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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진격의 청와대, 무기력 관료들
  • [송길호 이데일리 정경부장] 대통령의 언어는 전략이다. 잔잔한 은유, 강렬한 직설, 간결한 레토릭. 전략적 의도에 따라 내용을 담는 그릇은 다양하다. 언어의 선택은 현상을 재조명하고 강력한 의지를 전달하는 고도의 메시지 변환 작업이다.대통령의 화법이 달라지고 있다. ‘비장한 각오’, ‘절박한 기회’, ‘사생결단’ 강경하고 단정적인 표현이 늘어난다. ‘진돗개 정신’, ‘쳐부술 원수’, ‘제거해야 할 암덩어리’ 직설적이고 원색적인 비유는 강렬하다. ‘손톱 밑 가시’,‘신발 속 돌맹이’ 와 같은 생동감 있는 은유, ‘통일은 대박’이라는 의도적인 일탈과는 분명 느낌이 다르다.은은한 비유와 정연한 수사는 울림과 설렘으로 다가온다. 거친 비유, 결기가 느껴지는 독려는 경직과 긴장을 유발한다. 지극히 간절한 바람, 답답함과 초조함, 성과에 대한 불만족, 저항하는 이해집단과 타성에 젖은 관료집단에 대한 실망과 경고. 대통령의 메시지는 복합적이다.박근혜노믹스의 청사진 경제혁신3개년계획. 1년전 취임사의 배에 가까운 1만2000자 분량의 담화문이 대통령의 입을 통해 41분에 걸쳐 전파를 탔다. 부총리가 보고한 원안(元案)은 폐기되고 청와대에서 리모델링된 다른 작품이 등장했다. 50여일간 강행군을 펼친 경제관료들은 정작 어떤 내용이 공개되는지도 모른채 허둥댄다. 무기력한 관료집단의 우울한 단상이다. 각종 투자활성화대책도 규제혁파에 대한 단호한 의지도 모두 청와대의 확성기에서만 힘차게 울려퍼진다. 개혁의지로 가득찬 청와대는 의욕과 활력이 넘치지만 정작 개혁의 첨병 역할을 해야 할 내각은 동기와 용기를 상실하고 있다. 청와대의 하급기관으로 전락한 행정부처, 식물부총리와 힘 빠진 장관, 무사안일 관료집단. 대통령을 정점으로 청와대의 무한질주만 보인다. 개혁의 파노라마는 데드라인과의 전쟁이다. 남은 임기 3년11개월, 1400여일중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시간은 절반이나 될지 모른다. 혼란과 무질서 불확실의 터널 속에 지금 이 순간에도 째깍째깍 흘러가는 초침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개혁작업에 드라이브를 거는 대통령. 관료집단은 그러나 유한한 정권의 시계바늘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찬바람만 무사히 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박정희의 근대화 프로젝트는 나라 전체를 뜯어고치는 전방위 전천후 개혁작업이었다. 이전의 틀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대규모 변혁운동이 빛을 볼 수 있었던 건 대통령이 코끼리 같은 관료집단을 움직이는 법을 알았기 때문이다. 김학열 남덕우 같은 명장의 ‘돌격 앞으로’ 구호에 사명감으로 무장한 관료들이 힘차게 복창하며 전력을 다해 달리는 모습. 책임장관이 포진한 내각이 개혁의 전면에 나선거다.대통령과 청와대의 힘만으로 변혁의 대장정이 완성될 수 없다. ‘강력한 개혁의지’를 가진 장관이 ‘강력한 힘’을 통해 관료들을 개혁의 전선으로 이끌어내야 한다. 변혁의 가치를 공유하고 자신감과 사명감, 절실함을 불어 넣는 힘, 유인체계를 마련하고 설득과 조정 경고와 압박을 통해 관료집단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 바로 장관의 리더십, 책임장관제의 구현에 있다.대통령은 개혁프로젝트를 가장 잘 팔 수 있는 인재를 선택해 권한과 책임을 맡길 일이다. 바짝 엎드려 있는 관료들이 대통령의 훈육만으로 움직일리 만무하다. 무기력한 장관 밑에는 무기력한 관료들이 있는 법.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는 무능· 무소신· 무책임의 3무(無) 장관들, 권위가 흔들리고 장악력이 떨어진 그들 밑에서 무사안일의 행정관행을 이어가는 관료집단으로는 공기업개혁도 규제혁파도 모두 언감생심(焉敢生心) 이다.
2014.03.17 I 송길호 기자
  • [데스크칼럼]‘현오석 標’ 정책마케팅의 한계
  • [이데일리 송길호 정경부장] 정책홍보는 전문적인 마케팅 활동이다. 정책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과정의 일환이다. 상품을 잘 만들어도 홍보가 잘 되지 않으면 빛을 보지 못하듯 훌륭한 정책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정부가 정책홍보를 가볍게 여기는 건 기업이 기본적인 경영활동을 백안시하는 것과 같다.정책홍보가 관가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부총리도 장관들도 경쟁적으로 정책홍보를 주문한다. 윗선의 지침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체급을 높여 부처 대변인을 고참 국장급으로 대체하는 모습도 보인다. “국민이 모르는 정책은 없는거나 마찬가지” 선의(善意)의 정책 의도가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는 대통령의 질타에 대한 호들갑스런 반응이다.마케팅의 핵심은 관점의 전환이다. 상품의 설계· 제작· 판매 일련의 전 과정을 공급자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재단하는 패러다임의 이동이다. 정책을 만드는 정부의 입장이 아닌 고객인 이해관계자의 입장, 바로 국민 눈높이에서 정책을 마련하고 그 내용과 효과를 설득하는 작업이다. 조원동 경제수석의 ‘거위 깃털론’, 현오석 부총리의 ‘정보유출 책임론’은 모두 국민들의 감정선을 고려하지 않은 공급자 시각의 전형들이다. 정책은 삼위 일체의 완벽한 화음으로 울려퍼진다. 이성을 파고드는 명쾌한 논리, 감성을 자극하는 간결한 레토릭, 핵심 메시지를 체계적으로 전파하는 조직적인 선전전. 모두 제품(정책)의 특장점을 포장해 국민들이 상품을 구매하지 않을 수 없도록 유인하는 전략적인 접근법이다.정책은 그러나 그 자체의 진가(眞價)만으로 국민들의 이목을 끌 수 없다. 정책책임자의 브랜드 가치와 적절히 결합될때 그 효과는 배가된다. 공급자의 이미지는 곧 제품의 가치와 신뢰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정책책임자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면 정책효과는 반감되는 법이다.현오석 부총리는 정책책임자라기 보다는 훈수꾼으로 보일때가 많다. 관련 법안이 국회에 발목 잡혀도 여야 의원들을 발이 닳도록 찾아다니며 정책 내용을 설명하고 이해와 협조를 구한다는 얘기는 들려오지 않는다. 공기업 개혁 등 각종 프로젝트 진행과정에서 대척점에 있는 이해집단을 찾아 치열하게 설득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예기치 않은 실언으로 불필요한 잡음을 야기하는 장면은 정책을 파는자가 아닌 심판하는 자, 국민 위에 군림하는 자의 모습으로 굴절돼 비쳐진다.로버트 루빈은 정책홍보의 달인이었다. “클린턴 행정부의 경제 대변인” 그는 회고록에서 재무장관 시절 자신의 역할을 이렇게 규정했다. 루빈이 미국 역대 최고의 재무장관중 한 명으로 꼽히는 건 정책의 생산자로서 그리고 판매자로서 자신의 미션을 분명히 인식하고 행동했기 때문이다. 치열한 정책홍보전의 최일선에서 정책을 효과적으로 마케팅 할 수 있는 ‘최고의 세일즈맨’은 바로 해당 부처 리더들이다. 생산자이자 판매자로서 무한책임을 지는 정책의 사령탑들. 이들의 브랜드는 곧 정책의 가치와 연결되고 이들의 이미지는 해당 정책, 기관, 한발 더 나아가 정권 전체의 심상(心象)으로 국민들의 눈에 투영된다.각종 경제정책이 혼선을 야기하고 불협화음을 낸다면 홍보전의 실패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정책 그 자체 보다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부재를 드러내고 있는 경제팀에 대한 불신과 관련 있는지 모른다. 정책고객인 국민들로부터 비난과 원성을 사고 급기야 대통령으로부터 공개 경고까지 받은 ‘식물부총리’. 신뢰를 상실한 정책책임자가 제공하는 정책이 과연 국민들의 머리와 가슴속을 깊이 파고들 수 있을까. 국민들의 자발적인 지지와 호응은 이끌어낼 수 있겠는가.
2014.02.17 I 송길호 기자
  • [데스크칼럼]'박근혜 혁신'과 '박정희 개발'사이
  • [이데일리 송길호 정경부장] 정책은 진흙 속을 헤쳐가는 일련의 프로세스다. 이해관계자들과 영향을 주고 받는 상호작용의 과정이기도 하다. 다양한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각 정파는 이익집단의 정치적 힘에 따라 반쪽짜리 변질된 정책을 양산할 가능성이 높다. 국가 전체의 이익 보다는 특정집단· 특정계층 ·특정지역·특정세대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한 유인이 더 크기 때문이다. 정치체제가 다원화 민주화되고 정치적 영역이 확대될수록정책은 결국 정책공급자들의 정치적 능력에 따라 운명이 결정된다. 정책과 이를 뒷받침하는 정치력은 분리할 수 없는 합일(合一)의 앙상블이다.박근혜노믹스의 집대성,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 선을 보였다. 정책목표를 명확히 밝히고 집권 1년간 산발적으로 제시된 정책을 3대 정책과제로 묶은 박근혜시대의 경제로드맵이다. 발표 하루만에 부총리는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내놓겠다고 공언하고 실무자들은 획기적인 작품 만들겠다며 머리를 싸맨다. ‘돌격 앞으로’ 대통령의 구호에 관료들은 ‘탄탄한 구름판이 되겠다’며 힘껏 복창하는 모습, 전광석화 같다.경제혁신3개년 계획은 필연적으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연상시킨다. ‘개발’이 ‘혁신’으로 ‘5개년’이 ‘3개년’으로 바뀌었을 뿐 정부 주도로 경제의 성장엔진에 화끈히 불을 붙이겠다는 정책목표는 다를 바 없다. 양적 성장 시절의 로드맵이 질적 전환의 변곡점에서 리모델링된 셈이다. 두 로드맵은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를 내포한다. 정치적 토양, 바로 변화된 정책 환경이다. 권위주의 체제의 정책과정은 단선적이다. 정책 고객인 이익집단들의 영향력은 극히 미미하니 정치권이 이들을 대변할리 없다. 집권당조차 배제되는 상황에서 정치논리가 개입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자연스레 정책은 그 자체의 효과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한국경제의 고도성장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빛을 발하던 시절, 정치실종 시대의 역설이다. 다원화된 민주주의 체제의 정책과정은 복합적이다. 정파간, 이익집단간 갈등과 분쟁의 연속이다. 이익집단의 파워, 이들을 대변하는 정치권의 영합적인 태도는 정책 그 자체의 본질을 흔든다. 정치력을 탑재하지 않은 정책은 정치논리에 휘둘리며 일관성과 명료성, 유기성과 통일성을 상실한채 정책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간다. 박근혜정부 경제로드맵의 주요 정책과제들은 이익집단과의 전면전이다. 공기업정상화도 철도산업발전도 의료선진화도 비정상의 정상화로 규정된 각종 개혁작업들은 물론이다. 내수활성화의 핵심과제 서비스산업 육성도 다를 바 없다. 모두 규제 장벽 너머 이익을 향유하는 기득권층과의 치열한 전쟁이다. 구조적인 갈등조정 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정책환경에서 정치력의 한계는 정책의 불투명한 미래를 예고한다. 대통령의 진정성은 의심의 여지 없다. 그러나 선의가 장밋빛을 보장하진 않는다. 정책목표 달성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정치적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능력, 그 기저에 깔린 커뮤니케이션 능력. 통합적인 리더십을 바탕으로 이 같은 고도의 정치력을 통해 드라이브를 걸어야 정책은 날개를 달고 목표달성에 다가설 수 있다. 이익집단들의 이해관계는 거칠게 충돌하고 그에 따른 정치적 논란은 더욱 고조되는 정치만능시대. 권위주의 시대의 성공법칙이 다원화된 민주주의 시대에 그대로 적용될 리 없다. 과거의 정책을 리모델링하면서 달라진 정치적 토양을 고려하지 않은채 동일한 방식으로 접근하려는건 아닌지 모른다. 여의도 정치권과는 거리를 두는 그래서 의도치 않게 정책의 진정성 마저 훼손당하는 정치력 부재의 정책환경에선 아무리 경쟁력 있는 경제청사진이라도 꽃을 피우기는 어렵다.
