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회장은 17일 서울 용산구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시간 이후 현대산업개발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그는 화정 아이파크 붕괴 사고에 대해 “아파트 안전은 물론 회사에 대한 신뢰마저도 땅에 떨어져 죄송하고 참담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며 “이번 사고를 계기로 현대산업개발은 환골탈태하는 자세로 완전히 새로운 회사로 거듭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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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화정 아이파크 건설 현장에선 콘크리트 타설 작업 중 23∼38층 외벽이 무너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사고로 사망자와 부상자가 각각 한 명씩 발생했고 공사 작업자 다섯 명은 아직 실종 상태다. 사고 조사 중 열흘 이상 필요한 콘크리트 양생 작업(콘크리트가 완전히 굳을 때까지 보호하는 작업을 6~10일 만에 해치웠다는 게 드러나면서 시행·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은 부실 공사 의혹을 받고 있다. 역시 현대산업개발이 시공을 맡은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철거 현장에서 붕괴 사고가 일어난 지 일곱 달밖에 안 된 시점이어서 비판 여론은 더욱 증폭됐다. 정 회장이 사고 이후 잠행을 이어간 것도 여론을 악화시켰다.
이런 눈총에 정 회장은 “전국 건설현장에 대한 외부기관의 안전진단을 실시하고, 안전과 품질 상태를 충분히 확인하여 우려와 불신을 끊겠다”고 말했다. 사고 현장에 대해선 “문제가 있다면 수분양자(분양받은 사람)에 대한 계약 해지는 물론 아파트 완전 철거와 재시공 방안까지 (검토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현대산업개발이 지은 모든 건축물의 구조적 안전결함 보증 기간을 10년에서 30년으로 늘리기로 했다. 피해 배상에 대해선 “이번 사고로 인한 피해자 가족분들께 피해를 보상(배상)함은 물론 입주 예정자분들과 이해관계자분들께도 피해가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정몽규, 그룹 독립 23년 만에 이선 후퇴…면피 의혹에 “사퇴로 책임 벗어난다고 생각 안해”
다만 정 회장은 “경영자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현직에서는 물러났지만 대주주로서의 책무는 다하겠다”며 퇴진 후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룹 회장 자리도 유지하기로 했다. 책임 면피를 위한 사임이 아니냐는 지적엔 “사퇴로 책임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부인했다.
일각에선 정 회장이 사업을 다각화하는 과정에서 주택 시공에 소홀해진 것 아니냐고 지적한다. HDC그룹은 2019년 ‘모빌리티 그룹 도약’을 내세우며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추진했으나 1년 만에 인수를 포기했다. 최근엔 ‘디벨로퍼(부동산 개발) 사업’ 역량 강화에 공을 들였다.
아이파크 보이콧 움직임에 대표 자필사과문까지
정 회장이 물러났지만 현대산업개발 앞엔 높은 산이 놓였다. 잇따른 사고로 ‘안전 취약 건설사’란 낙인이 붙었기 때문이다. 당장 광주시는 “시가 추진하는 사업에 일정 기간 현대산업개발의 참여를 배제하는 방안도 법률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시공 중인 학동4구역이나 광주 북구 운암3단지 등에서도 현대산업개발 시공권을 회수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미 완공된 아파트에서도 아이파크 브랜드를 떼겠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앞으로 사고 수습을 어떻게 하느냐가 향후 현대산업개발 사업 전망을 가를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용구 경희대 건설안전보건학과 교수는 “기존에 갖춰진 안전 조직과 규정을 조금 더 내실화하고 관련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