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2년은 투자 없이 생존할 방법 확보해야"

[만났습니다]①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
"투자자들 태세 전환, 국내 기업은 자금 확보할 길도 좁아"
"위기 어떻게 극복하느냐 따라 더 빨리 성장"
비대면 진료 허용할 때…"정부, 여야 자꾸 규제 만들려 해"
  • 등록 2023-02-05 오전 11:47:24

    수정 2023-02-06 오전 7:34:59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 신년 인터뷰


[이데일리 김국배 기자] 2000개가 넘는 국내 스타트업이 회원사로 있는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의 최성진 대표는 요즘 스타트업을 만나면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다. “런웨이를 최소 2년 이상 확보하라”는 것. 런웨이는 스타트업이 추가 투자 없이 생존할 수 있는 기간을 뜻하는 용어로 언제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지, 사업 모델을 조정할 필요가 있는지 등을 보는 중요한 ‘창(窓)’이다.

수년간 전문가들은 12~18개월의 런웨이를 목표로 하라고 말했는데 지금은 경제 상황을 고려해 더 길게 가져가라는 것이다. 최 대표는 “지금의 위기가 언제까지 갈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저나 박재욱 의장(쏘카 대표)이나 일단 투자를 못 받더라도 생존할 방법을 먼저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했다.

지난해 스타트업 투자 시장엔 한파가 몰아쳤다. 투자가 끊겨 경영이 악화된 스타트업들이 매물로 나왔고, 업종을 대표하는 ‘스타급’ 스타트업들도 구조조정에 나설 만큼 업계 전체가 얼어붙었다. 부릉, 샌드박스 네트워크 등이 회생 신청을 하거나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달 29일 지난해 벤처투자액이 전년 대비 11.9% 감소한 6조7640억원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최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만난 최 대표는 “갑자기 경영 환경이 180도 바뀐 것”이라며 “지금은 생존이 먼저다. 적응력과 회복력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염두에 두고 위기에 대응해 나가야 할 때”라고 말했다.

다음은 최 대표와의 일문일답.

-경영 환경이 얼마나 달라졌나.


△2021년에는 워낙 스타트업 투자 시장이 좋았다. 거시적 시각으로 보면 아직도 상승 국면에 있지만, 2021년 이후 위축된 건 사실이다. 투자자들의 스탠스가 바뀌었다. 작년 상반기만 해도 ‘경쟁사보다 빠르게 성장해 시장을 선점하자’는 게 투자자들의 주문이었다면, 이제는 태세가 전환됐다. 매출, 영업이익 등 이전과 다른 지표들을 주문하는 상황이다.

-어떤 기업들이 특히 어려움을 겪었나.

△제일 어려운 데가 (작년) 하반기에 후속 투자를 받으려고 계획했던 곳들이다. 왜냐하면 기존 투자금은 계획상 연내 다 소진되게 돼 있는데 갑자기 경영 환경 자체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투자 시장이 좋으면 런웨이를 길게 가져갈 필요는 없다. 다시 IR(투자유치)를 돌면 짧으면 6개월, 길어도 1년 안에 다음 라운드를 갈 수 있을 테고, 그게 더 빠르게 성장하는 방법이니까.

-국내 기업이 더 어려운 부분이 있나.

△현재 혹한기는 (인플레이션 쇼크로) 세계 경제가 냉각되면서 맞고 있는 것이지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의 특수성 때문은 아니다. 다만 우리나라는 위기 상황에 스타트업이 선택할 수 있는 경로가 많지 않다. 인수합병(M&A)이나 기업공개(IPO)가 활성화되지 못해 엑시트 쪽이 약하다. 스타트업이 어려우면 투자 외의 다른 대안(자금 조달 방법)을 찾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제한적이다.

-어떻게 생존해야 할까.

△의미 없는 버티기는 말 그대로 의미가 없다. 지금은 생존이 먼저다. ‘적응력’과 ‘회복력’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염두에 두고 핵심 사업 영역이나 강점 등이 무엇인지 유연하게 판단하며 위기에 대응해 나가야 한다. 살아남는 기업만이 후일을 도모할 수 있고,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내느냐에 따라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닷컴버블 이후 미국의 구글·페이스북(현 메타)이 등장했고,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터진 뒤 우버, 에어비앤비가 나오지 않았나.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
-우리 스타트업 생태계는 어느 단계에 와 있나.

△뒤처지고 있진 않지만 그렇다고 앞서나가고 있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굳이 얘기하자면 우리나라 경제 규모에 상응하는 정도. 생태계는 잘 성장하고 있는 편이나, 글로벌 경쟁력 측면에서는 아직 부족하다. 현재 국내 스타트업들은 한국 시장에서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받아 어느 정도 성장한 다음 글로벌 시장 진출은 혼자 힘으로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스타트업에만 “빨리 해외로 나가라”고 할 게 아니라 우리 생태계 전체가 글로벌화돼야 한다. 우리 벤처캐피털도 글로벌 시장을 알 수 있게 해외 스타트업에 많이 투자해보고, 국내 스타트업들 역시 초기 단계부터 해외 시장을 탐색하도록 하는 등 그런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저희가 ‘컴업(국내 최대 규모 스타트업 행사)’ 같은 행사를 개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부는 어떤 스타트업 정책을 펴야 할까.

△성공적이었던 프로그램은 확대하고, 제도적 걸림돌은 제거하는 이 두 가지 방향에서 정책을 계속 펼쳐 나가야 한다. 모태펀드(정부 주도 스타트업 펀드)라든지 팁스(TIPS) 프로그램(민간이 먼저 투자하면 정부가 추가 지원하는 제도) 등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정부 정책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정부가 딱 정해서 하는 게 아니라 민간의 의사결정을 따라가는 것이었다. 창업자의 경영권을 보호하기 위한 복수의결권 문제 등은 해결해야 할 제도적 걸림돌이다.

-우려되는 부분은.

△안타깝게도 모태펀드 예산이 2년 연속 큰 폭으로 줄었다. 작년에 비하면 올해 예산(3135억원)은 절반(40% 축소)밖에 안 된다. 이는 지금처럼 투자 혹한기 상황에서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게 더이상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시그널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세심하게 해야 한다. 정부 말대로 민간 중심으로 가는 게 맞는 방향이긴 하지만 모태펀드 자체가 100% 관 주도 시스템이 아니고, 더 크게 운영하면서도 민간의 주도성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올해 어떤 규제 개선에 노력을 기울일 계획인가

△코로나 팬데믹 기간 한시적으로 허용됐던 비대면 진료를 이제 제대로 제도화하기 위해 노력하려고 한다. 비대면 진료는 디지털 헬스케어 영역을 쥘 수 있는 키(Key)다. 규제 해소보다 더 중요한 과제는 정부, 여야가 자꾸 만들려는 규제가 합리적으로 진행되도록 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말 네이버, 카카오 등 플랫폼 기업을 겨냥한다면서 스타트업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불합리한 규제가 추진돼 반대를 많이 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선 자율규제 중심으로 가다가 카카오 서비스 장애 이후 규제 움직임이 커져 우려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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