2014.01.20 I 송길호 기자
 전광우 "규제는 '나쁜 콜레스테롤'..낮출수록 경제선순환"
  • [신년인터뷰] 전광우 "규제는 '나쁜 콜레스테롤'..낮출수록 경제선순환"
  • 그는 이론과 실무를 접목한 양수겸장의 전문가다. 탄탄한 이론적 기반, 금융계와 관가를 넘나들며 다져진 풍부한 실무경험, 여기에 다양한 글로벌 네트워크까지. 그는 지금 현직에서 물러나 한국경제를 더 큰 그림속에서조망하고 있다. 초대 금융위원장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역임한 전광우(64)연세대 석좌교수를 만났다. 대내외 불확실성의 파고에 직면한 올해 한국경제의 불안요인을 점검하고 그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전 교수는 인터뷰에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지난 2008년부터 5년까지 세계경제는 유동성이 밀물처럼 밀려오는 ‘밀물의 시기’라고 진단했다. 반면 올해 본격적으로 닥칠 테이퍼링은 유동성이 축소되는 이른바 ‘썰물의 시대’를 예고한다고 정리했다. 그는 “유동성을 축소하게 되면 진짜 실력이 드러난다. 테이퍼링이라는 썰물을 견디기 위해선 경상수자흑자, 재정건전성 등 경제의 기초체력을 유지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그는 특히 “한국경제가 구조적으로 한단계 도약하기 위해선 성장의 모멘텀이 필요하다”며 “공기업· 노사· 기업부문의 혁신, 투자 활성화를 위한 규제완화 등 이른바 기술개발을 위한 R&D 외에 새로운 R&D(Reform & Deregulation:개혁과 규제완화)의 구현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전 교수와의 인터뷰는 지난해 12월26일 이데일리 본사에서 1시간30분가량 진행됐다.전광우 연세대 석좌교수는 “한국경제가 구조적으로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공기업· 노사· 기업부문의 혁신, 투자 활성화를 위한 규제완화 등, 이른바 기술개발을 위한 R&D 외에 새로운 R&D(Reform & Deregulation:개혁과 규제완화)의 구현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미국의 양적완화 축소(테이퍼링)는 여전히 2014년 세계경제의 화두다. 테이퍼링에 대한 평가는.“테이퍼링은 비정상의 정상화과정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과정에서 재정악화에 직면한 중앙은행의 역할 확대과정에서 나온 조치다. 위기 관리의 원칙은 두가지다. 초기대응은 선제적이고 과감히 해야 한다는 점, 출구전략은 신중하고 점진적으로 해야한다는 거다. 미국 연준(Fed) 입장에서는 출구전략을 지연시킬 경우 버블을 잉태할까 우려한 것 같다. 따라서 1월부터 테이퍼링을 하겠다는 시그널을 보낸 거다. 하지만 금리는 2015년까지 올리지 않겠다는 포워드가이던스(Forward Guidance·선제지침)를 제시했다. 연준이 미리 내다보고 적절한 선제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메시지다. 이런 소통 방식은 시장에 신뢰를 준다. 연준의 전략적인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볼 수 있다.”-미국이 테이퍼링에 나서고 있다는 건 그만큼 미국경제의 회복세에 탄력이 붙었다는 얘기인데, 한국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양적완화에 따른 유동성 효과와 셰일가스를 중심으로 한 에너지 부분에서의 혁신으로 미국 제조업은 부활하고 있다. 여기에 주택시장이 살아나면서 미국의 경제회복이 가시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테이퍼링은 미국 등 선진국 경제의 개선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한국경제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물부문에선 수출증대, 금융부문에선 자본유입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선진국 경기회복의 지속가능성, 신흥국 경제의 위축에 따른 파장 등은 변수가 될 수 있다.”-신흥국 경제권에서의 차별화를 의미하나. “올해 세계경제는 상대적으로 선진국이 좀 더 선전할 것이다. 신흥국 경제성장률은 평균 수준으로는 선진국보다 높아도 최근 몇년간을 기준으로 보면 전반적으로 둔화되는 모습을 보일 것이다. 때문에 선진국과 신흥국간의 차이보다는 신흥국 내에서의 차별화에 관심을 가져야 할 한 해가 되지 않겠나 생각한다. 테이퍼링의 효과는 결국 글로벌 자본 흐름의 변화를 초래할 것이고, 해외자본이 일차적으로 빠질 가능성이 높은 나라는 아무래도 경제의 펀더멘탈이 취약한 나라들이다. 인도,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 경상수지 적자국들이 대표적이다. 이들 국가들은 환율 전망이 좋을 수 없고,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선 결국 해당국 외환시세에 따라 자금을 언제 엑소더스(Exodus·탈출)하게 될지 결정하게 될 것이다.”-테이퍼링과 함께 또다른 글로벌 변수는 아베노믹스의 파장이다. 아베노믹스에 따른 엔저현상에 그간 우리경제는 전반적으로 잘 버텨온 것으로 평가되는데.“국내 외환시장에 미치는 충격은 일단 감내할만한 수준이었다고 본다. 과거에 비해 환율변동이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줄어들어 수출의 환율의존도가 감소했고 대기업의 해외생산기지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다만 엔저현상이 더욱 가속화될 올해 미칠 파장에 대해선 예단할 수 없다. 각 기업들은 엔저 파고를 헤쳐나가기 위해 수출경쟁력 제고를 위한 노력을 배가해야 할 시점이다.” -우리나라 제1의 수출시장 중국경제는 여전히 고전하고 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중국경제로선 과거 장기간에 걸친 과속성장의 후유증을 해소하기 위해 일정부문의 감속이 필요하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개혁과 구조조정을 위해 연착륙(Soft landing)은 불가피하다. 올해는 대략 7%대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본다. 지방정부부채, 대기오염 등 환경문제, 지역·계층간 소득격차, 삶의 질 개선에 따른 욕구 등 고속성장 과정에서 파생되는 구조적 문제점들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경제의 지속가능 성장이 달려 있다. 우리나라로선 이 같은 변화의 흐름에 따라 대중 수출전략을 소비재 중심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관광업 등 국내 서비스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통해 중국의 소비패턴의 변화를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올해 우리경제에 대한 전망은 전반적으로 낙관적이다. 정부가 정책의 우선 순위로 집중해야 할 분야는.“국내외 기관들의 올해 한국경제 전망은 대략 3%중반∼4%에 이른다. 다만 북한사태 급변 등 지정학적 리스크, 최근 철도노조 파업사태에서 엿볼 수 있듯 공기업개혁과정에서 나타나는 불안정성, 국론분열 등 정치리스크까지 하방위험요인은 적지 않다. 여기에 대외 불안요인이 만만치 않다. 결국 현재 상태에서 한단계 도약하기 위해선 혁신적 모멘텀이 필요하다. 진정한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선 연구·개발을 뜻하는 R&D외에 또 다른 R&D(Reform&Deregulation), 즉 개혁과 규제완화가 절실하다. 공기업, 노사, 기업부문의 혁신을 통한 경쟁력 제고, 민간투자활성화를 위한 규제완화가 필요한 시기다. 성장의 계기는 결국 투자를 통해 이뤄진다. 규제는 콜레스테롤과 같다. 꼭 필요한 규제도 있지만 낮을 수록 좋다. 규제완화에 따른 투자활성화가 성장을 이끌어야 일자리가 창출되고 경제의 선순환이 이뤄진다.”-투자활성화를 강조하지만 결국 성장의 동력이 될 수 있는 수익 모델이 사라져가고 있지 않나.“국내 시장엔 한계가 있으니 글로벌 시각을 통해 성장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 정부는 물론 새로운 성장모델을 제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초기 개발시대처럼 정부가 성장모델을 직접 찾기 위해 역량을 집중하는 건 복합적이고 글로벌화된 현 시장경제체제하에선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민간이 기본적인 성장모델을 찾을 수 있도록 촉매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규제 완화라는 촉매를 통해 민간의 창의성과 강한 추진력을 통해 해당 분야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얘기다.”- 정부는 경제민주화에 집중하다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경제활성화로 정책기조를 바꿨다. “경제민주화와 경제활성화는 일반적으로 상충되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경제민주화와 활성화는 따로 갈 수 없다. 경제의 양극화가 심해지면 공정성과 분배욕구가 늘어나고 전반적인 복지 관련 수요도 늘어나게 된다. 경제 활력이 떨어지면 성장의 계기를 마련하는 일이 필요하다. 결국 우선순위의 문제다. 정부의 역할은 이 중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결정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선 국민적 공감대를 마련하기 위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복지를 위해선 재정이 필요하고, 재정은 경제가 좋아져야 튼튼해진다. 어디서부터 물꼬를 터야할지 결정하고, 이에 국민적 공감대를 넓히기 위해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창조경제에 대한 평가는.“창조경제의 길은 올바른 방향이다.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혁신을 통해 창조경제는 이뤄진다. 창조경제라는 프레임은 맞지만 문제는 이걸 어떻게 실행에 옮기느냐다. 이를 위해선 장기적인 안목으로 내다봐야 한다. 창조 DNA가 각 분야에 확산될 때 창조경제의 구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가장 원천적으로는 교육 시스템부터 달라져야 한다. 창조경제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선 교육부터 사회 경쟁 체제까지 모든 시스템 전반에 걸쳐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전광우 연세대 석좌교수1949년 서울 출생. 서울사대부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인디애나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경영학 박사를 받았다. 미시간주립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12년간 세계은행(World Bank) 수석이코노미스트로 활동했다. 국제금융센터 소장, 우리금융그룹 부회장, 딜로이트코리아 회장 등을 두루 거친 ‘금융통’으로 꼽힌다. 2008년 민간출신 첫 금융위원장으로 선임됐으며 이듬해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 옮겨 3년 반을 재직했다. 자산 400조원을 관리하는 세계 3대 연기금의 하나인 국민연금공단의 이사장으로서 그는 기금운용의 패러다임을 새로 구축하고 역대 최고의 실적으로 국민연금의 신뢰와 글로벌위상을 제고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5월부터 연세대 경제대학원 석좌교수로 재임중이다. 대담 = 송길호 정경부장, 정리 = 안혜신 기자, 사진 = 김정욱 기자
2014.01.06 I 안혜신 기자
 박승 前 한은 총재 "경제민주화, 규제보다 富 사회환원으로"
  • [신년인터뷰] 박승 前 한은 총재 "경제민주화, 규제보다 富 사회환원으로"
