을 벌면서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 된다. 그야말로 ‘물고기를 주지말고 물고기를 잡을 수 있도록 낚싯대를 빌려줘라’가 된다. 그라민뱅크의 연채율이 2% 미만이란 점도 주목받았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신용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미소금융은 이런 분위기에서 나왔다. 기업인 출신으로 신자유주의 신봉자나 다름없었던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그의 주변인들의 입맛에도 딱 맞았다. ◇겁박으로 점철됐던 그라민뱅크의 신화 그라민뱅크의 신화는 깨졌다. 그라민뱅크의 연체율 1%는 가난한 자들을 위협하고 협박해 얻은 숫자일 뿐이라는 점에서. 특히 그 사회에서 가장 보호를 받지 못하는 여성들이 주된 타깃이었다. 이는 2015년 11월 한국에도 출간된 바 있는 ‘가난을 팝니다’(라미아 카림 저, 박소현·한형식 해제)에서 잘 드러난다. 전근대적인 사회에서 채무자가 된 여성이 어떻게 희생이 되고, 그라민뱅크의 성과가 어떻게 분식(粉飾)됐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저자인 라미아 카림은 그라민뱅크와 같은 마이크로금융기관으로부터 받은 빈민 여성들이 겪는 현실을 차분히 전했다. 이들 기관이 돈을 빌려준 빈민 여성들을 대하는 방식을 보면 퍽 충격적이다. 책에 따르면 마이크로금융기관은 이들 여성들이 돈을 못갚게 될 때를 대비한 ‘망신주기’와 ‘겁박’을 무기로 갖고 있다. 여성을 향한 명예살인이 자행되는 그 사회에서 ‘망신주기’는 해당 여성의 죽음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가정과 마을 공동체의 무자비한 폭력에 노출될 수 밖에 없다. 빈곤 여성은 더 큰 금리를 물고 이들 기관의 돈부터 갚아야 한다. 98% 이상의 상환률의 허상인 셈이다. 더욱이 이들 여성은 여러 아이를 키우면서 가족들을 부양한다. 채권자 입장에서는 ‘도망갈 염려가 거의 없는’ 이들이었다. 마이크로금융기관은 이런 점도 철저히 이용했다. 이는 마이크로금융기관들의 이윤으로 이어진다. 이들 기관에 투자한 물주들은 쏠쏠한 이윤을 챙긴다. 그 사회의 가장 약한 자들의 희생을 발판 삼은 것이다. 그 결과 가난한 사람들의 빈곤은 더 심각해졌고, 자본을 소유한 사람들의 부는 더 커졌다. ◇‘아가씨 대출’에서 나타난 저열함 한국이라고 다를까. 이른바 사회적으로 약점있는 여성들을 타깃으로 한 대출 상품이 고이율·저위험이란 점에서 비슷하다. 지난 2012년 모 경제지에는 ‘KB지주 ’아가씨 대출‘ 아깝네’라는 기사가 나왔다. 부실대출로 말썽을 빚었던 J저축은행을 인수한 KB저축은행이 ‘마이킹 대출’을 파산재단에 넘긴 것을 놓고 쓴 기사다. 내용인즉슨 금리 높고 부실률 낮은 우량대출인데, KB저축은행 입장에서는 아까울 수 있다라는 얘기다. ‘아가씨 대출’이란 것은 무엇일까. ‘현실문화’에서 나온 ‘레이디크레딧’(김주희 저)를 보면 J저축은행이 유흥업소 업주들에게 실행한 대출을 의미했다. 주된 채무자는 사실상 그곳에서 일하는 이들이었다. 마이킹은 일본말에서 유래됐는데, 성매매 업소에서 신용을담보로 선불금으로 돈을 빌려주는 것을 의미한다. 이 부채가 여성을 옭아매는 역할을 한다. 이 부채는 한국 금융의 선진화와 함께 금융화된다. 과거 여성이 남긴 차용증을 증권화(혹은 담보로 대출을 받고)하고 이 와중에 금융사들이 전주로까지 나선 것이다. J저출은행이나 일부 대부업체들은 직접 대출 상품까지 만들어 운영했다. 이런 대출 상품도 결국은 ‘망신주기’와 ‘겁박’을 깔아뒀다. 과거 사실을 숨기고 싶은 여성들에게 ‘폭로’라는 겁박이다. 남의 시선을 유난히 의식할 수 밖에 없는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폭로적 겁박은 강력한 무기로 작용한다. 2000년대 중후반 TV광고에 나왔던 ‘여성전용 대부상품’도 같은 맥락이다. 저자 김주희는 남성보다 여성에 대한 채권추심이 더 수월했다고 전하고 있다. 수익도 다른 상품보다 좋았다. ◇누구든 ‘사회적 약자’가 될 수 있다 부채는 그 사회 가장 약한 계층의 사람들에 기생하기 쉽다. 이들이 버텨주고 꼬박꼬박 돈을 갚아줄 수록 전주들은 돈을 번다. 채권자 입장에서 억압하기 쉽고 많은 약점을 잡을 수 있는 채무자일 수록 고수익을 누릴 수 있다. 설령 자본주의가 아름다워진다고 해도 이런 구조는 바뀌기 힘들다. 금융은 ‘양날의 검’처럼 채무자들을 옭아맬 것이다. 정부 당국의 감시의 눈이 없다면 말이다. 미소금융 이후 정부는 여러 서민금융 상품을 내놓았다. 서민들의 부채 부담을 줄여주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그래도 여전히 금융 소외자들은 남아있다. 자본주의의 탐욕은 언제든 이들을 노릴 준비를 하고 있다. 아니, 이미 당했지만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일 수도….
    김유성 기자 2020.09.19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지금으로부터 11년전인 2009년 9월 30일 금융소외 계층의 자활을 돕는다는 취지로 미소금융재단이 출범했다. 정부가 기존 소액서민금융재단(휴면예금관리재단)을 확대 개편한 것. 그해 12월 15일부터 은행 대출을 받기 어려운 금융소외계층이 쉽게 창업할 수 있도록 창업·운영자금을 무담보·무보증으로 지원하는 소액대출 사업이 시작됐다. 이른바 빈곤층의 자립을 돕는 한국형 마이크로크레딧(Micro Credit)이다. 이런 마이크로대출은 신자유주의자들한테 특히 환영받았다. 전세계적인 트렌드이기도 했다. 가난한 이들에게 단순히 복지를 퍼주는 것보다 더 ‘아름다워’ 보였기 때문이다. ‘게으르지 않은’ 가난한 이들에게 노동의 기회를 주고, 그들 스스로 자활할 수 있게 만들자는 취지였다. 쉽게 말해 가난한 자들이 본인 스스로 노력해서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자들의 환영을 더 받았다. ◇착한 자본주의의 표상이었던 그라민뱅크 때마침 눈에 띄는 결과물도 있었다. 2006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무함마드 유누스와 그가 이끌던 그라민뱅크였다. 마이크로대출의 원조격인 그라민뱅크는 방글라데시 빈민층에 소액 대출을 해주면서 그들의 자활을 도왔다. 원리와 과정은 이랬다. 아무것도 없는 무일푼의 가장에게 좌판을 열 수 있는 돈을 빌려준다. 살인적인 사금융 금리보다 훨씬 싼 돈을 담보 없이 신용대출을 해주는 것이다. 가장은 이를 자본금으로 장사를 시작하고, 돈을 벌면서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 된다. 그야말로 ‘물고기를 주지말고 물고기를 잡을 수 있도록 낚싯대를 빌려줘라’가 된다. 그라민뱅크의 연채율이 2% 미만이란 점도 주목받았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신용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미소금융은 이런 분위기에서 나왔다. 기업인 출신으로 신자유주의 신봉자나 다름없었던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그의 주변인들의 입맛에도 딱 맞았다. ◇겁박으로 점철됐던 그라민뱅크의 신화 그라민뱅크의 신화는 깨졌다. 그라민뱅크의 연체율 1%는 가난한 자들을 위협하고 협박해 얻은 숫자일 뿐이라는 점에서. 특히 그 사회에서 가장 보호를 받지 못하는 여성들이 주된 타깃이었다. 이는 2015년 11월 한국에도 출간된 바 있는 ‘가난을 팝니다’(라미아 카림 저, 박소현·한형식 해제)에서 잘 드러난다. 전근대적인 사회에서 채무자가 된 여성이 어떻게 희생이 되고, 그라민뱅크의 성과가 어떻게 분식(粉飾)됐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저자인 라미아 카림은 그라민뱅크와 같은 마이크로금융기관으로부터 받은 빈민 여성들이 겪는 현실을 차분히 전했다. 이들 기관이 돈을 빌려준 빈민 여성들을 대하는 방식을 보면 퍽 충격적이다. 책에 따르면 마이크로금융기관은 이들 여성들이 돈을 못갚게 될 때를 대비한 ‘망신주기’와 ‘겁박’을 무기로 갖고 있다. 