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괴롭혀온 '나쁜 엔저', 터널 끝 보이나[김보겸의 일본in]

엔·달러 환율, 지난해 10월 151엔→130엔대로
수입물가-수출물가 차이, 30%p→13%p로 줄어
올해 美연준 금리인상 중단하면 엔화절상 속도↑
  • 등록 2023-01-09 오전 7:45:06

    수정 2023-01-09 오전 7:45:06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어진 ‘역대급 엔저(엔화가치 하락)’에 언젠가 오르길 기다려온 엔화 투자자들이 반길 만한 소식이 들려온다. ‘나쁜 엔저’에도 끝이 보인다는 분석이다.

실제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엔·달러 환율은 151엔대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올 들어 엔화 가치는 강세를 띠며 130엔대 언저리에서 움직이고 있다. 지난달 20일 일본은행이 사실상 기준금리 인상에 나선 영향으로 풀이된다.

물론 “아직도 엔화는 너무 싸다”는 평가도 있지만 앞으로도 엔화가 더 오를 것이란 전망을 뒷받침하는 지표가 있다. 수입물가와 수출물가 차이다.

‘나쁜 엔저’에도 끝이 보인다는 전망이 나온다. (사진=AFP)


일본 경제는 작년 특히나 힘든 시기를 보냈다. 미국을 시작으로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코로나19로 인해 높아진 인플레이션을 잡으려 줄줄이 기준금리를 올리는 가운데 일본은행만 나홀로 금융완화책을 고집하는 바람에 엔저가 지속된 탓이다.

원래대로라면 수출기업에는 호재가 됐어야 하는 상황이지만 변수가 등장했다. 작년 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면서다. 주로 밀을 생산하는 농업대국인 우크라이나의 수출 통로인 흑해를 러시아 함대가 가로막은 탓에 수출이 막혀 버린 것. 이 때문에 곡물과 원자재 가격이 치솟았다.

결국 수입 원자재 가격은 오르는데 엔화 가치는 떨어지면서 일본은 대규모 무역적자를 냈다. 무려 16개월 동안. 수출액보다 수입액이 커져버렸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일본 무역적자는 11월 기준으로는 역대 최대 수준인 2조274억엔을 기록했다.

악순환이 반복됐다. 투자자들은 엔화를 팔고 달러는 사들였다. 2022년 들어 급격하게 엔화 가치가 떨어진 건 일차적으로 미·일 금리차 확대 때문이지만, 매달 무역적자 수치가 발표되면서 ‘엔 매도·달러 매수’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엔화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역대급 저점을 찍었다.

지난해 10월 달러당 151엔을 찍은 엔화가 현재 130엔대 언저리로 가치가 절상했다.(사진=인베스팅닷컴)


하지만 이런 ‘나쁜 엔저’에도 끝이 보인다는 전망이 나온다. 모리타 쿄헤이 노무라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 8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올해 하반기에는 나쁜 엔저가 들리지 않게 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기대했다. 근거로는 수입물가 와 수출물가 차이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2022년 들어 30%포인트에 달했던 두 물가지표 차는 지난해 11월 13%포인트로 줄었다. 수입물가가 28.2% 오를 때 수출물가가 15.1% 상승하면서다.

수출입 물가 상승률 차이가 좁혀질수록 수출기업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역대급 엔저도 끝날 수 있다는 게 모리타의 설명이다. 수출기업들이 탄력을 받으면 무역수지가 개선되면서 엔화 매수 수요도 살아날 것이고, 무엇보다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올해 금리인상을 중단하면 엔화가치 절상이 더 속도를 낼 가능성도 커진다는 기대다.

물론 수년간 이어져 온 엔저 현상이 단박에 사라지진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엔화 가치 상승은 무역적자 개선을 전제로 하는데 ‘J커브 효과’가 기대에 못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통상 환율이 오르면 초기에는 무역수지가 악화됐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값싼 일본 수출품의 가격 매력도가 커지면서 무역수지가 개선되는데, 과연 올해 세계 경제가 일본 수출품이 싸다는 이유로 많이 사들일 정도로 좋아질지는 의문이라는 것이다.

카라카마 다이스케 미즈호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락하고 교역조건도 제한적으로만 개선될 여지가 높아 연내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단 시장은 급격한 엔고보다는 서서히 엔화가 절상되는 흐름을 전망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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