  •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한국경제가 잃어버린 20년의 파고를 겪은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박 전 총재는 규제완화와 구조조정을 통해 경제체질을 개선할 것을 주문했다.퇴직 후 여러 곳에서 고문이나 사외이사 등으로 모셔가겠다고 했으나 모두 거절했다. 현직에 있는 후배들에게 누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박승(78) 전(前) 한국은행 총재는 은퇴 후 주로 봉사활동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대학이나 지방 공기업에 가끔 강연도 나가고 최근엔 카이스트(KAIST) 대학의 입학사정관으로도 참여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한국경제의 흐름을 놓치지 않는다. 끊임없이 연구하고 분석하며 그에 대한 대안까지 모색하는 등 공부하고 또 공부하기 때문이다. 이데일리가 최근 박 전 총재를 찾았다. 한국경제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그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서였다. 박 전 총재는 인터뷰에서 “경제 사회 전반에 심화된 계층간 양극화의 골을 메우지 않으면 한국경제에 미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한국경제가 ‘잃어버린 20년’의 파고를 겪었던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며 “증세를 통한 복지확대를 통해 경제의 선순환이 이뤄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박 전총재과의 인터뷰는 평창동 자택에서 1시간 30분가량 진행됐다. ◇“증세 없는 복지 없다...재정건전성 훼손되면 제2의 일본”“증세없이 복지를 펼치게 되면 결국 국가부채가 늘어나면서 재정적자가 확대됩니다. 이는 일본식 장기불황의 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박 전 총재는 우선 증세없는 복지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래야 잃어버린 20년을 경험한 일본의 우를 범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한국경제가 일본경제와) 유일하게 다른 점이 재정건전성이다. 저금리, 저환율, 부동산 장기침체, 저투자, 저소비 등 모든 것이 유사하다”며 “재정건전성 만큼은 훼손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이 같은 관점에서 박 전총재는 2014년이 한국경제의 고비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경제가 다소 회복세를 보이긴 하겠지만 저성장 기조는 지속되면서 더욱 심한 양극화 문제에 직면할 것이라는 점에서다. 경제의 양극화는 결국 복지수요를 자극하고 그 결과 정부의 적극적인 지출을 요구하게 된다. 박 전총재는 이 같은 맥락에서 한국경제가 ‘빈곤화의 성장’에 허덕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경제의 파이가 커져도 국민 전체적으로는 먹고살기가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우리 경제가 4% 성장하면 법인기업 소득은 16%늘어나는 반면, 가계 소득은 2% 증가하는데 그칩니다. 대기업이 저축의 대부분을 가져가고 가계는 1000조원의 부채에 시달리고 있어 중산층은 줄어들고 빈곤층이 늘어나고 있지요.” 그는 “가계저축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인 2%에 불과하다”며 “가계 소득은 낮고 빚은 많은데 저축이 적다보니 소비가 부진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박 전 총재는 그러나 한국의 소득재분배 정책은 지극히 미약하다고 질타했다. “지난 5년간 국내총생산(GDP)에서 사회보장 지출 비중은 OECD 국가 평균(22%)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10%에 불과합니다. 조세부담률과 공적부담률도 OECD 평균인 26%, 45%보다 낮은 20%, 26%에 그치고 있지요. 1인당 소득은 선진국을 지향하고 있는데, 복지수준과 소득재분배 정책은 후진국 수준입니다.”이에 따라 박 전총재는 저축의 대부분을 부(富)로 보유하고 있는 대기업이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규제완화를 통해 투자를 유인하는 한편 법인세 인상 등을 통해 공공투자를 확대해야 한다고강조했다. “민간에 맡겼더니 대기업들이 자발적으로 투자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의 한계일수 있습니다. 현실적인 대안은 이 같은 마이너스 효과를 보완하는 겁니다. 정부가 대기업으로부터세금을 거둬 공공투자 및 복지지출을 확대하는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합니다.” 결국 저성장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박 전총재가 제시하는 해법은 법인세 인상을 통한 소득재분배정책이다. 부가가치세나 소비세 등 다른 세목의 인상보다는 법인세 인상이 현실적인 해법이라는 게 그의 지적이다. ◇“대기업 사내유보금 충분...법인세 인상 필요” 전통 경제학에서 기업에 대한 법인세 인상은 민간부문의 지출을 억제하는 구축효과(crowding effect) 등으로 이어져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박 전총재도 이 같은 우려를 인식한다. 다만 이 같은 논리는 경제에 자본이 부족할때 성립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과거 산업화 시대엔 복지를 늘리면 기업들이 투자할 돈이 부족해 성장이 희생됐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대기업의 유보자본이 많지요. 법인세율을 올리더라도 국내투자가 줄어들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그는 “낮은 법인세율을 유지하는 건 대기업의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서지만 지금은 법인세율을 낮춰도 대기업들이 투자를 하지 않는다”며 법인세 인상의 필요성을 강변했다. 실제 10대 대기업의 사내 유보액은 2008년 235조에서 2012년 405조원으로 4년간 72% 늘었고, 자기자본에 대한 유보비율은 900%에서 1400%로 상승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들이 국내 투자를 기피하고, 현금유보나 부채상환, 해외투자에 나서는 건 분명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기업의 투자가 일자리 창출과가계소득 증대로 이어졌던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정부가 세금을 더 거둬들여 공공투자나 복지지출로 전용해야 가계소득의 증가로 이어집니다. 그래야 성장의 활력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박 전 총재는 그러나 법인세 인상 논의가 대기업을 옥죄는 차원의 규제로 비화될 가능성에 대해선 경고의 목소리를 냈다. 특히 민주당 등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대기업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문제에 대해선 부정적인 입장을 분명히 했다. “대기업의 이익을 5000만 국민이 고루 누릴 수 있도록 우리 경제의 막힌 곳을 뚫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선 동감합니다. 그러나 그 방식은 합리적인 방식을 통해 이뤄져야 합니다.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는 적절치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강력한 개혁의지...민주적인 방법으로 접근해야 ” 박 전 총재는 박근혜정부 1년의 경제정책에 대해선 평가를 유보했다. 아직 정책효과를 진단하기는 이르다는 얘기다. 다만 경제성장의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있는 상태에서 특정 프레임에 갇혀 정책의 운신폭을 좁히는데 대해선 비판의 날을 세웠다. 증세없는 복지정책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박 전 총재는 한걸음 더 나아가 정부의 경제민주화 정책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규제측면에서만 접근하는 게 아니냐며 우회적으로 질타했다. “정부는 (야당처럼) 경제민주화를 대기업의 독식과 공정경쟁을 위한 규제 측면에서만 접근하고 있는 듯 합니다. 하지만 정부는 기본적으로는 대기업이 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다만 이득을 독식하지 못하도록 법인세 부과나 각종 사회 기여 등의 정책수단을 통해 부를 환원토록 유도해야지요.” 그간의 부동산 대책에 대해선 수십년 동안 되풀이됐던 미봉책이라고 꼬집었다. “국민 대다수가 부동산 가격상승을 통해 재산을 형성해 왔습니다. 이는 현 세대가 장차 집을 사야 할 후손들의 소득을 앞당겨 쓴 것이라는 뜻이 됩니다. 결국 집값이 너무 올라 지금은 젊은 세대들이 집을 살 수 없는 형편에 직면했고 그 결과 극심한 침체가 온 것입니다.” 그는 결국 부동산 침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비정상적인 시장을 정상화하기 위해 거래의 물꼬를 터야 하는 선에 머물러야 할 뿐 강도높은 부양책은 부작용을 유발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집값은 그대로 유지하는 대신 후손들이 소득을 계속 불려 집을 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당장 건설업이 어렵고 경제성장이 안된다고 해서 부동산 경기를 부양한다는 것은 금연중인 사람에게 다시 담배를 권하는 꼴이지요.”박 전 총재는 최근 철도노조 파업으로 촉발된 공기업 개혁 등 현 정부의 정책과제에 대해선 끊임없는 개혁의지를 주문했다. “양극화 문제, 노사문제, 가계부채 문제, 정부부채 문제, 공기업 개혁 문제 등 정부의 과제가 막중합니다. 중요한 것은 단기간에 일희일비 하지 않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겁니다. 강력한 개혁의지를 토대로 확고한 원칙에 따라 민주적인 방법으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합니다.”대담 = 송길호 정경부장, 정리 = 방성훈 기자, 사진 = 김정욱 기자
2014.01.01 I 방성훈 기자
  • [데스크칼럼]공기업 개혁 '데자뷔'
  • [이데일리 송길호 정경부장] 개혁은 뼈를 깎는 아픔이다. 전쟁과도 같다. 구체제의 질서로부터 혜택을 받고 있는 집단과의 전면전이다. 그래서 거센 저항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력한 의지와 힘을 필요로 한다. 원대한 비전이 제시돼야 하고 이를 구체화할수 있는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박근혜정부의 공기업 개혁방안이 선을 보였다. 출범 10개월만이다. 칼끝은 방만경영과 과다부채를 향한다. 수십년간 쌓인 적폐, 뒤틀린 비정상의 경영상태를 정상으로 되돌려놓겠다는 정책처방이다. 백미는 공기업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는 공언. 평가를 통해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하는 기관장들은 단호히 해임하겠다는 선전포고와도 같다. 오래된 레코드판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처럼 들린다. 외환위기의 파고가 여전히 휘몰아치던 2000년말, 김대중정부는 급했다. 기업· 금융· 공공· 노동 4대 부문에 걸쳐 전방위 개혁작업을 진행하던 시절, 이중 유독 ‘철밥통’ 공공부문의 진도가 지지부진했다. 급기야 획기적인 정책방안을 제시했다. 경영실적이 부진한 공기업 사장과 임원의 퇴출이다. 그 다음해 3월 실제로 공기업 사장 6명을 전격 해임했다. 파격이었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2013년. 해당 공기업들은 과연 어떻게 면모를 일신했을까. 불행히도 그 뿐이었다. 대한석탄공사·한국수자원공사·대한주택공사(LH공사)는 지금도 부채가 많은 12개 공공기관 리스트에 올라 있다. 증권예탁원(한국예탁결제원)·한국가스기술공업(한국가스기술공사)은 20개 방만경영 중점관리 대상중 일부다. 모두 일회성으로 끝난 전시성 이벤트였던 셈이다.공기업 개혁은 역대 정권의 고정 레퍼터리다. 김대중정부의 민영화, 노무현정부의 경영투명성, 이명박정부의 구조조정을 통한 선진화. 구호는 각각이지만 방만· 부실· 무사안일· 도덕적해이로 점철된 공공부문에 메스를 들이대겠다는 의지는 큰 차이 없다. 정권초반 잠시 바람이 거세게 부는 듯 하지만 점차 조직적인 저항에 직면, 동력을 상실하며 용두사미로 전락하는 패턴도 별반 다를 바 없다.근본적인 이유는 명백하다. 정치권력의 근시안적인 접근때문이다. 정권 초반 제시된 로드맵은 정권이 바뀌면 단절된다. 5년마다 정책기조가 뒤집히니 장기적이고 일관된 정책이 나올리 없다. 이 같은 흐름에 관료들은 교묘히 편승한다. 정권의 구미에 맞게 재고상품을 VIP 보고용, 대외발표용으로 포장해 신상품처럼 내놓는다. 5년마다 바뀌는 권력 핵심층은 재탕 삼탕의 정책을 솎아낼 능력이 없으니 문제 없다. 정책 집행에 대한 뒷처리는 후임자의 몫일 테니 무슨 걱정인가. 현오석 부총리는 개혁을 이끄는 플레이어가 아닌 심판자처럼 보인다. 그의 발언은 당위와 질책으로 가득차 있다. 그의 입에선 주로 ‘해야 한다’와 ‘책임을 묻겠다’는 표현이 나온다. 개혁의 원대한 비전도, 개혁의 푯대를 향해 구성원들이 힘차게 달려나갈 수 있는 내재적인 인센티브도, 가치박탈에 직면한 노조를 설득할 유인책도, 그들의 예견된 저항을 극복할 대응책도 모두 보이지 않는다. 디테일한 전략 없이 모든 짐을 기관장에게 떠넘긴채 한발짝 물러나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포청천의 자세다. 공기업 개혁의 본질은 자명하다. 각각의 미션에 따라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경영의 자율화, 탈정치화를 위한 기반을 구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허리띠 바짝 졸라매기, 빚 털어내기는 이 같은 그림에 따라 진행되는 부수적인 경영개선작업의 일환일 뿐이다. 비정상의 정상화, 구호는 요란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정책처방은 여전히 비정상적이다. 정권마다 반복돼온 구태의연한 정책을 창의적인 아이디어처럼 들고 나오는 모습, 창조경제를 표방하는 박근혜정부에서도 똑같이 되풀이 된다. 진부하고 도식적인 공기업 정상화 방안, 이번 정권에서도 공기업 개혁에 대한 기대감은 접어야 할지 모른다.