여성을 향한 명예살인이 자행되는 그 사회에서 ‘망신주기’는 해당 여성의 죽음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가정과 마을 공동체의 무자비한 폭력에 노출될 수 밖에 없다. 빈곤 여성은 더 큰 금리를 물고 이들 기관의 돈부터 갚아야 한다. 98% 이상의 상환률의 허상인 셈이다. 더욱이 이들 여성은 여러 아이를 키우면서 가족들을 부양한다. 채권자 입장에서는 ‘도망갈 염려가 거의 없는’ 이들이었다. 마이크로금융기관은 이런 점도 철저히 이용했다. 이는 마이크로금융기관들의 이윤으로 이어진다. 이들 기관에 투자한 물주들은 쏠쏠한 이윤을 챙긴다. 그 사회의 가장 약한 자들의 희생을 발판 삼은 것이다. 그 결과 가난한 사람들의 빈곤은 더 심각해졌고, 자본을 소유한 사람들의 부는 더 커졌다. ◇‘아가씨 대출’에서 나타난 저열함 한국이라고 다를까. 이른바 사회적으로 약점있는 여성들을 타깃으로 한 대출 상품이 고이율·저위험이란 점에서 비슷하다. 지난 2012년 모 경제지에는 ‘KB지주 ’아가씨 대출‘ 아깝네’라는 기사가 나왔다. 부실대출로 말썽을 빚었던 J저축은행을 인수한 KB저축은행이 ‘마이킹 대출’을 파산재단에 넘긴 것을 놓고 쓴 기사다. 내용인즉슨 금리 높고 부실률 낮은 우량대출인데, KB저축은행 입장에서는 아까울 수 있다라는 얘기다. ‘아가씨 대출’이란 것은 무엇일까. ‘현실문화’에서 나온 ‘레이디크레딧’(김주희 저)를 보면 J저축은행이 유흥업소 업주들에게 실행한 대출을 의미했다. 주된 채무자는 사실상 그곳에서 일하는 이들이었다. 마이킹은 일본말에서 유래됐는데, 성매매 업소에서 신용을담보로 선불금으로 돈을 빌려주는 것을 의미한다. 이 부채가 여성을 옭아매는 역할을 한다. 이 부채는 한국 금융의 선진화와 함께 금융화된다. 과거 여성이 남긴 차용증을 증권화(혹은 담보로 대출을 받고)하고 이 와중에 금융사들이 전주로까지 나선 것이다. J저출은행이나 일부 대부업체들은 직접 대출 상품까지 만들어 운영했다. 이런 대출 상품도 결국은 ‘망신주기’와 ‘겁박’을 깔아뒀다. 과거 사실을 숨기고 싶은 여성들에게 ‘폭로’라는 겁박이다. 남의 시선을 유난히 의식할 수 밖에 없는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폭로적 겁박은 강력한 무기로 작용한다. 2000년대 중후반 TV광고에 나왔던 ‘여성전용 대부상품’도 같은 맥락이다. 저자 김주희는 남성보다 여성에 대한 채권추심이 더 수월했다고 전하고 있다. 수익도 다른 상품보다 좋았다. ◇누구든 ‘사회적 약자’가 될 수 있다 부채는 그 사회 가장 약한 계층의 사람들에 기생하기 쉽다. 이들이 버텨주고 꼬박꼬박 돈을 갚아줄 수록 전주들은 돈을 번다. 채권자 입장에서 억압하기 쉽고 많은 약점을 잡을 수 있는 채무자일 수록 고수익을 누릴 수 있다. 설령 자본주의가 아름다워진다고 해도 이런 구조는 바뀌기 힘들다. 금융은 ‘양날의 검’처럼 채무자들을 옭아맬 것이다. 정부 당국의 감시의 눈이 없다면 말이다. 미소금융 이후 정부는 여러 서민금융 상품을 내놓았다. 서민들의 부채 부담을 줄여주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그래도 여전히 금융 소외자들은 남아있다. 자본주의의 탐욕은 언제든 이들을 노릴 준비를 하고 있다. 아니, 이미 당했지만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일 수도….
  • [김유성의 금융CAST] 위비톡을 보내며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지난 2016년 우리는 생경한 TV 광고를 보게 된다. 카카오톡을 따라잡겠다고 나선 한 모바일 메신저에 대한 광고다. 우리은행이 운영하는 ‘위비톡’.광고 영상 중 일부. ‘은행에서 톡이 나오면 내가 네 아들이다’라는 대사를 유재석이 하고 있다.우선은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를 TV로 광고를 한다는 점, 그 광고에는 당대 최고의 MC인 유재석이 나왔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은행이기 때문에 가능한 마케팅 투자였다.) 숱한 모바일 메신저가 나왔지만 TV 광고에까지 나온 적은 드물었다. 초기작일 경우에는 전적으로 입소문과 온라인 검색 광고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이미 카카오톡 천하가 된 상황에서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점 자체도 생경했다. (이것도 뒷배가 은행이기 때문에 가능한 도전이었다.) 무모해 보이기까지 했다. 네이버의 라인이나 페이스북메신저도 일부 사용자층을 확보하고 있다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마이너’한 정도였다. 카카오톡과 대등한 수준의 경쟁을 한다고 보기 힘들었다. 또 한가지. 은행이 출시해서 은행이 운영하는 서비스였다는 점. 우리은행 창구에 가면 위비톡 광고 포스터를 쉽게 볼 수 있었고, 창구에 앉기 무섭게 위비톡 가입을 권유 받았다. 우리은행 직원들이 끌어준 덕분에 출시 반년만에 100만 가입자를 유치할 수 있었다.(은행이기 때문에 가능한 가입자 유치였다.) 당시 은행장이었던 이광구 전 행장도 열정적으로 위비톡을 알렸다. 들리는 얘기로는 위비톡 운영팀을 직접 본인이 챙겨볼 정도였다. 금융을 넘는 새로운 혁신을 앞장 서가는 행장의 모습으로 비춰졌다. 더군다나 지극히 안정을 추구하는 은행에서 모바일메신저 같은 이종의 서비스에 도전한다는 점 자체가 참신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가입자를 모으는 과정이야 어떻게 됐든 위비톡은 그 존재만으로도 주목 받았다. 당시 행장은 왜 위비톡을 밀었을까. 플랫폼에 대한 중요성을 선도적으로 깨닫고 이를 활용하려고 했던 생각이 강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카카오톡에서 파생된 카카오페이와 카카오뱅크를 보면 알 수 있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매일 빈번하게 사용하는 플랫폼을 만들면 이를 통한 파생 서비스를 얼마든지 낼 수 있다. 위비뱅크, 위비톡, 위비멤버스가 그 예다. 그러나 위비톡은 카카오톡의 아성에 끝내 접근조차 못했다. 한번 굳어진 사용습관을 바꾸기 힘들다는 사실만 다시 확인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위비톡을 아꼈던 행장까지 바뀌었다. 불명예스럽게 바뀌는 과정에서 그의 유산이었던 위비톡은 소외됐다. (정파성이 강한 집단일 수록 전임자의 유산은 쉽게 사라지곤 한다.) IT기업이 아닌 은행에서 고집스럽게 밀었던 서비스였던지라, 추동력이 됐던 사람 하나가 나가면서 같이 사라지게 된 셈이다. 결국 우리금융은 올해 말로 위비톡을 접기로 했다. 이렇게 은행이 시도한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는 다른 카카오톡의 경쟁 서비스처럼 묻히게 됐다.이런 위비톡을 그냥 그저그런 망작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전임 행장의 유산으로 보는 시선도 있지만, 안정지향적인 은행에서 이종의 새로운 서비스를 시도해봤다는 데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 있다. 이른바 ‘질 수 있는 싸움’에도 당당히 도전했다는 데 있다. 실제 수많은 메신저들이 카카오톡에 도전하겠다고 나섰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같은 통신 3사가 연합해서 만든 메신저도 카카오톡의 아성에 도전했지만 무위로 돌아갔다. 그만큼 어려운 시장이다. ‘이런 실패의 반복’ 속에 교훈을 얻는다면 그것도 큰 의미가 될 수 있다. 카카오톡도 수많은 실패 속에 나온 서비스이고, 제아무리 구글이라고 해도 모든 서비스가 성공하는 게 아니다. 성공할 때까지 시도한다. 빅테크 기업들과의 경쟁을 앞둔 은행들도 이러한 ‘실패에 대한 용인’이 필요하다. 카카오도 내부적으로 10개의 서비스 중 1개라도 성공한다면 ‘그게 바로 성공’이라고 평가한다. 그게 바로 디지털 기업의 성공 룰이다.
