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1주기를 맞아 어제 서울 세종대로에서 열린 추모대회에 다수 여야 의원들이 참석했다. 일부는 그에 앞서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출발해 용산 대통령실 앞을 거쳐 서울광장으로 가는 시민 행진에도 동참했다. 1년 전 이태원 좁은 골목길에서 순식간에 압사당한 159명의 넋을 위로하고 싶은 시민들의 마음과 공명해보려는 것이었을 테다. 하지만 이태원 참사가 던진 재난안전 체제 강화라는 과제의 수행은 1년이 지나도록 뒷전에 놔두고 있으면서 추모 행사에 너도나도 얼굴 내밀기에 바빴다는 점에서는 밉상이었다.
지난해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뒤로 여야가 유사 사고 방지를 위한 법안을 모두 48건 발의했지만 본회의까지 통과한 것은 단 1건에 그쳤다. 다중운집 시 정부가 이동통신사에 관련 데이터 제공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를 포함해 48건 중 35건이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 개정안이다. 이 가운데 절반가량은 중복발의 등을 이유로 폐기됐고, 나머지 17건이 상임위에 여전히 계류 중이다. 여야가 정쟁에는 열을 올리면서도 정작 재난안전 법안 심의에는 태만했기 때문이다.
이태원 참사는 우리의 재난안전 관리체제에 여러 구멍이 뚫려 있음을 보여줬다. 우선 이태원 참사의 배경이었던 핼러윈 데이처럼 주최자가 따로 없는 행사에 대한 안전대책이 거의 없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이에 따라 그런 행사에 대해서는 관할 지자체가 의무적으로 안전대책을 수립하고 행정안전부 장관이 재난관리 주관 기관을 지정하도록 하는 법안을 정부가 마련해 국회에 제출했다. 이 밖에 지자체 폐쇄회로 TV가 국가 재난관리 정보통신 체계와 연계되지 않아 유사 시 대응이 지체된다는 점, 재난 시 긴급 의료지원 체제가 미비하다는 점 등도 지적돼 여야가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그 모든 법안이 제대로 심의되지도 못한 채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것이다.
여야 의원들은 추모행사에 참석할 시간이 있으면 그 시간에 먼저 국회에서 재난안전 법안을 심의하고 처리하는 것이 본분에 맞는다. 법이 갖춰져야 재난안전을 위한 행정력 동원, 대응조직 구성, 재정 투입 등이 가능할 것 아닌가. 희생자들의 영령 앞에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