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60대 김모씨는 지난 3월 ‘카드가 발급됐는데 집에 계시느냐’고 연락을 한 목소리를 잊지 못한다. 그런 적이 없던 김씨는 모르는 일이라고 했지만 2~3차례 정체불명의 카드 결제 문자가 도착했다. 수화기 너머의 피싱범은 김씨에게 ‘사기를 당한 것 같다. 내가 보내주는 앱을 깔고 대응하라’고 했다. 그리고 이틀 만에 노후자금으로 모아뒀던 현금 5억원을 모두 날려버렸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김씨는 수차례 경찰이나 금융감독원에도 전화를 해봤지만 피싱 일당은 악성 앱을 통해 그 전화를 ‘가로챘고’ 김씨가 의심할 수 없게 만들었다.
과거 ‘아무나 걸려라’식 문어발 보이스피싱이 이제는 특정 연령대에 맞춘 시나리오로 대규모 조직이 피해자를 속이는 ‘조직형 보이스피싱’으로 점차 발전하고 있다. 특히 신기술 접근성이 낮고 노후를 위해 비교적 많은 자금을 모아둔 60대 이상 노인들이 대표적인 타깃이 되고 있다. 경찰과 금감원 등 관계기관이 피싱에 팔을 걷어붙인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범죄 기술이 진화하면서 다시 피해가 커지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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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가 만난 60대 이상 고령의 피해자들은 ‘속을 수밖에 없는 범죄’라고 입을 모았다. 단순히 전화 한통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조직적으로 며칠에 거쳐 ‘작업’을 하기 때문이다. 인천 부평에 거주하는 70대 여성 A씨는 지난해 크리스마스에 3억원이 넘는 돈을 뜯겼다. A씨는 악성 앱 설치가 꺼려져 망설였지만 검사와 경찰로 분장해 연극을 한 일당은 영상통화를 통해 A씨를 속였다. 이들은 은행이 거액 인출을 의심할 가능성까지 고려해 ‘땅을 사기 위해 돈을 찾는다’고 말하라고 직접 지시하기도 했다. 결국 앱 설치까지 하게 한 이들은 수표로 3억원 이상의 돈을 받고 사라졌다.
‘악성 앱 막기’ 총력 나선 경찰…보피는 계속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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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악성 앱 탐지 기술 개발 등 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기술의 발전과 함께 보이스피싱 범행은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딥보이스’다. 딥보이스란 인공지능(AI) 기반 음성합성기술로 특정 인물의 목소리를 복제하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달 도봉구에서 중년 여성 C씨가 ‘엄마 이상한 사람들이 나를 차에 태워서 갔다’는 전화를 받았다. 보통 이같은 범행은 단순히 우는 소리를 내고 대화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게 보통인데 C씨의 경우 딸과 똑같은 목소리와 직접 대화까지 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녹음파일을 확보해 확인은 못했지만 딥보이스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