    김유성 기자 2020.09.12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지난 2016년 우리는 생경한 TV 광고를 보게 된다. 카카오톡을 따라잡겠다고 나선 한 모바일 메신저에 대한 광고다. 우리은행이 운영하는 ‘위비톡’.광고 영상 중 일부. ‘은행에서 톡이 나오면 내가 네 아들이다’라는 대사를 유재석이 하고 있다.우선은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를 TV로 광고를 한다는 점, 그 광고에는 당대 최고의 MC인 유재석이 나왔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은행이기 때문에 가능한 마케팅 투자였다.) 숱한 모바일 메신저가 나왔지만 TV 광고에까지 나온 적은 드물었다. 초기작일 경우에는 전적으로 입소문과 온라인 검색 광고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이미 카카오톡 천하가 된 상황에서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점 자체도 생경했다. (이것도 뒷배가 은행이기 때문에 가능한 도전이었다.) 무모해 보이기까지 했다. 네이버의 라인이나 페이스북메신저도 일부 사용자층을 확보하고 있다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마이너’한 정도였다. 카카오톡과 대등한 수준의 경쟁을 한다고 보기 힘들었다. 또 한가지. 은행이 출시해서 은행이 운영하는 서비스였다는 점. 우리은행 창구에 가면 위비톡 광고 포스터를 쉽게 볼 수 있었고, 창구에 앉기 무섭게 위비톡 가입을 권유 받았다. 우리은행 직원들이 끌어준 덕분에 출시 반년만에 100만 가입자를 유치할 수 있었다.(은행이기 때문에 가능한 가입자 유치였다.) 당시 은행장이었던 이광구 전 행장도 열정적으로 위비톡을 알렸다. 들리는 얘기로는 위비톡 운영팀을 직접 본인이 챙겨볼 정도였다. 금융을 넘는 새로운 혁신을 앞장 서가는 행장의 모습으로 비춰졌다. 더군다나 지극히 안정을 추구하는 은행에서 모바일메신저 같은 이종의 서비스에 도전한다는 점 자체가 참신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가입자를 모으는 과정이야 어떻게 됐든 위비톡은 그 존재만으로도 주목 받았다. 당시 행장은 왜 위비톡을 밀었을까. 플랫폼에 대한 중요성을 선도적으로 깨닫고 이를 활용하려고 했던 생각이 강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카카오톡에서 파생된 카카오페이와 카카오뱅크를 보면 알 수 있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매일 빈번하게 사용하는 플랫폼을 만들면 이를 통한 파생 서비스를 얼마든지 낼 수 있다. 위비뱅크, 위비톡, 위비멤버스가 그 예다. 그러나 위비톡은 카카오톡의 아성에 끝내 접근조차 못했다. 한번 굳어진 사용습관을 바꾸기 힘들다는 사실만 다시 확인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위비톡을 아꼈던 행장까지 바뀌었다. 불명예스럽게 바뀌는 과정에서 그의 유산이었던 위비톡은 소외됐다. (정파성이 강한 집단일 수록 전임자의 유산은 쉽게 사라지곤 한다.) IT기업이 아닌 은행에서 고집스럽게 밀었던 서비스였던지라, 추동력이 됐던 사람 하나가 나가면서 같이 사라지게 된 셈이다. 결국 우리금융은 올해 말로 위비톡을 접기로 했다. 이렇게 은행이 시도한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는 다른 카카오톡의 경쟁 서비스처럼 묻히게 됐다.이런 위비톡을 그냥 그저그런 망작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전임 행장의 유산으로 보는 시선도 있지만, 안정지향적인 은행에서 이종의 새로운 서비스를 시도해봤다는 데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 있다. 이른바 ‘질 수 있는 싸움’에도 당당히 도전했다는 데 있다. 실제 수많은 메신저들이 카카오톡에 도전하겠다고 나섰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같은 통신 3사가 연합해서 만든 메신저도 카카오톡의 아성에 도전했지만 무위로 돌아갔다. 그만큼 어려운 시장이다. ‘이런 실패의 반복’ 속에 교훈을 얻는다면 그것도 큰 의미가 될 수 있다. 카카오톡도 수많은 실패 속에 나온 서비스이고, 제아무리 구글이라고 해도 모든 서비스가 성공하는 게 아니다. 성공할 때까지 시도한다. 빅테크 기업들과의 경쟁을 앞둔 은행들도 이러한 ‘실패에 대한 용인’이 필요하다. 카카오도 내부적으로 10개의 서비스 중 1개라도 성공한다면 ‘그게 바로 성공’이라고 평가한다. 그게 바로 디지털 기업의 성공 룰이다.
