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오후 서울 송파구에 있는 새마을전통시장. 이곳에서 만난 박경근(63·남)씨는 두부틀을 씻으며 말했다. 시장에서 두부집을 운영중인 박씨는 그 날 만든 두부는 당일 판매를 원칙으로 한다. 그간 남는 두부는 폐지 줍는 할머니들에게 나눠왔다. 시장 입구에 ‘공유냉장고’가 생긴 후부터는 이틀에 한 번 꼴로 냉장고에 두부를 채워 넣는 중이다.
독일에서 시작한 공유냉장고가 우리나라에서도 확산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울과 수원을 비롯해 전국에서 시행 중이다.
공유냉장고는 말 그대로 모두가 함께 사용하는 냉장고다. 누구나 음식물을 냉장고에 채워 넣을 수 있고, 공짜로 가져갈 수 있다.
이웃들과 먹거리를 나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음식물 쓰레기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실제로 전 세계에서 생산하는 음식물 중 절반은 버려진다.
우리나라의 하루 음식물 쓰레기 발생량만 해도 2016년을 기준으로 하루 약 1만4000톤이다. 이는 해마다 증가중이다.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낭비되는 음식물은 더 늘어나고 있다.
학교서 자체 운영도...“교육적 효과 커”
현재 전국에서 공유냉장고가 가장 활성화된 곳은 경기도 수원시다. 공유냉장고는 대부분 민간이 위탁 받아 운영된다. 그중 수원에서 4호 공유냉장고를 운영 중인 삼일공업고등학교는 교내 환경과에서 자체적으로 운영 중이다.
시작은 현재 학교 옥상에서 교사와 학생이 함께 운영하는 작은 텃밭에서부터였다. “수확되는 작물을 넣어두고 공유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지인의 추천에 김민 삼일공고 환경과 부장교사가 팔을 걷어붙였다.
옥상 텃밭에서 수확한 농작물 말고도 학교 선생님들이 개인적으로 냉장고를 채워 넣기도 한다. 냉장고가 채워지면 학교 게시판에 공지를 하거나 톡방을 통해 학생들에게 알린다.
취지는 좋은데...아는 사람 얼마 없어
기부하고, 나누는 문화를 확산해 낭비되는 음식물을 줄이겠다는 취지와 달리 사업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인식은 부족한 편이다.
김 교사는 “같은 학교 학생들도 공유냉장고가 무엇인지 정확하게는 잘 모른다”며 “그래서 학생들이 냉장고를 채워넣는 비율이 낮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실제로 공유냉장고를 알고 있는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시민 10명 중 7명은 “전혀 모른다”고 답했다. 나머지 3명도 “이름만 들어봤다”고 말했다.
서울 잠실의 공유냉장고 바로 앞에서 약국을 운영중인 류근화(60·여)씨는 “다른 분들은 잘 모르겠고 주로 떡집 사장님이나 두부집 사장님이 냉장고를 많이 이용한다”고 전했다.
반면 약국 인근 빵집과 시장 상인들은 “공유냉장고를 이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용 원칙 준수율 저조... 관리방법 개선 필요
공유냉장고 관리 주체는 대부분 민간인만큼 관리 원칙도 다양하다. 일일이 관리가 어려워 시민들의 양심에 맡기는게 일반적이다. 이 때문에 한 사람이 일정 수량 이상의 많은 먹거리를 가져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잠실 공유냉장고 '모두의 냉장고'를 운영중인 잠실종합사회복지관 측은 “기부에 대한 원칙은 대체로 잘 지켜지는 편이지만 이용에 대한 원칙은 잘 지켜지지 않을 때가 있다”며 “원칙에 대한 안내 방법을 다르게 시도해보고자 한다”고 전했다.
과거 성북구에서 공유냉장고 ‘우리나누새’를 운영했던 김민이 땡큐플레이트 대표는 “공공센터나 교회처럼 어느정도 출입 인원이 고정돼있어 관리가 가능한 곳에서 운영하는 것이 처음엔 좋다”고 말했다. 이어 “유통기한을 알 수 없는 반찬이나 완제품보다 캔·봉지처럼 뜯을 수 있는 제품을 공유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공유냉장고는 수익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보니 일반적인 사업모델로 적합하지 않다.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우리나누새도 2015년 사업을 시작한 후 총 6대의 공유냉장고를 설치했지만 유지비용과 홍보 등의 문제로 지금은 잠시 사업을 중단했다.
김 대표는 "적더라도 지속적인 지원이 있으면 이 사업을 이어갈 힘이 생길 것"이라며 "온전히 민간이 운영하기엔 어려움이 많다"고 전했다.
사업 지속과 확장에 어려움을 겪는건 김 대표 뿐이 아니다.
잠실종합사회복지관 관계자도 "냉장고를 추가로 설치할 거점을 구하고 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며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이 전파될 수 있도록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스냅타임 심영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