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 기자들이 한 명씩 공수처가 통신자료를 요청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며 이동통신사가 제공한 자료를 공개했을 때만 해도 “무슨 사건 때문에 그랬을까”라는 생각만 했었다. 왜냐하면 통신자료수집은 검찰, 경찰 등 수사기관이 수사를 위하여 자주 이용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공수처의 통신자료수집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기이한 사건이다. 우선 공수처의 수사대상은 고위공직자다. 즉 기자와 같은 민간인은 수사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언론보도에 따르면 통신 자료 수집을 당한 기자 수가 무려 17개 언론사 100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상당히 충격적이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된 이래 공수처와 같이 기자들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으로 통신자료수집을 한 기관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도대체 공수처는 어떤 범죄를 수사하고 있기에 이렇게나 많은 기자들의 개인정보가 필요했을까.
한국신문협회 등 4개 언론단체가 공수처의 언론사 기자 통신자료 조회에 대해 언론인 사찰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고, 여론의 십자포화를 얻어맞은 공수처도 뒤늦게 해명에 나섰다. 공수처는 “이번 논란을 계기로 비록 수사상 필요에 의한 적법한 수사 절차라 해도 헌법상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할 소지가 없는지, 국민적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요소는 없는지 철저히 점검하도록 하겠다”면서도,“수사의 특성상 피의자 등 사건관계인의 통화 상대방이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 기자 등 일반인의 통신자료(가입자정보) 확인이 불가피했던 점, 수사기관으로서 수사 중인 개별 사건의 구체적 내용은 공개하기가 어려운 점을 혜량해 달라”고 밝혔다.
유감스럽게도 공수처는 이번 논란이 왜 문제가 되는지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다. 이름이나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은 헌법이 보호하고 있는 개인의 중요정보다. 특히 기자는 권력기관을 대상으로 취재하고 그들의 비위를 국민에게 알리는 중요 매개체다. 민주주의 실현의 첨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자들의 취재가 위축될수록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 그런데 공수처는 기자들에 대한 저인망식 자료 수집에 대해 뻔한 해명에 그칠 뿐만 아니라, A기자에 대해 가족의 정보는 물론 법원허가까지 받아 가면서 통신 사실을 확인한 이유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과거 검찰의 폐해를 개혁하고자 도입한 공수처가 불과 1년 만에 인권을 침해하는 괴물이 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공수처와의 절연이 필요하다. 내년 대선에 공수처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우는 후보가 있으면 기꺼이 그에게 한 표를 행사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