  • [김유성의 금융CAST]10년전 MB도 같은 생각을 했다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2009년 국내 조명 등기구 업계는 들떴다. 그해 2월 정부가 대통령 직속으로 녹색성장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저탄소 녹색성장’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당시 업계는 정부의 화끈한 정책 지원을 기대했다. 정책 자금이 유입되면 신(新) 조명광원으로 기대받던 LED조명사업이 ‘훅’ 클 것이라고 기대했다. 정부는 LED조명을 ‘저탄소 녹색성장’의 주요 과제로 삼았다. 소비전력이 낮고 제조 과정에서 형광물질 등의 유해물이 발생하지 않아서다. LED광원이 보급된다면 전체 전력량의 20%로 추정되는 조명용 전력을 아낄 수 있고, 이는 저탄소 경제로 이어진다고 여겼다. 백열전등 대체형 LED조명 제품조명업계는 환호했다. 일부 기업은 새 직원들을 고용했다. 금호전기나 남영전구 같은 상장사들은 연구개발 조직 인력을 확충했다. 지금은 잊혀졌지만 화우 같은 업체는 수백억원 규모 수출 계약 사실을 알렸다. 이와 무관하겠지만 정부도 나름 녹색금융까지 내세우며 ‘녹색성장’을 내세웠다. 그해 4월 녹색금융협의회까지 만들었다. 백열등업체에서 LED조명업체로 바꾼 녹색산업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다. 각종 예금과 적금, 카드, 대출이 은행권에서 쏟아져 나왔다. 이대로만 가면 한국 조명기구 제조기업들이 예전의 중흥기를 되찾을 것 같았다. 당시 국내 조명기구 업계는 이미 값싼 중국제품에 밀리고 있었다. 제조생산라인도 중국 아니면 동남아로 모두 옮긴 뒤였다. 위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녹색성장’은 새로운 희망으로 보였다. 아직 중국이 손을 대기 전인 LED 시장을 선점한다면, 다시금 한국 조명업계가 급성장할 것으로 여겼다. 정부도 이런 기대에 화답하는 듯 보였다. 신호등을 전부 LED로 바꿨고, 시범적으로 LED가로등을 설치했다. 정부 기관 안 조명도 LED등으로 바뀌었다. 형광등이나 3파장등과 비교해 LED조명은 갑절 이상 비쌌고, 백열등과 비교하면 10배 이상 비쌌다. 제품 성능도 검증되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정부가 추진하는 녹색성장에 맞추는 모습만 보이면 됐다. 그러나 2009년 중반도 못돼 이런 기대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우선은 너무나 많은 업체들이 LED조명기구를 만들고 정부 보조금을 받겠다고 달려들었다. 심지어 조명기구와는 상관없는 군인 단체 같은 곳도 LED업체로 등록됐다. 예산은 한정돼 있고 수요는 정부 관급 공사 외에는 별로 없는데 300개 가까운 LED업체가 난립했다. 2009년 초반 50여개도 안됐고 몇몇 업체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가내수공업 정도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이들의 생각은 간단했다. 중국에서 등기구를 일본에서 LED광원을 사와다 조립해 팔면된다는 생각이었다. 당시 한국은 LED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LED칩’을 전문적으로 제조할 만한 기술이 없었다. 서울반도체 등의 기업이 있었지만 상업화까지는 거리가 멀었다. 전세계 대부분이 일본 아니면 미국의 LED칩을 썼다. 정부 기관은 이를 검증할 만한 능력이 별로 없었다. 상업용 LED 조명의 원천기술은 일본 ‘니치아’가 갖고 있었다. 그나마 이 기술을 활용해 제대로된 LED 광원을 개발할 기술력이 2009년 당시 한국 업계에는 거의 없었다.한정된 보조금은 금방 소진됐다. 실제 기술이 있는 기업들은 뒤로 밀렸다. 그러다보니 납품된 LED조명기구에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LED 신호등의 광원은 이가 숭숭 빠지기 시작했고, LED가로등은 불이 나가기 일쑤였다. 국내 LED업체들에 대한 신뢰는 떨어졌다. 일본에 수출을 했다고 자랑했던 업체들도 문제가 많았다. 실제로 납품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았다. LED조명업체들로 주가를 부양했던 일부 상장사는 상장 폐지에까지 이르렀다. 그 와중에 분식 의혹까지 일어났다. 이후 정권이 바뀌면서 녹색성장은 지워졌다. 국내 조명기업들은 혹독한 겨울을 다시 맞게 됐다. 언제 또 봄이 올지 알 수가 없게 됐다. 이는 마트만 가봐도 알 수가 있다. 극히 일부 제품을 제외하고는 오스람이나 필립스, GE 같은 기업의 LED조명기구가 있을 뿐이다. 국산 제품이라고 해도 상당수는 중국에서 제조돼 건너온 제품들이다. 시장이 열리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의 지원책이 발표되고, 여기에서 나올 보조금과 관급공사를 노리고 불나방들이 몰려들었다. 그러면서 건실하게 준비해왔던 진짜 기술력있는 기업들은 묻혀버리는 역효과가 났던 것이다. 10년만에 정부가 다시 녹색성장을 기치로 내세우면서 나왔다. 뉴딜펀드란 이름으로 다시 온 것이다. 앞으로 우리 먹거리 산업이라고 볼 수 있는 신재생에너지를 지원한다는 측면에서 반갑지만, 그 생각은 10년 전에도 있었다. 그리고 정부 주도의 산업 성장 주도책이 얼마나 덧없는지도 10년 전에 경험했다. 물론 정부 주도의 산업 성장책과 지원금이 마중물이 된 측면도 분명 있다. 전체적으로 한국의 산업 환경을 재편하는 결과도 낳았다. 다만 산업과 시장에 대한 이해 없이 정교하지 못하게 ‘돈 살포’만 된다면 10년 전 실수를 되풀이할 가능성이 높다. 먹튀만 양산하게 되는. 게다가 정권에 따라 폐기될 운명의 정책이라면 10년 전 실수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재에 밝은 금융인들은 벌써 이를 계산하고 있을지 모른다.
    김유성 기자 2020.09.05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2009년 국내 조명 등기구 업계는 들떴다. 그해 2월 정부가 대통령 직속으로 녹색성장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저탄소 녹색성장’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당시 업계는 정부의 화끈한 정책 지원을 기대했다. 정책 자금이 유입되면 신(新) 조명광원으로 기대받던 LED조명사업이 ‘훅’ 클 것이라고 기대했다. 정부는 LED조명을 ‘저탄소 녹색성장’의 주요 과제로 삼았다. 소비전력이 낮고 제조 과정에서 형광물질 등의 유해물이 발생하지 않아서다. LED광원이 보급된다면 전체 전력량의 20%로 추정되는 조명용 전력을 아낄 수 있고, 이는 저탄소 경제로 이어진다고 여겼다. 백열전등 대체형 LED조명 제품조명업계는 환호했다. 일부 기업은 새 직원들을 고용했다. 금호전기나 남영전구 같은 상장사들은 연구개발 조직 인력을 확충했다. 지금은 잊혀졌지만 화우 같은 업체는 수백억원 규모 수출 계약 사실을 알렸다. 이와 무관하겠지만 정부도 나름 녹색금융까지 내세우며 ‘녹색성장’을 내세웠다. 그해 4월 녹색금융협의회까지 만들었다. 백열등업체에서 LED조명업체로 바꾼 녹색산업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다. 각종 예금과 적금, 카드, 대출이 은행권에서 쏟아져 나왔다. 이대로만 가면 한국 조명기구 제조기업들이 예전의 중흥기를 되찾을 것 같았다. 당시 국내 조명기구 업계는 이미 값싼 중국제품에 밀리고 있었다. 제조생산라인도 중국 아니면 동남아로 모두 옮긴 뒤였다. 위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녹색성장’은 새로운 희망으로 보였다. 아직 중국이 손을 대기 전인 LED 시장을 선점한다면, 다시금 한국 조명업계가 급성장할 것으로 여겼다. 정부도 이런 기대에 화답하는 듯 보였다. 신호등을 전부 LED로 바꿨고, 시범적으로 LED가로등을 설치했다. 정부 기관 안 조명도 LED등으로 바뀌었다. 형광등이나 3파장등과 비교해 LED조명은 갑절 이상 비쌌고, 백열등과 비교하면 10배 이상 비쌌다. 제품 성능도 검증되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정부가 추진하는 녹색성장에 맞추는 모습만 보이면 됐다. 그러나 2009년 중반도 못돼 이런 기대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우선은 너무나 많은 업체들이 LED조명기구를 만들고 정부 보조금을 받겠다고 달려들었다. 심지어 조명기구와는 상관없는 군인 단체 같은 곳도 LED업체로 등록됐다. 예산은 한정돼 있고 수요는 정부 관급 공사 외에는 별로 없는데 300개 가까운 LED업체가 난립했다. 2009년 초반 50여개도 안됐고 몇몇 업체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가내수공업 정도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이들의 생각은 간단했다. 중국에서 등기구를 일본에서 LED광원을 사와다 조립해 팔면된다는 생각이었다. 당시 한국은 LED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LED칩’을 전문적으로 제조할 만한 기술이 없었다. 서울반도체 등의 기업이 있었지만 상업화까지는 거리가 멀었다. 전세계 대부분이 일본 아니면 미국의 LED칩을 썼다. 정부 기관은 이를 검증할 만한 능력이 별로 없었다. 상업용 LED 조명의 원천기술은 일본 ‘니치아’가 갖고 있었다. 그나마 이 기술을 활용해 제대로된 LED 광원을 개발할 기술력이 2009년 당시 한국 업계에는 거의 없었다.한정된 보조금은 금방 소진됐다. 실제 기술이 있는 기업들은 뒤로 밀렸다. 그러다보니 납품된 LED조명기구에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LED 신호등의 광원은 이가 숭숭 빠지기 시작했고, LED가로등은 불이 나가기 일쑤였다. 국내 LED업체들에 대한 신뢰는 떨어졌다. 일본에 수출을 했다고 자랑했던 업체들도 문제가 많았다. 실제로 납품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았다. LED조명업체들로 주가를 부양했던 일부 상장사는 상장 폐지에까지 이르렀다. 그 와중에 분식 의혹까지 일어났다. 이후 정권이 바뀌면서 녹색성장은 지워졌다. 국내 조명기업들은 혹독한 겨울을 다시 맞게 됐다. 언제 또 봄이 올지 알 수가 없게 됐다. 이는 마트만 가봐도 알 수가 있다. 극히 일부 제품을 제외하고는 오스람이나 필립스, GE 같은 기업의 LED조명기구가 있을 뿐이다. 국산 제품이라고 해도 상당수는 중국에서 제조돼 건너온 제품들이다. 시장이 열리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의 지원책이 발표되고, 여기에서 나올 보조금과 관급공사를 노리고 불나방들이 몰려들었다. 그러면서 건실하게 준비해왔던 진짜 기술력있는 기업들은 묻혀버리는 역효과가 났던 것이다. 10년만에 정부가 다시 녹색성장을 기치로 내세우면서 나왔다. 뉴딜펀드란 이름으로 다시 온 것이다. 앞으로 우리 먹거리 산업이라고 볼 수 있는 신재생에너지를 지원한다는 측면에서 반갑지만, 그 생각은 10년 전에도 있었다. 그리고 정부 주도의 산업 성장 주도책이 얼마나 덧없는지도 10년 전에 경험했다. 물론 정부 주도의 산업 성장책과 지원금이 마중물이 된 측면도 분명 있다. 전체적으로 한국의 산업 환경을 재편하는 결과도 낳았다. 다만 산업과 시장에 대한 이해 없이 정교하지 못하게 ‘돈 살포’만 된다면 10년 전 실수를 되풀이할 가능성이 높다. 먹튀만 양산하게 되는. 게다가 정권에 따라 폐기될 운명의 정책이라면 10년 전 실수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재에 밝은 금융인들은 벌써 이를 계산하고 있을지 모른다.
