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프리즘]챗GPT 변호사에 '솔로몬의 지혜' 있을까

  • 등록 2023-03-27 오전 6:10:00

    수정 2023-03-27 오전 6:10:00

[박주희 법률사무소 제이 대표변호사]요즘 전 세계의 화두는 단연 챗GPT다. 작년 11월 OpenAI가 대화형 AI(인공지능) 서비스인 챗GPT를 출시한 이후 AI와 직접 관련된 산업군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법률 등 인공지능과 동떨어져 보이는 영역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2016년 ‘알파고’가 등장해 이세돌과 바둑을 둘 때만 해도 그저 인간과 대결을 할 수 있는 AI가 개발됐다는 정도의 감흥을 주었다면 이용자와 대화를 나누며 요구에 맞춰 결과를 제공하는 챗GPT는 이제 일상생활에서도 AI가 인간 삶에 관여하기 시작했음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하지만 AI의 발달이 마냥 신기하거나 기대되는 것만은 아니다. AI가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고 했던 창작의 영역을 넘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AI가 등장했을 때만 해도 창작 분야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이 우세했지만 AI의 학습량이 고도화되면서 이 같은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Dall-E(달리)나 Midjourney(미드저니) 등 이용자의 요구대로 뚝딱 그림을 그려주는 프로그램이 등장하고, AI가 음악을 작곡하거나 시를 짓기도 한다. 실제 미국 콜로라도의 한 미술대회에서는 미드저니로 생성한 그림이 디지털 아트 부문 1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렇게 AI가 인간의 삶에 깊숙이 들어오면서 많은 직업도 AI로 대체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에 변호사와 같은 법률가도 사라질 직업으로 거론되고 있다. 실제로 AI를 통한 판례나 입법례의 리서치 능력은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 정도로 처리 속도가 빠르고, 조건을 제시하면 간단한 계약서 초안 정도도 만들어낼 수 있다. AI의 학습데이터가 더욱 쌓이면 변호사업무 중 일정 부분을 충분히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단언컨대 AI가 아무리 고도화된다고 한들 변호사라는 직업 자체를 대체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본다. 단순히 법령을 찾고, 법리를 도출하고, 논리에 맞는 서면을 작성하는 일이 변호사 업무의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변호사의 업무는 꽤나 감성적인 이해와 감각이 요구된다. 예를 들면, 이혼을 하고 싶다며 온갖 증거를 들고 찾아와 배우자에 대한 불만을 실컷 토로하고 있지만 내심에는 이혼을 원하지 않거나 두려워하는 마음이 숨겨져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럴 때 의뢰인의 진심을 재빨리 포착하고 진정 원하는 방향으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역시 변호사의 역할이다. 내심을 파악하는 일은 오랜 시간 사람들을 겪으며 길러진 변호사의 감각으로 가능이라고 하겠다.

또한 날 것의, 정제되지 않은 사실관계에서 중요한 내용을 도출하고, 불필요한 내용을 정리하는 것 역시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글로 잘 정리된 사실관계를 법리에 대입해 결론을 찾는 건 AI가 할 수 있겠지만 복잡한 우리의 삶과 갖가지 사건을 법리에 맞게 정리하고, 필요한 증거를 뽑아내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변호사가 소송을 진행하며 재판에 출석하고 서면을 작성하는 일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사건을 둘러싼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일이다. 사건의 당사자는 간과하고 지나칠 사실에서 유리한 사실관계를 집어내고, 불필요한 사실은 걷어내는 일은 단순히 법적 지식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의뢰인과의 지속적인 소통 속에서 직관이나 상상력, 판단력과 오감이 모두 작용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어찌 보면 인간이 AI와 다른 고유의 영역은 이성과 논리로 사고하고 생성하는데 있는 게 아니라 원초적으로 감정을 느끼고 수용하는데 있는지도 모르겠다. 의뢰인의 감정에 공감하고 내심을 들여다보는 일은 AI가 대체할 수 없는 변호사 고유의 업무다. 예술 창작은 AI가 넘볼 수 있어도 그 예술을 느끼고 향유하는 것은 오로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AI가 일상생활로 들어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AI로 대체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대비책을 찾지만 결국은 순수하게 기쁨과 슬픔을 느끼고,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일이 우리의 ‘인간다움’을 지키는 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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