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대출 총량규제의 덫

  • 등록 2017-02-02 오전 6:00:00

    수정 2017-02-02 오전 11:15:09

[이데일리 송길호 금융부장] 신용(credit)과 부채(debt)는 동전의 양면이다. 모두 돈을 빌린다는 의미를 내포하지만 관점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신용은 밝은 미래를 여는 기회의 창, 부채는 어두운 미래를 저당잡힌 족쇄처럼 보인다. 동일한 대출이라도 경기 상승기에는 신용, 경기 하강기에는 부채다. 대출의 이중성, 양면성이다.

정부가 대출 총량규제를 공언했다. 올해 경제정책방행에서 가계부채 증가율을 한 자릿수로 묶겠다고 밝혔다. 리스크관리를 위해 금융시스템의 가장 큰 불안요인인 가계부채를 획일적 일률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얘기다. 은행들도 화답한다. 금융당국에 제출한 관리계획서에서 평균 6%를 마지노선으로 정했다. 폭증하는 부채에 화들짝 놀란 정부, 부실 대차대조표에 고심하는 은행. 모두 뒤늦게 호들갑이다.

통상 정책당국이 제시하는 적정 가계부채 증가율은 경상성장률(실질성장률+물가상승률)수준이다. 경제의 몸집이 불어나는 만큼 부채가 늘어나면 관리 가능하다고 본다. 2014년 여름 최경환 경제팀 출범 이후 이 같은 기조는 급격히 무너졌다. 부동산시장 활성화를 통한 성장전략으로 대출은 급증했다. 2013∼2014년 전년비 5∼6% 증가율로 경상성장률(4% 전후)과 큰 차이 없던 가계부채 증가율은 2015∼2016년 10%대를 상회하며 통제 범위를 훌쩍 넘어선다.

금리인상기 가계부채 관리는 절체절명의 과제다.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빚을 방치했다간 2000년대초 신용카드 버블붕괴의 악몽이 재연될 수 있다. 문제는 방법과 타이밍이다.

대출 총량규제는 금융선택권을 무차별적으로 제한하는 일. 대출수요 총량불변의 법칙에 따라 보수적인 여신담당자들은 저신용 할당분부터 강제적으로 쳐낼 수 밖에 없다. 실수요자들이 대출전선에서 밀려나는 일은 물론이다. 저소득· 저신용 이른바 한계계층은 2금융권, 그리고 비제도권으로 풍선처럼 떠밀리며 대출절벽에 직면할 공산이 크다.

특히 너도 나도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는 지금 같은 경기 하강기 대출 옥죄기는 흥청망청 경기 상승기와는 또 다르다. 가뜩이나 팍팍한 이들 취약계층에겐 비올 때 우산 뺏기는 격이다. 더욱 큰 문제는 금융시장 전체의 신용경색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돈맥경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 신용시장이 더욱 얼어붙으면 가계나 기업의 자금난은 불을 보듯 훤하다.

이 같은 사실을 모를리 없는 정부가 대출 총량규제에 집착하는 건 미봉차원의 편의주의적 발상으로 보인다. 일도양단(一刀兩斷), 단기간에 가시적 성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부작용은 부메랑으로 돌아와 경제체제의 저 밑바닥에서부터 균열을 일으킨다.

대출 총량규제는 정책 쏠림 현상의 단면이다. 일반 시장의 플레이어들처럼 정부 정책도 분기점을 넘어 일정 균형이 무너지면 한 방향으로 몰리는 경향이 있다. 부동산시장 활성화와 가계부채 관리 사이에서 냉·온탕 정책을 반복하는 모습. 밀턴 프리드먼이 정부의 부적절한 시장개입의 예로 들었던 바로 그 샤워실의 바보(fool in the shower room)와 다를 바 없다.

대출 총량규제, 신중히 접근할 일이다. 위기 조짐이 보이면 정책당국은 대출 선택권을 제한하고 강도 높은 규제의 유혹에 빠지게 마련. 단선적 규제만으로 시장의 왜곡이 제대로 잡힐리 없다. 경기하강기 금리상승이라는 복합적 신호와 다양한 정보, 이에 따른 은행과 대출자의 합리적 대응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대출관리가 이뤄져야 한다. 경직된 잣대로 빗장을 걸어 잠가 불필요하게 금융 선택권을 제한하는 일, 바로 과잉규제의 전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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