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 출신 '엉클 조'…그는 어떻게 美 대통령이 됐나?

흙수저 출신 말더듬이서 美 46대 대통령 오른 바이든
최연소 상원의원 당선 후 한 달 만에 가족 잃는 슬픔도
라이벌 오바마와 브로맨스…흑인·여성 해리스와 손발
  • 등록 2020-11-08 오전 2:54:45

    수정 2020-11-08 오후 10:54:18

[이데일리 조민정 인턴기자] “자, 여러분께 차기 대통령을 소개합니다” 2008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처음으로 조 바이든을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대중 앞에 소개하며 한 말이다. 곧바로 말실수를 깨달은 오바마 전 대통령은 ‘미국의 차기 부통령이자 자신의 러닝메이트’라고 정정했다. 12년이 지난 지금, 오바마 전 대통령의 말실수는 현실이 됐다. 8년간의 부통령 임기를 마친 뒤 모두가 그의 정치인생이 막을 내렸다고 할 때 바이든은 미국 대통령을 향해 3번째이자 마지막 도전에 나섰고 멋지게 성공했다. 1942년생인 그의 올해 나이는 78세다.

(사진=AFP)
조 바이든의 미국 대통령 도전은 이번이 3번째다. 1988년 처음으로 대권에 도전했지만 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영국의 노동당 당수 닐 키노크의 연설을 표절했다는 시비에 휘말려 중도사퇴했다. 이후 2008년 대권 재도전을 선언한 조 바이든은 경선 과정에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라는 강력한 경쟁자를 만나 또다시 중도사퇴를 결정했다.

‘3수’인 이번 대선 역시 처음부터 쉽지 않은 싸움이었다. 바이든이 민주당 카멀라 해리스와 엘리자베스 워런,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등 쟁쟁한 인물들과의 경쟁해 최종 후보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사실 많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과 오바마 전 대통령에 비해 유권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인간적인 매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발목을 잡았다.

이번 선거에서도 개표 초반, 다수 언론과 여론조사가 바이든의 승리를 점쳤던 것과 달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앞서나가 마음을 졸이기도 했다. 3수 끝에 46대 미국 대통령직을 거머 쥔 조 바이든. 그는 누구인가?

‘흙수저’ 출신 엉클 조(Uncle Joe)

부와 권력을 모두 소유한 정치 명문가들이 즐비한 미국에서 조 바이든은 보기 드문 흙수저 출신이다.

미국에는 한국의 ‘강남 좌파’격인 ‘칵테일 좌파’(Cocktail Left)가 있다. 역대 민주당 대통령 후보들은 칵테일 좌파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심지어 오바마 대통령도 피해갈 수 없었고 힐러리 클린턴은 칵테일 좌파라는 이미지가 2016년 미 대선 때 낙마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1942년 펜실베이니아주 스크랜턴에서 태어난 바이든은 집안 사정이 어려워 외가의 도움을 받으며 자랐다. 어린 시절엔 말을 더듬는 버릇 때문에 왕따를 당하기도 했다. 그는 긴 문장을 통째로 외워 말하는 등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여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말더듬증을 극복했다.

이전까지 바이든의 집안에서 대학에 진학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가 1961년 델라웨어 대학에 입학했을 때 그는 집안에서 처음 탄생한 대학생이었다. 매번 대통령이 해야 할 일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공평한 기회’를 강조하는 이유다.

대학 졸업 후 시러큐스대 로스쿨에 진학한 바이든은 고액 연봉을 보장하는 로펌을 뒤로 하고 국선변호사의 길에 들어섰다. 변호사로 활동하며 바이든은 델라웨어주 뉴캐슬 카운티 의회 의원을 시작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바이든은 어려웠던 어린 시절을 잊지 않고 중서부 블루칼라(노동자)를 자기 정체성의 근간으로 삼고 서민과 노동자의 편에 섰다. 이때 삼촌 같은 조 아저씨라는 뜻의 ‘엉클 조(Uncle Joe)’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은 바이든의 자서전 ‘조 바이든, 지켜야 할 약속’ 한국어판 추천사에서 조 바이든에 대해 “트럼프가 공감 능력 없는 스트롱맨(강자)이라면, 바이든은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공감의 지도자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바이든은 힐러리 클린턴이나 심지어 오바마 대통령도 가졌던 ‘칵테일 좌파’라는 이미지 없이 블루칼라 노동자와 잘 섞이는 낮은 자세로 어필한다”고 썼다.

