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수의 경세제민]청년 일자리 막는 노동법의 역설

  • 등록 2022-06-09 오전 6:15:00

    수정 2022-06-09 오전 6:15:00



[유지수 국민대 전 총장·명예교수] 우리나라 기업들은 1960년대부터 글로벌 경쟁의 전장으로 과감하게 진출했다. 그때 만약 국내시장에 안주하고 세계시장에서 경쟁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하지 못했을 것이다.

반면 동시대에 인도의 네루 수상은 대기업의 이익이 소수집단에게만 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대기업을 정부가 통제했다. 이를 위해 그물처럼 복잡한 규제가 만들어졌다. 이후 기업 활동의 자유가 상실된 대기업은 경쟁을 포기하고 혁신 의지를 잃었다. 결국 국가가 지원해야 생존할 수 있는 무기력한 기업으로 대부분 전락했다. 국민에게 이익을 돌려준다는 의도가 오히려 국민 혈세로 기업을 먹어 살리는 꼴이 된 셈이다.

중국은 반대의 경우다. 등소평이 시장을 열고 투자를 유치하면서 시장경제를 도입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경제 강국으로 부상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에 만들어 놓은 경쟁력 없는 국영기업은 여전히 중국의 골칫거리로 남아 있다.

우리의 가장 큰 적은 두려움이다. 특히 경쟁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를 나약하게 만든다. 경쟁을 강조하면 줄 세우기 한다며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물론 경쟁이 항상 선(善)과 이익만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경쟁은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은 인생의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문제 때문에 경쟁을 회피하면 개인과 기업 모두 경쟁력을 잃게 되며 결국 국가의 지원만 바라보는 존재로 전락할 수 있다. 경쟁 때문에 불행해지는 사람을 줄이기 위해 경쟁을 막는다면 결국 더 많은 사람에게 더 큰 불행을 가져오는 결과가 된다. 따라서 시장의 자유와 경쟁을 국가의 경제정책 방향으로 삼지 않으면 안 된다. 동시에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을 보호하는 사회안전망을 강화해 고통을 완화시켜야 한다. 경쟁을 규제하여 성과·기여와는 상관없이 누구나 똑같이 나눠 갖게 하면 열심히 일할 동기를 잃게 된다. 정부가 시장을 규제할 것이 아니라 경쟁에서 낙오한 이들을 도움으로써 경쟁과 복지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

정부의 역할 만큼 개인의 역할도 중요하다. 경쟁에서 승자가 된 사람들의 자선정신은 국가분열을 막는 강력한 백신이다. 승자의 인색함은 사회 갈등의 씨앗이다. 승자는 자신이 얻은 과실을 나누는 자선정신을 갖춰야 한다. 경쟁에서 패한 사람들을 복지제도가 끌어주고 자선정신이 밀어줘야 국민 통합이 가능해진다.

‘정의론(Theory of Justice)’의 저자이며 정치철학자로 저명한 하버드 대학의 존 롤스(John Rawls)교수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방법을 제시한 사람이다. 이 이론은 진보주의자들 사이에서 약자를 돕는 제도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근거로 사용되고 있다. 롤스 교수는 모두가 똑같이 경쟁할 게 아니라 불리한 사람을 지원하는 제도 하에서 경쟁하는 방식을 강조했다. 이를 테면 상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 불리하지 않도록 가점을 부여하는 제도 등을 말한다.

한때 수능시험을 절대평가로 바꾸고 이를 통과한 학생 중 일부에게 추첨으로 입학 기회를 주자고 주장한 사람들이 있었다. 타고난 불평등 때문에 성적이 비교적 낮은 학생들은 수능에서 기본 점수만 받으면 추첨으로 입학할 수 있도록 하자는 얘기다. 출발선이 다르다고 해서 추첨으로 입학을 결정할 때 과연 이 제도가 공정하다고 수용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의구심이 간다.

불공평을 해소하기 위해 보호 장치를 만들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경쟁을 통해 성과를 낸 기업과 개인이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면 인간의 가장 큰 강점인 자유·창의·책임감이 상실될 위험이 커진다. 규제와 보호는 인간의 능력을 저하시키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가장 강한 ‘철의 보호막’ 중 하나는 노동법이다. 우리나라 노동법은 과거 경제성장기의 과실을 제대로 분배받지 못하고,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제대로 못 누린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만들어졌다. 당시 이 노동법을 만들었던 사람들은 노동자에게 더 많은 권한을 주면 노동자가 사측에 협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인간은 누구나 권력을 갖게 되면 시간이 흐를수록 권력을 남용하고픈 유혹에 빠진다. 노조에게 편중된 권한 때문에 제조현장에선 사측이 통제력을 잃은 지 오래다. 자동차산업에서는 신차 런칭, 라인자동화, 생산차량 결정 등에서 노조가 사사건건 사측의 결정을 발목잡고 있다.

노동법은 노동현장의 생산성이 저하되도록 만들었다. 생산성이 해외공장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노조 대의원이라며 급여는 받지만 생산에는 참여하지 않는 사람이 늘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노동법이라는 거대한 보호 장막이 문제인 것이다. 노조의 동의를 얻기 위해 갖가지 요구를 들어주다 보니 고임금·고물가의 덫이 우리 경제를 좀먹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보호 장치가 우리나라 국민의 강점인 도전정신을 퇴보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승진을 거부하고 노동법의 장막 뒤에 숨어 편하게 지내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노동법이라는 보호 장치만 있고 능력에 따른 보상체계가 무너지다보니 구태여 열심히 일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이다. 대학에서 시험을 안 보고 모두에게 똑 같은 성적을 나눠 주면 학생들이 공부하지 않게 되는 것과 같은 원리다.

노동법의 폐해는 비단 제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경제규모에 비해 외국계 금융회사가 매우 적다. 2013년 이후 외국계 금융회사는 줄줄이 한국을 떠나고 있다. 과도한 규제가 원인이라고 하지만 노동법도 주요 원인 중 하나다. 기업 활동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홍콩·싱가포르·런던을 놔두고 굳이 한국에서 금융업을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결국 노동법의 족쇄가 우리나라 청년들의 일자리마저 박탈하고 있다.

노동법의 어두운 장막이 우리의 경쟁력을 좀먹고 있다. 규제의 족쇄가 일자리 창출을 억누르고 있다. 어떻게 고통 없이 달콤한 과실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현재의 고통이 없다면 미래의 행복도 없다. 힘들어도 경쟁을 막는 규제의 장막을 거두자. 그러면 힘들기는 해도 미래가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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