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 장(醬)의 신세계…간장 명인의 52년 비법은

명인이 직접 알려주는 전통 장 담그기 체험
360년 전통 씨간장, 세계가 놀란 한식 유산
발효 과학의 신비…장 만들기 체험 매력적
고추장 버터스테이크, 한식의 새로운 변신
‘K-미식 장 벨트’ 상품, 전통 여행으로 주목
  • 등록 2024-11-22 오전 12:00:22

    수정 2024-11-22 오전 12:06:35

기순도 명인이 간장을 붓는 모습 (사진=한식진흥원)
[이데일리 김명상 기자] 최근 넷플릭스의 요리 경연 프로그램 ‘흑백요리사’에서는 ‘장(醬) 트리오’ 미션이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참가 셰프들은 한국 전통 장(고추장, 된장, 간장)을 활용해 창의적인 요리를 선보이며 관심을 받았다. 한국인의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 문화는 이제 글로벌 무대로 향한다. 유네스코는 다음 달 2일부터 열리는 제19차 무형유산위원회에서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의 인류무형문화유산 최종 등재를 결정할 예정이다. 등재 이후에는 우리의 장 문화를 직접 경험하는 여행도 인기를 끌 전망이다.

된장과 간장의 비밀, 한국 전통의 맛을 찾아서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35호 기순도 명인의 종가에 있는 1200여 개의 항아리.
“잘 발효된 메주를 항아리에 넣고 죽염수를 붓습니다. 그리고 고추, 숯, 대추를 넣어요. 이후 약 60일 전후에 장을 가릅니다. 이제 메주는 된장이 되고 죽염수는 간장이 되는 것이죠.”

전남 담양의 고려전통식품에서 만난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35호 기순도 명인의 설명이다. 대부분의 참가자는 된장과 간장이 같은 항아리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처음 듣는다며 놀라워했다.

“중국이나 일본은 ‘된장은 된장대로 간장은 간장대로’ 만듭니다. 메주 문화가 없어서 그래요. 간장과 된장이 함께 나오는 것은 우리 문화의 고유한 특징입니다.”

기 명인의 간장은 이미 해외에도 잘 알려져 있다. 2017년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방한 당시 청와대는 370년 된 씨간장을 사용해 구운 한우갈비를 선보였다. 여기에 쓴 씨간장은 기순도 명인의 문중에서 대대로 내려온 유산이었다. 당시 외신은 ‘미국 역사보다 오래된 특별한 간장’을 썼다며 놀라워했다.

기 명인이 사는 종가의 마당에는 고추장, 간장, 된장을 담은 1200여 개의 항아리가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다. 올해 75세의 기순도 명인은 시어머니에게 장 만드는 법을 배운 지 52년째가 됐다고 했다. 반백 년이 넘는 동안 명인은 지금까지 천연 재료와 전통 방식만을 고수해 장을 만들고 있다.

“전통 간장은 대량 생산되는 일반 간장과 달리 화학 첨가물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천연 발효식품입니다. 숙성 기간에 따라 청장(1년), 중간장(2~3년), 진장(5년 이상)으로 나뉘며 각각의 맛과 용도가 다릅니다.”

씨간장은 오래된 간장에 가장 좋은 햇간장을 더하는 ‘첨장’의 과정을 통해서 이어진다. 와인을 블렌딩해서 맛을 깊게 하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지금도 기 명인은 그 작업을 직접 하고 있다.

“장을 잘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과 재료, 그리고 정성이죠. 장 만들기는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철학이 담긴 문화라고 할 수 있어요.”

기순도 명인이 운영하는 간장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의 참가자.
간장 만들기 체험은 단순히 장을 만들어보는 것을 넘어, 한국 고유의 음식 철학을 배우는 시간이 된다. 최근에는 외국 셰프와 미식가들도 한국의 전통 장을 배우기 위해 기순도 명인을 찾아오고 있다. 지금까지 일본, 칠레 등 16개 국가의 30여 개 레스토랑 관계자들이 찾아와 장 만들기 체험을 했는데 이들은 장 발효 과정의 신비에 감탄하며 한식을 활용한 음식을 자국에서 선보이고 있다. 앞으로도 기순도 명인은 사라지고 있는 전통 장 만드는 방법을 알리기 위해 적극 나설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내외에서 교육과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전통 장의 가치를 알리고 있어요. 조상 대대로 이어져 온 방법을 잘 보존해서 전해야죠. 그게 저의 책임이자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추장, 세계인의 입맛을 홀리다

순창장본가를 운영하는 강순옥 명인의 고추장 만들기 체험 (사진=한식진흥원)
‘흑백요리사’ 프로그램에서 눈길을 끈 메뉴 중 하나는 에드워드 리 셰프가 만든 ‘고추장 버터 스테이크’다. 듣기에는 한식의 탈을 쓴 괴식에 가까운 조합 같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유행을 타고 만드는 법이 SNS 등을 통해 공유되기도 했다.

‘문화의 역수입’이라고 부를 만한 고추장 버터의 제조 방법은 전북 순창에서 직접 배울 수 있다. 식품명인 64호 강순옥 명인이 운영하는 ‘순창장본가’에서는 고추장 만들기와 함께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고추장 버터 만들기 체험
“고추장 버터의 핵심 재료는 1년간 숙성된 찹쌀고추장과 고소한 버터입니다. 여기에 쪽파, 꿀, 마늘 플레이크를 더해서 섞으면 쉽게 만들 수 있어요”

체험 과정에서는 각 팀이 자신만의 비율로 고추장 버터를 만들어보고, 서로 맛을 비교하는 시간을 가진다. 레시피는 정해진 기준 없이 각자의 감각으로 조리하도록 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다. 이렇게 만든 고추장 버터는 구운 빵 조각에 발라 먹으면 된다. 맛을 본 참가자들은 “빵에 발라 먹으니 고소하면서도 매콤한 맛이 독특하고 괜찮다”, “고추장의 매운맛을 버터가 부드럽게 감싸줘서 외국인도 즐길 수 있을 것”이라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프로그램에서는 전통 고추장 만들기도 병행한다. 메주와 찹쌀, 천일염 등을 사용해 고추장을 만드는 과정을 따라 하면서 전통 음식 문화를 이해하는 동시에 무궁무진한 우리 장류의 발전 가능성을 체감할 수 있다.

고추장으로 조리한 장어구이, 간장김치, 청국장 향이 어우러진 담백한 수육을 담은 순창삼합
코레일관광개발은 이러한 장 담그기 체험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K-미식 장 벨트’ 기차 상품을 출시하고 지난 20일부터 판매를 시작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주최하고 한식진흥원이 주관하는 ‘K-미식벨트’ 사업의 첫 상품이다. 일정 중에는 간장, 고추장 만들기 체험 외에 담양 삼다리 내다마을 대나무밭에서 자란 잎으로 만든 죽로차를 시음하고, 장이 잘 발효되기를 기원하는 ‘버선금줄’ 제작 체험 시간도 마련된다.

무형문화재 청자 기능 보유자 권운주 도예가 (사진=한식진흥원)
순창에서는 높이 40m의 병풍폭포로 유명한 강천산을 걷고, 무형문화재 청자 기능 보유자 권운주 도예가와 함께 전통 옹기를 직접 만들며 숨 쉬는 흙의 특성을 살린 발효과학을 접할 수 있다. 일정 중에는 대통밥과 떡갈비, 순창삼합 등의 미식이 제공된다. 코레일관광개발은 ‘K-미식 장 벨트’ 상품 출시를 기념해 12월 13일과 14일 2회 한정으로 정가의 60% 이상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한다.

강천산 병풍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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