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기대만큼 경계도 필요한 전기차 대망론

  • 등록 2015-12-31 오전 9:00:00

    수정 2015-12-31 오전 9:00:00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전기자동차는 (각국 정부의) 환경 규제 때문에 만들어 팔기는 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로선 고객의 TCO(총소유비용)과 맞지 않습니다. 제조사로서는 딜레마죠.”

박홍재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KARI) 소장은 지난 29일 열린 내년 시장전망 세미나에서 말했다. 환경 규제라는 채찍과 보조금이라는 당근으로 시장이 늘고는 있지만 시장 논리로는 기존 내연기관차를 아직 이길 수 없다는 분석이다. 그는 “보조금을 늘리면 많이 팔리지만 그만큼 정부 부담도 커집니다. 판매가 늘수록 지원이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유럽은 이미 그 단계까지 와 있고요”라고 덧붙였다.

전기차가 지금의 내연기관차를 대체할 것이란 대망론이 뜨고 있다. 대중 여론만 보면 미국 테슬라가 국내 진출하면 모든 게 바뀔 듯하다. 어떤 세력이 전기차의 보급을 막고 있다는 음모론도 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반대 세력 때문이 아니다. 시장 논리 때문이다.

현재 국내 판매 중인 소형 전기차의 원 판매가격은 4000만원에 달한다. 대형·고급차에 버금간다. 2000만원 전후의 정부·지자체 보조금 없이 사기엔 너무 비싸다. 보조금만큼 세금이 들어간다. 단순 계산하면 지금 국내에서 판매된 전기차 5000여대에 들어간 돈은 1000억원 이상이다. 내년 보급 목표인 8000대를 달성하려 현 보조금 체계를 유지한다면 내년 한 해만 1600억원이 추가 투입된다.

발명가 에디슨이 1900년대 초 초기 전기차와 함께 기념촬영하는 모습. 전기차는 1920년대 내연기관차와 패권을 두고 대등하게 겨뤘으나 시장 논리에 따라 결국 자취를 감췄으나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다.
사회적 비용은 이뿐 아니다. 정부는 2008년 전후 전기차를 보급한다고 최고시속 60㎞의 저속 전기차를 도로 위에 달릴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현재 운행 중인 저속 전기차는 불과 100여대다. 전체 차량 등록대수 2800만대의 0.0004%를 위해 전용도로마다 진입 금지라는 별도 안내 표지판을 세운 것이다.

정부의 세수 확보도 문제다. 현재의 주유비의 60%는 세금이다. 대표적인 유류세목인 교통에너지환경세는 연 13조~14조원에 달한다. 전기차가 늘면 늘수록 정부의 부담은 늘고 세금은 줄어드는 구조다.

전기차가 기존 내연기관차와 대등한 상품성을 갖추려면 가격과 주행거리의 핵심인 전기 배터리의 비약적인 발전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생산량이 늘면 가격은 내린다. 그러나 2000만원이라는 가격 격차를 언제까지 줄일 수 있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전기차·배터리 업계는 물론 10년 후 가격을 4분의 1까지 줄일 수 있다고 전망하지만 장담할 순 없다. 스마트폰도 10년이 다 돼가지만 가격이 비약적으로 낮아지거나 배터리 성능이 비약적으로 개선되진 않았다.

전기차가 정말 친환경적이기만 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전력원 자체가 친환경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전력원 대부분은 원자력·화력 발전으로 만든다. 국내에서 풍력·수력·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가 만드는 전력은 전체의 3.7%(2014년 말 기준)에 불과하다. 전 세계적으로도 21.5%, 2030년 전망치도 37.3%이다. 신재생에너지 업계의 장밋빛 전망을 고려하더라도 여전히 원자력이나 화력이 더 중요한 전력원이란 의미다.

2010년 지자체에 시범 도입됐던 최고시속 60㎞ 저속 전기차. 지금은 100여대 만이 남아 있다.
전기차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전력원 중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커지고 내연기관차를 순수 친환경차가 대체하는 선순환 구조가 이뤄진다면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아니,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이 돼 버린 영화 ‘인터스텔라’ 속 지구를 생각하면 반드시 이뤄내야 할 미래의 중요 과제일 수도 있다.

무조건적인 장밋빛 전망은 경계할 필요는 있다. 전기차를 악용하려는 사람 때문이다. 전기차 관련 이슈가 생길 때마다 주가가 출렁였다. 2008년 정부의 전기차 정책에 몇몇 회사가 전기차주라며 관심을 끌었다. 주가가 급등했다. 그러나 이들 중 현재 살아남은 회사는 거의 없다. 일반 개인투자자는 쏟아부은 돈을 고스란히 날렸다.

지금도 전기차 관련 소식이 있을 때마다 시장은 반응한다. 전기차 테마주로 분류되는 기업의 주가가 크게 출렁인다. 현실의 한계를 훨씬 뛰어넘어 때론 위태로워 보이기도 한다.

테슬라 모터스도 마찬가지다. 미래가치는 크다. 300억 달러(약 35조원)에 달하는 시가총액이 이를 증명한다. 현대·기아차를 합한 시가총액의 여섯 배다. 그러나 테슬라는 아직 한 번도 이익을 낸 적 없는 적자 회사다. 차 판매가 아닌 정부 정책으로 그나마 유지되는 의존적 회사다.

테슬라의 주 무대인 미국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일정 수량 이상의 탄소 무배출 차량(ZEV) 판매를 의무화하고 있다. ZEV를 더 팔면 크레딧을 팔고, 못 팔면 사도록 하는 강력한 정책이다. 테슬라의 수익도 이 크레딧 판매로부터 나온다. 대중의 인기와 막대한 자금력을 갖췄지만 이를 바탕으로 언제 순수한 수익구조를 만들 수 있을진 아직 알 수 없다.

대중은 파격적인 것, 새로운 것에 열광한다. 그러나 그게 정답은 아니다. 내 돈, 내가 내는 세금이 걸렸다는 걸 대중이 인식하기 시작하면 문제는 일순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전기차는 100년 전인 1920~1930년대 내연기관차에 밀려 사라졌던 역사도 있다. 이해관계자, 특히 투자자라면 더 냉정할 필요가 있다.

한때 상장해 시장의 큰 관심을 모았던 어울림네트웍스의 전기 스포츠카 ‘EV 스피라’. 실제 판매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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