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눈]'투자 이민' 떠나는 개미 못 잡는 이유

  • 등록 2024-07-15 오전 5:00:00

    수정 2024-07-15 오전 5:00:00

[이데일리 함정선 기자] “테슬라 주가가 하락하면 그만큼 한국인들이 가난해진다.”

증권가를 떠도는 오랜 우스개 중 하나다.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서학개미’가 앞다퉈 테슬라를 사들인 바람에 나온 말이지만, 이제는 마냥 농담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국내 투자자의 테슬라 보유 금액만 봐도 그렇다. 지난 2019년 7월 6605만 2435달러, 약 909억원에 그쳤던 서학개미의 테슬라 투자금액은 2022년에는 121억9794만달러, 우리돈으로 약 16조원 규모로 몸집을 불렸고 올해는 20조원 규모를 형성하고 있다.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보유한 해외 주식이 테슬라라는 말을 들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자신의 SNS에 서학개미를 ‘똑똑한 사람들’이라고 추켜세웠을 정도다.

일론 머스크는 아마도 모르고 있겠지만, 한국인들의 해외 주식 보유 금액으론 테슬라가 가장 많을지 몰라도 최근 들어 서학개미가 가장 많이 사들인 건 엔비디아다. 그뿐이랴. 서학개미는 애플도 많이 사고 메타도 대거 사들였다. 그간 저조한 주가 때문에 쳐다보지도 않던 나이키도 순매수 상위권에 새롭게 이름을 올렸다.

머스크의 기대와는 달리 테슬라가 특별해서 투자한 것이 아니라 한국 투자자들이 해외 주식, 특히 미국 증시에 상장한 주식에 관심이 아주 크다는 얘기다.

올 들어 미국 증시가 무섭게 상승했고, 그간 해외 주식 투자 규모가 꾸준히 증가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연한 일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문제는 해외 증시로만 돈이 몰린다는 점이다.

최근의 미국 주식 열풍이 불기 전까지만 해도 서학개미는 국내 증시에도 투자하고, 미국 증시에도 투자했다. 그러나 지금은 국내 증시에서 자금을 빼 해외 증시에 넣는다. 실제로 삼성전자가 오르면 차익을 실현해 엔비디아를 사는 것이 시장에서는 흔한 일이 됐다.

한국 증시의 수익률을 생각하면 해외 증시로 향하는 투자자들의 ‘투자 이민’은 머스크의 칭찬처럼 ‘똑똑한’ 판단이다. 기업의 이익 증가율이 13%에 이르는 올 상반기, 주가 상승률은 이익 증가율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 증시를 뒤로 하는 투자자를 합리적이라며 모두 떠나도록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때문에 정부도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등을 내세우며 증시를 부양하겠다고 나선 상황이다.

이 같은 정책적 지원이 증시 부양에 아예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투자업계에서는 이제 단발성 정책만으로 투자자들의 ‘엑소더스(대규모 이탈)’를 막기엔 역부족이라는 말이 나온다. 밸류업 프로그램을 만들고, 세제지원을 기다리는 수개월의 공백을 기다릴 만큼 시장이 느긋하지 않아서다. AI 시대가 열렸는데 투자할 기업이 여전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뿐이라는 사실에 투자자들이 실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처럼 증시 부양을 포함한 국민 자산 확대를 통솔하고 책임질 콘트롤타워의 필요성이 대두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밸류업만 해도 지원책이 각 부처로 나뉘어 있다 보니 투자자들이 정책을 체감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에서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같은 대통령 직속의 기구가 필요하다고도 조언한다. 어떤 형태가 되든 증시 부양 의지가 일시적이 아님을 보여주는 계기가 필요할 때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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