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조준희 "기업은행의 이방원 되겠다"

"올해 개인고객 100만명 늘어..中企지원 기반확대"
"문화콘텐츠산업에 3년간 4500억 지원..멀리봐야"
"내년 경영환경 쉽지 않다..잘못된 관행 뿌리뽑을 것"
  • 등록 2011-11-21 오전 9:00:00

    수정 2011-11-20 오후 11:03:20

[이데일리 이학선 송이라 기자] 조준희(사진) 기업은행장은 지금도 가끔 서랍속의 취임사를 꺼내 읽어본다고 한다. 30년 뱅커로서의 관록, 내부출신 행장으로서의 책임감과 후배들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녹아 들어 있는 바로 그 글이다. 취임식 당시 과로와 질병으로 숨지거나 건강을 잃은 직원들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며 “여러분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며 직원들을 다독였던 그는 1년이 다 된 지금도 그 때 다짐했던 그 약속을 잊지 않은 듯 했다. 인터뷰가 있던 지난 17일 그는 지점장 20여명을 따로 불러 “상사 눈치보느라 퇴근 못하는 직원들이 없도록 하라”며 특별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자신들의 선배가 행장이 되고 그 행장이 모범을 보이며 마음을 열자 지난 1년간 은행엔 신선한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직원들의 스트레스 1순위로 꼽혔던 각종 캠페인과 프로모션을 없앴지만 은행 순익은 꾸준히 신장됐고 개인 고객도 1000만명 시대를 여는 등 크게 늘고 있다. 그는 대신 인사청탁이나 직원들간 선물 주고받기 등 잘못된 관행이나 폐습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스스로 “태종 이방원이 되겠다”고도 했다. 조선왕조 500년의 기틀을 다진 임금은 세종이지만, 배경에는 아버지인 태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나 역시 기업은행이 100년, 200년 이어지는 `위대한 은행`으로 거듭나기 위해 잘못된 관행을 뿌리뽑는 역할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조준희 행장과 일문일답.

- 기업은행(024110) 첫 내부출신 행장으로서 지난 1년간의 성과는   ▲ 대표적인 게 올해 5월 개인고객 1000만명 돌파다. 우리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 일이다. 개인예금이 늘면 조달비용이 낮아지기 때문에 단 한푼이라도 중소기업에 더 싼 이자로 대출을 해줄 수 있다. 기업은행 50년 역사상 가장 많이 늘었을 때가 한해 50만명 정도인데, 올해는 벌써 100만명이 넘었다. 무엇보다 직원들이 잘해줬다. 행원 출신 첫 행장이다보니 (직원들 사이에)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고맙고 감사하다.   - 취임 당시 캠페인이나 프로모션을 안하겠다고 했는데   ▲ 다 없앴다. 그런 걸 하면 실적은 좀 오를지 모르지만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간다. 직원들한테도 다른 은행들이 공격적으로 영업하더라도 신경쓰지 말라고 했다. 각 은행에 맞는 전략이 있는 법이다. 내가 강조하는 건 정도경영이다. 숫자로 장난칠 생각해선 안된다. 특히 이제는 체격(규모)이 아니라 체력과 스피드가 중요한 시대다. 자기에게 맞는 틈새를 발굴하면 된다. 앞으로도 모두가 공감하고 납득하는 것 외에는 프로모션 등을 안할 생각이다. 

