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노동개혁의 조건, '왜' 아닌 '어떻게'

  • 등록 2023-03-28 오전 6:15:00

    수정 2023-03-28 오전 6:15:00

[이우영 한국기술교육대 교수·전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과거나 현재나 역사가 합리적으로 진행된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더욱이 점차 많은 개인이 점점 더 상호의존적이 돼 가는 현상은 미래에 대한 예측과 정책 수립에서 ‘인과관계’보다는 ‘상관관계’로 무게 중심이 옮겨가게 됐음을 의미하며 이 모든 것은 확률적 지식 즉,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의 중요성이 매우 높아졌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진영 간 대립이 첨예한 국가적으로 매우 중대한 사회 현안에 대해서는 마냥 데이터, 여론 중심의 숫자에 의한 의사결정은 여러 부작용과 후유증을 낳게 된다. 그래서 민심의 길이란 참 힘들고, 때로는 외로운 결단을 요구한다.

민심에 대한 여러 역사적 사실들이 있다. 로마 시대의 정치가이자 네로 황제의 스승 세네카는 “민심에 거스르기만 하면 국민에 의해 망할 것이고, 민심에 따르기만 하면 국민과 함께 망할 것”이라고 했고, 흙수저 출신의 링컨 대통령은 “민심과 함께하면 실패할 것이 없고, 민심과 함께하지 않으면 성공은 없다”라며 오로지 민심만을 강조했다.

대중 민심과 상반된 통찰력을 보인 사례도 있다. 트로이 목마의 위험을 예견한 제사장 라오콘은 “사람은 보이는 것을 볼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힘들다”고 했다. 군중은 눈앞의 이익과 편리함에 열광하지만, 미래에 덮치게 될 위험과 환란에는 무심하다는 것이다. 그는 대중들에게 외친다. “나는 그리스인들을 믿을 수 없다. 설령 트로이 목마가 선물이라 할지라도” 그러나 그의 절규는 무시되고, 결국 시민들은 무참히 살육되거나 노예로 팔려 가게 된다. 적대 세력에 대한 방심과 사려분별의 부족함은 시민들의 자유, 생명, 인권, 재산 등 모든 것들을 한순간에 날려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여러 국가 현안에 대해서는 지도자의 통찰력에 의한 결단으로 나아갈지, 전문가들의 집단지성에 의한 길로 갈 것인지, 이해 집단 간의 집중논의로 타협을 이끌 것인지, 아니면 숙의를 통한 사회적 합의로 갈 것인지 여러 선택지를 놓고 방향을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는 고도의 정치적 판단과 사회 심리적 요인, 주어진 시간과 환경, 실행 주체의 역량 등이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다.

최근 근로 시간 유연화를 시작으로 한 노동 개혁의 첫발이 진퇴양난의 수렁에 빠지게 된 상황은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며 사회적 신뢰를 높이는 계기가 돼야 함에도 국민과의 직접 소통과정은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점을 윤석열 대통령도 매우 아쉬워했다는 후문이다.

개혁 과제는 ‘왜가 아니고 어떻게’로 풀어야 한다. 과정 관리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이유이다. 시작 단계에서 법, 경제 전문가로 구성된 연구회 운영과 함께 국민적 관심과 폭넓은 참여를 이끌기 위한 과정을 병행해 접근했으면 어땠을까.

풀기 어려운 문제일수록 느릴 것 같지만 오히려 견고하고 빠른 의사결정에 바로 숙의(熟議)가 있다. 우리는 숙의와 합의의 프로세스가 얼마나 소중한지 역사적 사실에서 깨닫게 된다. ‘숙의민주주의’는 포퓰리즘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것으로 Joseph M. Bessette가 1980년 저술한 ‘숙의민주주의, 공화 정부에서 다수원리’에 처음으로 사용했다. 숙의에 참여할 시민은 객관적, 개방적, 균형적 관점에서 선정되며 이들이 자유롭게 현안에 대해 과학적으로 토론하고 논증하는 과정을 거쳐 합의하고 국가 의사결정에 반영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역사적으로 숙의의 과정을 보여준 사례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넬슨 만델라의 ’몽플레르 콘퍼런스‘가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2017년 ‘신고리원전 공사재개’ 결정 과정 등이 있다.

민심은 오래 기다려주지 않고 쉽게 변하기 마련이다. ‘지속가능한 정책’이 되려면 충분한 숙의의 과정과 뜨거운 여론의 주목을 받아야 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 개혁은 반드시 이뤄야 할 과제이다. 빠르게 나아가되 차분히 숙의의 길로 다시 시작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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