2013.12.26 I 송길호 기자
  • [데스크칼럼]닫힌 리더십, 열린 파트너십
  • [이데일리 송길호 정경부장] 국정운영은 일련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이다. 대통령의 핵심메시지는 일방향으로 흐르지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최선의 정책대안은 정교한 파트너십을 통해 도출되기 때문이다. 치열한 토론과 논쟁을 기반으로 다듬어진 정책은 힘찬 날개를 달고 이해관계자들의 저항의 파고를 넘는다. 공유와 공감을 통한 합일(合一)의 과정, 바로 국정을 이끄는 동력이다. 대통령이 총애하던 실세 장관의 항명파동은 권부(權府)의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다시 도마위에 올린다. ‘기초연금 20만원, 모든 노인 대상, 국민연금 연계를 통한 재원마련…’ 대통령이 의제를 설정하고 청와대 참모진이 구체적인 지침을 내리면 해당 장관은 복창하며 실행할 것을 명(命) 받는다. 대통령을 정점으로 비서실과 내각, 삼각편대의 커뮤니케이션 흐름은 동맥경화에 걸린 모습이다. 이면에는 대통령의 ‘나홀로 리더십’, ‘만기친람(萬機親覽)’식 국정운영 스타일이 자리잡고 있다. 주요 핵심 정책을 꼼꼼히 챙기는 국정운영 방식은 해당 장관의 운신의 폭, 재량의 폭을 크게 좁힌다. 청와대 비서실을 앞세운 상명하복의 통치스타일은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관료들의 보신주의· 복지부동과 결합, 정책과 현실의 괴리를 점점 심화시킨다. 리더가 제시하는 푯대는 하나지만 그에 이르는 길은 여러 갈래다.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을 찾기 위한 최선의 대안은 열린마당에서 진행되는 대화와 협력, 토론과 논쟁을 통해 만들어진다. 대통령· 비서실· 내각이 공감하고 공유하는 팀 플레이의 산물이다. 대통령 클린턴은 커뮤니케이션의 달인이었다. 자신의 견해와 다른 참모들의 의견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아칸소주 리틀록에서 열린 대통령직 인수회의에서 그는 참모들의 정직성을 당부한다. “여러분 모두 진정으로 생각하는 것을 말하지 않으면 나는 죽습니다.” 재임 시절 그는 열린 커뮤니케이션의 장을 마련했다. 쟁점들을 문서로 보고받기 보다는 참모들의 활발한 논쟁을 유도하고 직접 적합한 대안을 선택하는 방식이다. 재무장관 루빈은 “생생한 토론의 과정을 통해 채택된 정책은 논리적으로 날카롭게 다듬어졌다”며 “의회나 언론으로부터 공격 받고 뒤집혀질 가능성이 훨씬 줄었다”고 회고했다.훌륭한 과정이 휼륭한 정책을 낳는다. 공정하고 투명하게 진행되는 일련의 정책결정과정은 참여자들이 상이한 의견을 용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차이점을 인식하고 교감하고 대화하는 과정에서 설득의 단초는 마련되고 정책은 탄력을 받는다.대통령이 특정 쟁점에 대해 단정적으로 선을 그어 버리면 더 나은 선택지를 모색할 유인은 약화된다. 정책의 수정이나 보완은 극히 어려워지고 눈치 빠른 관료들은 설령 방향이 틀렸다고 자각해도 일단 윗선의 입맛에 맞는 정책대안을 올리게 마련이다. 지금 당장은 문제 없는 듯 보이지만 언젠가는 부메랑이 되어 책임과 비판의 화살은 대통령 자신에게 돌아온다. 박근혜정부 출범 8개월. 불통의 파노라마는 이미 예고된 비극이다. 나홀로 질주하는 원맨쇼 대통령, 내각 위에 군림하는 완장 찬 참모, 정책결정과정에서 소외된 투명장관, 그 뒤에서 바짝 엎드린채 눈치만 살피는 영혼 없는 관료집단. 권위의 외피로 둘러싸인 불통의 메카니즘은 국정운영의 동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원활한 소통 시스템을 구축하는 건 결국 리더의 몫이다. 현실감 있고 적절한 의사결정을 위해 참모들로부터 더 나은 대안을 이끌어낼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직접 일정 프레임을 제시하며 관료집단을 이끌게 아니라 열린 대화의 장에서 도출된 최적의 선택지를 바탕으로 내각이 자발적으로 국정을 실행하도록 유도할 일이다. 창조경제· 창조행정의 근간이 되는 창조적 리더십은 독주가 아닌 팀 플레이, 파트너십을 통해 이뤄지는 법이다 .
2013.10.07 I 송길호 기자
  • [데스크칼럼]박근혜정부 성장불감증
  • [이데일리 송길호 정경부장] 경제정책은 복잡하고 미묘한 퍼즐게임과 같다. 큰 그림을 그리고 미세한 조각들을 단계적으로 맞춰 나가는 전략적인 접근이다. 거시정책과 미시정책의 연결고리가 원활히 유기적으로 작동해야 정책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고차방정식이기도 하다. 경제정책의 운용과 비전에 대한 청사진 없이 파편화된 정책들이 남발되면 정책의 일관성은 떨어지고 불확실성은 심화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드라이브’가 화려하게 펼쳐지고 있다. 민생, 일자리, 경제활성화의 메시지가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10대그룹 총수와 중견기업 회장들과의 회동은 하이라이트다. 붉은색 투자활성화복을 입고 ‘기(氣)살리기’를 통해 투자를 독려하는 모습, 재계는 투자목표를 끌어올리며 화답한다. 6월 경제민주화 입법 이후 여름을 지나면서 경제활성화로 확실히 방향을 틀고 있다.경제살리기 행보는 역설적으로 한국경제가 좀처럼 활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가계는 빚의 덫에 걸려 지갑을 풀지 않고 기업은 규제의 덫에 발목 잡혀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공교롭게도 경제를 움직이는 3주체 중 정부만이 돈 풀고 산발적인 대책 내놓으며 고군분투하는 형국이다. 특이한 현상은 대통령도 부총리도 관료들도 공식석상에서 더 이상 ‘성장’의 메시지를 강조하지 않고 있는 점이다. 경기회복을 위한 정책적 노력을 경제활성화, 경제살리기라는 표현으로 대체할 뿐 성장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경제정책의 유일한 계량적 목표도 ‘고용률 70%달성’일 뿐이다. 일종의 성장 불감증(不感症), 성장 트라우마(trauma·정신적 외상)다. 역대 정부의 경제정책 목표는 성장률로 집약됐다. 2000년대 저성장기조에 접어들면선 통상 5% 성장, 이른바 잠재성장률 수준이 가이드라인이었다.경제가 기초체력에 걸맞게 ‘파이’를 키워야 지속적으로 일자리가 창출되고 살림살이도 나아질 것이라는 일종의 정책적 지향점이다.이젠 성장 운운하면 시대착오적인 발상으로 치부되는 분위기다. 경제의 고용창출 능력이 약화되고 성장의 과실이 일부 계층에만 돌아가면서 ‘성장은 곧 국민행복’이라는 등식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기 때문일 터이다. 집권당시 7%대의 무리한 성장공약을 내걸며 국민 신뢰를 떨어뜨린 이전 정부들과의 차별화를 위해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하지 않는 편이 유리할 것이라는 정무적 판단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산술적인 성장률에만 매달리는 건 분명 근시안적인 태도다. 하지만 원대한 성장전략, 성장 패러다임의 제시 없이 산발적인 대책에만 몰두하는 건 더 큰 부작용을 낳는다. 전반적인 정책효과는 약화되고 경제의 저성장기조는 더욱 고착화될 수 있다. 대통령의 정책 의도와는 달리 이미 현장에선 엇갈린 정책신호들이 혼선을 야기하고 있다. “찔끔찔끔 아닌 확 풀어야 한다” 며 대통령은 대규모 규제완화를 공언하지만 각 부처는 상법개정안, 화평법(화학물질 등록·평가에 관한 법률) 제정안 등 과잉 규제입법을 양산한다. 한쪽에선 “기업옥죄기는 없다”며 재계다독이기에 나서는데 정작 기업들은 각종 세무조사, 불공정거래조사에 울상이다. 각각의 정책은 단면적으로는 합리적이지만 큰 틀에서 보면 오류와 충돌의 연속인 셈이다. 기계적인 공약 이행보고서가 아닌 국가경제의 비상(飛上) 을 이끌어낼 비전과 운용전략이 필요하다. 그랜드플랜(Grand Plan)을 마련하고 제약조건에 따라 정책의 우선순위를 조정하며 구체적인 실행 로드맵을 제시할 일이다. 단선적 시각을 넘어선 통합적 접근, 총론과 각론의 유기적 연계, 거시정책과 미시정책의 조합이다.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이끌어내야 할 근혜노믹스. 경제정책의 컨트롤 타워는 이미 오작동인데 경제운용의 이정표마저 보이지 않는다.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부총리도, 정책 생산자인 관료도, 정책고객인 기업도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며 일희일비하고 있다. 경제부흥의 찬가는 울려퍼지는데 조타수도 나침반도 없는 한국경제호(號)는 대내외 불확실성의 파고 속에 과연 어디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인가.
