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박근혜표 성공방정식과 밀봉인사

  • 등록 2013-02-05 오전 7:00:00

    수정 2013-02-05 오전 7:00:00

[이데일리 송길호 정경부장] 대통령 당선인의 인사는 국정운영의 청사진이자 나침반이다. 자리의 무게에 관계없이 국민들은 당선인의 ‘인선작품’을 통해 파노라마처럼 펼쳐질 차기정권 5년의 미래를 그려보게 된다.

불행히도 대선 직후 40여일간 진행된 당선인의 각종 인사는 기대보다는 실망을 안긴 것 같다. 예상치 못한 인사의 난맥상은 당선인의 인사스타일, 한발 더 나아가 의사결정 방식에 근본적인 의문을 불러온다.

당선인은 과연 누구와 상의하는 걸까. 누구로부터 추천받았을까. 무슨 근거로 그들을 선임했을까. 분명한 사실은 ‘나홀로 밀봉 인사’로 명명된 당선인의 인사스타일은 독특한 정치적 체험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당선인은 여당내 비주류로 정치활동을 하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위기를 돌파했다. 2002년 대선 차떼기 파문, 2004년 탄핵역풍, 2011년 돈봉투 사건 등 누란의 위기속에서 천막당사, 당명변경, 파격 인선 등 ‘박근혜표 성공방정식’으로 파고를 헤쳐나갔다.

20대 퍼스트레이디 시절엔 권부 내부에서 펼쳐지는 대통령 측근 그룹들의 은밀한 권력쟁투와 파국을 생생히 목도하며 권력운용의 기본원칙을 체득했다. 2인자나 측근의 발호를 차단하기 위해 직접 인사권을 장악해야 한다는 교훈은 이때 이미 확고해진 불문율로 자리잡은 듯 하다.

그래서일까. 대선 직후 일련의 인선 과정을 지켜보면 당선인에게도 다른 성공한 리더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지나친 자신감과 자기확신이 엿보인다. 노무현의 ‘코드인사’, 이명박의 ‘고소영인사’처럼 감정적 집착 때문은 아니지만 폐쇄된 상자 속에 갇힌 듯 기존 의사결정 방식을 고집스럽게 밀어붙이는 모습이다.

리더십과 의사결정에 관한 학계의 연구결과는 탁월한 리더들이 오판하는 과정을 오도된 경험과 예단(misleading experiences & prejudgements)이란 작동원리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이전 성공신화에 사로잡혀 독단적으로 자동차사업에 진출했다가 낭패를 당한 일, 대공황 시절 후버 미국 대통령이 균형재정이라는 기존 원칙에 집착해 과도한 긴축정책을 고수하다 경제를 망가뜨린 일 등은 똑똑한 리더들이 과거의 경험과 예단으로 오도된 의사결정을 내린 전통적인 사례들이다. 시드니 핀켈스타인 다트머스대 경영대 교수는 “자신의 능력에 의문을 갖지 않은 리더들은 환경변화 속에서도 기존의 동일한 방식만을 고집하려는 경향이 있다” 고 정리한다.

과거의 성공을 현재 상황에 그대로 접목할 수는 없는 일이다. 자신이 내세운 원칙을 무비판적으로 고수하게 되면 그에 부합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어긋나는 정보는 의도적으로 회피하면서 의사결정을 그르칠 수 있다. 아무리 훌륭한 리더라도 의사결정이나 정책결정 과정에서 견제와 균형이 따르지 않으면 모순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대통령 박근혜’의 공직인선이 ‘정치인 박근혜’의 당직인선과 분명히 달라야 하는 건 이 때문이다. 불투명한 절차에서 불필요한 의혹은 증폭되고, 밀봉 이후 터지는 파열음은 부메랑으로 돌아와불통의 이미지만 더욱 고착된다. 과거의 빛나는 성공경험과 확고한 원칙은 이젠 비판적으로 가다듬어 지금과 같은 달라진 무대, 달라진 배역에서 유연하게 적용하는 법을 모색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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