  • [김유성의 금융CAST]라임만 '죽일놈'인가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우리나라 사모펀드의 출발점은 기업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판다는 개념에 있었습니다. 한국 금융을 국제적인 기준에 맞춰야 했던 1990년대 후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시절 본격화됐다는 게 정설입니다. 이런 사모펀드는 흔히 PEF, 프라이빗 에쿼티 펀드라고 합니다. 해외 자본 시장에서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국내 기업 인수합병 시장에서도 이들 PEF는 큰 손으로 활동 중입니다. 이런 PEF는 일반 투자자가 접근하기 어려웠습니다. 우선은 투자 규모가 커야 하고, 장기간 투자를 해야합니다. 그리고 기업 M&A에 대한 실패 리스크를 감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본시장에 대한 기본 지식도 있어야 합니다. 제아무리 동네부자라고 해도 PEF에 돈을 넣기는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다 2010년대 들어 사모펀드의 의미가 변형됩니다. 기업을 사고 판다는 개념에서 주식이든 투자든 채권이든 혹은 부동산이든 닥치는대로 사고팔고 수익을 나눠준다는 개념으로 확장된 것입니다. 2015년 정부의 사모펀드 규제 완화가 기점이 됩니다.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정부가 만들어낸 규제완화 회색지대 기본적으로 사모펀드의 투자는 비교적 높은 리스크를 안고 가야 합니다. 다만 참여자가 제한돼 있었기 때문에, 설사 손실이 발생한다고 해도 대중적으로 회자될 일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투자형 사모펀드를 활성화시키는 와중에 회색지대가 생겨납니다. 더 많은 투자자를 끌어오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다보니, 실제 상품은 사모펀드로 구성됐는데, 팔리는 형태는 공모펀드처럼 된 것입니다. 일종의 회색지대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 회색지대는 모(母)펀드와 자(子)펀드 간의 관계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모펀드는 전형적인 사모펀드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펀드 매니저가 안정적으로 돈을 굴릴 수 있도록 펀드 만기가 정해져 있습니다. 펀드 참여자들은 한 번 돈을 넣어 놓으면 마음대로 뺄 수가 없는 것이지요. 일반적인 PEF도 이런 식의 만기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머리를 굴립니다. 모펀드에 투자하는 자펀드를 다수 만드는 것입니다. 이 자펀드도 형태만 놓고 봤을 때 사모펀드형태입니다. 49명 가입을 받고 더이상 투자를 받지 않으니까요. 이런 구조는 은행과 사모펀드 입장에서 꽤 좋은 이점을 가져갑니다. 은행은 사실상 쪼개 팔 수 있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모펀드 하나에 수십개의 자펀드를 만들어 팔면 되니까요. 사모펀드 입장에서는 투자 운용 규모를 늘릴 수 있습니다. 일종의 레버리지 효과를 일반 투자자들이 푼푼이 모아준 돈으로 내는 셈입니다. 그런데 이런 구조가 은행과 펀드, 투자자 모두 헤어나올 수 없게 되는 개미지옥이 됩니다. 돈을 굴리는 모펀드에서는 돈을 뺄 수 없게 만들어 놓고 투자를 받는 자펀드는 언제든 돈을 뺄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의 투자를 받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이 구조가 라임 사태의 시작점이 됩니다.라임의 경우 모펀드는 플루토FI-D1, 테티스2, 플루토TF-1, 크레딧인슈어로 모두 4개의 펀드였습니다. 여기에 달린 자펀드 갯수가 173개입니다. 4개 펀드 투자자들만 제한적으로 볼 수 있던 투자 손실이 173개 펀드에 목돈을 넣었던 사람들까지 퍼진 것입니다. ◇기형적인 펀드 구조가 만든 펀드런 이런 모펀드와 자펀드 간에 만기 불일치 문제가 있다고 해도, 어느정도 안전장치는 있었습니다. 증권사 등에서 돈을 빌려와 갖고 있는 것입니다. 펀드 나름대로의 현금도 보유하고 있고요. 은행이 혹시 모를 부실에 대비해 충당금을 쌓아놓고 있는 구조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런 구조는 펀드 수익률이 좋을 때는 선순환적으로 작동합니다. 수익도 쏠쏠하게 냅니다. 문제는 수익률이 하락할 때입니다. 게다가 증권사 돈을 빌렸다는 게 함정이었습니다. 증권사 대출을 받아 주식을 투자해본 분들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대출 원금이 손실 구간에 들어서면 가차없이 돈을 빼가는 게 그들입니다. 2019년 들어 라임의 수익률이 떨어지면서 이런 상황이 발생합니다. 처음에는 마진콜(추가담보)을 요구하던 증권사가 하나 둘 돈을 빼갑니다. 레버리지의 축들이 하나 둘 빠지다보니 수익률은 더 안좋아집니다. 투자자들도 불안해지면서 환매를 요구하게 됩니다. 이런 환매 요구가 빗발치면서 펀드는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위기 상황을 넘기기 위해 펀드 돌려막기까지 합니다. A라는 투자자의 환매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B라는 투자자가 투자한 투자금을 주는 식입니다. 금융감독원이 이 상황을 포착하게 되고 조사에 들어가자, 라임펀드는 걷잡을 수 없이 붕괴됩니다. 이 와중에 증권사들에 순위가 밀려 원금을 받지 못한 투자자들이 생겼고, 이런 투자자들한테 판매사들은 욕을 먹습니다. 특히 은행들에 대한 비난이 빗발칩니다. ◇‘대놓고 사기’도 못막은 수탁 기관의 무능함 지난 27일 우리은행과 하나은행, 미래에셋대우, 신한금융투자가 일부 라임펀드 투자자들에 대한 전액배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자신들이 부실한 펀드 상품을 판매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투자자들의 손해액을 먼저 자기네 돈으로 보상해주고, 이후 재판을 통해 사태의 책임자들한테 돈을 받겠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은행들은 순수하게 금융상품만 보고 팔다가 호되게 당한 피해자일까요? 그들은 상품의 구조와 운용 내용을 소상하게 알기 힘들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옵티머스 펀드처럼 대놓고 사기치는 일까지 몰라도 될까요. 이미 장치와 구조는 어느정도 돼 있습니다. 옵티머스 사태의 경우 수탁 기관들이 실제 운용되는 자산과 펀드가 보고한 자산의 비교만 했어도 충분히 막을 수 있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그 와중에 수탁은행과 사무수탁회사는 살짝 빗겨나와 있는 것이지요. 투자자만 억울할 뿐입니다.
