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길호의 Intuition] 정치권력과 재벌개혁

  • 등록 2012-11-14 오전 8:00:00

    수정 2013-02-28 오후 8:31:43

[이데일리 송길호 정경부장] 한국경제를 둘러싼 논쟁에서 재벌문제는 언제나 ‘뜨거운 감자’다. 민주화의 도도한 흐름속에 16년만에 직선제가 부활된 1987년 13대 대선 당시 김대중 평민당 후보는 급진적인 ‘재벌해체론’을 들고 나왔다. 이를 분기점으로 대선때마다 진보진영 후보들의 공약집엔 어김없이 재벌개혁이 맨 앞자리를 차지했다. 이번 18대 대선은 한발 더 나아가고 있다. 그동안 재벌체제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입장을 보이던 보수진영마저 경제민주화의 바람을 타고 재벌개혁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모습이다.

진보진영의 단선적인 시각으로만 보면 재벌은 독재의 비호하에 국가자원을 독점하고 노동자를 착취한 천민자본·매판자본·독점자본인지 모른다. 재벌은 그러나 분명 기술도 자본도 없는 최빈국(最貧國) 코리아가 단기간에 급속한 부(富)를 축적할 수 있도록 견인차 역할을 했던 경제의 성장엔진이었다. 그럼에도 재벌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한국사회에 팽배한 건 정치권력이 단순히 진보진영의 논리에 따라 재벌의 눈부신 업적은 애써 눈 감고 부정적인 모습만 집중적으로 부각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공정과 정의, 형평이라는 도덕적 가치와 사회적 책임성이라는 엄밀한 잣대를 들이댈때 재벌의 행태는 여전히 국민 눈높이엔 턱없이 부족한데 원인이 있는 듯 하다.

사실 권위주의 체제에서 재벌은 정경유착, 노동착취라는 두가지 고리를 통해 비난을 받았다. 민주주의 체제에선 총수의 전횡, 변칙적인 부의 대물림, 일감몰아주기, 하도급업체와의 불공정거래 등 모럴해저드나 기업 생태계 전반에 걸친 ‘반칙’과 ‘우격다짐’의 행태에 비난의 화살이 쏠리고 있다. 불행한 건 이 같은 적폐들이 ‘친기업정책’을 표방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들어 더욱 심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는 기업활동에 제약을 풀어준다는 명분으로 재벌들의 요청에 따라 출자총액제한을 풀었다. 그 결과 30대 그룹의 계열사는 5년간 40%(2007년 730개→2012년엔 1022개) 급증하며 ‘몸집’을 불렸지만 그만큼 재벌들이 투자를 확대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며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는 나오지 않는다. 계열사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결고리를 형성하고 있는 순환출자 구조도 일반주주들과의 형평성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노무현 정부 5년간 평균 1.32%였던 10대 그룹의 총수 지분율은 이명박 정부시절엔 1.05%로 더 떨어졌다. 전경련은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는 데 15조원 이상 필요하다고 항변하고 있지만 10대 재벌의 사내 유보금만 200조원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재벌개혁이 ‘반(反)기업정서’에 편승해 경제권력을 통제하려는 정치공학적 의도가 있다는 지적은 일정부문 사실일 것이다. 중도층 표심을 공략하기 위해 감정선을 자극하며 포퓰리즘적으로 접근하는 측면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재벌개혁은 만병통치약은 아니어도 한국경제와 재벌 스스로에겐 한 단계 도약을 위해 꼭 필요한 처방제임에 틀림 없다. 경제 전반에 공정과 정의, 형평의 가치를 내면화하고 시스템 리스크를 줄이며 기업생태계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선 산고(産苦)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젠 재벌이 답해야 할 때인 것 같다. 정치권의 개혁안중에 받아들일만한 것도 논의를 통해 절충점을 모색할만한 것도 있다. 정치·사회적 요구에 따라 스스로 변하지 않고 기득권을 유지하려고만 한다면 언젠가는 부메랑으로 돌아와 더 큰 화를 부를지 모른다. 정치권이 무자비하게 밀어붙이는 개혁안에 글로벌 기업으로 훌쩍 성장한 재벌들이 일방적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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