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윤종성 기자]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선박금융공사 설립을 강력히 밀어붙이고 있다. 김용준 총리 후보자 낙마,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사퇴 거부 등 매머드급 이슈에 파묻혀 부각은 크게 되지 않았지만 소리 소문없이 공사 설립은 가시화 되는 모습이다. 한발 더 나아가 최근엔 선박금융공사를 ‘해양금융공사’로 확대하고, 출자금도 2조원 규모에서 두 배 이상 불릴 것이란 얘기까지 흘러나온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해양금융공사 설립에 관한 법안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정책금융공사 외에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등으로부터 돈을 긁어모아야 한다.
선박금융공사는 일단 정부로부터 2조원 가량의 자본금을 출자받아 신용도가 낮은 중소 조선업체들의 선박금융을 지원하는 기관이 될 전망이다. 선박금융 지원을 통해 중소 조선업체들의 ‘돈맥경화’ 현상을 풀어주고, 죽어가는 경남권 지역 경제도 살려내겠다는 의도로 해석되고 있다.
조선업체들은 당연히 공사 설립에 반색하고 있다. 하지만 지원 효과에 대해선 고개를 갸우뚱 거린다. 공사의 설립 취지가 금융 지원을 통한 중소 조선업체들의 회생이라면 원인과 진단이 잘못된 정책일 수 있다는 얘기다. 조선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중소 조선사들의 태반이 벌크선과 중소형 선박을 중심으로 일감을 확보하는데, 이 분야는 이제 중국의 몫”면서 “선박금융 지원은 단기적으로는 효과를 볼 수 있지만, 결국 중소 조선업체들에겐 숨통만 붙여놓는 땜빵식 처방이 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지식경제부와 한국조선협회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선박 수주는 300억달러로, 중국을 제치고 2년째 세계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선박 수주의 대부분은 해양플랜트와 LNG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이고 저가 선박 영역에선 값싼 중국 조선사들의 쏠림현상이 심해져 국내 중소 조선업체들은 비빌 언덕조차 없어진 셈이다.
결국 중소 조선업체들에 대한 자금지원은 ‘밑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공산이 크다. 아직도 예전 조선산업의 ‘영광’에 젖어, 그리고 중소기업 지원이라는 대의명분에만 급급해, 국민의 혈세를 경쟁력 없는 중소업체 지원에 쏟아붓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죽어가는 중소 조선업체들에게 정작 필요한 건 일시적인 연명을 위한 ‘산소호흡기’가 아니라 구조조정과 같은 본질적이고 고강도의 체질 개선이라는 점을 곱씹어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