    김유성 기자 2020.08.29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우리나라 사모펀드의 출발점은 기업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판다는 개념에 있었습니다. 한국 금융을 국제적인 기준에 맞춰야 했던 1990년대 후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시절 본격화됐다는 게 정설입니다. 이런 사모펀드는 흔히 PEF, 프라이빗 에쿼티 펀드라고 합니다. 해외 자본 시장에서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국내 기업 인수합병 시장에서도 이들 PEF는 큰 손으로 활동 중입니다. 이런 PEF는 일반 투자자가 접근하기 어려웠습니다. 우선은 투자 규모가 커야 하고, 장기간 투자를 해야합니다. 그리고 기업 M&A에 대한 실패 리스크를 감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본시장에 대한 기본 지식도 있어야 합니다. 제아무리 동네부자라고 해도 PEF에 돈을 넣기는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다 2010년대 들어 사모펀드의 의미가 변형됩니다. 기업을 사고 판다는 개념에서 주식이든 투자든 채권이든 혹은 부동산이든 닥치는대로 사고팔고 수익을 나눠준다는 개념으로 확장된 것입니다. 2015년 정부의 사모펀드 규제 완화가 기점이 됩니다.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정부가 만들어낸 규제완화 회색지대 기본적으로 사모펀드의 투자는 비교적 높은 리스크를 안고 가야 합니다. 다만 참여자가 제한돼 있었기 때문에, 설사 손실이 발생한다고 해도 대중적으로 회자될 일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투자형 사모펀드를 활성화시키는 와중에 회색지대가 생겨납니다. 더 많은 투자자를 끌어오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다보니, 실제 상품은 사모펀드로 구성됐는데, 팔리는 형태는 공모펀드처럼 된 것입니다. 일종의 회색지대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 회색지대는 모(母)펀드와 자(子)펀드 간의 관계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모펀드는 전형적인 사모펀드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펀드 매니저가 안정적으로 돈을 굴릴 수 있도록 펀드 만기가 정해져 있습니다. 펀드 참여자들은 한 번 돈을 넣어 놓으면 마음대로 뺄 수가 없는 것이지요. 일반적인 PEF도 이런 식의 만기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머리를 굴립니다. 모펀드에 투자하는 자펀드를 다수 만드는 것입니다. 이 자펀드도 형태만 놓고 봤을 때 사모펀드형태입니다. 49명 가입을 받고 더이상 투자를 받지 않으니까요. 이런 구조는 은행과 사모펀드 입장에서 꽤 좋은 이점을 가져갑니다. 은행은 사실상 쪼개 팔 수 있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모펀드 하나에 수십개의 자펀드를 만들어 팔면 되니까요. 사모펀드 입장에서는 투자 운용 규모를 늘릴 수 있습니다. 일종의 레버리지 효과를 일반 투자자들이 푼푼이 모아준 돈으로 내는 셈입니다. 그런데 이런 구조가 은행과 펀드, 투자자 모두 헤어나올 수 없게 되는 개미지옥이 됩니다. 돈을 굴리는 모펀드에서는 돈을 뺄 수 없게 만들어 놓고 투자를 받는 자펀드는 언제든 돈을 뺄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의 투자를 받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이 구조가 라임 사태의 시작점이 됩니다.라임의 경우 모펀드는 플루토FI-D1, 테티스2, 플루토TF-1, 크레딧인슈어로 모두 4개의 펀드였습니다. 여기에 달린 자펀드 갯수가 173개입니다. 4개 펀드 투자자들만 제한적으로 볼 수 있던 투자 손실이 173개 펀드에 목돈을 넣었던 사람들까지 퍼진 것입니다. ◇기형적인 펀드 구조가 만든 펀드런 이런 모펀드와 자펀드 간에 만기 불일치 문제가 있다고 해도, 어느정도 안전장치는 있었습니다. 증권사 등에서 돈을 빌려와 갖고 있는 것입니다. 펀드 나름대로의 현금도 보유하고 있고요. 은행이 혹시 모를 부실에 대비해 충당금을 쌓아놓고 있는 구조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런 구조는 펀드 수익률이 좋을 때는 선순환적으로 작동합니다. 수익도 쏠쏠하게 냅니다. 문제는 수익률이 하락할 때입니다. 게다가 증권사 돈을 빌렸다는 게 함정이었습니다. 증권사 대출을 받아 주식을 투자해본 분들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대출 원금이 손실 구간에 들어서면 가차없이 돈을 빼가는 게 그들입니다. 2019년 들어 라임의 수익률이 떨어지면서 이런 상황이 발생합니다. 처음에는 마진콜(추가담보)을 요구하던 증권사가 하나 둘 돈을 빼갑니다. 레버리지의 축들이 하나 둘 빠지다보니 수익률은 더 안좋아집니다. 투자자들도 불안해지면서 환매를 요구하게 됩니다. 이런 환매 요구가 빗발치면서 펀드는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위기 상황을 넘기기 위해 펀드 돌려막기까지 합니다. A라는 투자자의 환매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B라는 투자자가 투자한 투자금을 주는 식입니다. 금융감독원이 이 상황을 포착하게 되고 조사에 들어가자, 라임펀드는 걷잡을 수 없이 붕괴됩니다. 이 와중에 증권사들에 순위가 밀려 원금을 받지 못한 투자자들이 생겼고, 이런 투자자들한테 판매사들은 욕을 먹습니다. 특히 은행들에 대한 비난이 빗발칩니다. ◇‘대놓고 사기’도 못막은 수탁 기관의 무능함 지난 27일 우리은행과 하나은행, 미래에셋대우, 신한금융투자가 일부 라임펀드 투자자들에 대한 전액배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자신들이 부실한 펀드 상품을 판매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투자자들의 손해액을 먼저 자기네 돈으로 보상해주고, 이후 재판을 통해 사태의 책임자들한테 돈을 받겠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은행들은 순수하게 금융상품만 보고 팔다가 호되게 당한 피해자일까요? 그들은 상품의 구조와 운용 내용을 소상하게 알기 힘들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옵티머스 펀드처럼 대놓고 사기치는 일까지 몰라도 될까요. 이미 장치와 구조는 어느정도 돼 있습니다. 옵티머스 사태의 경우 수탁 기관들이 실제 운용되는 자산과 펀드가 보고한 자산의 비교만 했어도 충분히 막을 수 있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그 와중에 수탁은행과 사무수탁회사는 살짝 빗겨나와 있는 것이지요. 투자자만 억울할 뿐입니다.
