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문재인 시대의 금융

  • 등록 2017-05-15 오전 6:00:00

    수정 2017-05-15 오전 8:20:34

[이데일리 송길호 금융부장]
은행이 실질적으로 공기업화된 건 1961년 5.16혁명 직후였다. 당시 군사정부는 은행 대주주의 의결권을 10%이내로 제한하며 주주권을 장악했다.(6월20일 금융기관에 관한 임시조치법) 경제개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은행을 자금배급소로 활용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배급금융,정책금융,관치금융의 탄생이다.

자율 안정 개방. 1980년대초 경제운용이 정부주도에서 민간주도로 전환되면서 은행도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독립된 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논의가 일었다. 민영화, 자율화, 규제 혁파...각종 개혁과제들이 제시됐지만 점진적 변화를 내세운 현실론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기저에는 정책금융 창구로서 은행의 효용가치를 포기할 수 없다는 계산법이 깔려 있었다.

1990년대말 외환위기를 분기점으로 일대 인식 전환이 이뤄진다. 대마불사의 신화가 깨지고 부실은행이 문을 닫는 현실에서 은행에 더 이상 공공성만 요구할 수는 없었다. 금융산업 발전을 위해 자생력을 불어넣어 독자 산업화해야 한다는 논의가 본격화됐다. 노무현정부의 동북아 금융허브론, 이명박정부의 메가뱅크론은 이 같은 인식의 연장선. 하지만 논의만 무성한 채 정권 차원의 구호에 그치다 결국 유야무야 됐다.

반백년 넘는 한국경제 성장사. 돌이켜보면 한국 금융은 관치의 그늘에서 점차 벗어나 자율과 개방의 길로 한 걸음씩 전진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다. 은행을 정책금융의 창구, 실물부문의 보조수단으로만 보는 반쪽짜리 인식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시대 5년도 별반 다를 것 같지 않다.

문재인표(標) 금융정책은 아직 불분명하다. 금융당국 주도로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지만 금융산업 발전을 위한 정권 차원의 명확한 청사진은 보이지 않는다. 일자리창출, 재벌개혁 등 다른 국정과제들에 우선순위가 밀려 있기 때문일 터이다. 다만 대선 과정에서 산발적으로 제시된 공약들을 보면 금융부문에 대한 인식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는 성과연봉제 백지화 검토. 선거과정에서 노동계의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인정해도 이 같은 정책 뒤집기는 분명 근시안적인 접근이다. 일부 노조는 기다렸다는 듯이 기존 합의를 뒤엎겠다고 나서고 금융노조는 집단적으로 동조할 움직임을 보인다.

은행을 경쟁력 있는 비즈니스 조직, 고도의 서비스산업으로 키우기 위한 전제조건은 크게 두가지다. 은행의 역할을 공공성의 울타리로 묶는 사회적 인식에서 탈피하는 일. 여기에 은행 내부적으로 성과에 연동해 보상이 이뤄지는 실적주의(merit system)를 도입하는 길이다. 자율화, 민영화를 힘차게 외쳐도 의식의 전환과 제도적 뒷받침 없이는 모두 공염불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성과연봉제 도입 문제는 단순히 임금체계 개편 이슈로 한정할 수 없다. 은행을 독자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기본전제이자 필수조건이다. 성과연봉제를 토대로 한 실적주의의 정착 없이는 관치금융의 철폐도 은행의 독자 산업화도 모두 언감생심(焉敢生心)이라는 얘기다.

전임 정권의 레테르가 붙은 정책이라고 무조건 주홍글씨로 낙인찍고 백안시하는 건 무책임하다. 정책의 일관성과 연속성, 장기적인 안목에서 금융산업의 도도한 발전이라는 흐름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치열하게 고민할 일이다. 반백년 넘게 뿌리깊게 이어져 내려온 은행에 대한 편협된 인식. 이를 극복하지 않는 한 문재인 시대의 금융도 보신과 안일, 관치로 얼룩진 이전 관행에서 크게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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