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야권 단일화 키 쥔 안철수의 선택은

각종 여론조사 1위 싹쓸이…다자·양자구도 압도적
국민의힘, ‘러브콜’ 지속…외부인사 예비경선 면제 검토
입당에 선 그어…2018년 단일화 실패 재현 우려
2012년 보선·2016년 대선 양보 학습효과로 ‘배수의진’ 쳐
전문가 “지지율1위, 진영논리 없단 방증"
  • 등록 2021-01-11 오전 5:00:00

    수정 2021-01-11 오전 5:00:00

[이데일리 박태진 기자] 야권 단일화의 키는 그가 쥐고 있다. 3개월 남짓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후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석권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두고 한 말이다. 특히 안 대표가 제1야당 국민의힘과의 단일화에 신호탄을 쏘면서 여론까지 뒷받침되자 야권의 주도권 경쟁에서 한발 앞서 가고 있는 모습이다. 서울시장 보선의 상수로 떠오른 안 대표의 최종 선택에 관심이 쏠린다.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석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야권 단일화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안 대표가 지난 4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사진=노진환 기자)


安, 신년 여론조사 압도적 1위

안 대표는 신년부터 연일 상한가를 쳤다. 여론조사업체 입소스가 SBS의 의뢰로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1일까지 서울 거주 만 18세 이상 801명에게 서울시장 후보 선호도를 물은 결과(표본오차 95%에 신뢰수준 ±3.5%포인트) 안 대표가 24.1%로 1위를 기록했다. 여권 유력주자인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장관(15.3%)는 2위, 오세훈 전 서울시장(9.5%)은 3위를 각각 차지했지만 안 대표와 격차가 눈에 띌 정도다. 안 대표는 여야 다자간 경쟁 뿐 아니라 3자간, 양자간 대결 구도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리얼미터가 YTN과 TBS의 의뢰로 지난달 29일과 30일 양일간 서울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20명을 대상으로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를 조사한 결과(표본오차 95%에 신뢰수준 ±3.1%포인트)에서도 안 대표는 24.9%로 2위 박 장관(13.1%)을 10% 포인트 이상 앞섰다. 더욱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서울시민들은 범야권에서 단일 후보를 내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에 안 대표가 이번 보선의 주도권을 잡았다는 해석과 함께 국민의힘 지도부의 고심도 깊어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일단 국민의힘에서는 안 대표에게 입당 및 합당을 권유하고 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6일 안 대표를 만나 입당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안 대표를 향해 “야권 단일화를 위해 국민의힘으로 들어와 달라”며 “그러면 저는 출마하지 않고 야권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조건부 출마선언을 했다.

국민의힘 4·7재보궐선거 공천관리위원회는 당초 예비경선(100% 시민여론조사), 본경선(20% 당원+80% 시민) 룰을 서로 맞바꿔 외부인사를 배려하는 모습도 보였다. 안 대표를 의식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또 안 대표 등 외부인사들의 예비경선 면제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오는 18일부터 시작하는 경선 후보 등록 전에 외부인사가 당에 합류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만큼 후보 단일화에 대비한 사전 작업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당 밖 인사들이 언제든 경선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터준 셈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지난달 20일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선언을 마치고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노진환 기자)


국민의힘과 샅바싸움에 시나리오만 분분

그러나 안 대표는 입당 및 합당에 대해서는 일단 선을 그었다. 지난달 출마선언 당시 국민의힘 입당도 검토할 수 있다며 전향적인 스탠스를 취했을 때보다는 신중해진 입장이다. 안 대표는 단일화를 서두르지 않는 이유로 지지율을 꼽았다. 그는 이와 관련 “정치세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원 수보다 지지율”이라고 답했다. 그는 또 국민의힘 유력 주자들과 단일화에 대해서는 시기상조라고 했다. 이로 인해 안 대표와 국민의힘 간 단일화 샅바 싸움이 계속되면서 각종 시나리오만 분분하다.

우선 안 대표가 입당에 선을 그은 만큼 국민의힘 후보로 경선을 치를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만약 안 대표와 국민의힘이 합의점을 찾지 못한다면 안 대표는 국민의당 소속으로 보선에 나서 3자대결을 벌일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아직 단일화까지는 시간적 여유가 있는데다, 안 대표 역시 후보 단일화의 필요성을 연일 강조하고 있는 만큼 어떤 형태로든 단일화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당 대 당 단일화 가능성이 적지 않다. 선거전 막판 단일화를 통해 여론의 주목도를 높이는 효과를 낼 수도 있다.

안 대표가 단일화에 애초보다 신중한 모습을 보이면서 과거 단일화 사례로 회귀하지 않을지 우려도 나온다. 2018년 서울시장 지방선거에서는 당시 김문수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후보와 단일화에 실패한 바 있다. ‘철수정치’, ‘간철수’란 말들이 나올 정도로 그의 행보는 처음 계획과 달리 후퇴한 경우도 적지 않아서다. 다만 안 대표는 2011년 40%가 넘는 지지율에도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의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이듬해 문재인 대통령(당시 민주통합당 후보)과 대통령선거 단일화를 통해 양보했던 학습효과를 상기해 이번에는 단일화의 주인공이 되겠다는 각오다. 대선 출마까지 내려놓으며 배수의 진을 치고, 정치생명까지 건 결연한 모습이다.

안 대표는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전날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와 만나 힘을 얻었다는 글을 올렸다. 김 교수는 이 자리에서 ‘서울시도 이제 전 시장의 어두운 죽음을 넘어 밝은 도시가 되어야 한다. 의사 출신인 안철수가 국가의병, 민족의 병을 치료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링컨 미국 대통령 연구로 보스턴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김 교수는 식사 후 안 대표에게 링컨 사진 액자를 선물한 것으로 전해졌다.

안 대표는 “돌아오는 길에 ‘나무를 베는 데 6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도끼를 가는 데 4시간을 쓸 것이다’라는 링컨의 말이 떠올랐다”며 “이제 나무를 베러 나서야 할 시간이다. 썩은 나무를 베고 희망의 나무를 심기에 좋은 날이 머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안 대표 지지율이 높다는 것은 어느 한쪽의 진영논리에 빠져 있지 않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며 “안 대표가 진보·보수 진영을 왔다갔다했지만, 국민들 입장에서는 안 대표를 지지하는 게 이성적인 판단이며, 우리나라 정치에서 희망적인 신호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이번 보선의 변수는 야권 단일화다. 야권 극적인 효과와 야권의 절박함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안 대표와 국민의힘 최종 후보가 합치는 게 제일 좋다”면서도 “국민의힘 입장에선 자기 당 소속 후보가 선거에 못 나가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지만, 범야권의 서울시장 탈환을 위해서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지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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