  • [김유성의 금융CAST]저금리? 고신용자에겐 '혜택', 중저신용자 '눈물'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대출자의 이자를 결정하는 변수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대출 기간과 신용도이지요. 대출 기간이 길어질 수록 대출자가 부담하는 이자율은 높아집니다. 총 상환까지 걸리는 시간에 대한 리스크가 금리에 반영됐다고 보시면 됩니다. 사실 대출 기간이 좀 길어진다고 해서 대출 금리가 확 오르지 않습니다. 동일한 사람의 20년 대출 금리가 10년 대출 금리보다 높지만, 그 차이가 ‘크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조금 비싸졌다’라고 할 정도 입니다. 대출 기간보다는 신용도가 대출 금리에 더 큰 영향을 미칩니다. 돈을 더 잘 갚을 것 같은 사람이 낮은 이자를 부담하는 것입니다. 돈 여유가 있는 고액 연봉자나 자산가가 그렇지 못한 저신용자보다 낮은 이자를 받는 이유입니다. 신용도가 높지 못해도 낮은 금리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담보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대출은 이런 담보가 설정되고 실행됩니다. 주택담보대출이 대표적인 경우가 됩니다. 그래서 같은 신용도의 대출자라면 주담대 금리기 신용대출 금리보다 더 쌉니다. 장기대출이긴 하지만 주택이라는 확실한 담보가 있기 때문입니다. 상환이 늦어지거나 연체되면 바로 압류에 들어갈 수 있는 물건인 것이지요. 이번 한 주 주목받은 뉴스 하나가 있습니다. 신용대출 금리가 주담대 금리 밑으로 내려가는 기현상이 발생했다는 얘기입니다. 이전 은행 창구에서는 볼 수 없는 현상이다보니 몇몇 언론매체에서도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저금리 상황, 더 떨어진 신용대출 금리 가장 큰 요인은 금리가 낮아진 데 있습니다. 모든 금리의 원가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0.5%까지 떨어졌습니다. 미국이나 일본, 유럽 같은 나라들과 비교하면 아직 높다고 하지만, 우리 역사적으로 봤을 때는 기록적으로 낮은 수준입니다. 돈의 가치가 곧 금리라고 하면 그만큼 돈이 싸지고 흔해졌다는 얘기도 됩니다. 은행 입장에서는 예전보다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돈을 쌓아놓을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요새 예금이자율이 1%가 안된다는 점을 생각해보시면 됩니다. 금리가 떨어졌다는 얘기는 대출자가 부담하는 이자도 적어졌다는 뜻입니다. 덕분에 대출을 못 갚는 경우가 예전보다 적어졌습니다. 전체적으로 대출자들의 신용도가 좋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건 왜일까, 사채업자들의 불법사금융 사례를 생각해보시면 이해가 빠르게 됩니다. 대부분의 급전 대출자들은 원금보다 살인적인 이자에 고통받곤 합니다. 이자에 이자가 붙어 대출자들을 옥죄는 것이지요. 다시 말하면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하락하면서 은행 대출이자율이나 국채, 회사채 등의 금리가 떨어지고, 채무자들의 신용도가 좋아졌다는 뜻입니다. 자료 : 나이스이는 우리나라가 본격적인 저금리 사회로 진입하던 2010년대 중반부터 목격이 됩니다. 지난해 12월 기준 신용등급 1등급인 사람의 수는 1312만5850명입니다. 전체 신용평가 대상자 4651만5536명 중 28.2%(나이스 집계)입니다. 3년 사이 5.2%포인트 늘었습니다. 1금융권 신용대출이 가능한 고신용자(1~3등급) 비중은 지난 2017년 이미 전체의 절반을 넘었습니다. 2017년 1분기 기준 54.4%(한국은행 집계)입니다. 이 비중은 5년 사이 13.3%포인트 늘었습니다. 비록 착시효과 가능성이 높다고 해도 신용도의 상승은 위험프리미엄의 감소로 이어집니다. 다시 말하면 은행 입장에서 ‘혹시 떼일지 몰라 부과하는 금리’가 낮아진다는 얘기입니다. 고액 연봉자나 자산가는 이런 혜택을 더 보고요. ◇두드러진 단기채 금리 인하 효과 아까도 언급했다시피 저금리는 은행들의 자금 도입 비용을 낮추는 효과를 냅니다. 대출을 해주기 위한 자금 도입 비용을 낮춰주는 것이지요. 은행들은 예금을 받아 대출을 해주기도 하지만 은행채라는 것을 통해 대출 자금을 마련합니다. 신용대출은 6개월짜리 은행채로, 주담대는 5년짜리 은행채로 많이들 해줍니다. 같은 은행채라고 해도 단기채라고 할 수 있는 6개월짜리 은행채가, 장기채 성격을 가진 5년짜리 은행채보다 금리 변동 폭이 큽니다. 6개월만 지나면 더 싼 금리의 은행채를 발행할 수 있다는 애기입니다. 단기채 금리가 더 싼 상태에서 금리 싸지는 속도까지 빠른 것이지요. AAA은행채 6개월짜리의 경우 이자율이 연율 기준 0.6%입니다. 2~3년 사이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반면 5년짜리는 최근 기준 1.3% 정도 됩니다. 같은 기간 절반 수준으로 밖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주담대 대출을 위한 자금 도입 비용이 신용대출보다 비싼 것입니다. AAA등급 은행채 수익률(%) (자료 : 한국자산평가)여기서 더 중요한 것 한가지. 신용대출이 갖는 단기채적 성격입니다. 신용대출은 보통은 6개월에서 1년정도가 대출 기간입니다. 반면 주담대는 짧으면 10년, 보통은 20~30년입니다. 이 차이가 클 수 밖에 없습니다. 고금리 시대에는 이런 장기채, 단기채 성격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신용대출 자체가 워낙에 금리가 높았기 때문입니다. 대출 담보 유무에 따른 금리 차이가 대출 기간의 장단(長短)에서 비롯되는 금리 차이를 압도했던 것이지요. ◇은행간의 금리 경쟁…모바일이 주도 저금리 상황에 시중 유동성이 늘어나면서 이젠 은행이 대출 경쟁을 해야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은행 간 경쟁은 당연히 대출 금리 인하로 이어집니다. 마땅히 기업들이 많이 대출을 받아가야 하는데, 상황은 녹록지 않습니다. 대기업은 주식시장이나 채권 시장을 통해 저리로 자금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중소기업 중 우량기업으로 분류될만한 기업들은 해외에 생산기지를 두고 있습니다. 투자를 위한 대출 수요가 과거보다 줄어든 것입니다. 은행들 입장에서는 기업보다는 가계 대출에 더 집중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각 개인들이 ‘보다 싸게’, ‘보다 편리하게’ 신용대출을 해갈 수 있도록 서비스를 개편하고 있습니다. 대출액 규모가 크고 소유권 이전 등기, 담보 설정 등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주담대보다는 수천만원을 짧게 빌려주는 신용대출 위주로 말입니다. 때마침 코로나19 시대에 모바일 신용대출 서비스도 많이 나왔습니다. 올해 신규 신용대출 잔액 중 7할이 모바일로 시행된 대출이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중저 신용자들에게 ‘금리인하’ 혜택은 언감생심 그러나 이런 대출 서비스도 결국은 1~3등급 은행 대출이 가능한 사람들에 해당되는 얘기입니다. 이중에서도 전문직이면서 자산가인 사람들은 정말 저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 여유가 비교적 적은 중저신용자들도 주담대보다 싼 금리로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NO’입니다. 중저신용등급 신용자들의 대출 금리는 약간 떨어진 정도입니다. 여전히 담보가 있어야 저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은행연합회 자료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지난 6월까지 집행된 주담대와 신용대출 금리를 보면, 4등급 이하 중저신용자들의 신용대출 금리는 여전히 높습니다. 5등급 이하부터는 이전과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물론 4등급 이하 중저신용자들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기 무척이나 힘들긴 하지만요. 고신용자와 중신용자 대출 금리 비교 (자료 : 은행연합회)그러나 담보가 있는 대출자들은 신용등급에 상관없이 2%대 금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중저 신용자에게는 여전히 담보가 있어야 대출이 가능하다는 얘기입니다. 실제 은행에서 대출을 못받는 사람들이 대출자로 있는 제2금융권에서는 이런 대출 금리 역전 현상이 벌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쉽사리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시장 유동성이 많아져 대출 받기 쉬워졌다고 하지만, 원래부터 대출 받기 쉬웠던 고신용자들에게 해당되는 통하는 얘기입니다. 그 중에서도 전문직과 자산가들에 금리 인하 혜택이 집중된 것입니다. 반면 원래부터 대출받기 힘들었던 중저신용자들은 이런 금리 혜택에서 소외돼 있습니다. 신용도에 따라 금리가 움직이는 게 자본주의 신용사회에서는 당연한 수순이긴 합니다. 그러나 작금의 신용대출-주담대 금리 역전 현상은, 고신용자와 중저신용자 간의 차이를 벌리는 ‘양극화’의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금리가 낳은 또다른 양극화인 셈입니다.
