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박근혜 혁신'과 '박정희 개발'사이

  • 등록 2014-01-20 오전 7:00:00

    수정 2014-01-20 오전 7:00:00

[이데일리 송길호 정경부장] 정책은 진흙 속을 헤쳐가는 일련의 프로세스다. 이해관계자들과 영향을 주고 받는 상호작용의 과정이기도 하다. 다양한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각 정파는 이익집단의 정치적 힘에 따라 반쪽짜리 변질된 정책을 양산할 가능성이 높다. 국가 전체의 이익 보다는 특정집단· 특정계층 ·특정지역·특정세대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한 유인이 더 크기 때문이다. 정치체제가 다원화 민주화되고 정치적 영역이 확대될수록정책은 결국 정책공급자들의 정치적 능력에 따라 운명이 결정된다. 정책과 이를 뒷받침하는 정치력은 분리할 수 없는 합일(合一)의 앙상블이다.

박근혜노믹스의 집대성,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 선을 보였다. 정책목표를 명확히 밝히고 집권 1년간 산발적으로 제시된 정책을 3대 정책과제로 묶은 박근혜시대의 경제로드맵이다. 발표 하루만에 부총리는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내놓겠다고 공언하고 실무자들은 획기적인 작품 만들겠다며 머리를 싸맨다. ‘돌격 앞으로’ 대통령의 구호에 관료들은 ‘탄탄한 구름판이 되겠다’며 힘껏 복창하는 모습, 전광석화 같다.

경제혁신3개년 계획은 필연적으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연상시킨다. ‘개발’이 ‘혁신’으로 ‘5개년’이 ‘3개년’으로 바뀌었을 뿐 정부 주도로 경제의 성장엔진에 화끈히 불을 붙이겠다는 정책목표는 다를 바 없다. 양적 성장 시절의 로드맵이 질적 전환의 변곡점에서 리모델링된 셈이다. 두 로드맵은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를 내포한다. 정치적 토양, 바로 변화된 정책 환경이다.

권위주의 체제의 정책과정은 단선적이다. 정책 고객인 이익집단들의 영향력은 극히 미미하니 정치권이 이들을 대변할리 없다. 집권당조차 배제되는 상황에서 정치논리가 개입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자연스레 정책은 그 자체의 효과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한국경제의 고도성장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빛을 발하던 시절, 정치실종 시대의 역설이다.

다원화된 민주주의 체제의 정책과정은 복합적이다. 정파간, 이익집단간 갈등과 분쟁의 연속이다. 이익집단의 파워, 이들을 대변하는 정치권의 영합적인 태도는 정책 그 자체의 본질을 흔든다. 정치력을 탑재하지 않은 정책은 정치논리에 휘둘리며 일관성과 명료성, 유기성과 통일성을 상실한채 정책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간다.

박근혜정부 경제로드맵의 주요 정책과제들은 이익집단과의 전면전이다. 공기업정상화도 철도산업발전도 의료선진화도 비정상의 정상화로 규정된 각종 개혁작업들은 물론이다. 내수활성화의 핵심과제 서비스산업 육성도 다를 바 없다. 모두 규제 장벽 너머 이익을 향유하는 기득권층과의 치열한 전쟁이다. 구조적인 갈등조정 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정책환경에서 정치력의 한계는 정책의 불투명한 미래를 예고한다.

대통령의 진정성은 의심의 여지 없다. 그러나 선의가 장밋빛을 보장하진 않는다. 정책목표 달성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정치적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능력, 그 기저에 깔린 커뮤니케이션 능력. 통합적인 리더십을 바탕으로 이 같은 고도의 정치력을 통해 드라이브를 걸어야 정책은 날개를 달고 목표달성에 다가설 수 있다.

이익집단들의 이해관계는 거칠게 충돌하고 그에 따른 정치적 논란은 더욱 고조되는 정치만능시대. 권위주의 시대의 성공법칙이 다원화된 민주주의 시대에 그대로 적용될 리 없다. 과거의 정책을 리모델링하면서 달라진 정치적 토양을 고려하지 않은채 동일한 방식으로 접근하려는건 아닌지 모른다. 여의도 정치권과는 거리를 두는 그래서 의도치 않게 정책의 진정성 마저 훼손당하는 정치력 부재의 정책환경에선 아무리 경쟁력 있는 경제청사진이라도 꽃을 피우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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