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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한반도에 쏟아진 폭우는 많은 기록을 남겼다. 서울 동작구에 하루 동안 내린 비는 381.5㎜. 1907년 서울 기상 관측 이래 115년 만의 역대급 물폭탄을 맞았다. 이번 비는 ‘반지하 주민’들을 덮쳤다. 서울에서 숨진 8명 가운데 4명이 반지하 거주자였다. 2018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반지하에 사는 사람의 29.4%가 기초생활수급자이고, 소득하위가구와 장애인 가구가 각각 15.5%, 청년가구 12.3%다. 기후 위기는 곧 인권의 위기인 것이다.
‘지구가 점점 더워지고 있다’는 과학자들의 진단이 나온 지 30여년이 지난 지금, 기후변화는 이제 먼 미래가 아니라 실재하는 위협인 것이다. 그러니 출판계도 예외일 수 없다. 요즘 자주 쓰이고, 잘 읽히는 책들을 보면 환경 및 기후 문제를 다룬 도서들이 적지 않다. 현재 기후 실태를 진단하는 것에서 나아가, ‘지금’ 사회와 기업, 개인이 무엇을 해야하고, 할 수 있는지 질문한다.
예스24에 따르면 환경 문제나 기후 변화를 주제로 한 책들의 판매량은 2017년 전년 대비 -4.8%였지만, 2018년엔 전년보다 14.5%, 2019년 12.7% 늘었다. 코로나19로 전 세계적 위기를 겪은 2020년엔 그 전해보다 188.3%나 판매율이 급증했고 지난해에도 전년 대비 17.5%로 크게 늘었다.
관련 도서들을 보면, 크게 환경 오염 및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관련 정책이나 연구 과제 등을 통한 제언을 담은 ‘기후 교양서’와 실천 가능한 생활방식을 제안하는 ‘기후 행동서’로 나눌 수 있다.
저자는 “‘모두 고기를 끊자’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면서 “다만 ‘지나침’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소와 닭, 돼지가 소불고기, 치킨, 삼겹살의 모습으로 우리 식탁에 오를 때까지 인간을 제외한 지구와 동물에 얼마나 부담을 안겼는지”라고 일갈한다.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창비)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맞물린 환경·인권위기의 연계를 탐색하며 악순환을 끊어낼 방안을 제시한다. 저자는 공존을 위해 인권 개념을 재구성해야 한다며 환경에 대한 인간의 권리를 넘어 비인간 생명체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자연의 권리’ 개념을 구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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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행동서의 등장은 더 많아졌다.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무력감의 역설일 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대해 함께 행동하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말한다. 책 ‘별일 아닌데 뿌듯합니다’(클랩북스)는 자신만의 실천법을 소개한다. 쓰레기 배출을 하지 않기 위해 택배를 끊고, 냄비를 든 채 테이크아웃을 하며, 눈앞에 보이는 일회용품은 꼭 필요한 사람에게 가도록 돌려주고, 필요한 것이 생기면 사지 않고 얻는 방법에 골몰했다. 책은 지구를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작고 귀찮은 일들에 관한 이야기다.
‘알맹이만 팔아요, 알맹상점’(위즈덤하우스)은 제로웨이스트(쓰레기 배출량을 줄이는 것) 가게 망원동 ‘알맹상점’을 창업한 세 공동 대표 얘기를 담고 있다. 동네 시장의 비닐봉지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싶어 모인 사장들의 고군분투기다. 화장품이나 세제는 리필(비어 있는 그릇에 내용물을 다시 채움)할 수 있도록 했고, 탄소배출을 줄이려고 노력한 제품, 사회적 가치를 추구한 제품, 비건 지향 제품 등을 팔며 연대의 힘을 이야기한다.
‘지구를 살리는 옷장’(창비)은 패션회사 출신 저자인 두 사람이 일반인들도 실천 가능한 지속가능 의류를 찾아 입는 법을 알려준다. “무엇을 살지 고르는 일뿐만 아니라, 어떤 것을 사지 않을지 결정하는 일”도 지구를 위한 일이라는 생각에서다.
책의 소재와 관점은 제각각이지만 주제는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집단 행동이냐, 집단 자살이냐. 그것은 우리 손에 달려 있다.” 최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페터스베르크 기후회담에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작심한 듯 내놓은 경고다. 내일의 지구는 오늘보다 위태로울 것이란 사실이 명징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