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증시는 재미없기로 유명하다. 최근 50년 중에 일본주식이 제일 싼 시기는 바로 지금이라는 평가마저 나온다. 코로나19로 유동성이 풀려 전 세계 증시가 자고 일어나면 치솟을 때에도 일본 대표지수인 닛케이225 지수는 1989년 12월 기록(3만8915.87)에 아직도 못 미치고 있다.
|
칼 빼든 도쿄증권거래소
2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도쿄증권거래소는 우량상장사가 모인 프라임마켓과 스탠다드 시장에 상장한 3300개사에 주가 수준을 분석하고 개선책을 발표하라고 요청했다.
주요 타깃은 일본 상장사 중 주가순자산배율(PBR)이 1배가 안 되는 기업들이다. 이들은 왜 PBR이 1배에 못 미치는지 원인을 분석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대응책을 발표해야 한다. 도쿄증권거래소는 구체적 방안이나 형식은 기업 판단에 맡길 계획이다. 단 계획을 발표하지 않아도 페널티는 없다.
페널티가 없어 다소 무딘 칼날처럼 보이지만 나름 작년부터 갈고닦은 방침이다. 지난해 12월28일 도쿄증권거래소는 시장재편 회의를 열고 침체하는 상장기업의 자기자본이익률(ROE)과 PBR을 어떻게 개선을 촉구할 것인지 논의했다. 이 같은 움직임이 알려지면서 기업들 사이에서는 ‘PBR을 개선하지 않는 기업은 상장 시장에서 강등되거나 토픽스에서 제외될 수도 있다’는 우려마저 나왔다.
PBR이 1배가 안 되는 기업들 중에는 대장주들도 포함돼 있다. 도요타자동차와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 미쓰비시상사 등 업계 대표선수들도 PBR 1배를 밑도는 게 일본 증시의 현주소다.
일본 거래소가 판도라의 상자를 건드린 이유도 여기 있다. 차라리 문을 닫는 게 나을 정도의 기업이 일본 증시에 너무 많다는 판단이다. 일본증시 상장사 가운데 PBR이 1배를 밑도는 기업은 절반에 달한다. 주요 기업들을 모아놓고 봐도 그렇다. 2022년 7월 기준 토픽스500를 구성하는 기업 중 PBR이 1배가 안 되는 종목은 43%에 달했다. 미국 S&P500 5%, 유로스톡600 24%보다 훨씬 높다.
|
왜 거래소가 시장가격에 개입하나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물론 있어 왔다. 기관투자자와 기업이 대화를 하고,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자본효율을 개선시키면 ROE와 PBR이 올라간다.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주주총회만 가 봐도 자본배치를 효율화하라는 기관투자자 요구와 “경영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며 방어하는 사측이 팽팽하게 맞선다. 닛케이는 “이런 현실 속에선 도쿄증권거래소 강제력이 중요해진다”고 짚었다.
낮은 PBR을 방치하는 건 결국 투자자 외면으로 이어진다는 위기의식이 거래소로 하여금 총대를 메게 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회사들이 기업가치와 주가를 끌어올리려는 의지가 없다고 판단한 투자자들은 결국 일본 증시에서 영영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쿄증권거래소가 시장 원리를 무시한다는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액션을 취한 건 이 때문이다. 거래소는 해외로부터 투자자금 유치해 기업 성장을 촉진시켜야 할 의무가 있어서다.
변화 조짐도 보이고 있다. 소극적이고 경직적인 조직 운영을 일삼는 ‘일본전통회사(Japanese Traditional Company)’의 조롱적 표현인 ‘JTC’의 큰형님 격인 다이닛폰인쇄(DNP)가 스타트를 끊었다. 지난 2월 ROE를 10%로 높여 PBR 1배 이상을 목표로 하겠다고 발표하면서다. 10년간 PBR 1배를 넘긴 적 없던 큰형님의 포부에 시장도 화답했다. 작년 연말 0.6배였던 PBR은 이 같은 발표에 0.9배까지 올랐다. 지지리도 안 올랐던 일본 증시, 욕 먹을 감수 하고 PBR 개선 계획 제출을 요구한 도쿄증권거래소의 노력은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