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져가는 비닐하우스에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다[르포]

비닐하우스 이주노동자 사망 2년①
경기 포천시 농장지대 숙소 가보니
변한 것 없어…여전히 추위에 고통
'이주노동자' 대책도 현실성 없어
공공기숙사 설립 등 정부가 나서야
  • 등록 2022-12-08 오전 6:00:00

    수정 2022-12-08 오전 6:21:12

[경기(포천)=이데일리 이용성 기자] 영하 13도까지 내려가는 한파가 닥친 지난 1일. 컨테이너의 얇은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가자 새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신발을 벗고 들어오라는 말에 비로소 ‘집 안’과 ‘집 밖’을 구분할 수 있었다. ‘집 안’ 바닥 역시 맨발로 얼음장을 걷는 것처럼 찼다. 철재로 만들어진 벽은 보기만 해도 눈이 시렸다. 퀴퀴한 냄새가 풍기는 집안 곳곳에 걸린 몇 벌의 옷은 전부 얼어붙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천장은 군데군데 얼룩과 곰팡이로 까맸고, 구석구석의 거미줄도 눈에 들어왔다.

경기 포천의 3평 남짓한 컨테이너. 캄보디아 국적의 A(30)씨가 매일 10시간 넘는 고강도 노동을 마치고 몸을 뉘여야 하는 ‘집’이다.

경기 포천시 농장지대에 있는 이주노동자 기숙사의 모습.(사진=이용성 기자)
속헹씨 사망 2년…비닐하우스·컨테이너 숙소 그대로

오는 20일이면 캄보디아 이주노동자였던 속헹씨가 포천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추위에 떨다 숨진 지 2년이 된다. 하지만 2년 동안 변한 건 없었다. 고용노동부가 이주 노동자들의 주거 환경을 개선하겠다고 했지만, 이주노동자들은 여전히 추위와 사투하고 있었다. 노동부가 지난 1월 실시한 이주노동자 주거 실태 조사에 따르면 농어업 분야에서 근무하는 이주 노동자 중 69.6%가 가설 건축물에 거주하고 있다.

지난 1일 이데일리가 찾은 포천의 농장지대 곳곳 가설 건축물에는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 빽빽하게 들어선 농작물 비닐하우스 사이에서 검은 차양막이 덮인 비닐하우스로 사람이 드나들었다. 밖에서 보면 흡사 움막 같다. 더운 나라에서 돈을 벌기 위해 지난 10월 한국에 온 A씨는 일할 때 껴입은 옷을 집에서도 벗지 않는다.

비전문 취업 비자인 E-9 비자를 취득해 한국에 오면 더 좋은 환경에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A씨의 환상은 금세 깨졌다. 한달에 단 이틀을 빼고, 하루 10시간 이상 비닐하우스에서 쪼그리고 앉아 일해 200만원이 채 안되는 돈을 벌었다. 월세, 전기·수도세를 빼고 나면 쥐는 돈은 더 적다. 한국어를 못하는 A씨와 번역기를 통해 대화했다.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너무 춥지만 괜찮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곤 ‘막’(엄마), ‘빠’(아빠)라며 부모 사진을 내밀었다. 그는 웃고 있는 부모 사진을 손으로 어루만졌다. 흙이 낀 손톱, 굳은살이 박힌 손이었다. 꿈이 무엇이냐는 물음에는 “빨리 많은 돈을 벌어 가족과 함께 살고 싶다. 돈이 모이고 일이 끝날 때까지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버티겠다”고 했다.

A씨의 삶은 대부분 이주노동자의 삶과 대동소이하다. 포천 농촌 일대 이주 노동자들은 A씨와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다. 이들은 농작물을 재배하는 비닐하우스 안에서 쪼그리고 앉아 하루 10시간 이상 일하고, 농약을 칠 때면 방독 마스크 대신 얇은 마스크나 천 쪼가리를 입과 코에 두른다. 숙소는 전기장판, 전기난로가 있어도 혹한에 속수무책이고, 여름엔 폭염에 휩싸인다. 화재 위험엔 늘 노출돼 있다.

경기 포천시 농장지대에 있는 이주 노동자의 숙소 모습. (사진=이용성 기자)
인력난 해소하려 불러놓고…노동환경은 ‘뒷짐’

이주노동자들이 이렇듯 ‘비인간적’ 처우를 견딜 수밖에 없는 건 정부의 무책임 탓이 크다. 정부는 농어촌 등 산업현장의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고용허가제를 도입, 이주노동자를 받아들였지만 열악한 여건 속에 노동자가 숨진 뒤에도 그들의 노동 조건과 환경 개선엔 뒷짐을 지고 있다.

속헹씨가 사망하면서 정부가 내놓은 대책도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지난해 1월 이주노동자 숙소 한 곳 당 최대 1500만원까지 지원하고, 사업주가 가설 건축물을 숙소로 제공하다 적발되면 해당 사업장은 이주노동자를 고용하지 못하게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경기의 한 농장주 B씨는 “농장주라고 해도 대부분은 남의 땅을 빌려서 농사 짓는 사람들”이라며 “정부에서 기숙사 지으라고 지원해준다한들 농사지어 돈 벌려고 남한테 빌린 땅에다 기숙사 지을 사람이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정부 보조금도 터무니없이 적어 기숙사 지으려면 사비를 보태야 하고, 들어가는 돈도 어마어마하다”고 했다.

단속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지역에서 이주민 노동권을 위해 각종 활동을 전개하는 포천 이주노동자센터는 “고용센터에서 인력이 부족해 제대로 된 단속을 하지 못하고 있다. 단속 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다만 노동부 관계자는 “전국 3000개소 사업장에 상반기, 하반기 나눠서 정기적으로 지도 점검에 나서 숙소 관련 부분을 점검하고 있다”며 “특히 하반기에는 농업지역을 중심으로 200개소를 선정해 특별점검을 한다”고 했다. 이어 “지방 외국인 지원팀에 인력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한도 내에서 최대한 점검이나 단속을 나서고 있다”고 해명했다.

결국 정부가 예산을 편성해 관련 부서 인력을 늘리고, 지원사업을 하는 등 역할을 해야 한단 목소리가 높다. 시민단체들은 정부에 △기숙사 개선을 위한 정책자금 지원 확대 △공공 기숙사 설립 확대 등을 요구하고 있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위원장은 “정부와 사업주들은 이주노동자를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 불편하고, 열악한 숙소 환경에서는 사람이 사망할 수도 있다”며 “정부는 이주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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