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권력 박정희 시대에도 권부(權府)의 정책결정 과정은 정교한 팀플레이로 이뤄진 듯 하다.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졌던 대통령도 논쟁적인 정책에 대해선 대화와 협력, 토론을 통해 결론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대통령·참모·각료의 삼각 파트너십, 이른바 공유의 리더십은 국정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기초작업이다. 데이비드 히넌 컬럼비아대 경영대 교수는 베스트셀러 ‘위대한 이인자들’에서 “성공한 지도자의 뒤에는 항상 한 무리의 협력자, 바로 팀(team)이 있었다”며 리더의 팀 플레이를 갈파했다.
박근혜정부 출범 2개월이 다 된 지금, 정부의 국정운영이 대통령의 원맨쇼로 진행되고 있다. 대선후보시절부터 공언했던 책임총리제, 책임장관제는 이미 유명무실해진지 오래다. 대북 대화제의를 둘러싼 메시지 전달과정의 혼선을 보면 분명해진다. 북한의 대남공세에 강경대응으로 일관하던 대통령이 ‘대화’모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참모진은 물론 통일부장관, 국무총리 모두 제각각 다른 해석을 내놓으며 오락가락했다. 대통령의 교통정리로 일단락은 됐지만 대북정책의 변곡점이 될 수 있는 민감한 정책을 놓고 총리도 장관도 변방에서 변죽만 울린 꼴이다.
이 같은 현상은 모든 것을 꼼꼼히 챙기는 대통령의 만기친람(萬機親覽)식 국정운영 스타일에 기인한다. 대통령의 ‘나홀로 리더십’이 국정운영의 기본방식으로 자리잡으면서 참모도 각료도 자발적인 움직임없이 바짝 엎드린채 대통령의 입만 바라본다. “대통령이 하시겠다는 일에 뭐라고 토를 달 수 있나, 비서는 귀는 있지만 입이 없지 않은가” 청와대 참모의 자조섞인 토로는 대통령의 화려한 개인 플레이 뒤에 감추어진 우울한 그림자다.
대통령의 ‘깨알리더십’으로 정작 책임지고 일을 해야 할 내각은 거꾸로 활력을 잃고 있다. 대통령은 푯대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 듯 하지만 관료들은 대통령의 뒤만 바라보며 헐레벌떡 쫓아가는 형국이다. 대통령이 잠시 숨고르기를 하면 속도를 더욱 늦추고 갑자기 스피드를 내면 더욱 가속도를 낸다. 이들에게 책임총리제, 책임장관제를 기대하는 건 연목구어(緣木求魚)다.
청와대 참모진과 장관들을 대통령의 잔심부름꾼으로 끌어내려선 안 될 일이다. 참모를 비서가 아닌 진정한 조력자로 활용하고 내각엔 힘을 불어넣어 코끼리 같은 관료조직을 움직일 줄 알아야 한다.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장관들에게 폭넓은 재량권을 부여해 국정목표를 달성했듯 권한은 위임할때 더 커지고 믿고 맡길때 더 큰 시너지를 일으키는 법이다. 일방적인 지시와 통제가 아닌 팀플레이를 통한 파트너십· 소통과 공유의 리더십, 바로 창조경제 실현을 위한 미래의 창조 리더십은 대통령 스스로 꽃 피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