2013.09.04 I 송길호 기자
李농림 "국민 동의 있다면 한·중FTA도 두렵지 않다"
  • [인터뷰]李농림 "국민 동의 있다면 한·중FTA도 두렵지 않다"
  • [대담 = 송길호 이데일리 정경부장, 정리 = 안혜신 기자]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건물 앞에는 150평을 훌쩍 넘는 ‘녹색정원’이 있다. 도심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는 이 잔디밭엔 전체적인 조경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보리가 가득 심어져 있다. 도시에서 보기 힘든 ‘보리밭’을 그것도 도심 한복판 연구원 앞마당에 조성한 인물은 누구일까. 바로 ‘도시의 농사꾼’으로 불리는 이동필(58)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다.◇‘6차산업’ 개념 국내 첫 도입..“농산물로 고부가 가치 낸다”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잠사회관에서 만난 그는 만면 웃음을 띠며 스스로 일군 보리밭에 대해 설명했다. “텃밭가꾸기가 취미인데 연구원 원장을 하면서 마당을 갈아 보리를 심었어요. 연구원들이 지나다니면서 예전 어려운 시절 우리 국민들이 겪었던 보릿고개를 떠올리며 늘 농업과 먹거리를 생각하며 연구에 매진했으면 좋겠다는 뜻이었죠.”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사진: 권욱 기자 ukkwon@)이 장관은 농촌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자신도 농촌 출신이다.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을 보낸 그는 어릴적부터 부지런한 농촌이 상대적으로 도시에 비해 잘 살지 못하는 이유가 항상 궁금했다고 한다. “농촌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부지런합니다. 그런데도 여유있게 살기가 쉽지 않죠. 그 이유라도 알아보겠다는 각오로 서울로 왔습니다”정신없이 연구에 매진하던 그가 농촌을 살리기위해 고안해 낸 방법은 바로 ‘6차산업’. 6차산업이란 1차산업인 농업, 2차산업인 제조업, 3차산업인 서비스업의 복합이다. 이 장관은 농업이나 어업의 6차산업화 개념을 지난 1996년 국내에 처음 소개한 장본인이기도 하다.“농업의 본질적인 가치, 부가소득을 높여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농업 자체의 경쟁력을 높이는게 필수적이었죠. 과거엔 농업생산이 모든 것이었지만 우리나라는 농지 규모도 작고 노동력도 부족합니다. 그래서 생산물이 적더라도 이를 정보기술(IT)이나 바이오기술(BT) 등 첨단 기술과의 융복합을 통해 가치를 높이고, 관광과 연결하는 사업 등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6차산업이란 결국 박근혜정부의 아이콘인 창조경제를 1차산업인 농업이나 어업분야에 접목시킨 개념이다. 작은 농산물 작은 해산물로도 고부가 가치를 이끌어내는 산업인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넘치고 있는 쌀을 술로 빚어서 가공하고 이 술을 중심으로 지역 축제를 만들면 어떻겠습니다. 그러면 관광객을 끌어들이면서 쌀 자체를 판매할 때보다 농촌의 경쟁력이 훨씬 높아지지 않을까요.”이 장관은 6차산업의 모델로 스위스 그뤼에르를 꼽았다. “그뤼에르는 자그마한 농촌마을이죠. 그런데 거기서 치즈를 6차 산업화 시켰습니다. 그뤼에르 치즈를 보러가는 것이 관광 프로그램화 돼있는 거죠. 농업이 관광과 융합한 셈인데 우리나라에도 이런 모델이 필요하다고 봅니다.”◇“국민 공감 있다면..FTA도 두렵지 않아”우리나라 농촌의 6차산업화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이제 막 개념이 도입되고 전체적인 방향이 그려지고 있는 수준이다. 때문에 아직 6차산업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고, 지나치게 외형적인 모습에만 치중하는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이 장관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평생 품고 있던 생각을 바꾼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6차산업화의 성공적인 추진을 위해서는 기본방향인 ‘지자체와 주민이 중심이 되는 자율적·상향식 추진’이 중요합니다. 이를 기본으로 지역별로 특색을 살린 6차산업화 모델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소통의 중요성도 이 장관의 강조점중 하나다. 농업도 결국 국민 생활과 직결된 산업인만큼 국민의 목소리를 잘 헤아려야 농업의 발전도, 6차산업의 기반도 마련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이 장관은 지난 4월 ‘국민공감농정위원회’를 구성했다. 160여 명의 민·관·학계 위원으로 구성된 이 위원회에 유통구조 개선, 기업의 농업참여 가이드라인 등 굵직한 정책들이 정리됐다. 이 위원회를 통해 이 장관은 농업에 대한 국민의 긍정적인 인식을 이끌어내는 것은 물론, 나아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등의 파고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어떤 정책이든 국민을 설득하지 못하면 동의를 받기 어렵죠. 반대로 국민의 동의를 받으면 어떤 일이든 쉬워진다는 말과 같습니다. FTA가 체결돼 값싼 수입 농산물이 아무리 많이 들어와도 국민들이 ‘우리 농산물이 좋고, 이걸 사먹어야 우리 농촌이 유지된다’는 생각에 동의만 해준다면 피해가 줄어들 수 있다고 봅니다”농업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의미다. 농림부는 이와 관련, 내년부터 구체적인 사업에 착수할 수 있도록 관련 부처와 협의를 진행 중이다.“자그마한 텃밭가꾸기를 통해서도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이 어디서 어떻게 생산되는지 소중함이나 고마움 등을 느낄 수 있습니다. 도시농업은 이를 좀 더 전문적으로 끌어내는 방법이지요. 기술이나 농자재 등 큰 돈을 안들이고 일상에서 쉽게 농업을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시멘트 공간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숨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는 셈 아닐까요” 더 살기 좋은 농촌, 더 잘사는 농촌에 대한 이 장관의 노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농촌에 대한 ‘무한 애정’ 역시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농촌과 농업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대부분은 여전히 영세 고령자들이죠. 그럼에도 농업과 농촌은 분명히 소중한 존재입니다. 농업으로 떼돈을 버는건 아니더라도 생명의 소중함 등을 공감해서 이땅에 농업이 남고, 농촌을 지키는 근거가 될 수 있지요. 이 과정에서 좀 더 희망의 전기를 마련하는 장관으로 남고 싶습니다.” ◇이동필 장관은1955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났다. 영남대 축산경영학과와 서울대 대학원 농업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1991년 미주리대에서 농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0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입사해 30년을 농업분야 연구에 쏟아부었다. 농촌경제연구원 정보관리실장, 지식정보센터장, 기획관리실장 등을 거쳐 2011년 원장 자리에 올랐다. 1998년부터 2년간 총리실 규제개혁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으며, 2006~2012년 농림수산식품부 규제심사위원장을 역임했다.
2013.08.20 I 안혜신 기자
  • [데스크칼럼] 관료제와 집단부패
  • [이데일리 송길호 정경부장] 공직사회의 집단 부패는 도덕적 해이의 전형이다. 근저에는 관료제의 경직성과 폐쇄성이 자리잡고 있다. 파워풀한 권력집단은 끈끈한 동류의식으로 비리의 사슬을 공고히 한다. 무의식적 관행이라는 미명아래 자행되는 도덕적 일탈은 임계점에 이르면 결국 집단적 재앙으로 폭발한다.공직사회가 집단 부패로 몸살이다. 원전·교육·금융·세무 등 내부의 결속력과 응집력이 공고한 집단에서 그동안 장막속에 가려 있던 비리의 고리가 하나씩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모피아·원전마피아 등 특정집단의 전횡에 이어 급기야 택스피아(Taxfia)의 전·현직 리더들이 등장하는 권력형 비리의 막장 드라마는 공직사회 일탈의 정점을 찍고 있는 모습이다. 대한민국 관료사회는 지위 고하 따로 없는 조직 비리, 집단 부패의 경연장이다. 관료제는 합리성을 내포한다. 대규모 집단의 이상적 조직형태다. 그러나 양날의 칼과도 같다. 합목적적으로 활용되면 자원을 효율적으로 동원 배분할 수 있는 효율적인 제도적 장치다. 공적 목표를 상실하면 사적이익을 증식하는 합법적인 도구로 전락한다. 계층화와 분업화, 바로 관료제의 속성 때문이다. 계층화는 권위에 대한 맹종· 상명하복의 문화를 확산, 집단비리를 조직적으로 은폐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관료들의 역할을 기계적으로 획정하는 분업화는 개인의 도덕적 자각을 희석하며 집단 무책임· 집단 무의식을 조장할 수 있다. “자신의 비리를 이성적으로 통제하는 대신 그 역할을 상급자에게 떠넘김으로써 각자 책임을 회피하는 꼴. ” 행정학자 랠프 헴멜은 관료제의 부패불감증을 이렇게 묘사했다.이권을 다루는 공직자들은 교도소 담장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는 신세다. 달콤한 유혹을 던지는 이해관계자들이 도처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재수 좋으면 담장 밖, 운 나쁘면 담장 앞마당으로 미끄러진다. 유혹에 무너지는 건 자신의 책임이지만 기저에는 자기합리화의 모순이 작동한다. 우리의 정신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좀 더 관대한 평가를 내리는 경향이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진화생물학자 로버트 트리버스는 이를 부도덕한 행위를 정당화하는 자기기만·자기최면으로 규정한다. 자신을 속임으로써 비리를 저지를때 느끼는 부담을 덜 수 있고 비리가 들통나도 비난에 대응하는 방어수단을 제공한다는 설명이다.도덕적 비리가 불거질때마다 모피아도 택스피아도 예외없이 자정(自淨) 대책을 발표한다. 하지만 이 같은 ‘반성문’으로 공직사회의 청렴도가 크게 올라갔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국제투명성기구(TI)의 국가별 부패인식지수에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 중 하위권, 르완다 같은 아프리카 후진국과 유사한 수준이다. 지표의 신뢰성에 의문은 들지만 그래도 관료사회의 부패수준에 대한 국민 체감수준을 일정부분 반영하는 점은 분명하다.실용을 지향한 이명박정부는 반부패정책에 전력을 쏟지 않았다. ‘일만 잘하면 된다’며 도덕성을 결여한 공직자들을 대거 국정에 끌어들여 국민 불신을 키웠다는 지적을 받는다. 박근혜정부도 아직까진 별반 다른 것 같지 않다. 한국형 부패방지법이 부처내 조정과정에서 전격 후퇴한 걸 보면 반부패 정책을 물정 모르는 근본주의자들의 레토릭으로만 치부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른다.관료제의 폐해와 도덕적 해이가 결합된 집단부패. 이를 극복하기 위해 범정부 차원의 반부패정책이 제시될 일이다. 이를 통해 리더의 자기절제를 유도하고 공직사회에 긴장감을 불어넣을 필요가 있다. 막스베버의 통찰대로 관료조직은 스스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극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도덕성이 뒷받침되지 않은 권력은 필연적으로 부패를 잉태한다. 국정운영은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이뤄지고 그 신뢰는 바로 공직자의 올바른 처신으로부터 나온다. 청백리(淸白吏)를 원하는 건 아니지만 국민은 더 이상 단물에 취한 공직자는 보고 싶지 않다.
2013.08.08 I 송길호 기자
  • [데스크칼럼] 경제민주화 입법버블
  • [이데일리 송길호 정경부장] 모든 규제는 공익의 탈을 쓰고 있다. 정의를 표방하는 국가기관은 정책목표 달성을 명분으로 강제적 규율을 동원한다. 그러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명약도 부작용을 내포하듯 이상적인 규제도 반드시 희생과 비용을 초래한다.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획일적이고 경직적인 규칙은 의도하지 않은 다른 가치를 일정부분 훼손하기 때문이다. 바로 규제의 환상, 규제의 역설이다. 경제민주화의 파고가 점차 거세지고 있다. 일명 일감몰아주기 규제법·금산분리 강화법·프랜차이즈법 등 이른바 경제민주화 3법은 강력한 규제의 날개를 달고 6월 국회를 가볍게 통과했다. 남양유업 방지법·신규순환출자 금지법 등 일련의 법안들도 규제의 칼날을 다듬으며 9월 정기국회를 기다린다. 지난해 대선과정에서 경쟁적으로 경제민주화를 구호로 내걸었던 정치권은 이제 그 실현 방안을 둘러싼 격론으로 치열하게 대립한다. 경제민주화는 시대정신이다. 고도압축성장시대의 그림자인 경제생태계의 불공정을 바로 잡기 위한 공정의 레토릭이다. 시장의 실패를 ‘보이는 손’으로 재단하려는 정치권력의 의지, 그리고 특권적인 경제권력의 전횡과 반칙에 분노한 일반 국민의 정서적 공감대가 절묘하게 합치된 공존· 공생· 상생의 철학이기도 하다.그러나 현실화의 과정은 혼돈의 연속이다. 경쟁적 여론몰이, 무분별한 실적주의, 인기 영합주의의 확산으로 법리적 이성을 상실한 입법만능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19대 국회 1년간 발의된 의원입법만 10일 현재 5292건, 의원 1인당 18건이다. 3년후 19대 국회가 마무리될 즈음엔 전체 의원발의 법안만 4만건에 이른다는 전망이 무리는 아니다. 16대 1912건, 17대 6387건, 18대 1만2220건 등 이전 국회와 비교하면 입법홍수가 따로 없다. 이들 의원입법의 절대비중은 경제민주화를 모토로 내건 우후죽순 규제법안이다. 모든 규제는 선의로 포장된다. 하지만 규제의 획일성· 경직성은 필연적으로부작용을 잉태한다. 더욱 불행한 건 역진성이다. 한번 만들어진 규제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실패한 규제를 치유하기 위해 또 다른 규제가 나타난다. 규제가 도입되면 그에 따른 이해관계가 형성되고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파워계층은 해당 규제를 더욱 공고히 하게 마련이다. 친기업, 친시장을 표방하며 ‘전봇대 규제’의 철폐를 공언하던 이명박정부 시절 규제의 총량이 가장 크게 늘어난 건 우연이 아니다. 출범 직전 규제건수 5116건, 5년만에 1만3914건으로 1만건 가까이 급증했다. ‘손톱 밑 가시를 뽑겠다’고 장담한 박근혜정부에서도 이 같은 모순은 이어질 조짐이다. 국회의 과잉 규제입법이 넘쳐나면서 출범 3개월만인 지난 5월말 기준으로 882건, 그동안 일몰 등으로 없어진 규제를 감안하면 1338개의 규제가 신설됐다(규제개혁위원회 분석). 경제민주화의 바람을 타고 규제는 물밑에서 독버섯처럼 무럭무럭 증식하고 있는 꼴이다. 규제에 따른 비용 편익 분석 없이 자의적으로 이뤄지는 무책임한 경제민주화 입법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자정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국회 차원에서 규제에 따른 이익과 비용을 분석할 수 있는 전담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일이다. 미국의 의회감시원, 영국의 규제개혁전담위원회, 독일의 국가규범통제위원회 같은 공신력 있는 규제심사기관을 의회에 신설하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공명심으로 무장한 정치권이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규제의 칼끝은 어디로 향할까. 모두들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고 착각들 하지만 그들의 제한된 시야에서 만들어진 인위적이고 거친 규제의 칼날은 의도하지 않는 공익의 훼손을 초래하는 건 아닐까. 기대효과보다 역효과가 큰 규제, 기회주의적 탈법을 조장하는 규제, 특정가치에 매몰돼 다른 폭넓은 가치를 잃어버린 규제,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일면만 바로보는 바로 그 근시안적인 규제. 경제민주화 실현과정에서 드러난 ‘입법버블‘의 혼란과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 몫으로 돌아오는 건 아닌지 모른다.
