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불통' 청와대, '예스맨' 참모

  • 등록 2013-05-21 오전 7:00:00

    수정 2013-05-21 오전 8:26:10

[이데일리 송길호 정경부장] 점점 복잡해지는 정치적 환경에서 위기관리는 정권의 명운으로 이어진다. 위기는 100% 예측할 수 없고 제거할 수도 없다. 위기 발생 확률을 최소화하고 설령 현실화되도 적절한 상황관리를 통해 파문을 빠르게 잠재우는 일, 한발 더 나아가 기회로 전환시키는 대반전이 위기관리의 핵심명제다.

윤창중 주연 청와대 참모진 조연의 19금(禁) 저질 막장 드라마가 끝 모르게 이어지고 있다. 알코올과 섹스에 탐닉한 권력, 권력 엘리트들간 치졸한 진실공방, 책임 떠넘기기를 통한 이전투구. 황색 저널리즘을 통해 투영되는 불편한 진실들이 파노라마처럼 무대위에 펼쳐진다.

드라마는 3부작으로 재구성된다. 벼락감투에 들떠 본분을 망각한 50대 공직자의 비행(卑行), 권부의 사건 무마·축소·은폐 의혹, 그리고 파장을 잠재우기 위한 권부의 미숙한 대응.

드라마의 막을 올린 윤 전 대변인은 이제 국민 정서법상 회복 불능의 단죄를 받았다. 대다수 여론의 반대를 뚫고 그를 발탁한 대통령도 지금 극도의 배신감을 느끼며 톡톡히 대가를 치르고 있다. 무대 위의 조명은 부실과 무능의 종합판, 대한민국 청와대로 이동한다.

이번 돌발위기에 직면한 청와대의 대응성적은 ‘F학점’이다. 관제탑은 무너졌고 조직은 불협화음을 드러내며 우왕좌왕의 연속이었다. 지휘자 없는 부실한 팀워크, 선수들의 무사안일 무능무치 때문이다. 전략적·선제적 대응 없이 이리저리 떠밀리며 전체적인 상황을 통제·관리하는데 실패한 결과다.

정치적 위기관리는 국민 설득의 과정이다. 성패는 사건 발생 첫 24시간에 달려 있다. 이성은 없고 감성과 자극이 지배하는 혼돈의 상태. 이를 정면돌파하기 위한 기본 전략은 3단계로 진행된다. 위기관리팀을 신속히 구성하는 일, 대응 목표를 명확히 설정하고 사실관계에 따라 정교하게 스토리를 구성하는 작업, 그리고 전 구성원이 통일된 메시지로 국민을 설득하는 일련의 프로세스다.

동맥경화에 걸려 있는 청와대에 이 같은 체계적인 대응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대통령 심기보좌를 위해 하루 넘게 진행된 늑장보고, 국민 앞에 서서 뜬금없이 대통령을 향해 고개를 떨구는 어설픈 모습, 홍보수석·비서실장·대통령으로 이어지는 찔끔찔끔 사과 퍼레이드. 이 모든 장면은 지금 청와대의 보이지 않는 장막, 경직된 분위기, 꽉 막힌 소통수준을 반영한다.

각 부분을 합쳐 놓은 전체의 통합된 힘이 플러스가 아닌 마이너스로 나타났다면 이는 리더십의 문제다. 궁극적으로는 대통령의 몫이겠지만 청와대 참모진을 이끌고 있는 리더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지겠다”는 대 국민 사과는 책임질 일이 드러나지 않았으니 버티고 보겠다는 의미로 들린다.

선거와 권력투쟁에 유능했던 참모가 반드시 국정운영에도 베스트는 아니다. 1993년 5월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집권 100여일만에 ‘불통논란’으로 지지도가 급락하자 백악관 재편을 통해 위기를 돌파했다. 대변인을 맡고 있던 최측근 조지 스테파노폴로스를 막후 참모로 돌리고, 닉슨·포드·레이건 등 역대 공화당 정부에서 공보를 담담했던 데이비드 거겐을 대통령 고문 겸 공보담당 책임자로 전격 발탁했다. 거겐의 활약으로 지지율 반등에 성공한 클린턴은 재선가도를 향해 힘차게 질주한다.

대통령의 부족한 점을 채우기 위해 참모들이 있다. 대통령과 참모들간 유기적인 팀 리더십, 공유의 리더십, 배분의 리더십이 통합적으로 구현돼야 청와대에 활력이 넘친다.

기강해이, 역량부족으로 중심을 잃고 표류하는 지금 청와대는 과연 이 같은 파트너십을 이룰 수 있을까. 직언(直言)· 고언(苦言) 없이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는 참모진이 대통령의 ‘나홀로 리더십’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인가. 최고의 권력 엘리트 집단 청와대에선 지금, 무능 무소신 무치의 인사들이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며 주군(主君)을 더 깊은 구중궁궐(九重宮闕) 속으로 밀어넣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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