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진영 간 대립이 첨예한 국가적으로 매우 중대한 사회 현안에 대해서는 마냥 데이터, 여론 중심의 숫자에 의한 의사결정은 여러 부작용과 후유증을 낳게 된다. 그래서 민심의 길이란 참 힘들고, 때로는 외로운 결단을 요구한다.
민심에 대한 여러 역사적 사실들이 있다. 로마 시대의 정치가이자 네로 황제의 스승 세네카는 “민심에 거스르기만 하면 국민에 의해 망할 것이고, 민심에 따르기만 하면 국민과 함께 망할 것”이라고 했고, 흙수저 출신의 링컨 대통령은 “민심과 함께하면 실패할 것이 없고, 민심과 함께하지 않으면 성공은 없다”라며 오로지 민심만을 강조했다.
대중 민심과 상반된 통찰력을 보인 사례도 있다. 트로이 목마의 위험을 예견한 제사장 라오콘은 “사람은 보이는 것을 볼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힘들다”고 했다. 군중은 눈앞의 이익과 편리함에 열광하지만, 미래에 덮치게 될 위험과 환란에는 무심하다는 것이다. 그는 대중들에게 외친다. “나는 그리스인들을 믿을 수 없다. 설령 트로이 목마가 선물이라 할지라도” 그러나 그의 절규는 무시되고, 결국 시민들은 무참히 살육되거나 노예로 팔려 가게 된다. 적대 세력에 대한 방심과 사려분별의 부족함은 시민들의 자유, 생명, 인권, 재산 등 모든 것들을 한순간에 날려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최근 근로 시간 유연화를 시작으로 한 노동 개혁의 첫발이 진퇴양난의 수렁에 빠지게 된 상황은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며 사회적 신뢰를 높이는 계기가 돼야 함에도 국민과의 직접 소통과정은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점을 윤석열 대통령도 매우 아쉬워했다는 후문이다.
개혁 과제는 ‘왜가 아니고 어떻게’로 풀어야 한다. 과정 관리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이유이다. 시작 단계에서 법, 경제 전문가로 구성된 연구회 운영과 함께 국민적 관심과 폭넓은 참여를 이끌기 위한 과정을 병행해 접근했으면 어땠을까.
민심은 오래 기다려주지 않고 쉽게 변하기 마련이다. ‘지속가능한 정책’이 되려면 충분한 숙의의 과정과 뜨거운 여론의 주목을 받아야 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 개혁은 반드시 이뤄야 할 과제이다. 빠르게 나아가되 차분히 숙의의 길로 다시 시작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