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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가방안 구겨진 70대 여성시신
23일 인천 남동경찰서는 전날 모 빌라 앞 여행용 가방 안에 있던 시신이 A씨라고 밝혔다.
당시 하교 중이던 17세 학생은 골목에 있던 가로 60㎝, 세로 40㎝, 두께 30㎝ 크기의 여행 가방을 발견했다. 학생은 “가방이 조금 열려 있는데 사람 엉덩이 같기도 하고 인형 같기도 한 게 보인다”며 경찰에 신고했고, 성인용품으로 추정되던 정체는 여성의 시신이었다.
시신의 모습은 처참했다. 머리는 둔기에 맞아 일부가 함몰돼 있었고 오른쪽 옆구리, 목 등 5군데가 날카로운 흉기에 찔린 흔적이 역력했다.
경찰은 범인을 싸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사람들이 빈번하게 지나다니는 길목에 버젓이 시신을 담은 가방을 놔둔 점이 대담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후 채무나 원한 관계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가족과 주변인 등을 토대로 탐문 수사를 벌이기 시작했다.
피해자 A씨는 부평구의 한 시장에서 야채 가게를 운영했다. 딸은 근처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하고 있기에 누구도 A씨가 끔찍한 일을 당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가방이 발견된 인근 CCTV를 분석한 결과 21일 오후 10시 10분쯤 빌라 담벼락에 여행용 가방을 놓고 자리를 뜨는 남성을 발견했다. 그는 할머니의 가족과도 친분이 있던 정형근(당시 55세)씨였다.
일용직 노동자였던 정 씨는 A씨의 딸이 운영하던 포장마차에 자주 들르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졌다고 한다. A씨의 딸과 교회를 함께 나가기도 하고 A씨를 향해 “어머니”라고 부르는 등 친분이 두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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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라 부르더니…욕정 품었던 그놈
그해 12월 20일 A씨는 정 씨와 야채 가게에서 낮술을 마셨다. 소주 3병을 나눠 마신 두 사람은 정 씨의 집으로 가 한 잔을 더 하기로 했고, A씨는 딸에 “잔칫집에 간다”고 한 뒤 가게 문들 닫고 간석동에 있는 정 씨의 집으로 향했다.
문제는 술을 마신 뒤였다. 정 씨는 자신에게 베풀어주던 A씨를 상대로 욕정을 품었다. 술을 마시다 정 씨는 A씨의 바지를 벗기려고 했고 A씨는 완강하게 저항했다. 화가 난 정 씨는 머그컵을 들고 A씨의 머리를 내리쳤고 A씨는 움직이지 않았다.
우발적인 폭행에 A씨가 사망한 것으로 생각한 정 씨는 시신을 감춰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A씨를 화장실로 끌고 간 뒤 여행 가방을 가져왔다. 그 사이에도 정 씨는 A씨에 대한 몹쓸 마음을 접지 않고 다시 A씨를 건드렸고 아직 살아 있던 A씨가 움직이자 정 씨는 부엌에서 가져온 흉기로 무참히 살해했다. 이후 그는 고작 150m 떨어진 빌라 담벼락에 지퍼도 제대로 닫지 않은 가방을 유기했다.
그는 서울 구로구 개봉동에서 아들 명의의 체크카드로 현금 45만 원을 찾았다. 이후 문래동의 한 모텔에서 숙박한 뒤 정처 없이 걸어다녔다. 관악산 바위 밑 등지에서 잠을 자며 도피생활을 하다가 남산에서 노숙을 하기도 했다. 그는 도피 생활 내내 술에 취해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가 잡힌 것은 을지로 4가였다. 노숙인들과 함께 공원에서 막걸리, 소주 등을 나눠 마셨고 술이 떨어지자 편의점으로 향한 그는 아들의 체크카드로 술값을 결제했다. 경찰은 이를 놓치지 않고 현장에서 정 씨를 체포했다.
수사를 담당했던 인천 남동경찰서 관계자는 “알코올 중독 수준이었던 정 씨가 언젠가 술에 의한 실수로 체포될 것으로 예상했다”고 말했다.
성폭력 범죄 처벌과 특례법 위반, 사체유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 씨는 “술에 취해 저지른 행동”이라며 내내 심신미약을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범행 수법이 매우 잔혹하고 반인륜적”이라며 정 씨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후 정 씨는 형이 무겁다며 항소했으나 2심 재판부 역시 “범행 전후의 행동, 범행 과정을 어느 정도 기억하고 있다”며 “술에 취해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거나 미약했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1심의 판결이 정당하다고 봤다. 2015년 9월 대법원은 정 씨의 무기징역을 확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