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포퓰리즘적 대출확대 정책

  • 등록 2015-06-08 오전 8:00:00

    수정 2015-06-08 오전 8:00:00

[이데일리 송길호 금융부장] 가계대출확대전략. 근시안적인 정치권과 관료에겐 매력적이다. 비용은 미래에 은근슬쩍 전가되지만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레버리지를 일으켜 성장의 엔진이 될 수 있고 자산가격 상승을 통해 담콤한 ‘부의 효과’도 누릴 수 있다.적절한 감시와 규제 없이 무분별하게 이뤄지는 대출확대는 그러나 경제에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법. 유권자의 일시적인 환호를 기대하는 포퓰리즘적 신용확대 정책은 반드시 부메랑으로 돌아와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미국 역사상 주택보유율을 가장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 클린턴 행정부는 급했다. 의료보험개혁 실패 후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특단의 정책이 필요했다. 1995년 국민주택보유증대를 위한 전략은 이 같은 배경에서 나왔다. 주택시장 활성화를 위해 각종 주택자금과 행정비용을 지원했다.정부 보증기업인 모기지업체 패니 메이와 프레디 맥이 그 전위대였다.

부시 행정부는 한발 더 나아갔다. 주택시장 과열을 억제하기 위해 금리인상 움직임이 보이자 패니와 프레디를 통해 더 많은 자금을 대출에 쏟았다. 모기지대출을 받을 능력이 없는 계층에까지 대출이 확대됐다. 부실대출이 눈덩이처럼 불어났지만 규제와 감시장치는 작동하지 않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이렇게 오랜 기간 진행된 정치권 대출확대 정책의 산물이었다.

국내에서 가계대출 문제가 경제정책의 화두로 등장한 건 2000년 초반. 외환위기의 파고를 거치며 기업들의 자금수요가 크게 줄어들자 은행들은 가계 대출을 빠르게 늘렸다. 정책당국 내부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찻잔속 태풍일 뿐이었다. 2002년 대선을 목전에 두고 빚을 통한 경기부양에 감히 제동을 걸겠다는 관료는 없었다. 규제완화의 바람, 부동산시장 부양이라는 정책기조 속에 버블은 그렇게 잉태됐다.

지표상으로 보면 가계부채는 이미 위험수위를 넘었다. 2000년대 들어 일관되게 경제 전체의 파이보다 부채 늘어나는 속도가 빠르다. 가처분소득과 비교한 가계부채 비율은 미국· 일본 등 선진국보다 훨씬 높다. 특히 저소득층과 고연령대의 부실 가능성이 심각하다. 전체 소비여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저소득층의 부채상환능력은 급속히 악화하고 있다. 은퇴기에 접어든 베이비부머세대인 50대 가구의 부채규모는 전체의 3분의 1을 넘는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가계부채 문제로 한국의 성장 모멘텀이 떨어지고 있다고 경고한다. 국내 전문가들은 금융위기의 최대 위험요인으로 가계부채 문제를 꼽는다.(한국은행 설문) 이 같은 상황에서 가계 대출규정이 또 완화될 조짐이다. 금융당국이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조치를 1년 더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주택경기에 찬물을 끼얹지 않겠다는 정책의도는 이해하지만 가계 빚의 충격을 흡수할 만한 안전판이 미약하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저소득층의 부채상환능력을 감안하면 DTI 규제완화는 특히 신중해야 할것 같다. 대출자의 소득을 기반으로 산정되는 DTI 규제는 저소득층의 대출증가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가계부채의 덫에서 탈출하기 위한 근원적인 해법은 경제전반의 소득 창출 능력을 제고하는 일이다. 하지만 단기간에 이뤄질 수 없는 목표라면 저소득층과 고령층의 부채상환능력을 끌어올리는 정교한 대책이 필요하다. 저소득층의 취업기회를 확대하고 주택연금 활성화를 통해 고령층의 부동산 자산을 원활히 현금화할 수 있는 방안 등을 마련해야 한다. ‘부채를 통한 성장’ 모델은 반드시 한계에 직면하는 법. 일시적인 인기영합의 유혹을 떨쳐내고 기본적인 펀더멘털을 다지는 포석이 절실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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