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금산분리의 정치학

  • 등록 2015-03-26 오전 6:00:00

    수정 2015-03-26 오전 6:00:00

[이데일리 송길호 금융부장] 일부 경제적 규제는 편향된 이념의 산물인 경우가 많다. 해당 규제의 근거가 되는 신념체계는 곧 정의로 포장되고 이를 고수하려는 정파는 대립되는 의견을 신랄하게 압박한다. 당연히 규제 효과에 대한 경제적 비용편익 분석은 도외시되고 관련 논의는 정치적으로 변질되는 법. 규제정책의 기본방향을 결정하는데 이 같은 오도(誤導)된 신념체계가 작동하면 해당 규제는 점점 경직화·교조화된다.

임종룡표 금융개혁이 발진했다. ‘금융개혁 혼연일체’(金融改革 渾然一體). 메시지엔 비장감이 감돈다. 금융회사의 경영자율 보장·금융권 인사 불개입·건전성 규제 완화·중복업무 폐지…. 개혁의 불꽃은 이미 점화됐다. 혁신을 저해하는 적폐, 불필요한 각종 규제 정비를 위해 한발짝씩 전진하는 모습이다.

사실 전임 신제윤 위원장이 개혁을 등한시한 건 아니다. 각종 규제를 풀려 노력했고 금융생태계의 변화에도 적절히 대응하려 했다. 하지만 피부로 느낄만한 성과가 보이지 않은 건 정공법을 택하지 않고 변죽만 울렸기 때문이다. 창조· 통일·기술. 이른바 금융에 현란한 레테르를 붙이고 혁신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그 기반이 되는 핵심적인 규제는 정조준하지 않았던 거다. 바로 금산분리(金産分離) 원칙이다.

금산분리, 정확히 표현하면 은산분리(銀産分離)는 해묵은 정책과제다. 산업·금융자본의 엄격한 분리를 통해 금융시스템의 안정을 모색하자는 선의의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규제 강도가 국제적으로 최고 수준인데다 융합이 대세인 급변하는 금융생태계에선 현실과 괴리된다는 반론도 설득력 있다. 문제는 이 원칙을 어떻게 유연히 적용하느냐에 따라 전체 금융개혁의 성패가 좌우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 등 일련의 금융혁신 작업은 은행업에 대한 진입장벽으로 지지부진한 상태다. 자금력이 풍부한 국내 산업자본을 배제한 채 인수주체를 찾다보니 우리금융 매각문제도 10년 넘게 표류하고 있다. 그럼에도 금산분리 원칙을 섣불리 공론의 장으로 이끌어내지 못하는 이유는 정치적 폭발성 때문이다. 반 재벌정서가 팽배한 특정 정파에서 원칙의 완화를 ‘친 재벌’로 몰게 되면 냉철한 경제적 논의는 설 자리를 잃고 결국 정치공방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 금산분리 원칙은 이미 정치적 어젠다로 화석화된지 오래다. 은행 대주주의 의결권 한도를 10%로 제한한 1960년대 이후 금산분리의 강도를 나타내는 보유주식 한도비율은 정치적 환경에 따라 고무줄처럼 달라졌다.친기업을 표방하던 이명박정부시절 4%에서 9%로,경제민주화 바람이 거세게 불던 박근혜정부 초기 다시 4%로 돌아간 점은 단적인 예다.

정치적으로 첨예하게 대립되는 정책을 다루는 관료들에겐 기존 입장을 고수하려는 유인이 이를 합리적으로 개선하려는 인센티브를 압도한다. 이전의 조직논리를 따르는 편이 재량권에 대한 책임, 그에 따른 리스크를 떠안는 것보다 단기적으로 비용이 덜 들고 정치적으로도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신제윤 전 위원장이 재임시절 금산분리 문제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며 일정 선을 긋고 임종룡 위원장이 인사청문회에서 전임자의 논리를 답습하는 모습은 이 같은 보신주의의 발현은 아닌지 모른다.

수십년간 지속된 공고한 규제, 찬반양론이 분명한 화약고 같은 규제에 칼날을 들이대는 작업은 물론 전략적 유연성을 필요로 한다. 그렇다고 ‘금융 개혁의 적기이자 마지막 기회’라고 스스로 데드라인을 정한 지금, 심장부를 외면한 채 여전히 외곽만 때려서야 개혁의 꽃을 피우기는 어렵다. 선제적으로 금산분리 문제를 공론화하고 변화된 현실에 맞게 적절한 해법을 모색하는 일, 바로 임종룡표 금융개혁의 도화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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