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지도에도 없는 길

  • 등록 2014-09-15 오전 7:01:00

    수정 2014-09-15 오전 7:01:00

[이데일리 송길호 정경부장]경기부양은 마약과도 같다. 지금 이 순간 달콤한 혜택을 톡톡히 누릴 수 있지만 그 비용과 후유증은 미래에 교묘히 전가되며 더 큰 폐해를 낳기 때문이다. 경제정책은 그래서 허약한 체질을 개선할 수 있는 근본적인 처방전을 제시해야 한다. 단기적인 내수진작책과 장기적인 구조개혁의 유기적인 작동, 바로 경제정책의 앙상블이다.

빚더미에 짓눌린 재벌, 관치와 부실로 얼룩진 금융, 경직화된 노동, 철밥통 공공…,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한국경제는 만신창이였다. 집도의로 나선 김대중정부는 위기를 지렛대로 삼아 과감히 메스를 들이댔다. 그러나 오래가지 않았다. 2001년 8월, IMF 체제 조기 졸업을 선언하면서 분위기는 확 달라졌다. 대대적인 내수부양을 위해 신용카드 버블을 조장하는 등 무리한 정책기조가 이어진거다. 개혁의 덫에 발목이 잡힌 정부로선 임기말이 점차 다가오면서 국민이 직접 체감할 수 있는 당장의 성과가 필요했을 터. 누적된 적폐를 해소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 ‘위장된 축복’이 될 수도 있었던 전방위 구조개혁 작업은 그렇게 미완의 개혁으로 끝났다.

경제정책은 근시안적인 인기영합의 유혹에 항상 노출돼 있다. 관료도 장관도 대통령도 짧은 임기내에 일정한 성과를 보여주고 싶은 유인이 크다. 그래서 친구보다 적을 더 많이 만드는 인기 없는 구조개혁은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경우가 많다.

경기흐름을 장기적인 시각으로 보면 한국경제는 이미 구조적인 저성장기조에 접어들었다. 2000년대 들어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까지 8년간 실질 성장률은 연평균 4.6%, 이후 5년간 3.2%로 뚝 떨어졌다. 4∼5%대 수준이던 잠재성장률이 위기의 파고를 겪으며 3%대로 하락한 상태다. 부채의 덫에 빠진 가계, 성장모델을 상실한 기업, 여기에 저출산 고령화 현상이 초래한 각종 구조적 요인이 겹치며 성장동력이 약화된 결과다.

문제의 본질이 경기순환적인 일시적 침체가 아니라면 지금 한국경제에 대한 처방은 달라져야 한다. 경기대응적인 거시정책이나 부동산시장 활성화 같은 미시대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유효수요를 늘리기 위한 케인즈적 수요진작책 뿐 아니라 경제의 혁신을 유발할 수 있는 구조개혁, 바로 장기적인 공급능력을 향상시키는 포석이 절실하다는 얘기다.

최경환경제팀은 경기회복의 불씨를 살리는데 집중하다 보니 근시안적 처방에 집착하는 것 같다. 재정적자의 무리한 감수, 자산효과를 유도하기 위한 부동산시장 활성화, 기업 소득을 가계로 이전하는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방식 등은 실효성도 의문이지만 근원적 처방은 될 수 없다. 체감경기 개선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했지만 계량적으로 환산되는 성장률에 여전히 연연하는 모습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을 흘려보낸 건 경기부양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1985년 플라자합의 후 엔화절상으로 구조적 한계가 노정되던 시절, 저출산 고령화의 질곡속에 저성장 기조의 고착화 현상이 짙게 드리워진 바로 당시의 위기상황을 경기순환적 요인으로 오판하며 구조개혁을 등한시한 결과다.

‘지도에도 없는 길’은 어쩌면 그동안 알면서도 두려워 일부러 외면했던 그 길인지 모른다. 서비스업 육성을 위한 규제혁파와 공공기관 정상화, 연금제도 정비, 유연한 노동시장을 위한 제도개선은 이해집단과의 전면전을 각오해야 하는 고난의 과정. 하지만 지속 성장을 위해 그리고 우리의 미래세대를 위해 이 같은 일련의 개혁작업은 불가피한 투자의 과정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눈앞의 성과에 급급해 구조개혁 없이 경기활성화에만 매몰되다가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길을 답습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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