- 중소기업 지원이 기업은행의 목적인데, 단순히 대출금리 낮추는 것 말고 다른 지원책은 없나   ▲ 내년까지 중소기업 1000곳을 대상으로 무료컨설팅을 실시한다. 골프도 기본레슨을 받아야하듯 중소기업들도 진단을 받을 필요가 있다. 기존에 컨설팅인력이 25명이었는데 이를 55명으로 늘렸다. 또하나 역점을 두는 건 문화콘텐츠 산업이다. 올해부터 3년간 매년 1500억원씩 총 4500억원을 지원키로 했다. 내년엔 이를 담당할 전담 부서장을 뽑을 예정이다. K팝이나 한류 등 문화는 산업이자 먹거리다. 앞으로는 영화, 게임, 만화 등에서 일자리가 나올 것이다.   - 문화콘텐츠는 투자위험이 큰 산업 아닌가   ▲ 기술보증기금과 함께 2년에 걸쳐 시뮬레이션도 하고 평가모형도 개발했다. 한마디로 준비운동을 꽤 했다. 만화제작에 10억원이 필요하면 은행에 신청하면 된다. 우리는 자문위원들에게 평가를 맡기면 된다. 영화도 앞으로는 전세계를 대상으로 돈 벌 생각을 해야한다. 제작비 50억~100억원짜리가 아닌 우리도 500억~1000억원 들어가는 대작을 만들어야한다. 단기간에 끝낼 사업이 아니다. 멀리 숲과 나무를 봐야한다 .   - 은행의 해외 진출계획은   ▲ 우리의 전략은 명쾌하다. 중소기업이 나가는 곳에 같이 간다. 이미 중국과 베트남에 나가 있고 중소기업들이 인도나 인도네시아, 태국 등에 나가면 우리도 따라갈 것이다. 기본적으로 중국과 베트남을 기본축으로 주변 아시아 국가를 연결하는 `동아시아 금융벨트`를 구축할 계획이다. 다행히 현재 해외에 나가있는 점포는 흑자를 내고 있다.   - 현지 은행 인수도 생각하나   ▲ 장기적으로는 몰라도 지금은 시점이 아니다. 겨우 금융위기를 넘겼는데 아직은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할 때다.   - 내년도 경영전략은   ▲ 쉽지 않은 해가 될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는 민간에서 발생해 정부가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유럽 재정위기는 국가의 위기다. 금융위기때보다 더 어려워질수 있다. 이럴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현장경영을 더욱 강화하고,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에 적기에 돈을 공급하기 위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 얼마전 고졸채용 바람을 이끌어 화제를 모았는데   ▲ 일회성 쇼나 단순 이벤트였다면 아예 시작도 안했다. 특성화고 출신을 뽑기 위해 지난 2년간 준비했다. 전국 700여개의 특성화고 가운데 330개 학교에 장학금을 지원해 키워온 인재들이다. 올해 상반기 20명을 뽑았고, 이번에 또 40명을 뽑는다. 얼마전 특성화고 출신 직원들과 차한잔 하면서 얘기했다. `이건 역사를 새로 만드는 일이다, 여러분이 잘해야 후배들에게도 길이 열린다`고 했다.    
- 최근 금융권의 모럴해저드에 대한 비판여론이 거세다.   ▲ 겸허하게 듣고 반성해야한다. 이익을 많이 내면 `좋은 은행`은 될 순 있지만, `위대한 은행`이 되려면 배려와 나눔, 따뜻한 금융이 아니면 안된다. 사회와 더불어 같이하는 은행이야말로 끝까지 살아남는 은행이 될 수 있다.   - 직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게 있다면   ▲ 취임 때부터 기업은행의 태종 이방원이 되겠다고 했다. 조선왕조 519년 동안 27명의 임금이 있었다. 기틀을 다진 사람은 세종이지만 세종이 뛰어난 업적을 낸 배경에는 아버지 태종이 있었다. 내 능력이 기업은행을 `위대한 은행`으로 만들 정도는 안된다. 그건 세종같은 사람이 나와야 가능하다. 내가 할 일은 그런 사람이 뜻을 펼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100년, 200년 이어지는 위대한 은행을 위해 나쁜 관행을 뿌리뽑는 역할을 할 것이다. 인사청탁 절대 안된다. 명절이나 경조사때 직원들간 주고받는 선물도 안된다. 문화나 관행을 바꾸는게 쉽지 않지만 다행히 지금까지 직원들이 잘 따라주었다.    조준희 행장은 지난 1980년 청계5가 지점 수습행원으로 시작해 30년만에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기획, 인사, 영업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동경지점장을 역임하면서 금융권의 일본통 인사들과도 친분을 다졌다. 그는 현장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책상에 앉아 재무제표만 보는 것만으로는 기업을 제대로 알 수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아이디어맨으로도 통한다. 올해 화제가 됐던 “기업은행에 예금하면 기업을 살립니다”라는 광고문구는 그의 머리 속에서 직접 나왔다.  인터뷰 = 송길호 금융부장 정리 = 이학선, 송이라 기자 사진 = 한대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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