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성별 다양성이 경쟁력이다

  • 등록 2023-01-17 오전 6:15:00

    수정 2023-01-17 오전 6:15:00

[김상경 한국국제금융연수원 원장·여성금융인네트워크 회장] 믿기 어렵겠지만, 1970년대 은행에는 ‘미혼 여성만이 직장생활을 할 수 있다’라는 결혼퇴직각서 제도가 존재했다. 당시 결혼해도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던 외국은행과 달리 그 시대 국내 금융권 여성들의 직장생활은 고난의 역사였다. 더욱이 당시 은행권은 남성 ‘일반직 행원’, 여성 ‘여행원’으로 분리 채용하면서 승진과 임금 차별이 당연시되는 분위기였다. ‘여행원’은 10년 근속 후 소정의 시험을 통과해야 ‘초급 행원’으로 전환이 가능했으니 마치 평민에서 귀족으로 신분이 상승하는 셈이었다. 여행원을 대상으로 한 결혼퇴직각서 제도는 1976년 국내은행의 일부 용감한 여성 행원들이 중심이 되어 이를 사회적 이슈로 부각한 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여행원 제도도 ‘근로기준법’과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된 다음해인 1993년에 가서야 폐지됐다.

그렇다고 여성 은행원들의 차별이 끝난 건 아니었다. 외환위기 이후 일반 행원과 전담 텔러를 분리·채용하면서 남성이 대부분인 일반 행원과 여성이 대부분인 전담 텔러와의 임금 차별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2006년 노동부가 합리적 이유 없이 여성 근로자를 차별 대우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이후 은행권이‘직군제’ 를 도입하면서 그나마 이런 차별도 사라지게됐다.

2003년 1월, 필자는 30여 명의 금융권 여성 간부들과 함께 금융권에 더 나은 여성 세상을 건설하자는 취지로 ‘여성금융인네트워크’(여금넷)를 설립했다. 금융위원회 소속 사단법인으로 자리잡으면서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게 됐다. 지난 시절 여금넷은 각종 행사와 여론형성을 통해 여성 금융인에게 가로막힌 유리천장 타파를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40대 이후 은행에 남아있는 관리자급 여성들이 대폭 줄어들면서 여러 번의 존폐위기도 넘겨야 했지만 그동안 여성금융인들의 처우개선과 차별해소를 위한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내면서 지금은 최소한 양적으로는 차별이 사라지게 됐다. 금융권은 이제 진입 비율이 남성·여성 비슷한 상태이고 다른 산업에 비해 고용안정성도 높은 편이다.

하지만 질적으로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부장급 이상의 관리직 비중을 보면 남성이 여성보다 5배나 많고, 당연히 고액연봉자 비중도 남성이 여성보다 2배 이상 많아, 고위층의 남성 우월 문화는 견고하다. 지난해 8월 시행된 새 자본시장법은 자산 2조원 이상의 상장사 이사회에 여성을 한 명 이상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은 내부에서 성장한 여성을 승진시키기 보다는 사외이사의 여성비율을 늘리는 방식으로 규정을 억지로 맞춰나가는 편법을 쓰고 있다. 조직 밖에서 일부 고위 여성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다고 조직 내 다양성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리 없다.

전 세계적으로도 금융업계는 오랫동안 남성 위주의 젠더 문화가 존재했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유럽연합, 미국과 영국의 감독그룹은 성별 다양성을 주요 감독 정책으로 채택했다. 은행과 같은 신용을 창출하는 조직이 성별 다양성을 갖추지 못하면 집단사고의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여성은 상대적으로 행동 위험성이 낮아 성별 다양성은 금융권 인사에서 고려해야 할 우선과제가 되고 있다.

금융권이 치열한 인재 전쟁을 넘어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선 다양성을 더욱 강하게 추구해야 한다. 같은 성별, 같은 문화를 가진 사람끼리 모인 조직은 ‘집단적 사고’ 에 갇혀 실패를 피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조직 내 성차별이나 성별 다양성의 확보가 미미한 경우 해외 유수자본의 투자유치도 어렵게 된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로 국내 상장기업에도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는 블랙록은 투자대상 기업에 대해 성별 다양성 등을 요구하는 투자 스튜어드십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우리 금융당국 역시 금융권내 성별 다양성을 주요 감독과제로 삼는다면 금융산업 전반에 긍정적인 변화가 확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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