2013.07.11 I 송길호 기자
  • [데스크칼럼]관료 행복시대
  • [이데일리 송길호 정경부장] 관료제의 본질은 끊임없는 자기증식이다. 특권적 동종의식, 집단이기주의가 공직사회의 구조적 폐쇄성, 경직성과 결합되면서 관료들은 그들만의 생태계를 구축한다. 조직은 레드테이프(형식주의)가 횡행하고 권한은 독점, 공직은 전리품처럼 사유화되며 민주정치는 관료정치로 변질된다. 바야흐로 관료 행복시대다. 금융권과 공기업 산하기관의 최고경영자(CEO), 각종 협회의 임원· 감사 등 정부 입김이 미치는 주요 포스트는 관료일색이다. 재무부 출신 모피아의 금융권 접수만 눈에 띄는 게 아니다. 산(産)피아(산업통상자원부), 국(國)피아(국토교통부), 감(監)피아(감사원) 등 규제와 감독을 행사하는 부처의 유관기관 실속 있는 감투는 관료들의 노후보장용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관료전성시대의 도래는 정부 조각과정에서 이미 예고됐다. 내각과 청와대 1급이상 정무직 4명중 3명이 관료출신이다. 이들을 구심점으로 각 부처의 관료 선후배들은 은밀히 밀고 당기며 그들의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관치금융, 전관예우, 바람막이, 방만경영…. 관료출신 CEO에게 따라붙는 불편한 꼬리표들이 국민행복시대를 표방한 박근혜정부에서 더 심하게 부각되고 있는 건 아이러니다.박 대통령의 관료선호는 체험의 정치학이다.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고시출신 엘리트관료를 앞세워 고도성장을 이끌던 개발연대의 기억이 의식 저 깊은 곳에 잔영으로 남아 있는 듯 하다. 여기에 관료출신정치인이 공기업과 금융기관의 주요 인사를 주무르는 인사위원장을 맡고 있으니 관료들은 그야말로 날개 단 형국이다. 권력의 최상층부에서 내려다보면 관료는 정권의 든든한 후원군이다. 영혼은 없다지만 조직과 예산, 해당 분야의 법규와 규제에 정통하니 그 분야의 전문가라고 불릴만 하다. ‘참여 OO보고서’, ‘녹색 OO보고서’, ‘창조OO보고서’ 등 유사한 콘텐츠를 정권의 구미에 따라 색다르게 포장하는 그 눈치와 처세, 순발력은 거의 달인 수준이다. 반면 민초들의 눈으로 보면 관료는 갑(甲)중의 갑이다. 권부(權府)에 대해선 ‘예스 맨(yes man)’ , 민(民)에 대한 이미지는 ‘노 맨(no man)’ 에 가깝다. 정권에 대한 충성을 대가로 국민 위에 군림하는 완장찬모습. 바로 핵심 메카니즘은 규제다.현직(現職)은 규제의 칼날을 세우고 전직(前職)은 그 칼날을 무디게 한다. 규제와 재량이 확대될 수록 관치는 심화되고 전관의 자리는 그에 비례해 늘어난다. 규제의 관할권이 늘어나면 퇴직 후 따뜻한 노후보장을 기대할 수 있으니 ‘파킨슨의 법칙’은 이 곳에도 예외없이 적용된다. 전·현직 관료들의 팀플레이는 규제행정을 고리로 완벽한 관료생태계를 구축하는 꼴이다. 2008년 1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일본의 대장성 개혁 모델을 언급하며 관료주의 타파를 공언했다. 그러나 집권 5년 동안 철옹성 같은 집단 보호막, 공생 유착을 통한 관료집단의 기득권은 더욱 단단해졌다. 친(親)시장, 작은정부를 내세운 정권에서도 관료마피아의 파워는 건재했던 셈이다. 최고 권력이라도 노련한 관료들이 각종 논리로 구축한 집단이익의 아성을 무너뜨리는 건 역시 녹록지 않은 일이다.어느 집단이든 진입장벽이 높고 폐쇄적이면 썩은 물이 고인다. 고시라는 진입장벽에 이어 정실과 연고주의의 벽에 둘러싸인 관료조직은 탄력과 생동감을 잃을 수밖에 없다. 관료의 전문성도 필요하지만 무분별한 낙하산 인사와 터무니없는 전관예우, 원칙 없는 규제의 칼날을 휘두르는 관료들의 전횡을 적절히 통제할 수 있는 리더십이 더욱 절실하다.주인에게 봉사해야 할 공복(公僕)이 주인자리를 차고 앉아 나라를 온통 그들만의 리그로 만들고 있다. 국민행복시대에 공무원만 행복한 나라, 시스템이 아닌 관료에 의해 문제가 풀리는 나라, 충성을 받는 듯하지만 실상은 바로 그 관료들에게 휘둘리는 나라. 2013년 대한민국은 ‘관료의, 관료에 의한, 관료를 위한’ 관료공화국으로 전락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른다.
2013.06.18 I 송길호 기자
  • [데스크칼럼]'불통' 청와대, '예스맨' 참모
  • [이데일리 송길호 정경부장] 점점 복잡해지는 정치적 환경에서 위기관리는 정권의 명운으로 이어진다. 위기는 100% 예측할 수 없고 제거할 수도 없다. 위기 발생 확률을 최소화하고 설령 현실화되도 적절한 상황관리를 통해 파문을 빠르게 잠재우는 일, 한발 더 나아가 기회로 전환시키는 대반전이 위기관리의 핵심명제다. 윤창중 주연 청와대 참모진 조연의 19금(禁) 저질 막장 드라마가 끝 모르게 이어지고 있다. 알코올과 섹스에 탐닉한 권력, 권력 엘리트들간 치졸한 진실공방, 책임 떠넘기기를 통한 이전투구. 황색 저널리즘을 통해 투영되는 불편한 진실들이 파노라마처럼 무대위에 펼쳐진다. 드라마는 3부작으로 재구성된다. 벼락감투에 들떠 본분을 망각한 50대 공직자의 비행(卑行), 권부의 사건 무마·축소·은폐 의혹, 그리고 파장을 잠재우기 위한 권부의 미숙한 대응. 드라마의 막을 올린 윤 전 대변인은 이제 국민 정서법상 회복 불능의 단죄를 받았다. 대다수 여론의 반대를 뚫고 그를 발탁한 대통령도 지금 극도의 배신감을 느끼며 톡톡히 대가를 치르고 있다. 무대 위의 조명은 부실과 무능의 종합판, 대한민국 청와대로 이동한다.이번 돌발위기에 직면한 청와대의 대응성적은 ‘F학점’이다. 관제탑은 무너졌고 조직은 불협화음을 드러내며 우왕좌왕의 연속이었다. 지휘자 없는 부실한 팀워크, 선수들의 무사안일 무능무치 때문이다. 전략적·선제적 대응 없이 이리저리 떠밀리며 전체적인 상황을 통제·관리하는데 실패한 결과다.정치적 위기관리는 국민 설득의 과정이다. 성패는 사건 발생 첫 24시간에 달려 있다. 이성은 없고 감성과 자극이 지배하는 혼돈의 상태. 이를 정면돌파하기 위한 기본 전략은 3단계로 진행된다. 위기관리팀을 신속히 구성하는 일, 대응 목표를 명확히 설정하고 사실관계에 따라 정교하게 스토리를 구성하는 작업, 그리고 전 구성원이 통일된 메시지로 국민을 설득하는 일련의 프로세스다. 동맥경화에 걸려 있는 청와대에 이 같은 체계적인 대응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대통령 심기보좌를 위해 하루 넘게 진행된 늑장보고, 국민 앞에 서서 뜬금없이 대통령을 향해 고개를 떨구는 어설픈 모습, 홍보수석·비서실장·대통령으로 이어지는 찔끔찔끔 사과 퍼레이드. 이 모든 장면은 지금 청와대의 보이지 않는 장막, 경직된 분위기, 꽉 막힌 소통수준을 반영한다.각 부분을 합쳐 놓은 전체의 통합된 힘이 플러스가 아닌 마이너스로 나타났다면 이는 리더십의 문제다. 궁극적으로는 대통령의 몫이겠지만 청와대 참모진을 이끌고 있는 리더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지겠다”는 대 국민 사과는 책임질 일이 드러나지 않았으니 버티고 보겠다는 의미로 들린다.선거와 권력투쟁에 유능했던 참모가 반드시 국정운영에도 베스트는 아니다. 1993년 5월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집권 100여일만에 ‘불통논란’으로 지지도가 급락하자 백악관 재편을 통해 위기를 돌파했다. 대변인을 맡고 있던 최측근 조지 스테파노폴로스를 막후 참모로 돌리고, 닉슨·포드·레이건 등 역대 공화당 정부에서 공보를 담담했던 데이비드 거겐을 대통령 고문 겸 공보담당 책임자로 전격 발탁했다. 거겐의 활약으로 지지율 반등에 성공한 클린턴은 재선가도를 향해 힘차게 질주한다. 대통령의 부족한 점을 채우기 위해 참모들이 있다. 대통령과 참모들간 유기적인 팀 리더십, 공유의 리더십, 배분의 리더십이 통합적으로 구현돼야 청와대에 활력이 넘친다.기강해이, 역량부족으로 중심을 잃고 표류하는 지금 청와대는 과연 이 같은 파트너십을 이룰 수 있을까. 직언(直言)· 고언(苦言) 없이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는 참모진이 대통령의 ‘나홀로 리더십’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인가. 최고의 권력 엘리트 집단 청와대에선 지금, 무능 무소신 무치의 인사들이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며 주군(主君)을 더 깊은 구중궁궐(九重宮闕) 속으로 밀어넣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른다.
