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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의료진들이 도리어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 환자·보호자의 폭력사건들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어서다. 의료 현장에서 근무하는 의료진들은 고통을 호소하며 안전한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15일 경기 용인시의 한 종합병원에서 70대 남성이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30대 의사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이 남성은 최근 아내가 심정지 상태로 해당 병원에 후송됐다가 사망한 것에 앙심을 품고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018년 고(故)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피습 사건 이후 의료진 폭행에 대한 처벌이 강화됐지만, 의료진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법 개정으로 의료진을 폭행해 상해에 이르게 하면 7년 이하의 징역과 1000만원 이상 7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가중 처벌도 이뤄지지만, 의료계에선 처벌 강화만으로는 잇단 범죄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응급병동에서 근무하는 관계자들은 “폭언은 기본이고, 폭행도 비일비재하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의 한 응급병동에서 근무하는 관계자는 “사례가 너무 많아서 관련 사건을 다 나열하기도 어려울 정도”라며 “응급 병동이 워낙 바쁘게 돌아가다 보니 일일이 경찰에 신고하고 또 고소하기가 어려워 그냥 상황만 정리되면 넘어간다”며 토로했다. 응급병동에서 근무하는 30대 B씨도 “응급 병동에 환자도 있지만, 주취자분들도 꽤 많다”며 “폭언을 듣지 않으면 ‘운이 좋은 날’이라는 말이 돈다”고 말했다.
의료진 절반 이상 ‘폭행 경험’…“대책 마련 촉구”
실제 대한의사협회가 지난 2018년 응급 병동에서 근무한 의료진 1772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급 병동에서 환자나 보호자로부터 폭행을 당한 의료진은 1110명(62%)로 집계됐다. 생명의 위협을 느껴본 적이 있느냐는 물음에는 989명(55%)가 ‘있다’고 답했다. 의사단체는 최근 협회 차원에 긴급 설문조사를 다시 진행하는 중이다.
대한응급의학과의사회도 △정부 차원의 실태조사 △재발방지와 대책 마련을 위한 전문가 자문 및 협의체 구성 △적극적인 공권력의 투입 △폭력 피해자에 대한 구제대책 마련 등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과의사회 회장은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관련 실태를 한 번도 조사한 적이 없다”며 “예방 가능한 폭력을 막기 위해 정부가 실태 조사와 함께 재발방지 대책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