1988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중도사퇴를 발표하는 바이든의 모습(사진=AFP)
29세 나이로 상원의원 올라…교통사고로 아내와 딸 잃고 좌절

그러나 그의 인생은 꽃길만 펼쳐져 있지 않았다. 바이든은 1972년 상원의원 선거에서 ‘최연소 상원의원’으로 당선됐지만 선거가 끝난 지 한 달 만에 당선된 지 한 달 만에 아내 닐리아와 갓난아기였던 딸 나오미를 교통사고로 잃고 힘든 시기를 보낸다.

당시 상원의원 선거는 조 바이든의 인생을 바꾼 첫 번째 사건이었다. 경쟁자는 공화당 소속 케일럽 보그스 상원의원으로 20여 년간 한 번도 선거에서 진 적이 없는 관록 있는 정치가였다. 민주당에서 선뜻 나서는 이가 없는 상황에서 당시 29살의 바이든은 과감히 출사표를 던졌다. 결국 득표율 1% 차이로 극적인 승리를 거머쥐었다. 미국 역사상 5번째로 젊은 나이에 당선된 것이자 현대 미국에서는 최연소 기록이었다.

상원의원 당선의 가장 큰 조력자는 가족이었다. 경력과 유명세, 자금력 등 모든 면에서 일럽 보그스 상원의원과 상대가 되지 않았기에 온 가족이 총출동해 바이든을 도왔다. 가족들은 직접 유권자와 일대일로 만나며 하루에 열 잔씩 커피를 마시는 ‘커피 타임’ 전략을 펼치는 등 가망 없는 선거에 출마한 바이든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다.

그만큼 아내와 딸의 죽음은 바이든에게 큰 충격이었다. 심지어 바이든은 어렵게 오른 상원의원직마저 포기하려 했다. 민주당 지도부의 만류에 바이든은 1973년 중상을 입고 입원 중이던 두 아들의 병실에서 상원의원 취임 선서를 하고 왕복 350km 거리의 병실과 워싱턴을 오가며 의원 생활을 시작했다.

바이든은 1988년 뇌동맥류로 쓰러지는 위기를 한 번 더 맞았다. 여러 차례 위험한 수술과 긴 재활 과정을 거쳐 건강을 되찾은 바이든은 외교전문가로서 역량을 발휘해 유고슬라비아 내전과 코소보 사태에 소극적인 행정부와 유럽 국가를 설득해 끔찍한 참상을 해결하는데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완벽하게 재기에 성공했다.

2008년 당선 전 플로리다주 집회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과 조 바이든 부통령의 모습(사진=AFP)
‘라이벌’ 오바마와 ‘환상의 짝꿍’ 되기까지

바이든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오바마 전 대통령이다. 이 둘은 지금은 나이를 뛰어넘은 친구이자 정치적 동반자이지만 처음부터 궁합이 좋았던 것은 건 아니었다.

냉철하고 과묵한 성격의 오바마 전 대통령과 달리 바이든은 수다쟁이였다. 2005년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조 바이든이 쉬지 않고 말하는 모습을 본 오바마 전 대통령은 그의 정치 참모이자 백악관 선임고문을 지낸 데이비드 액셀로드에게 “맙소사, 그 양반 정말 말 많더군.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어. 자그마치 7시간이나 산악지대를 달리지 않았겠습니까”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후 2008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경쟁자로 만났지만 바이든의 중도 사퇴후 오바마 전 대통령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오바마 전 전 대통령이 바이든에게 부통령 후보를 맡아 달라고 제안해 시작된 두 사람의 브로맨스는 그 후 8년 동안 미국은 물론 전 세계를 향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바이든은 참신함에 비해 노련함이 부족했던 오바마 전 대통령을 보좌해 외교 및 안보 분야에서 역량을 발휘했다. 2015년 이란 핵 합의 체결을 이끌어낸 게 대표적 성과다.

이번 대선에서 바이든은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경쟁했던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을 러닝메이트로 지목했다. 여성이자 유색인종인 해리스 상원의원은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부통령에 오르며 오바마 전 대통령과 바이든의 호흡을 재현할 것으로 기대된다.

46대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 최연소 상원의원을 시작으로 36년간 상원의원을, 8년간 부통령직을 역임했다. 그동안 미국 대통령은 7번이 바뀌었고, 8번째는 스스로 그 자리에 올랐다. 3수 끝에 최고령 대통령으로서 마지막 정치 인생을 시작한 바이든의 행보에 전 세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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