    김유성 기자 2020.08.22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대출자의 이자를 결정하는 변수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대출 기간과 신용도이지요. 대출 기간이 길어질 수록 대출자가 부담하는 이자율은 높아집니다. 총 상환까지 걸리는 시간에 대한 리스크가 금리에 반영됐다고 보시면 됩니다. 사실 대출 기간이 좀 길어진다고 해서 대출 금리가 확 오르지 않습니다. 동일한 사람의 20년 대출 금리가 10년 대출 금리보다 높지만, 그 차이가 ‘크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조금 비싸졌다’라고 할 정도 입니다. 대출 기간보다는 신용도가 대출 금리에 더 큰 영향을 미칩니다. 돈을 더 잘 갚을 것 같은 사람이 낮은 이자를 부담하는 것입니다. 돈 여유가 있는 고액 연봉자나 자산가가 그렇지 못한 저신용자보다 낮은 이자를 받는 이유입니다. 신용도가 높지 못해도 낮은 금리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담보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대출은 이런 담보가 설정되고 실행됩니다. 주택담보대출이 대표적인 경우가 됩니다. 그래서 같은 신용도의 대출자라면 주담대 금리기 신용대출 금리보다 더 쌉니다. 장기대출이긴 하지만 주택이라는 확실한 담보가 있기 때문입니다. 상환이 늦어지거나 연체되면 바로 압류에 들어갈 수 있는 물건인 것이지요. 이번 한 주 주목받은 뉴스 하나가 있습니다. 신용대출 금리가 주담대 금리 밑으로 내려가는 기현상이 발생했다는 얘기입니다. 이전 은행 창구에서는 볼 수 없는 현상이다보니 몇몇 언론매체에서도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저금리 상황, 더 떨어진 신용대출 금리 가장 큰 요인은 금리가 낮아진 데 있습니다. 모든 금리의 원가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0.5%까지 떨어졌습니다. 미국이나 일본, 유럽 같은 나라들과 비교하면 아직 높다고 하지만, 우리 역사적으로 봤을 때는 기록적으로 낮은 수준입니다. 돈의 가치가 곧 금리라고 하면 그만큼 돈이 싸지고 흔해졌다는 얘기도 됩니다. 은행 입장에서는 예전보다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돈을 쌓아놓을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요새 예금이자율이 1%가 안된다는 점을 생각해보시면 됩니다. 금리가 떨어졌다는 얘기는 대출자가 부담하는 이자도 적어졌다는 뜻입니다. 덕분에 대출을 못 갚는 경우가 예전보다 적어졌습니다. 전체적으로 대출자들의 신용도가 좋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건 왜일까, 사채업자들의 불법사금융 사례를 생각해보시면 이해가 빠르게 됩니다. 대부분의 급전 대출자들은 원금보다 살인적인 이자에 고통받곤 합니다. 이자에 이자가 붙어 대출자들을 옥죄는 것이지요. 다시 말하면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하락하면서 은행 대출이자율이나 국채, 회사채 등의 금리가 떨어지고, 채무자들의 신용도가 좋아졌다는 뜻입니다. 자료 : 나이스이는 우리나라가 본격적인 저금리 사회로 진입하던 2010년대 중반부터 목격이 됩니다. 지난해 12월 기준 신용등급 1등급인 사람의 수는 1312만5850명입니다. 전체 신용평가 대상자 4651만5536명 중 28.2%(나이스 집계)입니다. 3년 사이 5.2%포인트 늘었습니다. 1금융권 신용대출이 가능한 고신용자(1~3등급) 비중은 지난 2017년 이미 전체의 절반을 넘었습니다. 2017년 1분기 기준 54.4%(한국은행 집계)입니다. 이 비중은 5년 사이 13.3%포인트 늘었습니다. 비록 착시효과 가능성이 높다고 해도 신용도의 상승은 위험프리미엄의 감소로 이어집니다. 다시 말하면 은행 입장에서 ‘혹시 떼일지 몰라 부과하는 금리’가 낮아진다는 얘기입니다. 고액 연봉자나 자산가는 이런 혜택을 더 보고요. ◇두드러진 단기채 금리 인하 효과 아까도 언급했다시피 저금리는 은행들의 자금 도입 비용을 낮추는 효과를 냅니다. 대출을 해주기 위한 자금 도입 비용을 낮춰주는 것이지요. 은행들은 예금을 받아 대출을 해주기도 하지만 은행채라는 것을 통해 대출 자금을 마련합니다. 신용대출은 6개월짜리 은행채로, 주담대는 5년짜리 은행채로 많이들 해줍니다. 같은 은행채라고 해도 단기채라고 할 수 있는 6개월짜리 은행채가, 장기채 성격을 가진 5년짜리 은행채보다 금리 변동 폭이 큽니다. 6개월만 지나면 더 싼 금리의 은행채를 발행할 수 있다는 애기입니다. 단기채 금리가 더 싼 상태에서 금리 싸지는 속도까지 빠른 것이지요. AAA은행채 6개월짜리의 경우 이자율이 연율 기준 0.6%입니다. 2~3년 사이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반면 5년짜리는 최근 기준 1.3% 정도 됩니다. 같은 기간 절반 수준으로 밖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주담대 대출을 위한 자금 도입 비용이 신용대출보다 비싼 것입니다. AAA등급 은행채 수익률(%) (자료 : 한국자산평가)여기서 더 중요한 것 한가지. 신용대출이 갖는 단기채적 성격입니다. 신용대출은 보통은 6개월에서 1년정도가 대출 기간입니다. 반면 주담대는 짧으면 10년, 보통은 20~30년입니다. 이 차이가 클 수 밖에 없습니다. 고금리 시대에는 이런 장기채, 단기채 성격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신용대출 자체가 워낙에 금리가 높았기 때문입니다. 대출 담보 유무에 따른 금리 차이가 대출 기간의 장단(長短)에서 비롯되는 금리 차이를 압도했던 것이지요. ◇은행간의 금리 경쟁…모바일이 주도 저금리 상황에 시중 유동성이 늘어나면서 이젠 은행이 대출 경쟁을 해야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은행 간 경쟁은 당연히 대출 금리 인하로 이어집니다. 마땅히 기업들이 많이 대출을 받아가야 하는데, 상황은 녹록지 않습니다. 대기업은 주식시장이나 채권 시장을 통해 저리로 자금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중소기업 중 우량기업으로 분류될만한 기업들은 해외에 생산기지를 두고 있습니다. 투자를 위한 대출 수요가 과거보다 줄어든 것입니다. 은행들 입장에서는 기업보다는 가계 대출에 더 집중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각 개인들이 ‘보다 싸게’, ‘보다 편리하게’ 신용대출을 해갈 수 있도록 서비스를 개편하고 있습니다. 대출액 규모가 크고 소유권 이전 등기, 담보 설정 등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주담대보다는 수천만원을 짧게 빌려주는 신용대출 위주로 말입니다. 때마침 코로나19 시대에 모바일 신용대출 서비스도 많이 나왔습니다. 올해 신규 신용대출 잔액 중 7할이 모바일로 시행된 대출이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중저 신용자들에게 ‘금리인하’ 혜택은 언감생심 그러나 이런 대출 서비스도 결국은 1~3등급 은행 대출이 가능한 사람들에 해당되는 얘기입니다. 이중에서도 전문직이면서 자산가인 사람들은 정말 저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 여유가 비교적 적은 중저신용자들도 주담대보다 싼 금리로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NO’입니다. 중저신용등급 신용자들의 대출 금리는 약간 떨어진 정도입니다. 여전히 담보가 있어야 저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은행연합회 자료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지난 6월까지 집행된 주담대와 신용대출 금리를 보면, 4등급 이하 중저신용자들의 신용대출 금리는 여전히 높습니다. 5등급 이하부터는 이전과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물론 4등급 이하 중저신용자들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기 무척이나 힘들긴 하지만요. 고신용자와 중신용자 대출 금리 비교 (자료 : 은행연합회)그러나 담보가 있는 대출자들은 신용등급에 상관없이 2%대 금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중저 신용자에게는 여전히 담보가 있어야 대출이 가능하다는 얘기입니다. 실제 은행에서 대출을 못받는 사람들이 대출자로 있는 제2금융권에서는 이런 대출 금리 역전 현상이 벌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쉽사리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시장 유동성이 많아져 대출 받기 쉬워졌다고 하지만, 원래부터 대출 받기 쉬웠던 고신용자들에게 해당되는 통하는 얘기입니다. 그 중에서도 전문직과 자산가들에 금리 인하 혜택이 집중된 것입니다. 반면 원래부터 대출받기 힘들었던 중저신용자들은 이런 금리 혜택에서 소외돼 있습니다. 신용도에 따라 금리가 움직이는 게 자본주의 신용사회에서는 당연한 수순이긴 합니다. 그러나 작금의 신용대출-주담대 금리 역전 현상은, 고신용자와 중저신용자 간의 차이를 벌리는 ‘양극화’의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금리가 낳은 또다른 양극화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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