2013.05.21 I 송길호 기자
  • [데스크칼럼]박근혜의 '나홀로 리더십'
  • [이데일리 송길호 정경부장]“대통령은 절대 먼저 얘기하지 않고 참석자들의 발언을 들으며 필기만 한다.담당 수석비서관이 해당 정책의 개요를 간략히 설명하고 주무장관 부총리 총리 순으로 의견을 개진하면 대통령은 종합적으로 판단해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장관이 ‘아니오’를 외치면 논의는 다음날로 미뤄진다. 대통령은 밤새 고민하다 장관 말이 옳다고 생각하면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장관 의견을 따르라고 지시한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9년2개월간 최장수 비서실장을 지낸 김정렴씨는 청와대의 의사결정 과정을 이렇게 전한다. 절대권력 박정희 시대에도 권부(權府)의 정책결정 과정은 정교한 팀플레이로 이뤄진 듯 하다.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졌던 대통령도 논쟁적인 정책에 대해선 대화와 협력, 토론을 통해 결론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대통령·참모·각료의 삼각 파트너십, 이른바 공유의 리더십은 국정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기초작업이다. 데이비드 히넌 컬럼비아대 경영대 교수는 베스트셀러 ‘위대한 이인자들’에서 “성공한 지도자의 뒤에는 항상 한 무리의 협력자, 바로 팀(team)이 있었다”며 리더의 팀 플레이를 갈파했다.박근혜정부 출범 2개월이 다 된 지금, 정부의 국정운영이 대통령의 원맨쇼로 진행되고 있다. 대선후보시절부터 공언했던 책임총리제, 책임장관제는 이미 유명무실해진지 오래다. 대북 대화제의를 둘러싼 메시지 전달과정의 혼선을 보면 분명해진다. 북한의 대남공세에 강경대응으로 일관하던 대통령이 ‘대화’모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참모진은 물론 통일부장관, 국무총리 모두 제각각 다른 해석을 내놓으며 오락가락했다. 대통령의 교통정리로 일단락은 됐지만 대북정책의 변곡점이 될 수 있는 민감한 정책을 놓고 총리도 장관도 변방에서 변죽만 울린 꼴이다.인사정책에 이어 대북·복지·경제 등 주요 정책들도 이견과 논란의 파고속에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프레임이 형성되고 있다. 전문가나 이해관계자간 치열한 공론을 통해 합의를 이뤄내야 할 민감한 쟁점들은 대통령이 제시하는 틀에 갇혀 더 이상 진전된 논의를 이어가지 못한다. 대통령이 ‘증세불가’를 선언하자 경제관료들은 정답 없는 선택지를 쳐다보듯 난감해 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박근혜표 복지공약’을 실현하기 위한 재원마련 계획은 이제 정부의 허리띠 졸라매기나 세무당국의 세금짜내기 외에 다른 대안을 입밖에 내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이 같은 현상은 모든 것을 꼼꼼히 챙기는 대통령의 만기친람(萬機親覽)식 국정운영 스타일에 기인한다. 대통령의 ‘나홀로 리더십’이 국정운영의 기본방식으로 자리잡으면서 참모도 각료도 자발적인 움직임없이 바짝 엎드린채 대통령의 입만 바라본다. “대통령이 하시겠다는 일에 뭐라고 토를 달 수 있나, 비서는 귀는 있지만 입이 없지 않은가” 청와대 참모의 자조섞인 토로는 대통령의 화려한 개인 플레이 뒤에 감추어진 우울한 그림자다. 대통령의 ‘깨알리더십’으로 정작 책임지고 일을 해야 할 내각은 거꾸로 활력을 잃고 있다. 대통령은 푯대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 듯 하지만 관료들은 대통령의 뒤만 바라보며 헐레벌떡 쫓아가는 형국이다. 대통령이 잠시 숨고르기를 하면 속도를 더욱 늦추고 갑자기 스피드를 내면 더욱 가속도를 낸다. 이들에게 책임총리제, 책임장관제를 기대하는 건 연목구어(緣木求魚)다. 국정운영을 원맨쇼 처럼 진행하면 의사결정은 독단으로 흐르고 정책은 왜곡될 가능성이 높다. 논란이 있는 사안에 대해 단정적으로 선을 그어 버리면 정책의 수정이나 보완은 난망해지고 다양한 정책을 선택할 운신의 폭은 좁아진다. 급기야 국정 수행 동력은 약화되고 정책 실패의 책임과 비난은 고스란히 대통령 자신에게 쏠릴 수 있다. 청와대 참모진과 장관들을 대통령의 잔심부름꾼으로 끌어내려선 안 될 일이다. 참모를 비서가 아닌 진정한 조력자로 활용하고 내각엔 힘을 불어넣어 코끼리 같은 관료조직을 움직일 줄 알아야 한다.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장관들에게 폭넓은 재량권을 부여해 국정목표를 달성했듯 권한은 위임할때 더 커지고 믿고 맡길때 더 큰 시너지를 일으키는 법이다. 일방적인 지시와 통제가 아닌 팀플레이를 통한 파트너십· 소통과 공유의 리더십, 바로 창조경제 실현을 위한 미래의 창조 리더십은 대통령 스스로 꽃 피워야 한다.
2013.04.23 I 송길호 기자
  • [데스크칼럼]박근혜표 신코드인사와 국민 대통합
  • [이데일리 송길호 정경부장] 19세기 미국정치를 지배하던 공직인선기준은 엽관주의(spoils system)였다. 선거전에서 승리한 정치세력이 모든 공직을 정권획득의 전리품(spoils)으로 보고 정실에 따라 일방적으로 배분한다는 인사원칙이다. 실적이나 전문성보다 이념적 ·정치적 성향이 공직인선의 우선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노무현정부의 ‘코드인사’, 이명박정부의 ‘고소영인사’와 맥을 같이 한다. 남북전쟁 점화 직전인 1861년 초,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기존의 관행을 뛰어넘어 파격적인 인선을 단행했다. 윌리엄 H. 슈어드(국무), 새먼 체이스(재무) 등 당내 경선 과정의 경쟁자들은 물론 에드윈 M. 스탠턴(국방) 등 민주당의 정적까지 내각에 끌어들였다. 최고의 라이벌이 최고의 실력자라는 그의 인사철학이 탕평내각(Team of Rivals)으로 이어진 셈이다. 링컨을 정치적 사표(師表)로 삼고 있는 44대 대통령 버락 오바마도 2009년 초, 초대 조각과정에서 링컨의 길을 따랐다. 힐러리 클린턴(국무), 로버트 게이츠(국방) 등 당내 경쟁자와 부시정부의 각료를 끌어안았고 유리장벽에 갇혀 공직진출에 제약을 받던 소수 유색인들을 대거 내각에 발탁했다. 흑인 3명· 히스패닉계 2명· 중국과 일본계 각 1명. 오바마의 초대내각은 인종과 성별, 이념과 정파를 초월한 통합의 도가니· 통합의 용광로였다.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한달만에 청와대와 내각구성을 사실상 마무리했다. 능력과 전문성 외에 국정 철학의 공유라는 공직인선 기준도 명확히 제시했다. 오랜 고민 끝에 나온 인사지만 면면을 보면 기대보다는 우려, 울림보다는 냉소, 감동보다는 실망이 가득하다. 전문성과 능력이 고려됐다지만 특정 정치세력, 특정 직업군, 특정 싱크탱크 출신의 대거 입성으로 인사의 편향과 불균형이 심화된 모습이다. 일부 인사의 잇따른 추문과 낙마, 도덕성과 자질에 대한 논란은끝내 국민들의 감정선을 건드린 것 같다. 코드인사, 고소영인사처럼 ‘박근혜표 신코드인사’라는 레테르가 붙은 건 결코 반갑지 않은 일이다. 정치적 신념을 공유하는 집단이 정권의 요직을 차지하고 국정을 주도하는 건 현실정치에선 자연스런 현상일지 모른다. 효율적인 국정운영을 위해 정부와 공공기관의 핵심요직은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공유하고 정서적으로 친밀한 인사들로 채우는 게 유리할 것이다. 그래서 정부와 공공기관의 일정 포스트는 전문성과 능력 뿐 아니라 정실과 엽관주의적 요소가 적당히 혼용될 수 밖에 없다는 게 행정학자들의 분석이기도하다.하지만 정실에 의한 코드인사가 ‘지배적인’ 원칙으로 굳어지면 부정과 부패의 독버섯은 소리소문 없이 싹튼다. 그 결과 행정능률은 떨어지며 행정낭비는 심화된다. 지연· 학연· 성별 등 귀속적인 이유로 공직 취임에 차별을 받지 않는다는 평등권, 기회균등의 원칙도 무너질 수 있다. 더욱 큰 문제점은 정치적으로 선거전에 패한 상대 정파와 반대세력의 소외와 갈등을 부추겨 사회의 균열과 국민분열을 조장한다는 점이다. 남북전쟁으로 연방이 두 동강 날 위험에 처했던 링컨, 금융위기로 경제시스템의 붕괴를 목도해야 했던 오바마는 포용의 용인술, 통합의 마술로 정치적·경제적 난국을 돌파했다. 지역·세대·이념·계층의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된 2013년, 박 대통령이 직면한 대한민국의 현실도 본질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헌정 사상 가장 많은 표를 얻었지만 동시에 가장 많은 반대그룹을 끌어안고 가야 할 박 대통령으로선 인사탕평을 통한 포용의 리더십,대통합의 정치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정치적 색채는 다소 달라도 전문성과 능력을 갖춘 적재적소의 인재를 통해 국정철학을 투영해야 실질적인 통합을 이룰 수 있다. “모든 공직에 대탕평 인사를 … 박근혜 정부는 100% 대한민국 정권….” 인사탕평을 통해 분열된 나라를 하나로 만들겠다던 대선 직후 박 대통령의 3개월전 약속은 그러나 이젠 코드의 두터운 장벽에 막혀 반향 없는 메아리처럼 공허한 울림으로만 남아 있다.
