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진격의 청와대, 무기력 관료들

  • 등록 2014-03-17 오전 6:00:00

    수정 2014-03-17 오전 6:00:00

[송길호 이데일리 정경부장] 대통령의 언어는 전략이다. 잔잔한 은유, 강렬한 직설, 간결한 레토릭. 전략적 의도에 따라 내용을 담는 그릇은 다양하다. 언어의 선택은 현상을 재조명하고 강력한 의지를 전달하는 고도의 메시지 변환 작업이다.

대통령의 화법이 달라지고 있다. ‘비장한 각오’, ‘절박한 기회’, ‘사생결단’ 강경하고 단정적인 표현이 늘어난다. ‘진돗개 정신’, ‘쳐부술 원수’, ‘제거해야 할 암덩어리’ 직설적이고 원색적인 비유는 강렬하다. ‘손톱 밑 가시’,‘신발 속 돌맹이’ 와 같은 생동감 있는 은유, ‘통일은 대박’이라는 의도적인 일탈과는 분명 느낌이 다르다.

은은한 비유와 정연한 수사는 울림과 설렘으로 다가온다. 거친 비유, 결기가 느껴지는 독려는 경직과 긴장을 유발한다. 지극히 간절한 바람, 답답함과 초조함, 성과에 대한 불만족, 저항하는 이해집단과 타성에 젖은 관료집단에 대한 실망과 경고. 대통령의 메시지는 복합적이다.

박근혜노믹스의 청사진 경제혁신3개년계획. 1년전 취임사의 배에 가까운 1만2000자 분량의 담화문이 대통령의 입을 통해 41분에 걸쳐 전파를 탔다. 부총리가 보고한 원안(元案)은 폐기되고 청와대에서 리모델링된 다른 작품이 등장했다. 50여일간 강행군을 펼친 경제관료들은 정작 어떤 내용이 공개되는지도 모른채 허둥댄다. 무기력한 관료집단의 우울한 단상이다.

각종 투자활성화대책도 규제혁파에 대한 단호한 의지도 모두 청와대의 확성기에서만 힘차게 울려퍼진다. 개혁의지로 가득찬 청와대는 의욕과 활력이 넘치지만 정작 개혁의 첨병 역할을 해야 할 내각은 동기와 용기를 상실하고 있다. 청와대의 하급기관으로 전락한 행정부처, 식물부총리와 힘 빠진 장관, 무사안일 관료집단. 대통령을 정점으로 청와대의 무한질주만 보인다.

개혁의 파노라마는 데드라인과의 전쟁이다. 남은 임기 3년11개월, 1400여일중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시간은 절반이나 될지 모른다. 혼란과 무질서 불확실의 터널 속에 지금 이 순간에도 째깍째깍 흘러가는 초침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개혁작업에 드라이브를 거는 대통령. 관료집단은 그러나 유한한 정권의 시계바늘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찬바람만 무사히 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박정희의 근대화 프로젝트는 나라 전체를 뜯어고치는 전방위 전천후 개혁작업이었다. 이전의 틀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대규모 변혁운동이 빛을 볼 수 있었던 건 대통령이 코끼리 같은 관료집단을 움직이는 법을 알았기 때문이다. 김학열 남덕우 같은 명장의 ‘돌격 앞으로’ 구호에 사명감으로 무장한 관료들이 힘차게 복창하며 전력을 다해 달리는 모습. 책임장관이 포진한 내각이 개혁의 전면에 나선거다.

대통령과 청와대의 힘만으로 변혁의 대장정이 완성될 수 없다. ‘강력한 개혁의지’를 가진 장관이 ‘강력한 힘’을 통해 관료들을 개혁의 전선으로 이끌어내야 한다. 변혁의 가치를 공유하고 자신감과 사명감, 절실함을 불어 넣는 힘, 유인체계를 마련하고 설득과 조정 경고와 압박을 통해 관료집단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 바로 장관의 리더십, 책임장관제의 구현에 있다.

대통령은 개혁프로젝트를 가장 잘 팔 수 있는 인재를 선택해 권한과 책임을 맡길 일이다. 바짝 엎드려 있는 관료들이 대통령의 훈육만으로 움직일리 만무하다. 무기력한 장관 밑에는 무기력한 관료들이 있는 법.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는 무능· 무소신· 무책임의 3무(無) 장관들, 권위가 흔들리고 장악력이 떨어진 그들 밑에서 무사안일의 행정관행을 이어가는 관료집단으로는 공기업개혁도 규제혁파도 모두 언감생심(焉敢生心) 이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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