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의 파고가 점차 거세지고 있다. 일명 일감몰아주기 규제법·금산분리 강화법·프랜차이즈법 등 이른바 경제민주화 3법은 강력한 규제의 날개를 달고 6월 국회를 가볍게 통과했다. 남양유업 방지법·신규순환출자 금지법 등 일련의 법안들도 규제의 칼날을 다듬으며 9월 정기국회를 기다린다. 지난해 대선과정에서 경쟁적으로 경제민주화를 구호로 내걸었던 정치권은 이제 그 실현 방안을 둘러싼 격론으로 치열하게 대립한다.
경제민주화는 시대정신이다. 고도압축성장시대의 그림자인 경제생태계의 불공정을 바로 잡기 위한 공정의 레토릭이다. 시장의 실패를 ‘보이는 손’으로 재단하려는 정치권력의 의지, 그리고 특권적인 경제권력의 전횡과 반칙에 분노한 일반 국민의 정서적 공감대가 절묘하게 합치된 공존· 공생· 상생의 철학이기도 하다.
모든 규제는 선의로 포장된다. 하지만 규제의 획일성· 경직성은 필연적으로부작용을 잉태한다. 더욱 불행한 건 역진성이다. 한번 만들어진 규제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실패한 규제를 치유하기 위해 또 다른 규제가 나타난다. 규제가 도입되면 그에 따른 이해관계가 형성되고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파워계층은 해당 규제를 더욱 공고히 하게 마련이다.
친기업, 친시장을 표방하며 ‘전봇대 규제’의 철폐를 공언하던 이명박정부 시절 규제의 총량이 가장 크게 늘어난 건 우연이 아니다. 출범 직전 규제건수 5116건, 5년만에 1만3914건으로 1만건 가까이 급증했다. ‘손톱 밑 가시를 뽑겠다’고 장담한 박근혜정부에서도 이 같은 모순은 이어질 조짐이다. 국회의 과잉 규제입법이 넘쳐나면서 출범 3개월만인 지난 5월말 기준으로 882건, 그동안 일몰 등으로 없어진 규제를 감안하면 1338개의 규제가 신설됐다(규제개혁위원회 분석). 경제민주화의 바람을 타고 규제는 물밑에서 독버섯처럼 무럭무럭 증식하고 있는 꼴이다.
공명심으로 무장한 정치권이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규제의 칼끝은 어디로 향할까. 모두들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고 착각들 하지만 그들의 제한된 시야에서 만들어진 인위적이고 거친 규제의 칼날은 의도하지 않는 공익의 훼손을 초래하는 건 아닐까. 기대효과보다 역효과가 큰 규제, 기회주의적 탈법을 조장하는 규제, 특정가치에 매몰돼 다른 폭넓은 가치를 잃어버린 규제,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일면만 바로보는 바로 그 근시안적인 규제. 경제민주화 실현과정에서 드러난 ‘입법버블‘의 혼란과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 몫으로 돌아오는 건 아닌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