2013.03.26 I 송길호 기자
  • [데스크칼럼] 박근혜의 '약체 내각' 활용법
  • [이데일리 송길호 정경부장] 2000년 봄 김대중 정부 경제팀은 불협화음의 연속이었다. 이헌재 재정경제부 장관과 이기호 경제수석간 보이지 않은 알력이 심했다. 이 장관은 결국 7개월만에 단명했다. 천하의 이헌재도 대통령의 신임을 등에 업은 이기호 앞에선 어쩔 수 없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이 장관은 최근 이렇게 토로했다. “김 대통령과 독대한 적은 장관 사임 의사를 밝힌 후 딱 한번 뿐이었다” 장관과 청와대 참모의 관계는 미묘하다. 청와대 수석은 직제상 차관급에 불과하지만 실질적인 파워는 장관을 능가하는 경우가 많다. 냉정한 현실정치에선 ‘최고 권력자’, ‘권력의 핵’과의 심정적· 물리적 거리에 따라 권력의 크고 작음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한 전직 경제수석은 청와대 비서진에 내재한 힘의 원천을 대통령에 대한 자문역할로 설명한다. 자문역할이 커지면 비서진의 생각이 곧 대통령의 생각이 되고 그에 비례해 파워가 실린다는 얘기다. 대통령으로서는 공식성과 상대적인 긴장감이 따르는 장관과의 만남보다는 거의 매일 접하는 청와대 수석을 심리적으로 편하게 대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문제는 청와대 비서실이 내각의 힘을 압도하면 국정운영에 파열음이 생긴다는 점이다. 힘 빠진 장관은 복지부동하게 되고, 눈치빠른 관료들은 청와대의 입만 바라보는 해바라기형 내각으로 전락하게 된다. 장관에겐 청와대 참모라는 옥상옥이 생기고 청와대 수석회의는 곧 국무회의의 상위 기관처럼 운용된다. 박근혜 정부를 이끌어갈 내각과 청와대 진용이 기대감 보다는 우려감을 낳고 있다. 특정직종·특정학교로의 일방적인 쏠림, 회전문 인사의 재연, 정무적 판단이 결여된 형식적인 비대칭도 문제지만 내각과 청와대 비서실간 역학관계를 고려할 때 힘의 불균형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내각의 양대 축인 총리· 부총리 후보자 모두 중량감이 떨어지는 실무형인데다 장관 후보자들도 관료조직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기엔 버거운 경량급의 ‘예스맨’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내각 전체의 연령대도 청와대 비서진보다 평균 3세 이상 적어 아무래도 부담이다.박정희 대통령 시절 9년2개월간 최장수 비서실장을 지낸 김정렴 씨는 “대통령은 청와대 비서실을 부처 위에 군림하는 조직이 아닌 서비스 조직으로 바꾸려 했다”고 회고록에서 밝혔다. 박정희 대통령이 관료조직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국정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던 건 청와대의 전횡을 경계하고 장관들이 제대로 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한 결과다. ‘아버지 박정희’의 슬림형 청와대 조직을 벤치마킹했다고는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첫 인선은 거꾸로 ‘강한 청와대, 약체 내각’을 예고하고 있다. 이젠 운영의 묘를 살릴 수밖에 없다. 내각과 청와대 비서실간 명확한 역할 분담을 위해 분명히 선을 긋고 장관들에게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장관은 대통령이 자신을 신임하고 힘차게 밀어준다고 느낄때, 그리고 청와대 비서진이 아닌 대통령을 ‘직접’ 상사로 모시고 일 한다는 생각이 들때 신나게 일할 수 있다. 관료조직에 창조와 혁신의 바람을 일으키고 국민과의 약속대로 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을 통해 희망의 새 시대를 열기 위해선 대통령은 내각부터 제대로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2013.02.26 I 송길호 기자
  • [데스크칼럼] 박근혜표 성공방정식과 밀봉인사
  • [이데일리 송길호 정경부장] 대통령 당선인의 인사는 국정운영의 청사진이자 나침반이다. 자리의 무게에 관계없이 국민들은 당선인의 ‘인선작품’을 통해 파노라마처럼 펼쳐질 차기정권 5년의 미래를 그려보게 된다. 불행히도 대선 직후 40여일간 진행된 당선인의 각종 인사는 기대보다는 실망을 안긴 것 같다. 예상치 못한 인사의 난맥상은 당선인의 인사스타일, 한발 더 나아가 의사결정 방식에 근본적인 의문을 불러온다. 당선인은 과연 누구와 상의하는 걸까. 누구로부터 추천받았을까. 무슨 근거로 그들을 선임했을까. 분명한 사실은 ‘나홀로 밀봉 인사’로 명명된 당선인의 인사스타일은 독특한 정치적 체험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당선인은 여당내 비주류로 정치활동을 하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위기를 돌파했다. 2002년 대선 차떼기 파문, 2004년 탄핵역풍, 2011년 돈봉투 사건 등 누란의 위기속에서 천막당사, 당명변경, 파격 인선 등 ‘박근혜표 성공방정식’으로 파고를 헤쳐나갔다. 20대 퍼스트레이디 시절엔 권부 내부에서 펼쳐지는 대통령 측근 그룹들의 은밀한 권력쟁투와 파국을 생생히 목도하며 권력운용의 기본원칙을 체득했다. 2인자나 측근의 발호를 차단하기 위해 직접 인사권을 장악해야 한다는 교훈은 이때 이미 확고해진 불문율로 자리잡은 듯 하다. 그래서일까. 대선 직후 일련의 인선 과정을 지켜보면 당선인에게도 다른 성공한 리더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지나친 자신감과 자기확신이 엿보인다. 노무현의 ‘코드인사’, 이명박의 ‘고소영인사’처럼 감정적 집착 때문은 아니지만 폐쇄된 상자 속에 갇힌 듯 기존 의사결정 방식을 고집스럽게 밀어붙이는 모습이다. 리더십과 의사결정에 관한 학계의 연구결과는 탁월한 리더들이 오판하는 과정을 오도된 경험과 예단(misleading experiences & prejudgements)이란 작동원리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이전 성공신화에 사로잡혀 독단적으로 자동차사업에 진출했다가 낭패를 당한 일, 대공황 시절 후버 미국 대통령이 균형재정이라는 기존 원칙에 집착해 과도한 긴축정책을 고수하다 경제를 망가뜨린 일 등은 똑똑한 리더들이 과거의 경험과 예단으로 오도된 의사결정을 내린 전통적인 사례들이다. 시드니 핀켈스타인 다트머스대 경영대 교수는 “자신의 능력에 의문을 갖지 않은 리더들은 환경변화 속에서도 기존의 동일한 방식만을 고집하려는 경향이 있다” 고 정리한다. 과거의 성공을 현재 상황에 그대로 접목할 수는 없는 일이다. 자신이 내세운 원칙을 무비판적으로 고수하게 되면 그에 부합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어긋나는 정보는 의도적으로 회피하면서 의사결정을 그르칠 수 있다. 아무리 훌륭한 리더라도 의사결정이나 정책결정 과정에서 견제와 균형이 따르지 않으면 모순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대통령 박근혜’의 공직인선이 ‘정치인 박근혜’의 당직인선과 분명히 달라야 하는 건 이 때문이다. 불투명한 절차에서 불필요한 의혹은 증폭되고, 밀봉 이후 터지는 파열음은 부메랑으로 돌아와불통의 이미지만 더욱 고착된다. 과거의 빛나는 성공경험과 확고한 원칙은 이젠 비판적으로 가다듬어 지금과 같은 달라진 무대, 달라진 배역에서 유연하게 적용하는 법을 모색할 일이다.
2013.02.05 I 송길호 기자
  • [데스크제언]'대통령 박근혜'는 다르다.
  • [이데일리 송길호 정경부장] 박근혜 당선인은 신뢰의 정치인이다. ‘신뢰’는 그의 정치적 자산이자 최고의 브랜드다. 대통령직 인수위 첫 전체회의에서 ‘신뢰받는 정부’를 제시한 건 신뢰를 생명으로 하는 그의 단호한 의지가 녹아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정치인 박근혜’와 ‘대통령 박근혜’는 다르다. 대선후보 박근혜에겐 신뢰가 정치적 동력일 수 있지만 정책결정의 최고 책임자 박근혜에겐 오히려 족쇄가 될 수 있다. 대통령이란 직책은 선거때 표심을 얻기 위해 내걸었던 공약들을 모두 실천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박 당선인은 선거기간 ‘국민행복시대’를 기치로 내걸었다. 출산·보육부터 노후 대비까지 모든 세대의 걱정을 절반으로 줄여주겠다고 공언했다. 20개 분야 201개의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 모두 131조원에 이르는 계산서도 친절히 첨부했다. 청구서에 적시된 돈은 그러나 공짜가 아니다. 모두 국민들의 지갑에서 나와야 한다. 성장을 통해 세수가 늘지 않으면 재원마련은 사실상 어렵다. 객관적인 정세는 녹록지 않다. 한반도와 동아시아 질서의 격변· 대내외 장기 불황이 지속되는 복합 위기· 생산가능인구 감소에 따른 경제 활력의 저하, 모두 박근혜 시대 5년이 직면한 파고들이다. 박 당선인의 복지전략은 이 같은 난관을 헤쳐나갈 성장전략이 수반되지 않은 ‘반쪽짜리 플랜’이다. 동력이 뚝 떨어진 경제에 엔진을 어떻게 장착하고 불을 붙일지 구체적인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 성장은 복지의 원천이다. 경제의 고도화로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는 약화됐다고 하지만 그래도 성장을 해야 일자리가 창출되고 복지재원이 마련된다. 성장을 통해 파이를 키운 후 그 과실을 복지에 전용하는 국가발전전략이 정교하게 제시돼야 하는 건 이 때문이다. 국민들의 결핍을 채우는데 초점을 맞춘 201개의 복지공약을 더 이상 고집하지 않았으면 한다. 성장과 복지가 공존하는 국가발전전략의 틀 내에서 전체 공약을 전면 재조정한 후 우선순위를 정해 차례차례 실천해 나가길 바란다. 선거 기간 국민에게 ‘해주겠다’고만 했지만 이젠 ‘참아달라’고도 해야 한다. 우선순위에서 밀리거나 아예 폐기될 수 있는 공약을 이해관계자들에게 설득할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경제성장을 통한 사회복지라는 통합적인 국가발전전략 내에서 ‘박근혜표 복지’는 완성될 수 있다. 그에 따른 실천계획이 면밀히 제시될때 국민들은 울림과 설렘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래야 ‘정치인 박근혜’ 뿐 아니라 ‘대통령 박근혜’에 대한 신뢰도 진정 빛을 발하게 된다.
2013.01.09 I 송길호 기자
  • [데스크칼럼]진보의 반성, 진보의 미래
  • [이데일리 송길호 정경부장] 선거판이란 합법적 공간에서 한쪽 이데올로기가 극단으로 치닫게 되면 그에 대항하는 이데올로기도 반작용처럼 다른 극단으로 진행하게 된다. 두 정치적 이데올로기는 그 자체로 절대화되고 사회적 긴장은 점차 고조된다. 이념의 분파, 이념의 갈등은 이번 18대 대선에서 유례없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이 막판 1대1 구도로 정리되면서 선거전은 이념의 전장, 집단사고 간 격렬한 대립의 장으로 변모했다. 보수진영의 입장에서 보면 이번 대선 결과는 이념의 승리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불과 108만여표의 격차를 두고 이념적으로 한 쪽이 다른 쪽의 우위에 섰다고 단정하는 건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 보단 정치공학적 관점에서 양 측의 ‘선거전략’이 명운을 갈랐다고 보는 게 더욱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대통령학의 권위자 스티븐 웨인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는 “선거전략의 기본은 중간지대를 선점한 후 상대방을 극단으로 밀어내는 것”이라고 정리한다. 복지, 경제민주화라는 진보진영의 의제를 선점, 중간층의 표심을 파고든 뒤 상대방을 왼쪽 극단으로 밀어넣은 보수진영의 선거전략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반면 친노(親盧)로 상징되는 진보진영은 반대·저지·편가르기,제 편과의 연대·연합에만 몰두하며 당의 정체성을 왼쪽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선거 막판 보수진영이 빠르게 결집하고 안철수 지지층과 중첩되는 중간층이 그들 진영을 외면한 건 바로 이 같은 실책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외형상 절대 불리한 구도가 아니었던 이번 대선에서 진보진영의 전략적 실패는 기본적으로 진영 내에 팽배한 사고의 경직성, 현실인식에 대한 편협성 때문인 듯 하다. 마르크스가 사회구조를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아(我)와 피아(彼我)간 계급투쟁을 통해 사회변혁을 모색하듯 한국의 진보진영도 세상을 선(善)과 악(惡)의 단선적 사고로 바라보는 경향이 짙다. 평등과 정의, 공존과 공생의 공동체적 가치, 기득권을 타파하고 소수와 빈자를 대변한다는 도덕적 우월감에 자신의 진영은 ‘선’, 상대 진영은 ‘악’이라는 오만이 자연스럽게 형성된 거다. 여기에 오랜기간 서슬퍼런 권위주의 체제의 그늘 아래서 반독재투쟁으로 다져진 치열함과 도덕적 엄숙주의로 근본주의적이고 원리주의적인 사고체계는 더욱 단단해졌는지 모른다.사실 유럽에서 태동한 진보의 사상적 기초는 유연함과 자유분방함이다. 기존 보수적 가치에 도전하면서도 치열한 논쟁과 공박을 통해 사회변혁을 이끌어낼 수 있는 탄력적이고 유연한 사고가 그 밑바탕에 깔려 있다. 한국의 진보는 그러나 남북분단이라는 척박한 이념의 토양 속에 갇혀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경직성, 편협성, 그에 따른 오만과 독선· 독단으로 대중과 계속 멀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보수진영이 부도덕이나 부패, 기득권 지키기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않고는 쇄신을 이룰 수 없듯 진보진영도 뼈를 깎는 자성을 통해 진영논리에 갇힌 독선과 독단을 탈피하지 않으면 진화할 수 없다. 고장난 영사기의 흑백필름처럼 철 지난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며 세상을 편의적으로 재단하는 경직성과 편협성으로는 더 이상 진보의 미래는 없다. 사회는 보수와 진보의 두바퀴로 달려 나간다. 진보가 꽃을 피우지 못하면 보수도 지리멸렬해진다. 보수와 진보 두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극단으로 치닫지 않고 건전하게 서로를 견제하고 자극할때 중간지대는 두텁게 형성될 수 있다. 그래야 그 사회는 포용의 정치·화합의 정치· 통합의 정치로 한발짝 더 전진할 수 있게 된다.
2013.01.02 I 송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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