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관료 행복시대

  • 등록 2013-06-18 오전 7:00:00

    수정 2013-06-18 오전 7:00:00

[이데일리 송길호 정경부장] 관료제의 본질은 끊임없는 자기증식이다. 특권적 동종의식, 집단이기주의가 공직사회의 구조적 폐쇄성, 경직성과 결합되면서 관료들은 그들만의 생태계를 구축한다. 조직은 레드테이프(형식주의)가 횡행하고 권한은 독점, 공직은 전리품처럼 사유화되며 민주정치는 관료정치로 변질된다.

바야흐로 관료 행복시대다. 금융권과 공기업 산하기관의 최고경영자(CEO), 각종 협회의 임원· 감사 등 정부 입김이 미치는 주요 포스트는 관료일색이다. 재무부 출신 모피아의 금융권 접수만 눈에 띄는 게 아니다. 산(産)피아(산업통상자원부), 국(國)피아(국토교통부), 감(監)피아(감사원) 등 규제와 감독을 행사하는 부처의 유관기관 실속 있는 감투는 관료들의 노후보장용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관료전성시대의 도래는 정부 조각과정에서 이미 예고됐다. 내각과 청와대 1급이상 정무직 4명중 3명이 관료출신이다. 이들을 구심점으로 각 부처의 관료 선후배들은 은밀히 밀고 당기며 그들의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관치금융, 전관예우, 바람막이, 방만경영…. 관료출신 CEO에게 따라붙는 불편한 꼬리표들이 국민행복시대를 표방한 박근혜정부에서 더 심하게 부각되고 있는 건 아이러니다.

박 대통령의 관료선호는 체험의 정치학이다.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고시출신 엘리트관료를 앞세워 고도성장을 이끌던 개발연대의 기억이 의식 저 깊은 곳에 잔영으로 남아 있는 듯 하다. 여기에 관료출신정치인이 공기업과 금융기관의 주요 인사를 주무르는 인사위원장을 맡고 있으니 관료들은 그야말로 날개 단 형국이다.

권력의 최상층부에서 내려다보면 관료는 정권의 든든한 후원군이다. 영혼은 없다지만 조직과 예산, 해당 분야의 법규와 규제에 정통하니 그 분야의 전문가라고 불릴만 하다. ‘참여 OO보고서’, ‘녹색 OO보고서’, ‘창조OO보고서’ 등 유사한 콘텐츠를 정권의 구미에 따라 색다르게 포장하는 그 눈치와 처세, 순발력은 거의 달인 수준이다.

반면 민초들의 눈으로 보면 관료는 갑(甲)중의 갑이다. 권부(權府)에 대해선 ‘예스 맨(yes man)’ , 민(民)에 대한 이미지는 ‘노 맨(no man)’ 에 가깝다. 정권에 대한 충성을 대가로 국민 위에 군림하는 완장찬모습. 바로 핵심 메카니즘은 규제다.

현직(現職)은 규제의 칼날을 세우고 전직(前職)은 그 칼날을 무디게 한다. 규제와 재량이 확대될 수록 관치는 심화되고 전관의 자리는 그에 비례해 늘어난다. 규제의 관할권이 늘어나면 퇴직 후 따뜻한 노후보장을 기대할 수 있으니 ‘파킨슨의 법칙’은 이 곳에도 예외없이 적용된다. 전·현직 관료들의 팀플레이는 규제행정을 고리로 완벽한 관료생태계를 구축하는 꼴이다.

2008년 1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일본의 대장성 개혁 모델을 언급하며 관료주의 타파를 공언했다. 그러나 집권 5년 동안 철옹성 같은 집단 보호막, 공생 유착을 통한 관료집단의 기득권은 더욱 단단해졌다. 친(親)시장, 작은정부를 내세운 정권에서도 관료마피아의 파워는 건재했던 셈이다. 최고 권력이라도 노련한 관료들이 각종 논리로 구축한 집단이익의 아성을 무너뜨리는 건 역시 녹록지 않은 일이다.

어느 집단이든 진입장벽이 높고 폐쇄적이면 썩은 물이 고인다. 고시라는 진입장벽에 이어 정실과 연고주의의 벽에 둘러싸인 관료조직은 탄력과 생동감을 잃을 수밖에 없다. 관료의 전문성도 필요하지만 무분별한 낙하산 인사와 터무니없는 전관예우, 원칙 없는 규제의 칼날을 휘두르는 관료들의 전횡을 적절히 통제할 수 있는 리더십이 더욱 절실하다.

주인에게 봉사해야 할 공복(公僕)이 주인자리를 차고 앉아 나라를 온통 그들만의 리그로 만들고 있다. 국민행복시대에 공무원만 행복한 나라, 시스템이 아닌 관료에 의해 문제가 풀리는 나라, 충성을 받는 듯하지만 실상은 바로 그 관료들에게 휘둘리는 나라. 2013년 대한민국은 ‘관료의, 관료에 의한, 관료를 위한’ 관료공화국으로 전락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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