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대출 총량규제를 공언했다. 올해 경제정책방행에서 가계부채 증가율을 한 자릿수로 묶겠다고 밝혔다. 리스크관리를 위해 금융시스템의 가장 큰 불안요인인 가계부채를 획일적 일률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얘기다. 은행들도 화답한다. 금융당국에 제출한 관리계획서에서 평균 6%를 마지노선으로 정했다. 폭증하는 부채에 화들짝 놀란 정부, 부실 대차대조표에 고심하는 은행. 모두 뒤늦게 호들갑이다.
통상 정책당국이 제시하는 적정 가계부채 증가율은 경상성장률(실질성장률+물가상승률)수준이다. 경제의 몸집이 불어나는 만큼 부채가 늘어나면 관리 가능하다고 본다. 2014년 여름 최경환 경제팀 출범 이후 이 같은 기조는 급격히 무너졌다. 부동산시장 활성화를 통한 성장전략으로 대출은 급증했다. 2013∼2014년 전년비 5∼6% 증가율로 경상성장률(4% 전후)과 큰 차이 없던 가계부채 증가율은 2015∼2016년 10%대를 상회하며 통제 범위를 훌쩍 넘어선다.
금리인상기 가계부채 관리는 절체절명의 과제다.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빚을 방치했다간 2000년대초 신용카드 버블붕괴의 악몽이 재연될 수 있다. 문제는 방법과 타이밍이다.
특히 너도 나도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는 지금 같은 경기 하강기 대출 옥죄기는 흥청망청 경기 상승기와는 또 다르다. 가뜩이나 팍팍한 이들 취약계층에겐 비올 때 우산 뺏기는 격이다. 더욱 큰 문제는 금융시장 전체의 신용경색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돈맥경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 신용시장이 더욱 얼어붙으면 가계나 기업의 자금난은 불을 보듯 훤하다.
대출 총량규제는 정책 쏠림 현상의 단면이다. 일반 시장의 플레이어들처럼 정부 정책도 분기점을 넘어 일정 균형이 무너지면 한 방향으로 몰리는 경향이 있다. 부동산시장 활성화와 가계부채 관리 사이에서 냉·온탕 정책을 반복하는 모습. 밀턴 프리드먼이 정부의 부적절한 시장개입의 예로 들었던 바로 그 샤워실의 바보(fool in the shower room)와 다를 바 없다.
대출 총량규제, 신중히 접근할 일이다. 위기 조짐이 보이면 정책당국은 대출 선택권을 제한하고 강도 높은 규제의 유혹에 빠지게 마련. 단선적 규제만으로 시장의 왜곡이 제대로 잡힐리 없다. 경기하강기 금리상승이라는 복합적 신호와 다양한 정보, 이에 따른 은행과 대출자의 합리적 대응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대출관리가 이뤄져야 한다. 경직된 잣대로 빗장을 걸어 잠가 불필요하게 금융 선택권을 제한하는 일, 바로 과잉규제의 전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