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박근혜정부 성장불감증

  • 등록 2013-09-04 오전 7:00:00

    수정 2013-09-04 오전 7:00:00

[이데일리 송길호 정경부장] 경제정책은 복잡하고 미묘한 퍼즐게임과 같다. 큰 그림을 그리고 미세한 조각들을 단계적으로 맞춰 나가는 전략적인 접근이다. 거시정책과 미시정책의 연결고리가 원활히 유기적으로 작동해야 정책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고차방정식이기도 하다. 경제정책의 운용과 비전에 대한 청사진 없이 파편화된 정책들이 남발되면 정책의 일관성은 떨어지고 불확실성은 심화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드라이브’가 화려하게 펼쳐지고 있다. 민생, 일자리, 경제활성화의 메시지가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10대그룹 총수와 중견기업 회장들과의 회동은 하이라이트다. 붉은색 투자활성화복을 입고 ‘기(氣)살리기’를 통해 투자를 독려하는 모습, 재계는 투자목표를 끌어올리며 화답한다. 6월 경제민주화 입법 이후 여름을 지나면서 경제활성화로 확실히 방향을 틀고 있다.

경제살리기 행보는 역설적으로 한국경제가 좀처럼 활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가계는 빚의 덫에 걸려 지갑을 풀지 않고 기업은 규제의 덫에 발목 잡혀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공교롭게도 경제를 움직이는 3주체 중 정부만이 돈 풀고 산발적인 대책 내놓으며 고군분투하는 형국이다.

특이한 현상은 대통령도 부총리도 관료들도 공식석상에서 더 이상 ‘성장’의 메시지를 강조하지 않고 있는 점이다. 경기회복을 위한 정책적 노력을 경제활성화, 경제살리기라는 표현으로 대체할 뿐 성장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경제정책의 유일한 계량적 목표도 ‘고용률 70%달성’일 뿐이다. 일종의 성장 불감증(不感症), 성장 트라우마(trauma·정신적 외상)다.

역대 정부의 경제정책 목표는 성장률로 집약됐다. 2000년대 저성장기조에 접어들면선 통상 5% 성장, 이른바 잠재성장률 수준이 가이드라인이었다.경제가 기초체력에 걸맞게 ‘파이’를 키워야 지속적으로 일자리가 창출되고 살림살이도 나아질 것이라는 일종의 정책적 지향점이다.

이젠 성장 운운하면 시대착오적인 발상으로 치부되는 분위기다. 경제의 고용창출 능력이 약화되고 성장의 과실이 일부 계층에만 돌아가면서 ‘성장은 곧 국민행복’이라는 등식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기 때문일 터이다. 집권당시 7%대의 무리한 성장공약을 내걸며 국민 신뢰를 떨어뜨린 이전 정부들과의 차별화를 위해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하지 않는 편이 유리할 것이라는 정무적 판단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산술적인 성장률에만 매달리는 건 분명 근시안적인 태도다. 하지만 원대한 성장전략, 성장 패러다임의 제시 없이 산발적인 대책에만 몰두하는 건 더 큰 부작용을 낳는다. 전반적인 정책효과는 약화되고 경제의 저성장기조는 더욱 고착화될 수 있다. 대통령의 정책 의도와는 달리 이미 현장에선 엇갈린 정책신호들이 혼선을 야기하고 있다.

“찔끔찔끔 아닌 확 풀어야 한다” 며 대통령은 대규모 규제완화를 공언하지만 각 부처는 상법개정안, 화평법(화학물질 등록·평가에 관한 법률) 제정안 등 과잉 규제입법을 양산한다. 한쪽에선 “기업옥죄기는 없다”며 재계다독이기에 나서는데 정작 기업들은 각종 세무조사, 불공정거래조사에 울상이다. 각각의 정책은 단면적으로는 합리적이지만 큰 틀에서 보면 오류와 충돌의 연속인 셈이다.

기계적인 공약 이행보고서가 아닌 국가경제의 비상(飛上) 을 이끌어낼 비전과 운용전략이 필요하다. 그랜드플랜(Grand Plan)을 마련하고 제약조건에 따라 정책의 우선순위를 조정하며 구체적인 실행 로드맵을 제시할 일이다. 단선적 시각을 넘어선 통합적 접근, 총론과 각론의 유기적 연계, 거시정책과 미시정책의 조합이다.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이끌어내야 할 근혜노믹스. 경제정책의 컨트롤 타워는 이미 오작동인데 경제운용의 이정표마저 보이지 않는다.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부총리도, 정책 생산자인 관료도, 정책고객인 기업도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며 일희일비하고 있다. 경제부흥의 찬가는 울려퍼지는데 조타수도 나침반도 없는 한국경제호(號)는 대내외 불확실성의 파고 속에 과연 어디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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